지난달, 2월 6일(설 전날) 경산시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22살의 베트남 신부가 투신했다는 뉴스는 충격이었다. 다른 도시도 아니고 내가 사는 도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기에 더더욱 충격이었다. 서둘러 시신을 화장해 유골을 베트남에 보냈다는 대목에서는 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타인인 나도 분노를 멈출 수가 없는데 그 부모는 오죽할까. 

어린 딸을 한국에 시집보낸 베트남 가족들은 딸의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뼛가루가 된 모습을 봐야하다니.... 베트남 가족과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에 난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말이 통하는 중국동포, 핏줄이 통하는 사할린 동포, 그리고 영어 잘하는 필리핀신부에 눈독을 들이다가 여러 문제가 생기자 돌고 돌아 ‘남편에 순종하고 냄새 안 나는’ 베트남 신부에 열을 올리던 우리네 천박한 이기심이 기어이 일을 낸 것이다. 

이젠 정말, 말이 좋아 국제결혼이지 불평등한 국제노예결혼을 그만 둘 때가 되었다고 본다. 결혼 중계업체의 설명대로 순종 잘하고 부모 잘 섬기는 그녀들이 오죽하면 자살을 했겠는가. 문제는 그녀들이 아니라 우리 쪽이 문제이다. 아무리 돈으로 신부를 산다지만 나이차이가 10년 20년 나는 것은 애초에 파국의 불씨를 안고 결혼하는 것이다.

남녀 관계는 그 어떤 화학식 보다 어려운데 돈으로 모든 것을 뛰어 넘겠다는 것은 생각부터가 틀려먹었다. 언젠가 신문을 보니 한국 총각이 1000만원을 들이면 베트남신부 가족에게는 많아야 40만원이 떨어진다던데 베트남까지 왕복하는 경비를 뺀다하더라도 중개업자들의 이익이 너무 크다. 

이런 악덕 중개업자 말고, 결혼 후의 삶을 지원해주는 시민단체도 필요하지만 결혼자체를 합리적으로 연결해주는 지원 단체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결혼 후보다 결혼 전의 마음가짐을 점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일정교육(남성과 그 부모)을 받게 하고 상담하여 외국여성과 결혼해도 손색없을 가치관, 세계관이 보이면 만남을 주선하는 등 말이다. 

외국인 신부에게 전통문화 강요하지 말아야...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인 여성과 결혼할 한국 남성이라면 일단 그 마음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잊기를 권하고 싶다. 결혼할 남성은 물론 그 가족들도 상대 신부에게 한국의 관습, 인습을 강요할 생각을 아예 말아야 한다.

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도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가 시댁식구들과의 관계 맺기와 차례, 제사 등 유교문화를 따르려면 회의가 들고 피하고 싶어지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 신부들은 오죽할까. 게다가 말이 안 통해 따르고 싶어도 따를 수가 없는데 어떡하라는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얘긴데 진정 외국인신부와 결혼할 생각이라면 다른 아무것 생각하지 말고 결혼 후, 한 2년 정도는 둘만 살면서 서로의 말을 배우고 가르쳐주기에만 몰입하면 어떨까싶다. 

부모 모시고 인사드리고 자식노릇하고 이런 것 다 치우고 오로지 두 사람 만 깨를 볶으면서 서로의 말을 배우란 말이다, 한국말만 배우라 하지 말고. 그렇게 서로의 말을 배우면서 두 사람의 유대를 확고히 한 다음 시댁과의 관계 맺기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무런 울타리도 되어주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로 적응해서 살면 되지 하면서 시작했다가는 부부도 힘들고 시부모도 힘들다. 두 나라의 문화차이, 나이 차이, 음식 차이 등 가장 못 바꾸는 것들을 장착한 채 만났는데 어찌 조화가 쉽겠냐 말이다.

서로가 노력해도 어려울 판에 1000만원 투자(?)했다는 본전생각에 일방적으로 약자인 신부보고 맞추라고 한다면 상대는 고함소리 한마디에도 심장이 떨리는 공포를 느낄 것이다. 공포를 느껴서야 어찌 살겠는가, 그것도 부부사이에 말이다.

아무튼, 외국인 신부들이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 해서 얏 보지 말자. 어제 신문을 보니 술에 취해 베트남 신부를 때려 죽게 한 사람의 판결문을 쓴 판사가 판결문에 긴 사과문을 곁들여 낭독했다고 하던데, 그 판사만이 아니라 우리국민 모두가 머리 숙여 사죄를 해야 된다고 본다. 그게 또 다른 베트남 신부도 살고, 한국 남성도 살고, 그들의 2세들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

삼가 타국에서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베트남 여성 란(22세)씨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나라 그곳에서는 부디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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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등 3학년이 된 큰애가 엊그제 내일은 일기 검사를 하는 날이라며 일기장을 가져가긴 가야 되는데 고민이라고 하였다.

 “왜?”

“선생님은 일기를 기쁜 일이 있을 때 하루에 한번 쓰라고 했는데 나는 하루에 다섯 번 쓴 적도 있어 혼날까봐 고민이야. 그리고 기쁜 일 만이 아닌 다른 짜증나는 일도 썼기에 분명 혼날 거야.”

“걱정을 말아. 이 엄마가 보장한다. 절대 혼 안 난다. 외려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다.”

“아이다.”

“그럼 일기장 하나 더 사와서 집에서 쓰는 일기장, 검사 받는 일기장해서 두 개를 사용 할래?”

“응”

“그런데 지금 엄마가 문구점 갈 시간이 없으니까. 내일은 일단 선생님이 일기 많이 썼다고 혼내면 '몸'으로 때워라. 대신 엄마가 특별 위로금 500원 줄게. 혼 안 나면 없고...”

“뭐, 500원? 알았어. 호호. 선생님 안 아프게 때릴 거야. 호호”

하여간 이런 사연을 가지고 아이는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일기를 거두기만 하고 검사를 하지 않아서 일기장을 못 가져 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엄마 일기장 사왔나?”

“아참, 못 샀다. 니가 사올래?”

“싫다.”

“그럼 내가 갔다 올 게 조금 있다가. 지금은 바쁘다.”

 
“그라믄 A4용지에 줄그어 도고.”

“그냥 오늘은 쓰지 말고 건너뛰어라.”

“그럴 수는 없어. 줄 그어 줘. 혹시 더 많이 써야 될지 모르니 줄 넉넉하게 그어 도고”

이 부분 까지 보자면 내 아이가 상당히 일기쓰기에 재미를 느끼는, 이즈음 보기 드문 아이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나름의 사연이 있다.

 



일기는 게임을 위한 수단 일 뿐

 녀석이 일기를 쓰는 이유는 저 말대로 그대로 읊으면, ‘일기는 목표가 아니라 게임을 위한 수단’이란다. 참 그놈의 게임이 뭔지.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메이폴 스토리에 푹 빠졌다. 지난 2학년 때부터 슬슬 게임의 맛을 알아가는 것 같더니 2학년 겨울 방학 때는 얼씨구나 날이면 날마다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기준을 정했다. 한 시간은 공짜고 더 하고 싶으면 일기를 한쪽 쓰라고 했다. 그 참에 일기를 좀 쓰게 해 보려고, 일기 한 쪽에 30분 내용 훌륭하면 40분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녀석은 일기를 쓰라하면 쓸게 없다고 징징거리거나, 한쪽을 채우기는커녕 글자를 최대한 늘여 써서 많아 보이게 하는 꼼수를 부리곤 하였다. 그랬기에 혹시나 해서 무심코 던져본 말인데 너무도 쉽게 응하는 것이었다.

 
“엄마, 한 장 쓰면 몇 분이야?”

“뭐, 한 장?”

“그래 한 장 도 쓸 수 있다. 게임을 위해서라면.”

 
나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썼다. 

 
“처음 한쪽은 30분, 내용이 좋으면 40분인데 그다음 한쪽은 10분 추가이고 그다음다음부터는 한쪽 쓸 때마다 계속 5분씩 추가다. 싫음 말고. 게임이 마냥 좋은 것이라 할 수 없기에 ‘역할증’ 들어 간 거다.”

“알았다. 쓰지 뭐.”

 
그렇게 지난 2학년 겨울 방학을 시작했다. 일기를 자발적으로 쓰자고 마음먹으니 그토록 싫던 일기도 순간에 되는지 아니, 게임이라는 목표가 있어서 그런지 한쪽은 기본이고, 한쪽 다음부터는 ‘역할증’이래도 불만 없이 어떻게든 한 시간을 채워 공짜 한 시간에다 일기로 벌어 한 시간을 채워 두 시간 동안 원 없이 게임을 하곤 했다.

 
“야, 두 시간 한꺼번에 하는 것은 안 된다. 한 시간 하고 좀 놀다가 다시 한 시간 하던가 아니면 30분씩 쪼개서 하셔.”

“알았어.”

그렇게 게임과 일기와 더불어 겨울 방학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이월 중순 우리가족은 살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일기를 쓰는 것도 좋지만 게임의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뭔가 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사’는 좋은 핑계였다.

 


“이사 가면 좀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야 되지 않겠니? 게임 같은 것은 좀 줄이고... ”

“뭐든지 엄마 맘대로가? 흥? 그럴 수는 없어.”

“엄마가 게임을 반대하는 이유는 (신문을 가리키며) 이 의사 선생님이 쓰신 이유와 똑같아.”

형광색으로 칠한 부분을 크게 읽게 하고는 새로운 계약(?)조건을 내걸었다.

 “앞으로 이사 가기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게임 무제한으로 해라. 일기는 쓰기 싫으면 안 써도 된다. 정말 해도 되나 묻지도 말고 무조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밤이 새도록 해라. 대신 이사 가면 당분간 게임 없이 살아보자.”

 “정말? 무제한? 까악!” 

녀석은 이게 어인 횡재인가 하며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다. 그러나 무제한이라는 말의 한정
없음과는 달리 그렇게 무제한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기에 이사를 와서 처음 며칠은 그런대로 보내더니 시간이 지나자 녀석의 마음속에 게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나 보았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마냥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불쌍한 생각도 들었는데...

 “엄마, 일기 쓰면 시간 줄거가?”

“일기? 한 번 생각해 볼까? 그런데 이번엔 조건이 저번과는 다른데?”

“말해봐라.”

“기본으로 주는 시간은 없고 니가 일기를 쓴 시간만큼만 하던지.”

“진짜?”

녀석은 일기장을 집어 들더니 ‘도도도도도.....’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게임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일기의 소재가 많이 떠올라야 하는바, 나의 목표는 녀석의 일기인지라 ‘쓸게 없다’는 말이 나오면 슬쩍 쓸거리를 제공해 주곤 하였다. 그리고 표현하는 방식을 조금씩 가르쳐주곤 하였다. 

그렇게 일기를 자꾸 쓰다 보니 아이의 글쓰기 양과 질이 조금씩 좋아져서 다시 규칙을 바꾸었다. 이젠 예전의 17줄 공책은 싱거워 21줄 공책을 사주었고 어쩌다 보니 계산하기 좋게 처음에는 40줄에 40분 그다음부터는 40줄에 20분을 주기로 하였고 녀석도 좋다고 하였다. 즉, 일기 두 장을 쓰면 한 시간 게임할 수 있다는 셈이 나온다. 나로선 남는(?) 장사였다. 

마무리...

내 어릴 적, 일기쓰기를 추억하자면 일기쓰기가 재미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쓸거리도 별로 떠오르지 않고... 만날 ‘고무 줄 놀이, 땅따먹기, 공기놀이하다 날이 저물었다.’였다. 그에 비하면 내 아이의 일기는 내 어릴 적 보다는 소재가 풍부하다 싶은데  일기가 목적이 아니고 게임이 목적인 게 문제다. 

내 마음이야 일기를 수단으로 게임을 하다가, 어느 순간, 띠~잉! 그 가치가 전도되어 일기가 목적이 되고 게임은 시시해지길 바라지만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 만약 그런 날이 안 오면 난 또 잔머리를 굴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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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앞에 장문은 아니어도 장문의 팔할은 뭐라뭐라 썼는디 펌글만 인쇄되고 내글은 날라가서 용용

죽겠다. 다시 쓸 여력은 엄꼬... 너무 푸기만 해서 .. 스스로의 존재가 한없이 촌스러워 짐을

느끼는 오후다. ㅋㅋ..

노무현을 세일즈 하라!
‘우공도 견공도 노무현 팔아서 한 몫 챙길 때’

봉하마을에 사람이 몰리고 있다. 거기서 대통령 이름을 불러대는 사람들 있다. 같이 사진 찍자고 덤비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과연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일까? 노사모라면 그들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진짜는 따로 있다. 그들은 대통령을 괴롭히지 않는다. 가서 이름 부르고 그러지 않는다. 휴식하려는 사람 휴식하는데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버려 두라. 지금은 그들 껍데기들이 먹는 타이밍이니까.

지금은 노사모도 아닌 그 사람들이 기분 내는 타이밍이다. 진짜 노사모는 뒤로 빠져주고 외부에서 온 손님 맞이하는 타이밍이다. 자리 깔아주고 멍석 내주는 타이밍이다. 그래야 할 때가 있다.

탄핵때도 그랬다. 진짜인 노사모는 뒤로 빠지고 껍데기인 민노당과 시민단체가 전면에 나서서 목청을 높였다. 온갖 폼 다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잽싸게 태도를 바꾸어 비싼 청구서를 내밀었다. 장사 잘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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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난 사람이 들어온 사람보다 인기가 높다. 요즘 노무현 인기 좋다. 이 인기를 잘 이용하면 총선에서 몇 석 건지겠다. 아서라 말아라! 얼마 되지도 않는 노무현 집안 문중재산 빼먹지 말자는 거다. 지금은 힘을 비축해야 한다.

왜 노무현 인기가 좋을까? 그가 물러났기 때문이다. 더 이상 위협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92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거에 지고 정계은퇴 선언하니까 조중동이 찬양일색으로 도배한 것과 같다. 아주 잠시였다.

역사가 평가한다. 그리고 그 역사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끝나지 않았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다. 지금은 시험 끝나고 성적표 기다리는 시간이다. 성적표 이미 나왔다고? 대선결과가 노무현 5년의 성적표라고? 아니다. 아직 채점중이다. 그리고 면접시험이 또 남아있다. 절대평가는 나왔는데 상대평가는 아직 남아있다.

무엇인가? 지금의 노무현 인기는 노무현을 이용하여 이명박을 견제하려는 유권자의 균형감각에 따른 것이다. 지금 노무현을 띄울수록 이명박이 마음을 졸인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이 이용하는 것이다.

속지 말라. 진짜가 아니다. 유권자들은 비정하다. 그들은 이명박을 견제할 수단으로 노무현을 일회용으로 이용할 뿐이다. 그들은 가족이 아니라 손님이다. 그 손님들이 노무현을 이용하려 한다면 즐겁게 이용당해 주어야 한다. 왜? 노무현에게는 더 원대한 계획이 있으니까!

그러므로 그 손님들을 우리가 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억지로 미소지어야 한다. 노무현 이름을 불러대는 무례한 그들을 반겨야 한다. 정중하게 대접해야 한다. 우리가 주인이고 그들이 손님이기 때문에. 손님인 그들은 언제라도 잽싸게 변심하여 태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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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간단하다. 김영삼, 김대중 순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김영삼은 IMF망국, 김대중은 노벨상 수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역사의 성적표가 그렇게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건 우리 입장이고 저들은 수긍하지 않는다.

저들은 김대중, 김영삼 순으로 되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으로 여긴다. 과연 그럴까? 그래서 순서를 바꾸어 본다. 이명박, 노무현 순서가 아니고 노무현, 이명박 순서로 되었다. 과연 어떻게 될까?    

노무현이 IMF를 불러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저들 입장에서 복수(?)는 해야 한다. 노무현이 IMF 불러온 셈으로 치는 거다. IMF라고는 할 수 없으니 ‘국정파탄’이라 해볼까 ‘경제실정’이라 해볼까! 이거 먹혀든다.

김영삼이 IMF 불러놓고 갔으니까 노무현도 그에 상응하는 뭔가 저들이 복수할거리를 장만해놓고 물러가야 그들의 입맛에 맞는 거다. 김영삼이 IMF를 불러왔으니까 노무현은 심리적인 IMF라도 불러와야 공평하다(?)는 것이다. 무섭지 않나? 그들 조중동의 심리가. 일반 유권자들이라 해서 다를까? 천만에! 똑같다. 지금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이름 불러대는 그 좋은 분들의 심리도 똑같다.

김대중이 노벨상 수상으로 보기좋게 김영삼에게 복수했으니까 이명박도 노무현에게 복수해야 그들 입장에서 공평한 거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조중동 입장에서 말이야 되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정치는 말이 아니라 심리다.

정리하면 김영삼이 틀렸고 김대중이 옳다는 역사의 심판을 납득할 수 없다는 유권자 일반의 심리가 작용해서 노무현, 이명박 수순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지금 지켜보고 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정답은 5년 후에 발표된다. 그 5년의 기간이 노무현의 상대평가 기간이다. 그 역사가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약간의 인기에 들떠서 안 된다. 거품은 곧 가라앉는다. 냉정해져야 한다.

5년간 이명박은 김영삼의 전철을 착실하게 밟을 것이고 결국 김대중이 옳고 노무현이 옳았다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다. 5년도 걸리지 않는다. 3년이면 충분하다. 국민들은 지금 그걸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을 조금 띄워서 이명박을 견제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곧바로 무대에서 퇴장하지 말고 거기 잠시 대기하시오. 이명박과 비교가 끝나거든 들어가시오!’

이것이 노무현 인기의 본질이다. 저의가 숨어있다. 이러한 본질을 안다면 지금 노무현이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거다. 총선 의석 몇 석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역사의 평가는 현재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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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서 첫 휴가 나오면 가족도 반기고 애인도 반기고 친구도 반기고 다들 반긴다. 병장휴가 나오고 말년휴가 나오면 콧빼기 비치는 친구 하나 없다. 가족은 시큰둥하고 애인은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 지금의 노무현 붐은 첫휴가 때의 들뜬 분위기에 불과하다. 이게 다 진짜라고 믿나? 그 정도로 순진하신가?

지금은 온갖 아이디어가 나오고 온갖 구상이 나오고 백가지 계획이 나오는 때다. 그거 대부분 황이다. 지나보면 안다. 단지 지금은 그럴 때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 뿐이다. 지금은 손님들 위하여 자리 깔아줄 타이밍이기 때문에 자리 깔아주는 것이다. 자리 깔아주니 손님들이 온갖 이야기꽃을 피운다. 노무현은 즐거운 마음으로 분위기 맞춰준다. 노무현이 분위기 맞춰주니 손님들 아주 신났다.

아서라 말어라! 그 자리에 덥썩 앉아서 한 상 받아드시는 분들은 모두 손님이다. 가족이 아니라 뜨내기 손님이다. 아이디어는 아이디어고, 붐은 붐이고, 인기는 인기고, 계획은 계획이고, 다 진짜는 아니다. 그때 가서 드러난다.

노무현은 무엇을 원할까? 손님인 여러분이 노무현을 팔기를 원한다. 노무현을 이용해 먹기를 원한다. 여러분이 손님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방 등 돌리고 비싼 청구서 내놓을 그때 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했던 말이 있다. 안희정 등을 비롯하여 노무현이 말 인심으로 감싸주고 변명해준 사람은 바로 청와대에서 잘린다고. 노무현이 대신 변명해준 그 말씀이 그들에게는 퇴직금이었던 것이다. 노무현이 줄게 그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것 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 준다. 이름 부르면 나와서 손 흔들어주고, 사진 찍자고 하면 포즈 취해 주고, 노무현을 이용해 먹으려 하면 즐겁게 이용당해주고. 가족에게는 그렇게 안 한다. 오히려 희생하라고 요구한다.

노무현은 왜 손님들에게 서비스 하는가? 그렇게 얻은 인지도와 호감도를 바탕으로 한 더 큰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진짜 계획은 그 잔치 끝나고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일병휴가는 보신 바와 같고 말년휴가에 누가 남아있는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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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판의 졸(卒)은 앞으로 갈 뿐 뒤로가지 않는다. 궁이 뒤로 와라 해도 묵묵히 앞으로만 간다. 졸이 궁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딱 하나 뿐이다. 그것은 타이밍이다. 반면 사(士)는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간다.

사는 궁의 말을 잘 듣지만 장기에서 궁이 죽는 이유는 대부분 사 때문이다. 사가 길목을 막아서 궁이 죽는 것이다. 궁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궁물족들이 사다. 졸은 궁을 지키지 않고 외곽으로 빠져주므로 도리어 궁을 돕는 것이다.

나는 일개 졸이지만 나의 사상을 말한다. 그 사상은 노무현의 사상이 아니고 나의 사상이다. 졸의 사상이다. 졸은 졸의 길을 가는 것이다. 궁이 뭐라하든 노무현이 뭐라하든 오직 앞으로만 가는 것이다. 타이밍만 재는 것이다.

그 졸이 모이고 모여서 궁을 지킨다. 나의 사상과 너의 사상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노무현의 사상은 완성된다. 그리고 사상은 언제라도 눈앞의 은과 멀리있는 금 사이에서 하나를 택하는 것이며, 멀리있는 금을 택하게 하는 것이 사상이다. 나는 서울역에도 봉하마을에 가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찾지 않을 때, 그가 모두에게 잊혀졌을 때 마지막 손님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www.drkim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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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글 푸다가 날 새겠다.^^ 이분이 요새 활발히 글을 쓰니 아니 풀수도 엄꼬.... 

어쩌다 한번 서울을 갈때면 숭례문 밑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한번씩 처다보고는 했는데 ... 그 서까래 기둥들이 600년씩이나 된줄은 몰랐다.

임란에 불탄것을 조선후기에 중건, 머 이런 사연이 있는줄 알았는데.... 그렇게 타고 보니 성철스님 가고보니 그랬듯 존재감이 짠하게 눈물겹다. 긍께 이제 우리는 우째야 하는지...

숭례문은 우쨋거나  그렇게 소진 됨으로써 시방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 물질이 아닌 정신, 도덕, 문화임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살신성인이 달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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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희: 이 홍콩배우는 <무간도> 때문에 알게 되었다. 유덕화의 어린시절로 잠시 나왔는데 앞날이 촉망되는 배우라해서 다시봤는데 요즘 엉뚱하게 촉망을 받고 있네...무간도에서는 이분보다 양조위 어린시절로 나온 '여문락'에 한표를 주고 싶었는데 재주는 진관희가 더 많은듯.....암튼,

그의 스캔들을 보면서... 그 스캔들에 대한 홍콩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유명인에 대한 대중의 시기심이 여느나라 할것없이 갈때까지 가고 혀 빼물고 죽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가만 따지고 보면 타인에 대한 시기심은 시기하는 자의 내적 결핍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자신의 무엇이 충족되면 남이 무슨일을 벌이든 무슨상관이 있나 말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관음증을 충족시켜주니 되려 고마워해야 될일이 아닌가 말이다. 스스로도 낭패다 싶은 일에 절대다수의 팬들이악에 바친 비난을 하니 당사자들은 얼마나 괴로울꼬?

기냥 , 젊은이 답게 나훈아씨처럼 당당하게 정면돌파하면 안되는지... 그가 죄송할일이 뭐가 있나 말이다.  보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잘못이지. 잘봤다 인사는 못할망정. 뭐 하여간 털고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니면 그래서 꼽냐 역공을 펼쳐주던가. ^^

그럼 아래글 즐감하시길~~

유홍준 대 이명박
- '매를 벌어 저축하는 사나이'

화재가 누구 때문이냐 혹은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를 따질 필요는 없다. 매뉴얼대로 가는 거다. 시합에 진 것이 선수 잘못이라 해도 짤리는건 대표팀 감독이다. 매뉴얼에 그렇게 되어 있다. 논리가 필요한가?

선수를 짜를 수 없기 때문에 감독을 짜르는 것이다. 승객을 짜를 수 없기 때문에 운전기사를 짜르는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의 잘못이지만, 국민을 교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정치인을 교체하는 것이다. 원래 그렇다.

왜 감독이 독박을 써야 하는가? 이동국도 잘못했고 박주영도 골은 못 넣었다. 그러나 짤리는 건 코엘류고 본프레레다. 아드보카트에 베어백 하며 줄줄이 짤리는 이유는 그가 월급을 받아 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다.

숭례문 개방으로 정치적 이득을 얻고도 국민 앞에 사과를 하지 않고 버티는 자가 누구인가? 그자를 짜르는 것이 맞다.

유홍준이 잘못이 없어도 당장 국민의 분노를 받아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동안 월급 타 먹고, 방송 타 먹고, 인기 타 먹고, 온갖 유세하고 다닌 유홍준이 물러나는 게 맞다. 그러라고 그 자리에 임명한 거다.

지금은 군말 없이 국민의 분노를 받아주는 것이 유홍준의 임무다. 그는 사표를 내는 방법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마녀사냥이라 해도 다 받아주는 것이 맞다. 감투라는 것은 원래 그 목적이다. 국민들 분 풀어주는 임무다.

마찬가지다. 월급 타 먹고, 방송 타 먹고, 정치적 이득을 먹은 이명박과 오세훈을 짤라야 한다. 그들이 감투 썼고 위세 부렸고 숭례문 문루에 올라가서 꼴값을 떨었다. 그들이 유무형의 이득을 보았기 때문에 먹은 만큼 게워내야 한다.

왜? 국민의 한 사람인 내가 분노했기 때문이다. 유홍준 얼굴이 TV에 나오면 얼빵한 조중동 독자들은 숭례문 화재 연상하고 열받는다. 분통 터뜨린다. 그것이 물리적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오세훈 얼굴이 TV에 나오면 숭례문 화재 연상하고 열받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의 분노 역시 물리적 현실이다. 그 물리현상에 어떻게든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쩔래?


숭례문 문루에 기어올라가서 깝치는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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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 말이 함의하는 것은? 개혁과 호남 사이를 갈라놓는 전술이다. 그들은 성공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신당이 탄핵범과 야합한 지금 개혁과 호남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명박과 유권자 사이를 갈라놓아야 한다.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 이 말은 이명박의 실용노선-실제로는 무개념에 덤벙대고 사고 치기 반문화적 노선-과 다른 이회창, 박근혜들과는 일단 휴전이라는 암시가 있다.

지금 수구진영 감독은 이명박이다. 이회창, 박근혜는 선수다. 지금은 감독 한 사람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선수를 질타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감독을 교체하면 어쨌든 달라지는 것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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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성금모금 주장은 재벌에게 돈 뜯던 독재정권의 준조세 관행을 되살리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 이후 준조세가 없어졌다. 현대 얼마, 삼성 얼마 하고 액수가 TV를 타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명박에 의해 재연된다. 독재가 달리 독재랴? 바로 그것이 독재다. 국민들 줄 세워서 선착순 놓고 뺑뺑이 돌리는 것. 한 줄에 세워서 서로 비교시키기. 우열반 가르고 나머지 반 만들어 친구와 성적 비교하게 만들기.

유격훈련장 조교들이 어리버리한 이등병들을 통제하는 데는 선착순이 최고. 독재자가 어리석은 국민들 통제하는 데는 뺑뺑이가 최고. 준조세 국민성금 반강제 모금이 최고. 영어몰입교육이 최고. 약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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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군은 소대와 소대를 경쟁시켰다. 1소대와 2소대가 서로를 가상적으로 삼고 경쟁하되 축구시합이든 족구시합이든 이기는 쪽은 포상외박, 지는 쪽은 알통 구보다. 소대끼리 서로 증오하게 만들었다.

일본군에만 있다는 풍습이다. 이것이 한국군에 흘러들었다. 내부경쟁시켜서 통제하는 술책이다. 가만 놔두면 '우리의 주적은 간부다' 이러는 병사가 있어서 통제가 안 되므로 서로를 가상적으로 여기게 만드는 거다.

그 정점에 선착순이 있다. 친구가 한걸음 앞서가면 내가 손해를 본다. 친구가 공부를 잘하면 내 석차가 떨어진다. 이것이 선착순이다. 동료를 적으로 만들기. 무엇인가? 이명박의 영어몰입교육이다.

내부경쟁을 심화시켜 놓으면 고분고분해진다. 말 잘 듣는다. '우리의 주적은 간부다' 이러는 병사 없고, '우리의 주적은 담탱이다' 이러는 학생 없다. 이명박의 영어몰입교육이 독재자의 그 더러운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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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가치의 싸움이다. 우리 사회의 가치전도 현상이 본질이다.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은 노무현의 원칙과 상식 때문이라는 말이다. 노무현의 가치관이 우리 사회를 빡빡하게 했다는 말이다.

그 말이 맞다. 노무현 가치가 지배할 때 비리 목사들 떨었고, 비리 교장들 자살했고, 비리 재벌은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대통령이 작은 일에 대충 넘어가지 않고 빡빡하게 굴어서 많은 사람 피곤했다.

그러한 노무현의 '긴장시키기'가 더 많은 안전을 끌어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모른다. 안전 불감증에 걸린 한국인들은 모른다. 선진국에서는 원래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더 엄격한 원칙과, 더 많은 공무원과, 더 나은 대국민 서비스가 사회를 안전하게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교통사고 사망자만 해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 안전의 값어치를 얼마로 쳐줄 것인가? 바로 가치관이다.

지금은 입을 모아 숭례문의 관리부실을 질타하지만 만약 거기에 야간경비원이 상주하고 있었다면 '저 공무원 놀면서 돈 받네. 국민 혈세가 아깝다' 하고 질타한다. 지금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바로 당신 말이다.

바로 당신이 공무원들 놀면서 월급 받는다고 질타한 그 사람 아닌가? 부인할 자 누구인가? 거기에 그 공무원이 그냥 가만히 서 있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말이다.

경찰이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다면 범죄가 일어났다는 증거다. 방범에 실패했다는 증거다. 그냥 가만히 서 있어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국민이 안심하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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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이민 가서 흑인동네에 구멍가게라도 해서 돈 번 한국인들은 왜 자신이 고생해서 번 돈을 지역사회에 기부해야 하는지 모른다. 돈을 벌수록 안전비용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장사가 잘 안될 때에는 아무런 일이 없었는데, 장사가 좀 된다 싶으니 웬 땡초스님이 문전에서 목탁을 치고 있고, 웬 지신밟기 팀이 시끄럽게 꽹과리를 치고 있다. 사방에서 푼돈 뜯으려 든다. 왜 그러는지 모른다.

마을에 부자가 생기면, 가난한 이웃이 부자 때문에 피해 입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내가 내 돈 벌어서 내 쓰는데 왜 저 사람들이 화를 내지? 나는 피해준 게 없는데 말이다. 천만에! 피해를 줬다.

단순한 시기, 질투가 아니다. 사촌이 논 사니까 배 아픈 게 아니다. 조용한 마을에 부자가 들어서면 일단 시끄러워진다. 자동차가 지나가며 매연을 내뿜는다. 교통사고 일어난다. 시끄러워서 염소가 새끼 낳다 유산한다.

부자가 세탁기 돌리느라고 물을 많이 쓰면 간이상수도 물이 끊긴다. 부자가 물건을 많이 사면 상인은 많이 팔아서 좋은 게 아니고, 물가가 올라서 가난한 사람은 명절에 제사도 못 지낸다. 실제로 피해를 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딱 그러한 위치에 와 있다. 부자가 베풀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의 초입에 와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 많은 세금, 더 많은 공무원, 더 많은 복지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 이 단계를 받아들여야 선진국이다.

미국 부자가 새로 자동차를 구입하면 전 세계 옥수수값이 올라서 중국 농민이 돼지를 못 친다. 어떤 미국 부자의 자동차 구입과 어떤 중국 농민의 굶어 죽은 사건이 명백히 연관이 있는 것이다.

미국 부자 자동차 구입≫석유 값 상승≫사료용 곡물 알콜연료 전용≫옥수수 가격 폭등≫중국 농민 자살. 이건 작년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돈 벌어서 내가 쓰는데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우리 사회의 발전단계가 지금 이 단계에 와 있기 때문에 갈등이 첨예해졌다. 그렇다면, 그러한 갈등을 정밀하게 제어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정치를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왜 도리어 갈등을 부추길 것이 뻔한 이명박이지?

갈림길이다. 이길 아니면 저 길인데,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가야 저 길을 편안하게 갈 수 있다. 인간 심리가 원래 그렇다. 역사이래 인간들은 늘 그래 왔다. 시행착오 없이 거저먹은 일은 역사에 단 한 건도 없다.

이 길이 옳지만… 혹시 저 길이 옳을지도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어서 이 길에서는 속도를 낼 수 없다. 어차피 속도 낼 수 없다면 저 길이 아님을 먼저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서 제대로 속도 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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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가 진화한 것은 그 길이 옳기 때문이 아니다. 사자는 사슴을 먹고 사슴은 풀을 먹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일제히 그리로 달려간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모두 도태되고 그것만 남은 것이다.

마찬가지다. 역사이래 인류가 옳은 길을 알아서 간 예는 없다. 인류가 자본주의의 길이 옳다고 판단해서 그리로 간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로 달려갔는데 구소련이 망해버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만 남은 것이다.

경쟁의 와중에 아닌 것들이 탈락하고 남은 것이 옳은 것이다. 지금 이명박의 길이 시험대에 들었다. 검증이 끝나면 이명박의 길은 폐쇄된다. 남은 길은 노무현의 길 뿐이다. 그 길밖에 없기 때문에 그 길로 돌아가게 된다.

이 길이든 저 길이든 국민은 확실한 길을 원한다. 신나게 속도 낼 수 있는 길을 원한다. 그런데 아직은 우리 사회가 선진국 진입의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국민이 실감할 정도로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혼돈이다. 그 혼돈은 조만간 정리된다. 이명박그룹의 거듭된 삽질에 의해서. 우리가 악의 근원인 조중동을 두들겨 패서 제거할 수는 없다. 옳지 않은 것들이 스스로 자멸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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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진정 충격을 받아야 할 사실은 숭례문이 사라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사건에 대해서 국민이 화가 났다는 사실이다. 많은 국민들은 몰랐다. 국민이 이토록 크게 화를 낼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입으로는 욕하면서도 투표장에서는 이명박 찍으니까 몰랐다. ‘경제가 급한데 숭례문이 대수야’ 하고 다들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인간들 지금 입 다물고 있다. 그들은 놀라야 한다. 충격받아야 한다.

운하 삽질은 숭례문 백 개 태워 먹는 이상의 패악질이다. 어쩌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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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 좋아서 찍은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길이 '노무현의 길'과 '이명박의 길'로 둘 밖에 길이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이명박 찍었다는 사실이.

노무현의 길은 신물 나게 겪어봤고…. 이명박의 길은 아직 모르겠고. 그래서 이명박 찍은 것이다. 아닌 줄 알면서 요행수 바라며 혹시나 하고 찍어본 것이다. 아니면 아닌 대로 확실히 확인이라도 하고 가려고.

그리고 이제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했기 때문에 5년 후 다시 노무현의 길로 돌아선다. 그 길 밖에는 길이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살아남는 자가 승리자다. 다 죽고 노무현의 길만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 김동렬


원문 - http://www.drkimz.com/bbs/view.php?id=notice&no=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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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숭례문을 태워 먹다
 - 부도덕한 정치인이 만연시킨 사회의 가치전도 현상

정신병자와 14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범죄를 저질러도 징벌 되지 않는다. 그 정신병자와 미성년자를 관리할 책임이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권리에 비례한다. 책임질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것이 합리적이다.


애꿎은(?) 당선자를 비난하는 사람은 많고 방화범을 비난하는 사람은 오히려 적다. 방화범에게 숭례문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을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합리적인가? 이명박인가 방화범인가?

주류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류들 중 가장 잘못된 주장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교회의 목사가 교회재산을 빼돌려도, 물을 흐리는 것은 한 마리 미꾸라지일 뿐, 대다수 선량한 목사나 교사를 탓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천만에! 그렇지 않다. 목사 한 사람이 잘못했으면 대다수 목사뿐 아니라 기독교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해야 기독교 공동체가 책임을 느끼고 자정노력을 한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된다.

답은 합리성에 있다.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가는 누가 원인을 제공했느냐에 따라 절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더 문제해결에 합리적인가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대낮에 싱크대 위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면 보이지 않는 싱크대 뒤쪽에는 최소 300마리의 바퀴벌레가 살고 있다는 증거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흙탕물이니까 그곳에 미꾸라지가 사는 것이다.

맑은 물에는 미꾸라지가 살지 않는다. 그 물을 맑히지 않는 한 흙탕물은 피해갈 수 없다. 한 마리 미꾸라지를 탓할 것이 아니라 그 미꾸라지가 서식하는 물을 갈아야 한다. 판 갈이가 아니면 안 된다.

상자 속의 귤 하나가 썩어 있다면 사흘 내로 상자 속의 모든 귤이 썩는다. 한 명이 잘못을 저지르면 전부 싸잡아 비난하기로 부족하고 완전히 판 갈이를 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된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 내부의 감시, 견제장치가 작동하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 한 사람만을 비난한다면 절대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처벌의 수위를 높여도 사고 치는 멍청이는 항상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어지간한 범죄자는 총살된다. 해마다 무수히 많은 범죄자가 총살되지만 범죄는 끝없이 계속된다. 왜 중국에서는 모든 것이 가짜이고 짝퉁인가? 그렇게 많은 범죄자가 총살되어도 기상천외한 범죄가 끝없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면 선진국은 사형제도를 폐지했어도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 왜 어떤 나라는 총살을 시켜도 범죄가 일어나고 왜 어떤 나라는 사형제도를 폐지해도 범죄가 저절로 근절되는가?

최근 방송에 보도된 일부 목사, 승려들의 범죄는 기독교 공동체 내부의, 불교 공동체 내부의 감시장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공동체 전체가 책임을 느껴야 공동체의 자정장치가 작동된다.

공동체 내부의 자정장치가 아예 없다면 그 자정장치가 만들어질 때까지 싸잡아 비난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된다. 공동체 전체가 책임을 나누어질 때 사형제를 폐지해도 범죄는 저절로 사라진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백 명씩 총살해도 범죄는 계속된다. 중국처럼.

한 명이 잘못하면 모두가 잘못한 것이다. 이미 모두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 한국인 모두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인 모두가 다 잘못했다는 증거다. 한국인의 문화수준이 만천하에 드러난 사건이다.

한국인이 다 잘못했으니 한국인이 다 고통을 느낀다. 이렇게 싸잡아 모두가 다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싸잡아 비난을 해야 한다. 당연히 일반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일반화시켜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분노해야 한다. 분노해야만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게 된다. 인간은 화가 나야만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게 된다는 과학계의 연구결과 보고가 얼마 전에 있었다. 분노한 집단과 분노하지 않은 집단의 문제해결 성과를 비교했을 때 분노한 집단이 더 성과가 높았다는 것이다.

이번 화재사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는 역시 합리성에 따라 결정된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제2의 숭례문 화재를 막을 수 있을까? 그것이 정답이다.


이번 사고는 이명박 잘못이다. 이명박 하나로 일반화되어야 한다. 오직 이명박을 꾸짖어야 제2의 삼풍백화점, 제2의 성수대교, 제2의 대구지하철 화재를 막을 수 있다. 유조선 기름유출에 아무 책임이 없다는 삼성을 씹어야 제2의 기름 오염을 막을 수 있듯이. 돈이 있고 힘이 있는 자를 씹어야 한다. 만약 그리하지 않고 법조문만 따진다면 범죄 수렁에 빠진 중국처럼 된다.

배심원제도가 있는 미국이라면 그렇다. 예컨대 현대자동차가 판매한 트럭을 몰고 가던 어떤 노동자가 갑자기 도로에 뛰어든 가난한 소년을 치어서 부상을 입혔다면, 미국의 배심원들은 아무 관련이 없는 현대자동차에 배상책임을 물린다는 내용의 신문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현대자동차가 처음 엑셀을 들고 미국에 진출했을 때 미국사회의 이러한 관행을 몰라서 이런 식의 황당한 사건으로 무수히 곤욕을 치르고 거액을 물어주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왜냐하면, 소년은 다쳤고 누군가는 치료비를 내야 하는데 돈 나올 곳은 현대자동차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은 언제라도 해결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해결책임을 묻는 것이다. 한국에 배심원제도가 있었다면 기름 오염 책임은 당연히 돈이 있는 삼성에 물었을 것이다. 배심원들이 그렇게 평결을 내렸을 것이다.

독일이라면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재난사고가 났을 때 민간의 성금을 모금하지 않는다고 한다. 당연히 국가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태도이다. 돈이 있고 힘이 있는 쪽에 공동체의 성원 모두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렇게 해야 문제가 실제로 해결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국처럼 날마다 총살을 시켜도 사고는 끝없이 일어난다.

이명박이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 사람들의 목표가 없어진 것이 큰 문제다. 공동체에 대한 귀속감이 사라진 것이다. 한국인이 한국을 사랑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불이 나지 않겠는가?

나라를 팔아먹어서라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자가 있는데, 일본의 침략책임을 덮어놓고 가자는 정치가가 있는데, 어찌 문화재에 불을 확 싸질러버리고 싶다는 미친 자가 나타나지 않겠는가?

세상 모든 존재하는 것은 제각기 그 존재 이유가 있고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법인데, 그 각자의 가치를 부정하고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주장하면 많은 사람들은 그만 허탈해지고 만다. 그 사람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절망에 빠뜨릴 때 그 후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많은 백수들이 3D업종에 취직을 거부하는 것은 자존심 때문이다. 자존심 팔아서 삽 들고 운하건설에 나서라는데 어찌 울분이 없겠는가? 영어 못하면 돈도 못 벌고 2등 국민 된다는데 어찌 슬픔이 없겠는가? 많은 사람들을 절망과 낙담으로 몰아간 죄 어찌 용서되겠는가?

공동체는 공동체의 성원 모두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거지도, 백수도, 장애인도 보호해야 한다. 공동체가 공동체의 보호역할을 부정하고 거지의 게으른 탓, 백수의 영어 못하는 탓, 장애인의 무능한 탓으로 몰아가는데 어찌 공동체의 공동재산을 내 재산처럼 보호하겠는가?

공동체의 공유재산에 불을 확 싸질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유발하는 자가 누구인가? 공공의 일을 하는 공무원을 대량해고하는 판인데 공공재인 문화재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인간은 돈이 없어도 살지만 자부심 없이는 살지 못한다. 인간은 빵이 없어도 살지만 친구가 없이는 살지 못한다. 인간은 헐벗어도 살지만 의미가 없이는 살지 못하다. 누가 그들에게서 자부심을 빼앗고 친구를 빼앗고 삶의 의미를 빼앗았는가? 돈이다. 돈이 원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돈타령만 하는 자와 그의 추종자들이 그들에게서 자부심을 빼앗고, 친구를 빼앗고, 삶의 의미를 빼앗았다.

이명박의 등장은 한 마디로 가치의 전도현상이다. 세상 모든 존재하는 것이 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사람의 가치가 절하되고, 재물의 가치가 높아질 때 어떤 비극이 닥칠지 앞으로 5년 동안 줄기차게 반복하여 목격하게 된다. 이건 예고편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신이 진리 앞에서 눈 감은 인간을 형벌하는 방식이 이러하다. 역사가 한국인을 훈련하는 방법이 이러하다. 그 훈련 쉽게 끝나지 않는다.

방화범은 왜 숭례문에 불을 질렀을까? 미쳤기 때문이다. 곱게 미치지 않고 어떻게 미쳤는가? 그는 숭례문이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과연 숭례문이 가치가 있는가? 무슨 가치가 있지? 숭례문에서 쌀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돈이면 다 된다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논리로 그 방화범의 오류를 증명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이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순간 태양도 빛을 잃었고 달도 얼굴을 찌푸렸다. 세상 모든 것이 가치를 잃었다. 경제가 어려운데 숭례문이 무슨 소용이야. 무슨 가치가 있나? 대답할 자 누구인가?

공동체가 공동체의 의미를 부정할 때 붕괴된다. 공동체의 공동재산이 먼저 파괴된다. 국가가 빈민을 보호하지 않고 너의 게으른 탓이며 너의 영어 못하는 탓이라고 책임을 떠넘길 때 공공재가 먼저 파괴된다. 국가의 기둥뿌리가 썩는다.

그 국민이 그 국가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 경제를 위해서 저 산을 파헤치고 저 강을 파서 운하를 놓겠다는 판에,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할아버지 산소라도 파헤치겠다는 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가난한 시인을 경멸하고, 가난한 예술가를 경멸하고, 가난한 백수를 비난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힘없는 약자를 핍박하고, 서울시장이라는 자가 명품숭배에나 빠져 있고… 슬픔이 치밀어 더 쓰지 못한다.

 

ⓒ 김동렬


원문 - http://www.drkimz.com/bbs/view.php?id=notice&no=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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