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전쟁과 기아에 맞서 피땀을 흘리는 많은 구호단체들이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많은 단체들 중에 가장 으뜸으로 뇌리에 박히게 된 단체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경없는 의사회(MSF)'라는 단체이다.
우리 사회에 있어서 의사는 기득권층 중의 기득권층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병원을 방문하였을 때 의사가 먼저 따뜻함을 보내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들의 무뚝뚝하고 찬 바람 이는 태도에 상처는 받으면서도, 아픈 내 몸 고쳐준다니 그냥 참을 뿐이었다.
지금은 의약분업 이후 개인 병원들이 즐비하면서, 의사의 불친절은 상상할 수가 없고 다들 친절해 졌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 그룹이 특별히 이 사회를 위해서 봉사를 한다거나 기득권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것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 같다.
때문에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달려간다거나, 물 좋은 선진국에서 호의호식하지 않고 몸소 가시밭길을 자처하는 의사들이 있다니 놀랠 노자일 뿐더러 저절로 존경심이 일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가장 고귀한 휴머니즘을 몸소 실천하는 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국경없는 의사회>(우물이 있는 집)는 그런 호기심이 충만한 가운데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책은 의외의 소식들을 많이 기술하고 있었다. 막연히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감동 그 자체의 국경 없는 의사들에 대한 다큐인가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1971년 프랑스에서 창설되었고, 캐나다, 벨기에, 스위스, 네덜란드 등 13개국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단체 이름이 전해주듯 ‘의사’들만 모인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체적인 수로 따지면 의사외의 사람이 더 많았다.
‘국경없는 의사회’로 불리는 MSF는 현대사회가 ‘의사’에게 준 권위에 편승한 부적절한 표현이다. 홍보상의 이유로 의사들의 조직이라고 천명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의료행위에서 의사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간호사이며, 수질과 의생전문가들도 필요하다. 영양학 전문가와 공중위생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하는 병리학자, 자재 및 행정담당, 배관공, 라디오 기사, 변호사, 기계공도 있고, 약품과 식량, 휘발유, 인력, 차량, 물주머니 등이 전시 상황의 핵심부로 제대로 전달되는 것을 책임지는 회계담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력이 존재한다.-85쪽
‘국경없는 의사회’라는 간판이 말 그대로 의사들만 모여 헌신하는 곳이 아닌 그 권위에 기댄 일종의 얼굴마담식 작명이라니 다소 속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그 속에 숨은 다양한 존재들이 ‘부적절한’ 간판 아래서 이름도 없이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었고 반가웠다.
세속은 의사에게만 권위를 부여하지만, 현장의 이들은 모두가 동등한 위치였고 위에 인용한 모든 사람들이 제 할 일을 함으로써 긴급의료행위가 이뤄지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유능한 의사가 아무리 잘 치료 했다고 해도 수인성 질병의 경우 물위생이 엉망이면 치료는 말짱 헛수고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간호사가 의사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하고 때론 의사 여러 명을 지위하기도 하는데 의사의 ‘권위주의’에 주눅 든 우리로서는 의사가 간호사의 명령을 받아? 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이었다.
때문에 실지로 MSF 사람들은 내부적으로 ‘서로 동등하게 헌신하고 있음을 인지하도록 직함과 성을 생략하고 이름만’ 부르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저자가 인터뷰 할 때마다 자신들을 천사로 미화하지 말 것을 주문하였다. 자신들은 천사가 아니고, 이 일의 과정 속에서 오히려 각자 내면의 상처 같은 것이 ‘치유됨’을 느낀다고. 뿐만 아니라, 이들은 직접적인 치료행위와 그 치료를 위해 물밑에서 돕는 행위들 속에서 이 검은 피부 사람들에게 영혼을 홀린 나머지 본국으로 귀향했으나, 못 잊어서 다시 되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들의 근무 연한이 상상 이상으로 긴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서구의 시간과 동급으로 치는 데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그리고 평생을 바친다거나 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MSF 인이 된다는 것은 로맨스가 파경을 맞이한다거나 금전적인 어려움, 직업으로서의 불확실한 비전, 고되고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MSF 인들은 젊고,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만 일할뿐 10년을 넘기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MSF 인들은 5년에서 8년 정도 일하고 본부에 정착하지 않으면 고국으로 돌아가 원래의 직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98쪽
아무튼 이 책은 ‘국경없는 의사회’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노벨 평화상까지 탄 단체 속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다. 더불어 그들의 선의와는 상관없이 본국이나 현지 군벌들에게 이용당하는 상황이나, 그들이 가진 딜레마, 회의, 갈등 등도 무겁게 토로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