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 나의 삶, 사랑, 음악 이야기
한대수 지음 / 아침이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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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에서 멀쩡한 신문과 새책들이 폐지공장에서 무참히 썰어지는 것을 본적이 있다. 책을 만드는 일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나임에도 그것은 무척 가슴 아픈 풍경이었다.

얼마전 한 아름다운 출판사(도서출판 아침이슬)로부터 독자 편지가 날아왔다. 개인적으로 마음을 주고(?) 있는 출판사인데, 사연인즉, 책 좀 사달라(?)는 하소연이었다. 그 동안 아침이슬이 펴낸 책 가운데 반품으로 돌아온 것들을 폐지공장으로 바로 보내자니 차마(?) 가슴이 아파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해서 독자들에서 우편 발송료 정도만 받고 팔고 싶으니 동참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다 읽고 나니 마치 책이 반품된 것이 내 탓인 것 만 같았다. 그리고 평소 아침이슬을 예의 주시하는 남다를 애정을 갖고 있었기에 책들을 폐기 처분 해야되는 그들의 아픔이 내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침이슬'이라는 출판사에 남다를 애정(?)을 갖게 된 나름의 작은 사연이 있다. 지난핸가 아침이슬에서 만든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라는 각계 명사들의, 제목 그대로 그들의 '묻어둔'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그 책의 내용이 너무 진솔해서 감동한 나머지 독자 엽서 카드를 기록하다가 출판사에 하고싶은 말을 A4용지에 따로 적어 독자엽서에 붙여 보낸 적이 있었다.

잘은 기억이 안나나 책의 내용에 비해 책표지와 표지의 글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악담(?)을 같은 시기에 출판된 베스트셀러가 된 다른 책과 비교하면서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물론 악담을 늘어놓는 이유는 그 책이 너무 괜찮았기 때문이라면서... 앞으로 표지디자인에 신경 좀....하면서.

그런데 엽서를 보내기가 무섭게 감동적인 답장을 받았고, 조만간 가수 한대수 씨의 인생을 담은 책을 내니 많이 사랑해 달라고 해서 그러마고 마음으로 약속을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대중가수의 자서전을 굳이 돈주고 살 념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후 비전향 장기수 김동기 선생의 에세이가 출판된 것을 알았다. 이번엔 진짜 사봐야지 했는데 책이 출간되고 얼마 안되어서 김동기 선생이 'MBC 초대석'에 덜컥(?)나와 33년 옥살이를 말로 다 하시는 것이 아닌가. 말로 이미 충분히 감동을 받았기에 또 책으로 사는 것은 미루게 되었다.

그러다 이번에 반품된 목록을 보고서야 신청을 한 것이다. 7,8천 원씩 주고 사야 할 것을 2천 원에 사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어느 한 책은 지인들의 주소를 적어주며 나에게로 올 것없이 그들에게 바로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책은 메일을 보내고 송금을 하기가 무섭게 날아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세 권의 책을 헐값에 샀고, 막상 책으로 읽고 보니 그 동안 안 사본 것이 후회로울 정도로 소중한 책들이었다.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

한대수 하면 '물 좀 주소'하던 외침이 생각난다. 끝까지 다 들어보진 못했으나 기회 되면 끝까지 한번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노래였는데 책을 읽고 나니 정말 그의 노래를 사고 싶어졌다.

평소 시보다도 더 아름다운 유행가를 꼽으라면 김광석의 '바람과 나' 였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김민기의 '바람과 나' 였다. 그런데 '바람과 나'는 김광석도 김민기도 아닌 한대수가 만들었다는 것이 아닌가. 더 볼 것도 없이 그의 예술세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싶어졌다.

평생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으면서 살았고, 또 한 축으로는 잘 나가는 사진작가로 명성을 날리면서, 세계를 종횡무진 돌면서 얻은 식견에 그의 사고는 그 어디에도 막힘이 없었다. 이름난 교수들의 책 몇 권보다 그의 책 한 권이 훨씬 더 영혼에 이로웠다.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을 남긴다.>

'새는 앉는 곳....'은 비전향 장기수로 33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석방되신 김동기 선생의 자전적 에세이다. 말씀만 조근조근 감질 맛나게 하시는 게 아니라 선생의 글 또한 가마솥 누룽지같이 구수했다. 외래어에 오염되지 않고도 훌륭하게 하실 말씀 다 하셨다.

감옥생활을 너무도 아름답게 표현하셔서 감옥생활 한번 해보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게 해주셨는데 나중에 뒷부분을 읽어보니 선생은 하루종일 화장실 냄새를 맡으며 독서를 하시고, 바느질을 하시고, 냉수마찰을 하시고, 사전을 외우시고, 때로는 단식으로 저항도 하시고... 하셨던 것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우리 나라 중 고등 교과서에 미당의 시 따위를 실을 게 아니라 선생의 글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평생 고국을 그리워하며 결혼도 안하고, 독일이라는 낯선 이국에서 고향을 그리는 소설(압록강은 흐른다)을 쓰고 간 이미륵 님이 생각났다. 그러나 김동기 선생의 그리움은 이미륵의 그것 보다 더 큰 듯 했다.

33년을 0.75평 습한 공간에서 허리를 관통한 총상의 후유증과,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절대고독 속에서 살아야 했으니... '33년 동안이나 가두어 두었던 사람을 별 대책도 없이 내 보내는 것 또한 폭력'이라는 선생의 말이 어찌나 뜨끔하던지...

<아름다운 사람들과 나눈 그림이야기>

'아름다운 사람들...'은 각계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신이 감동했던 마음의 그림들을 고백하고 저자(김현숙)가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이애주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였던 할머니들(김순덕 강덕경)의 그림에 감동하였다고...

시사만화가 박재동은 이철수의 판화를, 민속학자 주강현은 손장섭의 나무들을, 그리고 진관 스님은 김정희의 세한도를, 김태정 박사는 최낙경의 풍경화 등등 소개된 모든 그림들이 그림의 '그' 자를 몰라도 저절로 마음이 열리고 마는 것들이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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