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광순씨 등 여성계가 호주제 폐지운동을 처음 시작 할 때만 해도 뜻은 좋으나 전 국민에 해당되는 그 일이 과연 그이들의 바람대로 될 것인가 회의적이었다. 그럴 날이 오기는 하겠지만 요원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지난 10년 사이에 의견이 무르익어 결과를 보았다(2008년 1월 1일부터 호주제 폐지 가족관계등록부로).
하여 고은광순씨는 이젠 본업으로 돌아가 한의사 일에 충실하나 했는데 '내 제사 안 받기 운동'을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러면 그렇지'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으나, 한편으로는 이왕 하는 김에 좀 더 나아가 내 제사 안 받기보다 '내 대에서 제사 끝내기' 운동을 펼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기본정서가 있는데 조상님에 대한 제사를 내 대에서 끝내자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을 것이다. 수년전 이하천씨가 <나는 제사가 싫다>는 책을 썼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었는데 지금이라고 별반 사정이 나아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당시에도 이하천씨의 글과 용기에 동의했지만 주변 아짐들에게 물어보면 씨도 안 먹히는 소리라는 게 주류였다.
제사를 안 지낸다면야 더없이 좋겠지만 감히 거부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혼자만 사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 계시고 어른들이 돌아가셨다 해도 형제자매간에도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주부로 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볼 때 남녀가 만나 결혼생활에서 제일 많이 부딪힐 수 있는 것이 차(제)례 문화였다. 그와 더불어 각종 갈등과 역설적이게도 불효가 파생되는 것을 보았다. 반대로 다른 일로 부부간이나 시댁과의 갈등이 심화되었을 때 제사가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제가 되는 것도 보았다.
예들 들어 가정불화의 원인이 남편에게 (많이)있을 경우 그 갈등이 절정에 달할 경우 여자들은 대개 제사와 차례에 불참한다. 남편도 싫은데 어찌 남편의 조상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사 음식을 만들 수 있냐는 것이다. 마음 없이 음식을 하는 위선도 싫고 노동을 보태는 것도 싫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불똥은 엉뚱하게 튀어 당사자도 당사자지만 시어른들이 가장 상처를 받는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말할 수 없이 섭섭하다. 젊고 똑똑한 저가 날 무시하는가 싶기도 하고 조상님께 예든 제든 올려야 하는 날만 되면 며느리가 오나 안 오나 근심이 절로 되는 것이다.
'우리 때는 요즘 젊은 며느리들보다 훨씬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면서도 조상모시는 일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요즘 것들은 왜 이러나.'
그러면서도 아직 젊어(젊다고 해도 70) 직접 제사 음식을 맡고 계시는 할머니들은 말씀하신다.
'나는 이제껏 해왔으니 계속 지내지만 나중 내 죽고 난 다음에는 절대 내 제사 지내지마라'
그러나 그 자식은 그럴 수가 없다. 울 어머니는 수십 년 제사 지나느라 고생했는데 자식 된 도리로 제사를 안 지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끊이지 않고 제사는 이어져 왔겠지만 이제는 그 문화에도 변화를 가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제례문화의 최대 피해자는 할머니들
오늘날 현대인의 생활이라는 게 다들 고향을 떠나있기 일쑤고, 또 결혼한다 해서 여자가 남자에게 예속되는 관계가 아니다. 예전이라면 아내 쪽이 무조건 참았던 것들도 요즘은 씨도 안 먹힌다. 때문에 저마다 티격태격 살아가는데 장남 부부의 경우 근심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물론, 사이가 좋은 사람들이야 괜찮겠지만 대부분 가정의 경우 제사는 갈등의 뇌관으로 존재하고 있다. 나이든 할머니들의 경우 몸이 불편하지 않은 한은 자식에게 맡길 수 없어 스스로 제상을 보자니 40~50년 차리는 일이 너무 힘들다. 며느리들이 협조적으로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누구는 오고 누구는 안 올 경우 오는 며느리 눈치도 봐야 한다.
때문에 어찌 보면 지금의 제례문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젊은 주부보다 나이든 황혼의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다. 예전엔 길어야 한 30년만 하면 되는 것을 요즘은 평균수명이 기니 40년, 50년 끝이 없는 것이다. 당신 힘들다고 며느리에게 물려주면 아들부부 사이 나빠질까 염려되어 그러지도 못하고 정말 혼자 서럽다.
마음 같아서는 확 관두고 싶지만 40~50년 지내왔는데 죽기 전 까지 몇 년 남았다고 그것을 못한다며 내 팽개칠까. 유종의 미는 고사하고 그간의 공덕마저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라 쉬이 관둘래야 관둘 수가 없다. 또 가문 있는 집의 경우 집안 어른들이 뭐라 하면 찍소리 못하는 게 할머니들 신세다.
조상님에 대한 추모, 다른 식으로 하면?
그러면, 조상님 제사를 더 이상 지내지 않으면서도 조상님께 송구스럽지 않고 오히려 더 조상님을 복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얼마 전 <한겨레> 조현기자의 글에서 보니, 정토회 법륜스님과 고 법정스님은 돌아가신 속가의 부모님에 대한 추모를 우리네 제례문화와는 다르게 하였는데 무척 신선했다. 즉, 법정스님은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가지 않았다기에 돌아간 분에 대한 추모 같은 것은 초월한 분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매년 '부모님과 할머니 기일이 되면 남모르게 꼭 양로원을 찾아 어려운 노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하였다.
법륜스님의 경우는 한발 더 나아가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대신 마을 경로잔치를 하고, 기일 때도 경로잔치를 이어오고'있다고 하였다. 뿐인가. '산악인 정명숙씨는 부친의 기일마다 캄보디아에 우물 하나씩' 파준다고 하였다.
요는 상다리 부러지는 그 제사의 형식 말고도 얼마든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추모는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것이지 조상님에 대한 추모를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형식이란 건 중요하다. 그러나 마음 없는 형식은 공허할 뿐이다. 또, 현실적으로 자손들의 화합보다 분란을 유발하고, 할머니들의 오랜 희생위에 그 형식이 존재한다면 이젠 그 형식을 좀 내려놓아도 되지 않았을까.
물론 예외는 있어 사이가 돈독한 집들은 전통의 명맥을 있는 의미도 있고 두루두루 계속 지내도 될 것이나 제사 때마다 분란이 일어나는 집들은 형식 없이 마음만으로 혹은 각자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추모하면 안 될까.
그 마음으로 하는 추모가 나이든 분들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지고, 힘들게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다른 노인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로 이어 진다면, 제사의 형식은 없어졌는지 몰라도 의미는 살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정말 내로라하는 이름 있는 가문의 경우 그 가문의 종부 되는 사람에게 일종의 '문화자산관리사'란 이름으로 연금 같은 것을 주면 안 될까. 가문이 융숭하여 굳이 나라의 녹이 필요 없다면 그 가문 사람들끼리 일정 회비를 거둬 종부에게 월급을 주면 안 될까. 종부로서의 삶이 하나의 직장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전통문화를 수호하는 자부심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보통 가정의 경우는 각자 가정의 분위기에 맞게 다양한 이벤트를 하면 어떨까. 돌아가신 부모님 생신이나 기일에 한번 씩 만나 등산을 한다든가, 온천을 간다든가 하면서 '단합대회'를 하면 어떨까. 아니면 산악인 정명숙씨처럼 온가족이 정성을 모아 의미 있는 곳에 기부를 하는 것은 어떨까. 추모 이벤트의 소재는 무한할 것이다.
오로지 '한 가지' 형식으로, '한 장소'에서 경직되게 추모하는 것 보다 그때그때 가족 구성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 추모를 한다면 조상님도 자손도 두루두루 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