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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SE - [할인행사]
스티븐 달드리 감독, 제이미 벨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잘 모르겠어요. 기분이 좋아요. 춤을 추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잊어버려요. 그런 다음 몸 전체가 변하는 느낌이 에요. 몸에서 불꽃이 일어서 새처럼 날아갈 것 같아요. 전기가 오는 것 같아요. 그래요. 꼭 그런 기분이에요.”
위는 영국 왕실발레단 오디션 후, 시골뜨기에다 폭행 문제를 일으켜 당락이 모호하던 중 재주가 아까워 마지막으로 물어본 면접관의 질문에서 ‘빌리 엘리어트(제이미 빌분)’가 한 말이다. 심사위원들은 위의 빌리의 말에서 빌리를 합격시킬 것을 결심했지만 나는 빌리의 말에서 내 아이에게 더 이상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을 것을 결심하였다.
뭐 한 가지라도 하자며 학원대신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친 지 따져 보니 어언 일 년도 넘은 시점이었다. 속을 타보니 아이는 밥 얻어먹고 살아야 하니 마지못해 친 것이었다. 마지못해 쳤더라도 한곡씩 배우고 나면 그래도 뿌듯하지 않느냐는 뜻에서 계속 밀고 왔는데 그럴게 아니라는 생각이 빌리를 보고 알았다.
싫어해도 어떻게든 밀고 나가면 하나 둘 칠 수야 있겠지만 그것이 강제에 의한 것이라면 ‘과정’속에서의 ‘기쁨’이란 것이 없을 것이기에 아쉽지만 내 욕심을 접기로 했다. 욕심은 접었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 듣기라도 하라는 뜻에서 평소 손이 잘 가지 않던 피아노를 요즘은 아이 대신 내가 매일 같이 두드리고 있다.
가난한 탄광 노동자의 아들이지만 내겐 꿈이 있어요.
못 배우고, 가난한 탄광 노동자의 아들인 빌리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권투학원엘 다녔는데 우연히 발레를 접한 후 발레에 빠졌다. 그러나, 먹고 살기도 힘든데 발레가 웬 말이냐. 더구나 사내자식이 사내다운걸 해야지 발레가 무어냐. 빌리의 아버지 잭키(게리 루이스분)는 다시금 발레를 하면 아주 혼쭐을 내 주겠다며 윽박질렀다.
그러나 빌리는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는 일견 발레를 접는 척하면서 뒤로는 여전히 발레연습을 하였다. 왕년에 잘 나갈 ‘뻔’ 하다 영락한 발레선생(줄리 월터스분)은 빌리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무상으로, 또 애정을 쏟으며 발레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추어지자 빌리의 아버지 잭키에게 발레 오디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만 둔 줄 알고 있었던 발레를 아버지를 속이며 여전히 하고 있었다는 것에 빌리의 아버지는 분노가 폭발하였다. 그래도 빌리가 발레를 멈추지 않자 아버지는 아내가 남기고 간, 빌리에겐 더 없이 소중한 피아노를 망치로 부셔버렸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전야에.
그 쯤 됐으면 발레를 그 만둘 법도 한데 빌리는 여전히 우아한 몸짓으로 돌고 뛰고 팔을 휘저으며 춤을 추었다.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좋아서 하니 하교 길의 걸음걸이조차 리듬을 탔다.
그러다 또다시 아버지에게 들켜 ‘정말 이젠 죽었구나.’ 싶은 순간이 왔다. 분노가 극에 달한 아버지 앞에서 빌리는, 죽을 때 죽더라도 춤이나 한판 추고 죽자는 듯이 그동안 배운 모든 기교를 총동원하여 춤을 추었다.
선입견만 가지고 있던 발레였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가 봐도 빌리의 발레는 감동적이었다. 이에 빌리의 아버지는 비로소 마음을 풀고 아들을 믿기로 하였다. 그러나 파업 중인 탄광촌에서는 하루하루 끼니조차 버거운데 오디션이라니 막막하였다.
80년대 영국인데 너무 가난해서 놀라...
우리네 1980년대야 격동의 80년대였다지만 영국 탄광촌의 80년대가 그렇게 암울했다는 것에 적이 놀랐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두 아들과 장모와 살아가는 빌리네 형편은 그 집 살림살이들이 다 증명해주었다.
조야하고 초라하고 좁고 너저분한 방과 제대로 된 냄비하나 보이지 않는 허술한 주방과 식탁 등 가난한 모양새는 왜 어딜가나 다 어슷비슷한 모습인지. 그나마 낡은 피아노 한대가 간신히 한때 그 보다 쬐끔 더 반지르르 하던 시절도 있었음을 희미하게 증명해 줄 뿐이었다.
그러나, 먹고 살기 힘들지만 때문이야 말로 자식에게 만은 더 이상 이런 지독한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이를 악무는 부모의 심정은 어디나 다 같은 것인지.. 빌리의 아버지는 지난 시대 우리네 부모들이 그랬듯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사랑이 그의 몸에 새겨져 있는 분이었다. 그 따뜻한 사랑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내 가슴을 벅차게 해서 눈알이 발개지도록 울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