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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사람으로 키운다
전혜성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예전 고홍주씨가 클린턴 정부 인권차관보가 되었다고 하였을 때 나는 고홍주씨도 대단하지만 그 어머니 전혜성 박사에 더 호기심이 갔다. 어찌 그리 훌륭한 아들을 두었을까. 나도 그랬듯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 화려한 출세의 비결(?)이 자못 궁금했으리라.
그런데 전혜성 박사의 교육비결은 우리네 상상과 다소 달랐다. 즉, 그는 자식들에게 '지가 덕을 넘지 않는 삶', '봉사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쳤다.
특히 '지가 덕을 넘으면 안 된다'는 전 박사의 가르침은 너무나 와 닿아 책 한 권 내시지 않나하며 은근히 기다리던 차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 사람으로 키운다>(랜덤 하우스)를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부모가 먼저 스스로 자신을 섬기고, 서로를 섬기고, 자녀를 섬기며, 더 나아가 남을 섬기고 사회를 섬겨야 한다. 덕은 나만의 이익과 요구보다는 남도 같이 생각하면서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덕은 많은 사람들을 이끈다. 그것이 바로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만드는 비결이자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리더로 키울 수 있는 길이다. 남을 돕고 베푸는 과정에서 아이 스스로 오히려 힘과 지혜를 얻게 된다. 부모가 먼저 남을 배려하고 봉사한다면 아이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바르고 훌륭하게 자라날 것이다. - 책 맨 앞쪽에서
그가 말하는 덕은 책의 숲을 거닐다가 쌓이는 덕도 덕이지만 그에 앞서 먼저 봉사하는 삶 속에서 길러지는 인류애와 지혜를 말함이었다. 봉사라니. 자기가 사먹은 과자봉지 하나도 제대로 못 버리는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라니. '봉사하는 삶을 살면 저절로 지혜와 힘을 얻게' 된다니 말은 좋지만 과연 가능할까 회의하는 부모들이 많으리라.
그러나 전혜성 박사의 자녀들을 보면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되도록 많은 사람을 도우며 살라'는 가르침을 받은 그의 4남 2녀 모두 우리한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하버드, 예일 등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에다 의사, 학장, 장관, 변호사 등의 타이틀을 달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자녀들은 세속적인 출세보다 오히려 어려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자 열심히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고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자 변호사가 되었다.
의사가 되고 보니 이미 난 병 고쳐주는 것보다 그런 병 안 걸리게 미리 예방하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함을 느꼈다. 그래서 '예방의학'이라는 전혀 돈 안 되는 분야를 공부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되어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보니 아예 매사추세츠 주에서 보건 후생성 장관(큰아들 경주)을 맡아서 주(州) 민 모두의 건강을 위해 힘써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법을 배운 셋째 홍주씨는 예일대 석좌교수시절, 추방위기에 놓인, 관타나모 해군기지에 억류되어 있던 '아이티 난민 310명'을 돕는 일에 선뜻 응했다. 그것은 클린턴 정부에 소송을 거는 것이었는데 정치적, 법률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였다. 아무리 뜻이 옳다고 해도 막강한 행정부를 상대로 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었다. 게다가 소송에서 지면 벌금 1000만 달러를 내야 할 판이었다.
홍주씨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봐야 100만 달러도 안 되었는데 1000만 달러의 위험을 무릎 쓰면서까지 아이티 난민들이 미국에 남을 수 있게 18개월 동안 수많은 봉사자들과 함께'목숨을 걸고'일했다. 결과는 홍주씨 승.
이일을 계기로 클린턴은 그에게 인권차관보 자리를 맡겼다고 하였다. 이 웬수(?)가 자신의 행정부에 모욕에 주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의 인권위상을 높여주었기에 그리 하였다나.
남을 돕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
아이들이 직접 봉사 활동을 할 때 거둘 수 있는 효과는 상당하다. 남을 돕는 일을 하면서 아이들은 일단 기쁨을 느낀다. 자긍심도 갖게 된다. 그런 뿌듯한 감정을 오래 그리고 자주 느끼려면 정말 보람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각오도 다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보람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하게 된다. 이것은 부모의 강요로 공부하거나 자식의 공부를 위해 부모가 희생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방법이다. - 본문 43쪽
돌아가신 울 아버지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 된다'며 취중이나마 선한 삶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였다. 그런데 내가 막상 애를 키워보니 그런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선한 삶을 살라고 했다가 제 몫도 안 남기고 다 퍼줘 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쉬이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대신 적당히 물 타기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거나 '매사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따위의 말들을 늘어놓곤 하였다. 그랬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남을 돕는 삶을 살아라'고 적극적으로 얘기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봉사의 기쁨이 어떤지 나 자신도 조금은 경험했으면서 자식에게는 왜 그러한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인색했는지. 이제부터는 진짜 적극적으로 우리가 '착하게' 살아야 되는 이유를 설명해줘야겠다. 아니, 설명하기 전에 내 먼저 그러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