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 나이 오십하고도 하나가 되었다. 세월은 도도히 흘러 막연하게 내 자유의 그때라 생각했던 오십대가 되었다. 나에게 오십이란 낱말은 해방이나 자유의 이음동의어였다.
세간의 우스갯말대로 마흔이 심리적으로 시속 40km라면 확실히 오십은 시속 50km의 빠르기로 내달리는 듯하다. 우리가 촛불을 들었던 그때가 어저께 같은데 벌써 햇수로 3년 전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정말이지 지천명은 어! 하는 순간 환갑 맞기 딱 좋은 화살 같은 시간 속에 있는 듯하다.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만 훌쩍 보내버리고 아차 할 것 같다. (그러면 아니, 아니되오!)
2018년 4.19는 내게 있어 만 결혼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20년 전 4월, 18일도 아니고 20일도 아닌 19일에 결혼한 것은 결혼이라는 중차대한 길에 서는 것이 막막하고 두려운 나머지 나름 기대고 싶어서였다.
민주주의를 외치며 하나뿐인 목숨 바치고 또 감옥 간 사람들도 있는데 민주주의를 외치지는 못할망정 그깟 가정하나 꾸리는 것을 두고 엄살을 떨 수는 없겠지. 혹은 결혼의 도정에서 순간 삐끗하더라도 1년에 한번씩 4.19를 생각하면 내 개인 문제 정도야 너끈히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4.19 대의에 기대어 결혼의 일상을 극복하고 싶었다. (너무 거창한가?)
그 결과, 감사하게도 42.195km를 스무 번 달린 듯 한 긴 경기 끝에 드디어 결혼 20년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인내의 마라톤 같던 시간들도 기쁨과 행복이 넘실거렸던 순간들도 지나고 보니, 42.195km를 스무 번 달린 것이 아닌 그냥 200m 운동장 스무 바퀴 돈 것처럼 축약되어 느껴진다.
정말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나 싶다. 이제는 고개를 들고 한 10cm쯤 올려다봐야하는 아이들의 키를 보니 시간이 정직하게 충실하게 흐른 것은 확실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들을 추려 묶은 것이다. 그날이 그날 같던 육아의 갑갑함이 견딜 수 없어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지난 20년 삶의 흔적 대부분이 고스란히 복원되고 저장 되어있어 감사하기도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행간을 떠올리면 괴로워서 쓴 거 같은데 글의 결과는 웃음을 주기도 하니 쓰는 과정에서 어쩌면 치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은 허무하게 아름답다?
나는 사춘기 지나며 본격적 자아가 싹트던 시절부터 유난히도 허무(虛無)란 단어가 눈에 들어 왔다. 허무라는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았다. 허무 허무 허무. 虛無 虛無 虛無. 한글, 한자 두 가지를 연습장에 가끔씩 쓰면서 허무를 되새김 한 적도 있었다.
무언가 강렬히 추구해봐야 결국은 부질없는 듯 느껴졌다. 매사 치열하지 못하고 중도 작파하는 게으른 내 삶을 합리화하기에 딱 좋았다. 세월이 흘러 지천명이 되었지만 여전히 허무라는 말이 좋다. 허무한 게 허무하면서도 좋다. 허무한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라는 생각마저 든다.
삶이 허무하지 않다면 얼마나 비극일까. 삶이 허무해야지 허무하지 않고 인간들의 욕망이 계속 지속되고 지켜진다면 그것만큼 지옥도 없을 것이다. 한 번씩은 빌 허(虛), 없을 무(無)로 깨끗이 쓸어줘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승의 삶이 어떠했든 그 끝은 결국 허무하게 지수화풍으로 흩어지고 우주의 먼지가 되는 게
너무 좋다. 그리고 나의 허무는 비관적 허무가 아니라 긍정의 허무라서 허무해 하면서도
현실은 즐거울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작고 소박한 꿈들과 자연이나 사물에 대한 호기심에 더 의미를 두었다.
드디어 자유의 오십이 되었고 그 초입을 넘어가고 있다.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은 아름다운 순간들을 사는 것이다. 아름다운 순간들과 많이 조우하고 싶다. 영원과도 같은 아름다운 순간들을, 찰나를, 또는 풍경들을 많이 마주치고 싶다. 굳이 욕심이라면 나의욕심은 그러한 것에서 머무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들으면 남들은 웃을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작은 커피숍의 종업원이 되어(절대 주인은 하고 싶지 않다.) 음악을 마음대로 관장하고 싶다. 그런가 하면 지중해 어느 올리브 나무 밭에서 한 일주일 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리브 수확을 해보고도 싶다. 뿐 만 아니라, 나에게 올리브 체험을 시켜주는 이국의 사람에겐 원한다면 내 친정 매실 밭에서 매실 따기 일주일 맞교대를 제공해 주고 싶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리고 그동안은 한국인으로 살았다면 오십 이후 앞으로의 삶은 지구인으로 살다 가고 싶다. 지구인으로서 지구촌의 삼라만상을 응시하며 때로는 그 속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 가장 찬란한 순간에 지구를 탈출하여 우주의 먼지가 되고 싶다.
- <당신이라는 순간>에서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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