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악에 관해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슬기둥을 알게 됐다. 94학번 대성이 형네 집에 놀러갔다가 - 그때는 형 집에 신세를 많이 졌다. 먹고 자고 많이 빌붙었지. 어느 날엔 택시비도 없이 신평에서 택시를 탔다가 형 집까지 택시를 타고 갔고 형이 대신 비용을 지불했다. 지하철 막차가 끊긴 시간이었으니 꽤 늦은 밤이었지. 이젠 그것도 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 슬기둥 TAPE을 발견했고, 빌려서 꽤 오랫동안 내가 듣고 있었다. 굉장히 리드미컬하고 박진감 넘치는 음악에 좀 매료됐던 것 같다.
그 후로 우리 음악에 대한 편견이 깨졌고, 한 후배의 도움으로 장구를 배우는 길에 접어 들었다. 문화재 할머니한테서 퇴근 후 저녁 시간에 배웠다. 부산대 근처에 연습실이 있었는데, 별 일 없으면 거기 가서 한 시간 정도 배우고 연습했다. 가락을 익히는 즐거움도 좋았지만 - 사실, 나는 예술적 재능은 젬병이어서 실력이 쉽사리 늘지 않았다. 그냥 할머니의 장구 가락 소리 듣는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간혹 그 후배의 장구 소리를 듣는 운도 있었는데, 후배와 함께 연습을 하러 연습실에 들렀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후배의 설장고 앉은반 연주를 듣는 운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겨울 방학에는 부여에 있는 `사물놀이 한울림 교육원`에 가서 1주일 동안 남도농악을 배우기도 했다. (후배는 그때 설장고 선반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번 발을 들여놓고 나서는 배움의 기회가 없었다. 기회가 없었다는 것은 내 마음이 배움에서 멀어졌다는 의미다.(그래도 가끔은 그 시절에 대한 향수 같은 게 남아 있다. 나에게 소질이 있어서 가락을 멋들어지게 두들기는 상상을 하면, 꽤 설레기도 한다.) 하지만 국악을 들을 기회가 생기면 챙겨보기도 했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할 때 김덕수 사물놀이패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마음 속에 흥같은 게 있어서 흥겨운 가락을 듣게 되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기도 한다.
또 장구 가락을 좀 배웠다고 아주 가끔 장구를 잡을 때가 있었다. 부산국어교사모임에서 진도로 문학 기행을 간 일이 있는데, 진도 아리랑을 배우고 밤 늦도록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배운 가락이 있어 장구채를 잡았고, 그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는데, 가끔 보면 새삼 그 흥이 떠오른다. 그리고 재작년엔 아내의 할머니께서 팔순 잔치를 맞으셨는데, 우리 부부가 장구를 치면서 진도 아리랑 개사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잔치를 더욱 잔치답게 한 셈이라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
슬기둥 음악을 오랜만에 들으니 지난 시간이 많이 떠오른다. 저기 등장하는 모든 소재와 이야기는 흘러 사라지지 않았다. 음악을 듣거나 장구채를 만지는 날에는 저 모든 것들이 나에게 달려온다. 아니, 어쩌면 내가 달려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위험하다지만, 이럴 때는 아름답기도 하다. 아차, 위험한 것은 모두 아름답지. 음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