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지리산 종주 계획이 있다. 지리산은 특정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을 끄는 야릇함같은 게 있다. 산 능선에 올라섰을 때 내려다 뵈는 풍경의 웅대함, 혹은 건장한 청년의 우람한 근육같은 능선이 훤히 보이는 겨울산의 강건함, 무엇으로 형언할 수 없는, 그곳에 푹 파묻혔을 때의 허언의 경지들. 말이 필요없고 그저 느낌만 존재할 뿐인 그 순간들.

 

 4, 5년 전이었다. 화엄사~노고단~세석~천왕봉~대원사 코스로 2박 3일 걸었다. 그 때는 정말 허겁지겁 걸었던 기억만 있다. 물론 순간 순간의 희열과 장관으로 인한 장탄사가 없지 않았지만, 빠듯한 일정 계획 때문에 그것들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면이 있었다.

 

 다시 지리산 종주 계획을 세웠다. 처남과 가는 산행이다.(어쩌면 금곡고 제자 한 명이 붙을 수도 있겠다.) 성삼재~연하천~장터목~천왕봉~대원사 코스를 계획 중이다. 이번 산행은 좀 여유가 있을 듯하다.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처남의 형편을 고려한 코스이지만, 나에게는 여유와 느긋함을 선물할 수 있을 듯하다.

 

 구례군에서 1박을 해야 하니 전체는 3박 4일의 일정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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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 2011-12-1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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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방랑하는 것 이여인 저여인 , 그것이 운명이라면 나 다시 떠나리
단잠에 빠진 그대 깨우지 않으리 ,발걸음 소리 가볍게 문닫고 떠나리
그녀의 대문 위에 한마디 남기고 ,그녀가 보게 될 때 내진심 알리라
그녀의 대문위에 이별의 인사로 한마디 말로 안녕 내사랑 전하리

이 곡에 작년겨울 완전 빠졌었지.ㅋ

2011-12-13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슈베르트나 쇼팽의 음악을 주로 듣는 모양이다. 서경식 선생님은 <나의 서양 음악 순례>에서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 낭만파 음악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신다. 어쩌면 어렸을 때 음악 교과서에서 슈베르트, 쇼팽의 이름을 자주 접해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아는 만큼 보인다지 않나. 익숙한 것에 사람은 이끌리기 마련인 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낭만파의 유려하고 우아한 선율 속에는 죽음에의 유혹이 깔려있는 듯하다. 이런 음악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지만, 자살율 세계 1위라는 우울한 통계와 이러한 음악 향유의 경향은 어딘가 닮은 데가 있어 보인다. 여기다 더해 서경식 선생님은 `늘 죽음과 맞닿아 있는 조선인의 삶`을 말씀하신다. 광주의 5.18과 분단 상황을 말씀하시지만, 어디 그뿐이랴. 4.3, 민주화 운동, 용산, 쌍용. 우리 사회 도처에 죽음이 음흠하게 흘러다닌다. 

 슈베르트의 삶을 영화한 <미완성 교향곡>이라는 영화가 있다고 한다. 1933년에 나온 오스트리아 영화인데, 대강의 줄거리가 이렇다고 한다. 

젊은 슈베르트는 아끼던 기타를 전당포에 맡길 정도로 가난하다. 전당포집 딸은 그에게 호의를 보인다. 가난한 그에게도 출세할 기회가 왔다. 귀족이 주최하는 음악의 밤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그 자리에서 슈베르트는 새로 작곡한 나단조 교향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어느 젋은 여인의 웃음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져 연주는 중단되고 자존심이 상한 슈베르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 뒤 슈베르트는 나단조 교향곡을 연주할 때마다 그 여인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뇌리에 박혀 연주를 계속할 수 없게 된다. 어느 날 뜻밖에도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 백작이 그 집 딸 음악 선생으로 와달라는 초청장을 보내온다. 백작의 딸은 예전에 그의 연주를 웃음소리로 망쳐버린 그 여인이었다. 그녀의 그때의 무례를 용서받기 위해 그를 초빙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 

 그러나 백작은 두 사람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고 슈베르트를 빈으로 돌려보낸다. 고뇌의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그는 헝가리로 와달라는 그녀의 편지를 받고는 기쁨에 들떠 달려간다. 하지만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녀의 결혼식이었다. 슈베르트는 결혼식 때 그 나단조 교향곡을 연주한다. 연주가 예전에 날카로운 웃음으로 중단됐던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실신하고 만다. 슈베르트는 완성한 교향곡 마지막 몇 장을 찢어내고는 그 여백에 이렇게 쓴다. ``내 사랑이 끝나지 않듯 이 곡 또한 끝나지 않으리.``

                                                               - 서경식, 나의 서양 음악 순례, 창비, 301~302쪽

 영화라서 슈베르트의 삶을 각색한 부분이 있을 거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많은 실연을 경험했을 것이고, 그때마다 `내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지도 모르겠다. 누구든 그런 경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의와 고독, 더 나아가 일그러진 광기같은 것. 그래도 사랑은 영원한 것. 그래서 사랑도 위험한 것. 

 여튼 오늘 아침은 슈베르트의 유려한 선율에 나도 잠깐 애상적으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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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음악에 관해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슬기둥을 알게 됐다. 94학번 대성이 형네 집에 놀러갔다가 - 그때는 형 집에 신세를 많이 졌다. 먹고 자고 많이 빌붙었지. 어느 날엔 택시비도 없이 신평에서 택시를 탔다가 형 집까지 택시를 타고 갔고 형이 대신 비용을 지불했다. 지하철 막차가 끊긴 시간이었으니 꽤 늦은 밤이었지. 이젠 그것도 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 슬기둥 TAPE을 발견했고, 빌려서 꽤 오랫동안 내가 듣고 있었다. 굉장히 리드미컬하고 박진감 넘치는 음악에 좀 매료됐던 것 같다. 

 그 후로 우리 음악에 대한 편견이 깨졌고, 한 후배의 도움으로 장구를 배우는 길에 접어 들었다. 문화재 할머니한테서 퇴근 후 저녁 시간에 배웠다. 부산대 근처에 연습실이 있었는데, 별 일 없으면 거기 가서 한 시간 정도 배우고 연습했다. 가락을 익히는 즐거움도 좋았지만 - 사실, 나는 예술적 재능은 젬병이어서 실력이 쉽사리 늘지 않았다. 그냥 할머니의 장구 가락 소리 듣는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간혹 그 후배의 장구 소리를 듣는 운도 있었는데, 후배와 함께 연습을 하러 연습실에 들렀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후배의 설장고 앉은반 연주를 듣는 운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겨울 방학에는 부여에 있는 `사물놀이 한울림 교육원`에 가서 1주일 동안 남도농악을 배우기도 했다. (후배는 그때 설장고 선반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번 발을 들여놓고 나서는 배움의 기회가 없었다. 기회가 없었다는 것은 내 마음이 배움에서 멀어졌다는 의미다.(그래도 가끔은 그 시절에 대한 향수 같은 게 남아 있다. 나에게 소질이 있어서 가락을 멋들어지게 두들기는 상상을 하면, 꽤 설레기도 한다.) 하지만 국악을 들을 기회가 생기면 챙겨보기도 했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할 때 김덕수 사물놀이패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마음 속에 흥같은 게 있어서 흥겨운 가락을 듣게 되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기도 한다.  

 또 장구 가락을 좀 배웠다고 아주 가끔 장구를 잡을 때가 있었다. 부산국어교사모임에서 진도로 문학 기행을 간 일이 있는데, 진도 아리랑을 배우고 밤 늦도록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배운 가락이 있어 장구채를 잡았고, 그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는데, 가끔 보면 새삼 그 흥이 떠오른다. 그리고 재작년엔 아내의 할머니께서 팔순 잔치를 맞으셨는데, 우리 부부가 장구를 치면서 진도 아리랑 개사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잔치를 더욱 잔치답게 한 셈이라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 

 슬기둥 음악을 오랜만에 들으니 지난 시간이 많이 떠오른다. 저기 등장하는 모든 소재와 이야기는 흘러 사라지지 않았다. 음악을 듣거나 장구채를 만지는 날에는 저 모든 것들이 나에게 달려온다. 아니, 어쩌면 내가 달려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위험하다지만, 이럴 때는 아름답기도 하다. 아차, 위험한 것은 모두 아름답지. 음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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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귀 2011-12-05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상은 EBS 공감 스페이스에서 방영된 거다. 고구려의 혼,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등이 공연됐다. 소리와 영상이 잘 맞지 않아 불편한데, 그래도 음악이 좋아 올린다.
 

 

 <나의 서양 음악 순례>를 천천히 읽고 있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읽기에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서경식 선생이 극찬한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연주에 대한 글을 보면서, `과연 어떻길래?`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그리고 검색. 오늘은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을 얻었다. 

 이 곡은 리하르트 데멜(Richard Dehmel)의 시에서 착상을 얻어서 작곡한 것이란다. 시의 내용은 대체로 이렇다. 

 잎이 진 겨울 숲에 두 남녀가 걸어가고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밤하늘에 걸린 달이 두 사람을 따라온다.  

 여자가 말한다. ``내 뱃속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에요. 모르는 남자에게 몸을 맡겨 임신한 뒤 버림받았어요. 그리고 당신을 만났어요.`` 

 남자가 말한다. ``밤하늘이 이토록 빛나고 있소. 그대의 온기를 내가 느끼고 그대도 내 온기를 느끼고 있소. 그 마음이 뱃속 아이를 깨끗하게 만들어줄 거요. 부디 내 아이로 낳아주오.`` 

 두 사람은 새맑은 달빛이 비치는 밤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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