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사람들은 슈베르트나 쇼팽의 음악을 주로 듣는 모양이다. 서경식 선생님은 <나의 서양 음악 순례>에서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 낭만파 음악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신다. 어쩌면 어렸을 때 음악 교과서에서 슈베르트, 쇼팽의 이름을 자주 접해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아는 만큼 보인다지 않나. 익숙한 것에 사람은 이끌리기 마련인 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낭만파의 유려하고 우아한 선율 속에는 죽음에의 유혹이 깔려있는 듯하다. 이런 음악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지만, 자살율 세계 1위라는 우울한 통계와 이러한 음악 향유의 경향은 어딘가 닮은 데가 있어 보인다. 여기다 더해 서경식 선생님은 `늘 죽음과 맞닿아 있는 조선인의 삶`을 말씀하신다. 광주의 5.18과 분단 상황을 말씀하시지만, 어디 그뿐이랴. 4.3, 민주화 운동, 용산, 쌍용. 우리 사회 도처에 죽음이 음흠하게 흘러다닌다.
슈베르트의 삶을 영화한 <미완성 교향곡>이라는 영화가 있다고 한다. 1933년에 나온 오스트리아 영화인데, 대강의 줄거리가 이렇다고 한다.
젊은 슈베르트는 아끼던 기타를 전당포에 맡길 정도로 가난하다. 전당포집 딸은 그에게 호의를 보인다. 가난한 그에게도 출세할 기회가 왔다. 귀족이 주최하는 음악의 밤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그 자리에서 슈베르트는 새로 작곡한 나단조 교향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어느 젋은 여인의 웃음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져 연주는 중단되고 자존심이 상한 슈베르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 뒤 슈베르트는 나단조 교향곡을 연주할 때마다 그 여인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뇌리에 박혀 연주를 계속할 수 없게 된다. 어느 날 뜻밖에도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 백작이 그 집 딸 음악 선생으로 와달라는 초청장을 보내온다. 백작의 딸은 예전에 그의 연주를 웃음소리로 망쳐버린 그 여인이었다. 그녀의 그때의 무례를 용서받기 위해 그를 초빙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
그러나 백작은 두 사람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고 슈베르트를 빈으로 돌려보낸다. 고뇌의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그는 헝가리로 와달라는 그녀의 편지를 받고는 기쁨에 들떠 달려간다. 하지만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녀의 결혼식이었다. 슈베르트는 결혼식 때 그 나단조 교향곡을 연주한다. 연주가 예전에 날카로운 웃음으로 중단됐던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실신하고 만다. 슈베르트는 완성한 교향곡 마지막 몇 장을 찢어내고는 그 여백에 이렇게 쓴다. ``내 사랑이 끝나지 않듯 이 곡 또한 끝나지 않으리.``
- 서경식, 나의 서양 음악 순례, 창비, 301~302쪽
영화라서 슈베르트의 삶을 각색한 부분이 있을 거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많은 실연을 경험했을 것이고, 그때마다 `내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지도 모르겠다. 누구든 그런 경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의와 고독, 더 나아가 일그러진 광기같은 것. 그래도 사랑은 영원한 것. 그래서 사랑도 위험한 것.
여튼 오늘 아침은 슈베르트의 유려한 선율에 나도 잠깐 애상적으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