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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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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계의 이단아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동경하며 그들의 1할 2푼 5리 승률을 “치기 힘든 공 안 치고 잡기 힘든 공 안 잡는” 비주류의 철학 ‘귀차니즘’으로까지 승격시켰던 소설가 박민규가 이번에는 ‘탁구 치는 왕따 중학생’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그동안 <창작과 비평> 계간지에 연재했던 소설 「핑퐁」이 책으로 묶인 것이다. 그렇다고 박민규의 말마따나 소설에 학부모나 선생, 또는 감독이나 코치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말미에 가서는 가당치 않게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했다는 라인홀트 메스너나 미국 흑인 해방운동을 했던 말콤X가 나오기도 한다.

굳이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자칭 “세계가 <깜박>한 인간들”인 왕따 중학생 둘이 우연히 탁구를 배우게 되고, 어쩌다 핼리 혜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에도 참여하고, 터무니없이 인류 대표선수와 탁구시합을 하다가, 상대가 그만 과로사하는 바람에 이기게 되고, 마침내 세상을 이 모양으로 계속 둘 것인지 아니면 인류를 언인스톨(삭제)시켜버릴 것인지의 선택권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세계는 다수결이다. 에어컨을 만든 것도, 말하자면 자동차를 만든 것도, 석유를 캐는 것도, 산업혁명과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도, … 알고 보면 그렇다. 따를 당하는 것도 다수결이다.”

다수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주인공이 끝끝내 폭력을 견뎌내야 했던 까닭은 “왜 좀더 잘해주지 못했나 후회가 돼요.”라 말하고 다시 수업에 열중할, 스스로는 단 한번도 주인공을 괴롭힌 적이 없다고 믿을 과반수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가운데서도 주인공은 랠리(탁구경기에서 공을 주고받는 행위, 이를테면 의견을 갖고 대화를 하듯)의 중요성을 서서히 깨닫기도 하지만 결국은 아슬아슬한 듀스로 연명해온 인류의 생사여탈이 걸린 경기에 내몰린다.

그래서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느냐고? 소설보다 세상이 더 잔인한 법. 굳이 소설을 보지 않고 9시 뉴스만 틀어도 알 수 있지 않나?  

- 2006년 11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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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2disc)
이해영 외 감독, 류덕환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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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는 ‘사라다’는 샐러드(Salad)의 일본식 발음으로 말뜻만 보자면 소금에 절이거나 날로 먹는 채소를 가리킨다.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한 친구는 <야채 크래커>를 먹을 때면 “‘야채’는 일본식 한자고 우리 표현은 ‘채소’가 맞는다며 열변을 토했다. 나는 이왕이면 ‘푸성귀’가 낫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채소과자>를 선뜻 집어들 아이들이 상상되지 않았다.
말은 곧 인격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유식한 척, 격 있어 보이는 말투는 쉽게 입에 오르내린다. 외래의 것이나 새것이 신선한 만큼 세련된 듯 보이고, 옛것은 ‘촌’스럽기 마련이어서 ‘신토불이’ 언어가 열세에 몰리는 일은 다반사다. 해서 푸성귀가 채소에게, 채소가 야채에게 그랬듯 요즘은 ‘샐러드’가 대세다.

하지만 동서양의 틈바구니에서 식민지 경험이 살짝 낀 우리에게 ‘사라다’는 참 독특한 존재다. 제아무리 왜색이라지만 사라다는 아직도 양배추와 과일, 거기에 견과류까지 곁들여 마요네즈로 마무리한 우리 요리이자 안주의 한 종목으로 술집 메뉴판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격도 좋고 계통이나 역사도 중요하지만 역시 ‘사라다’는 사라다라고 해야지, 호프집에 앉아 ‘샐러드’라고 하면 밥맛이 되기 십상이다.

한 판 뒤집기로 여자가 되려는 청소년/녀 오동구의 성장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소재나 배경은 일본 영화 <으라차차 스모부>와 엇비슷하고, 스토리 진행은 탄광노동자들의 파업 한 복판에서 런던에는 가본 적도 없는 광부의 아들이자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년의 가족사가 담긴 <빌리 엘리어트>를 생각나게 한다. 특히 성소수자인데다 학교에서는 학생으로, 집에서는 폭력적인 아버지의 아들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약자의 대표선수격인 오동구는 참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의 개인사를 따뜻하면서도 사회적 긴장감을 놓지 않고 그렸다는 점에서 감독의 의욕만큼은 한국판 <빌리 엘리어트>라 할 만하다. 다만 솜씨가 썩 좋지만은 않아 <으라차차 스모부>처럼 산뜻, 발랄하지도 <빌리 엘리어트>만큼의 뭉클, 감격적이지도 않은 어정쩡함이 흠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사라다’를 대하듯 이 영화의 어정쩡함을 좋아하기로 했다. 어쩌면 주인공이 석류를 좋아하는 미녀보다는 애니메이션계의 외모지상주의에 한 칼을 날렸던 <슈렉>의 피오나 공주 몸매를 닮아서일지도 모른다. “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살고 싶다.”는 우리의 호프(hope) 오동구는 버무려져 제각각 달콤한 사라다의 참 맛을 알고 있을까?  

- 2006년 10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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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양철북」의 작가 권터 그라스(Gunter Wilhelm Grass). 그는 2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건국 이후 최대 간첩’ 송두율 교수 사건 당시 한국 재판부에 탄원서를 보내오기도 했을 만큼 행동하는 양심으로 존경받아왔다. 그런 그가 8월 12일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곧 출간될 자신의 회고록 「양파의 껍질을 벗길 때」의 집필 배경을 밝히며 “15세 때 히틀러 청소년단 시절 자발적으로 입대를 신청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고, “2년 뒤인 17세에 무장친위대로 발령받아 종전 때까지 복무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이를 두고 권터 그라스의 고향이기도 한 폴란드 그단스크시에서 그와 함께 명예시민증을 받은 바 있는 전 폴란드 대통령 바웬사는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반납하라며 강하게 쏘아붙였다. 비단 바웬사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고백을 두고 자서전을 팔아먹기 위한 쇼가 아니냐며 빈정거렸고 현지의 여론도 한동안 양분되었다. 뒤질세라 한국의 보수언론들도 그의 양심은 빈 깡통이라 비아냥대며 바다 건너에서 비난의 행렬에 동참했다. 하지만 얼마 뒤 권터 그라스가 그단스크시장에게 절절한 참회의 편지를 보냈고, 시장뿐만 아니라 바웬사도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은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지난 해 만들어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은 38조에 “완전한 진실을 고백한 가해자에 대한 화해조치” 규정을 두고 양심선언을 한 가해자에게 위원회가 특별사면과 복권을 건의할 수 있게 해놓았다. 물론 이 조항을 통해서도, 그동안의 지난했던 진상규명과 과거청산의 과정에서도 누구 하나 양심선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는 못했다. 오히려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처럼 조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질라치면 가해자들은 들개처럼 달려들어 온갖 협박과 회유를 일삼고 그 은폐의 시한을 연장하려 전력을 다할 뿐이다.

올해로 78세인 황혼의 권터 그라스는 “당시에는 못 느꼈지만 이후 전 생애를 거쳐 수치심에 짓눌렸으며 괴로웠다.”고 인터뷰 말미에서 심경을 토로했다. 그 쓸쓸함 뒤로 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성장하기를 거부하고 양철북을 쳐대던 오스카의 모습이 떠오르고 한 편으로는 한 늙은 작가의 양심의 무게에 비해 우리 사회의 성찰이 너무나도 가볍고 또 가난한 듯해서 못내 씁쓸하다.  


- 2006년 9월 씀. 제목은 윤동주의 시 '참회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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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노트 오에 겐자부로의 평화 공감 르포 2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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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슬픔*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고 산다. 8월 15일은 우리에게 광복절이지만 일본에게는 패전일이다. 그러면 8월 6일은?

“정신을 차리고 튀어나와 보니, 경례하는 모습인 채, 전우들이 서 있다. ‘이봐!’ 하고 어께를 두드리자 부슬부슬 전우는 무너져 내렸다.”
“상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희생자의 다리만 두개, 콘크리트 길바닥에 달라붙어 서 있다.”
“전차 안에서 한 아가씨가 손가방을 꼭 쥔 채 상처 하나 없이, 새까맣게 탄 군인과 머리를 맞대고 죽어 있었습니다.”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1963년부터 1965년까지 히로시마를 방문하고 쓴 <히로시마 노트>(김춘미 옮김. 고려원**)에 실린 피폭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겨우 살았다고 기뻐하던” 그들도 “몸 여기저기에 반점이 나타나거나 머리털이 몽땅 빠지거나 하면서 차례차례 죽어갔다.” 오에는 반핵투쟁 열기로 뜨거웠던 당시 히로시마의 현장을 스케치하면서 원폭 당시의 증언과 기록을 모아간다.

1950년 한 미국인 신문기자가 히로시마를 방문해 장님이 된 피폭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 조선에 원폭을 두서너 발 떨어뜨리면 전쟁이 끝나리라고 생각되는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둔감함이야말로 이미 하나의 퇴폐이다. 그리고 퇴폐의 극단에 핵무기로 인한 인류 최후의 전쟁 가능성 또한 있을 것이다.

그의 경고가 현실화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그는 “피폭자에게는 침묵할 권리가 있다.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그들은 히로시마에 관한 모든 것을 잊어버릴 권리가 있다.”고 썼다. 하지만 그럴 권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피폭자 대신 일본정부와 사회가 그 권리를 행사하려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러운 요즘이다. 인간의 존엄을 찾아 히로시마의 비참함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던 오에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어진다. 

- 2006년 8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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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웨일즈의 <아리랑> 중 김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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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바머
유나바머 지음, 조병준 옮김 / 박영률출판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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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아흐메드 파델 나잘 알 할라일레(Ahmed Fadel Nazzal al-Khalayleh). 1966년 혹은 67년 요르단 출생. 현상금 2,500만 달러가 걸린 테러리스트. 2005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혔던 인물.


일명 ‘알 자르카위’라 불리던 한 사내가 6월 7일 미군의 폭격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이라크 주재 미 대사는 그의 죽음을 “반테러 전쟁의 위대한 성공”이라고 했다는데, 만약 정당한 전쟁이란 게 있어 이 말을 들었다면 테러당한 심정이었으리라. 뜬금없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테러나 폭력은 어떤 경우,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말꼬리를 잡자면 선거 과정이 아닌 경우 테러나 폭력은 명분만 좋으면 용납될 수도 있다고 들린다. 혹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파병을 결정한 스스로의 처지를 고려해 한 말은 아닐까.


솔직히 나는 테러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자’다. 정의하기도 경계 나누기도 자신 없다. 하지만 적어도 모든 테러에는 원인과 이유가 있으며, 대개 폭력은 테러만이 아니라 그 전후에도 존재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리고 테러리스트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해준 것이 바로 <유나바머>란 책이다. 17세에 하버드에 입학해서 25세에 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곧 버클리대 종신교수가 되었으나 2년만에 교수를 그만둔 테어도르 존 카진스키. ‘유나바머’(Unabomber)는 그가 주로 항공사와 대학으로 폭탄을 우편배달 하는 수법을 썼기에 FBI가 붙여준 별명이다. 그는 체포되기까지 총 16차례 폭탄테러를 하였으며, 주 테러 대상은 과학자였다. 95년 그는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에 자신의 선언문을 게재해 줄 경우 테러를 멈추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두고 미국 사회는 테러범의 협박에 굴복할 것인가, 공공의 안전을 지킬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결국 해당 언론사, 미 법무장관, FBI 국장 등이 모여 게재를 결정했다. <유나바머>는 그렇게 해서 언론에 실렸던 선언문을 묶은 책이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란 선언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산업사회와 현대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일관한다. 깨알 같은 글씨에 재미도 없지만, 사상이 불온하거나 생각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읽는 내내 무릎을 치며 동의를 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2006년 6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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