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양철북」의 작가 권터 그라스(Gunter Wilhelm Grass). 그는 2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건국 이후 최대 간첩’ 송두율 교수 사건 당시 한국 재판부에 탄원서를 보내오기도 했을 만큼 행동하는 양심으로 존경받아왔다. 그런 그가 8월 12일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곧 출간될 자신의 회고록 「양파의 껍질을 벗길 때」의 집필 배경을 밝히며 “15세 때 히틀러 청소년단 시절 자발적으로 입대를 신청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고, “2년 뒤인 17세에 무장친위대로 발령받아 종전 때까지 복무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이를 두고 권터 그라스의 고향이기도 한 폴란드 그단스크시에서 그와 함께 명예시민증을 받은 바 있는 전 폴란드 대통령 바웬사는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반납하라며 강하게 쏘아붙였다. 비단 바웬사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고백을 두고 자서전을 팔아먹기 위한 쇼가 아니냐며 빈정거렸고 현지의 여론도 한동안 양분되었다. 뒤질세라 한국의 보수언론들도 그의 양심은 빈 깡통이라 비아냥대며 바다 건너에서 비난의 행렬에 동참했다. 하지만 얼마 뒤 권터 그라스가 그단스크시장에게 절절한 참회의 편지를 보냈고, 시장뿐만 아니라 바웬사도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은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지난 해 만들어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은 38조에 “완전한 진실을 고백한 가해자에 대한 화해조치” 규정을 두고 양심선언을 한 가해자에게 위원회가 특별사면과 복권을 건의할 수 있게 해놓았다. 물론 이 조항을 통해서도, 그동안의 지난했던 진상규명과 과거청산의 과정에서도 누구 하나 양심선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는 못했다. 오히려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처럼 조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질라치면 가해자들은 들개처럼 달려들어 온갖 협박과 회유를 일삼고 그 은폐의 시한을 연장하려 전력을 다할 뿐이다.

올해로 78세인 황혼의 권터 그라스는 “당시에는 못 느꼈지만 이후 전 생애를 거쳐 수치심에 짓눌렸으며 괴로웠다.”고 인터뷰 말미에서 심경을 토로했다. 그 쓸쓸함 뒤로 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성장하기를 거부하고 양철북을 쳐대던 오스카의 모습이 떠오르고 한 편으로는 한 늙은 작가의 양심의 무게에 비해 우리 사회의 성찰이 너무나도 가볍고 또 가난한 듯해서 못내 씁쓸하다.  


- 2006년 9월 씀. 제목은 윤동주의 시 '참회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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