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마돈나(2disc)
이해영 외 감독, 류덕환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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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는 ‘사라다’는 샐러드(Salad)의 일본식 발음으로 말뜻만 보자면 소금에 절이거나 날로 먹는 채소를 가리킨다.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한 친구는 <야채 크래커>를 먹을 때면 “‘야채’는 일본식 한자고 우리 표현은 ‘채소’가 맞는다며 열변을 토했다. 나는 이왕이면 ‘푸성귀’가 낫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채소과자>를 선뜻 집어들 아이들이 상상되지 않았다.
말은 곧 인격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유식한 척, 격 있어 보이는 말투는 쉽게 입에 오르내린다. 외래의 것이나 새것이 신선한 만큼 세련된 듯 보이고, 옛것은 ‘촌’스럽기 마련이어서 ‘신토불이’ 언어가 열세에 몰리는 일은 다반사다. 해서 푸성귀가 채소에게, 채소가 야채에게 그랬듯 요즘은 ‘샐러드’가 대세다.

하지만 동서양의 틈바구니에서 식민지 경험이 살짝 낀 우리에게 ‘사라다’는 참 독특한 존재다. 제아무리 왜색이라지만 사라다는 아직도 양배추와 과일, 거기에 견과류까지 곁들여 마요네즈로 마무리한 우리 요리이자 안주의 한 종목으로 술집 메뉴판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격도 좋고 계통이나 역사도 중요하지만 역시 ‘사라다’는 사라다라고 해야지, 호프집에 앉아 ‘샐러드’라고 하면 밥맛이 되기 십상이다.

한 판 뒤집기로 여자가 되려는 청소년/녀 오동구의 성장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소재나 배경은 일본 영화 <으라차차 스모부>와 엇비슷하고, 스토리 진행은 탄광노동자들의 파업 한 복판에서 런던에는 가본 적도 없는 광부의 아들이자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년의 가족사가 담긴 <빌리 엘리어트>를 생각나게 한다. 특히 성소수자인데다 학교에서는 학생으로, 집에서는 폭력적인 아버지의 아들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약자의 대표선수격인 오동구는 참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의 개인사를 따뜻하면서도 사회적 긴장감을 놓지 않고 그렸다는 점에서 감독의 의욕만큼은 한국판 <빌리 엘리어트>라 할 만하다. 다만 솜씨가 썩 좋지만은 않아 <으라차차 스모부>처럼 산뜻, 발랄하지도 <빌리 엘리어트>만큼의 뭉클, 감격적이지도 않은 어정쩡함이 흠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사라다’를 대하듯 이 영화의 어정쩡함을 좋아하기로 했다. 어쩌면 주인공이 석류를 좋아하는 미녀보다는 애니메이션계의 외모지상주의에 한 칼을 날렸던 <슈렉>의 피오나 공주 몸매를 닮아서일지도 모른다. “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살고 싶다.”는 우리의 호프(hope) 오동구는 버무려져 제각각 달콤한 사라다의 참 맛을 알고 있을까?  

- 2006년 10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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