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SHOW)를 하라!"
이제는 식상한 이동통신사의 이 카피는 처음엔 꽤나 도발적이었고 그래서 신선했다. 쇼는 구경거리나 오락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일상에서는 스포츠 경기에서의 헐리우드 액션과 마찬가지로 과장된 몸짓으로 사람들을 속이거나 현혹하는 의미로 더 많이 쓰였다.

장애인을 모욕하는 대통령의 눈물 쇼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4월19일. 방송사들은 저녁 뉴스에서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홀트 요양원을 찾아 장애인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여러분들을 위로하러 왔는데 우리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뿌리깊은 차별에 맞서며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온 장애인들이 순식간에 위로 받아야 할 불우이웃이 되어버렸다.

‘눈물 쇼'는 전임 대통령이 원조라며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원죄가 있다. 2002년 당시 서울시장 후보였던 그는 지하철역 리프트에서 추락사한 장애인의 빈소를 찾아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했다. 하지만 그가 당선된 뒤 장애인 관련 예산은 매년 감소했고 위 사건에 대해서 서울시는 계속 책임을 회피하다가 사법부의 판결이 나고서야 제대로 된 손해배상을 했다. 또한 고속버스터미널역, 이수역, 서울역, 동대문운동장역 등 지하철역에서의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는 끊이지 않았지만 신규 역사를 제외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6년 4월에는 40여 일 동안 노숙농성을 한 중증장애인들이 6시간 넘게 한강대교를 휠체어도 없이 기어가며 시위를 벌인 일도 있다. 그때 서울시는 7천억 원 규모의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과 2천억 원이 들어가는 시청사 증개축을 추진하고 있었고, 이명박 당시 시장이 즐겨 찾는 실내테니스장 건축에 무려 42억 원을 지원했음에도 예산부족을 이유로 3억원도 채 안되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활동보조서비스를 제도화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정부의 모습도 다를 바 없다. 대선 후보시절 장애인 예산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지만 예산은 실질적으로는 감소했고, 400만 장애인 중에 59만 명이 절대 빈곤층임에도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까지 삭감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으로 이 업무를 담당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반 토막이 났고 보건복지가족부 장애인권익증진과의 축소 방안은 곧 국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대통령의 눈물 쇼가 있은 다음날인 4월20일, 거리에 나선 장애인들은 위로가 아니라 생존권을 요구했다. 장애인은 리프트에서만 목숨을 잃는 것은 아니다. 2007년 충북 옥천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는 정신 장애인이 직원에 의해 목 졸라 죽임을 당했다. 어떤 지적장애인은 시설에 나가려다 맞아죽고 한 자폐아동은 정신병원에서 향정신성 의약품 과다복용으로 죽었다. 2006년 김포의 한 시설에서는 몇 년에 걸쳐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으며 같은 해 경남 함안군에서는 한 장애인이 자기 집에서 얼어죽었다.

장애인은 위로가 아니라 권리를 요구한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집회와 시위를 한 장애인 운동단체 활동가는 검찰로부터 480만 원의 벌금폭탄을 맞았다. 전액을 기부한다는 이명박 대통령 월급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이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1급이 한 달에 받는 35만 원의 열 배가 넘는 거액이다. 벌금을 내지 못해 15일 수감생활로 75만 원을 충당하고 나머지는 정식재판을 청구한 뒤 풀려난 그는 4월20일 동대문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다 또 다시 연행되었다. 대통령은 그 앞에서 눈물은커녕 눈이라도 깜박할 것인가.
쇼는 오락프로그램만으로도 족하다.  

 

- <미디어오늘> 미디어바로미터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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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04-21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을 흘림으로써 결국은 장애인을 타자화시킨거라고 봅니다. 나무처럼님의 의견에 동감해요.

그런데 저기 링크되어 있는건 뭔가요? 눌러봤는데 애매한게 뜨네요.

나무처럼 2009-04-22 17:50   좋아요 0 | URL
미디어오늘에 떠있는 글릉 복사해왔더니... 새로운 상업전략이 아닌가 싶네요. 타자화... 눈물 한 방울로 한 집단, 많은 사람들을 타자화 한다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 아닐까 싶어요. 이건 지금 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저도 경계해야 할 지점이라는 생각도 들고.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자
고 써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 김영승 <반성 16>

 



나는 열 여섯 번도 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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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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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은 상실의 아픔을 주지만 시간이 흐르면 부재의 허전함이 더 큰 것 같다. 오늘은 홍콩배우 장국영이 죽은 날이라고 한다. 그는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그리고 나는 20년전 어느 봄날, 거짓말처럼 죽은 또 한 명의 사내를 떠올린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 집>

기형도. 그는 종로의 한 극장에서 프랑스 시인 '시라노'가 나오는 영화를 보며 죽었다. 10대 후반이었던 나에게 그의 시는 참 난해하였고 나는 그의 시편에서 한참을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이 된 <입 속의 검은 잎>에 해설을 쓴 김현은 그를 젊어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시인이라 말한다. 누가 그를 따라 다시 그 길을 갈까봐 겁난다고도 했다. 그리고 당대의 평론가 김현도 바로 다음 해 운명을 달리했다. 김현이 죽은 날 나도 술을 꽤나 마셨던 기억이 난다.      

너 죽은 날 밤 
차 간신 몰고 집에 돌아와 
술 퍼마시고 쓰러져 잤다. 
아들의 방.  
아들이 밤중에 깨어보니 
내가 화장실에서처럼 
소변보고 있었다. 
태연히. 
그리곤 방을 나가 
화장실에 누웠다.  
태연히. 

- 황동규 <너 죽은 날 태연히-같이 술 마시던 시절 김현에게> 

상가집을 지키다보면 문상을 하는 어르신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어떤 품위가 느껴진다. 삶에서 오래 버텼고 그만큼 죽음과 오래 대면한 결과 얻게 되는 목숨의 고독과 같은 것이리라. 나는 아직 충분히 늙지 못해 죽음을 대면하는 일이 서툴다. 문상을 할 때마다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저 황망스럽다. 그래서 이렇게 남이 쓴 글줄로나 문상을 대신한다.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누런 해가 뜨고 흰 달이 뜨더냐." (원효의 게송)
 
- 김훈의 기형도 추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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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마다가스카>라고 하는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뉴욕 동물원'에서 탈출한 동물들이 '마다가스카'라는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인 사자와 얼룩말, 기린 등이 친구로 나옵니다. 동물원에서는 사자에게 끼니때마다 먹음직한 고깃덩어리가 제공되니 별 문제가 없었지만 동물원을 탈출하고 나니 배고픈 사자에게 친구들은 자꾸 먹잇감으로 보이게 됩니다. 우정에 위기가 닥친 거죠. 영화의 해결책은 물고기입니다. 사자의 친구들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사자의 굶주림을 해결해주고 이들의 관계는 다시 좋아집니다. 
 

그런데 물고기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봉변이지요. 당연히 영화 속에서 물고기들은 한 마디의 대사도 없습니다. 말이 없는 존재, 물고기는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니 관객들은 슬퍼할 이유도, 불편해야할 까닭도 없습니다. 아마도 물고기가 "사자님, 우리도 당신과 친구하고 싶어요. 제발 잡아먹지 말아요." 한다면 이건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블랙코미디나 컬트무비가 되었겠지요.

물론 세상은 컬트무비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한국사회는 말하는 물고기들에게 "친구, 이게 다 너희를 위한 일이라니까" 하거나 "물고기는 원래 말을 못하는데 너는 비정상이군", 또는 "상영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만 닥쳐!" 하며 잡아먹어버리니 웬만한 컬트무비보다 더 엽기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람들
 

저는 잡지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의 대부분은 이번 호에는 어떤 이야기를 실을 것인지 의논해서 마땅한 사람에게 원고를 부탁하거나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인권에 대한 잡지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른바 사회적 약자, 소수자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대게 언론사 기자들에 의해 편집되어 인용되거나 학자들에 의해 해석되거나 관료들에 의해 통계수치로 기록되어 왔습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밝혀진 촛불만 해도 이러쿵저러쿵 하는 책들은 서점에 널려있지만 처음 그 촛불을 들었던, 2.0세대니 뭐니 하며 극찬을 받았던 청소년들 스스로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아무리 심각한 지경에 처해도 텔레비전에 이주노동자가 직접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본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정치권은 너나할 것 없이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고 떠들지만 정작 그들은 국회 근처에 가지도 못 합니다. 
 

지난해 국방부에서는 불온서적 리스트를 발표해 세간에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잡지사는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같은 성소수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물론 우리 잡지사가 낸 책입니다)이 왜 명단에서 빠졌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아마도 국방부나 검열당국에게 성소수자 문제는 불온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문제일 겁니다. 
 

그러하기에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것, 자기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쩌면 존재의 문제이자 관계를 재구성하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국방부가 찍는 영화에 출연해 "우리도 대사 한 마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화에 국방부를 출현시키는 것이 되겠죠. 대사를 줄지 말지는 좀 생각해봐야겠지만 말이죠. 
 

내가 만난 성소수자

솔직히 말하자면 낯가림이 심한 저에게 성소수자와의 만남은 매우 긴장된 일이었습니다. 어깨너머로 주워들었지만 해독할 수 없었던 부치, 팸이며 FtoM, MtoF 등등의 용어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낯선 문화 때문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러다 얼떨결에 동행하게 된 어떤 단체의 워크샵에서는 제가 성적 소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1박2일 동안의 짧은 경험만으로 소수자의 처지, 동성애자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면 새빨간 거짓말이겠죠. 그러나 이 경험은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데 귀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AIDS/HIV 감염인 인권캠페인을 함께 하면서, 군대 내 동성애자 문제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온몸으로 한국사회의 모순과 맞서고 있는 윤가브리엘과 만나고, 호기롭게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국회의원 출사표를 던졌던 최현숙 씨를 인터뷰하면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상상력이란 이런 게 아닐까 느끼기도 하고 되려 제가 에너지를 충전받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일곱이 아니라 열일곱 가지 색깔은 족히 될 것 같은 성소수자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며칠 전에 직접 본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일본 영화인데 사고로 머리를 다쳐 80분밖에 기억을 못하는 수학자가 나옵니다.  

이 수학자가 사랑하는 수식이라는 것이 '오일러 공식'이라고 아무런 관련성도, 어떠한 규칙도, 끝도 없는 초월수 e와 π에 실체가 없는 가상의 수인 허수 i를 만나면 -1이 된다는 공식입니다(정리를 하자면, eπi = -1). 고립된 생활을 하던 수학자는 한 미혼모와 그녀의 아이를 만나게 되면서, 이들과의 진정한 인간관계를 통해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이 공식을 'eπi +1=0'으로 바꾸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는 "모순투성이의 존재에 하나만 더해지면 0이 된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0은 존재하지 않음(無)을 나타내주는 존재이며 규칙에서 벗어난 수이자 무한대 개념이 바로 여기서 출발했다고 하네요. 문득 성소수자의 존재가 0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 '랑'에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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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
강곤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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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파리를 점령한 직후 한 게슈타포 장교가 피카소에게 “당신이 <게르니카>를 그렸나?”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피카소의 답은 “아니, 당신들이 그렸지”였다.   

그렇다면 이 책의 지은이 또한 이 정부를 비롯한 개발지상주의자들이 분명하다. 아파트 공화국, 개발지상주의자들과 건설자본과 재개발 이익의 단물에 흠뻑 취한 한국사회에서 개발 잔혹사는 멈추지 않는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집을 빼앗긴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이웃에게까지 숱한 싸움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1월 20일 용산 참사가 있었다.  

용산구청은 이들을 가리켜 재개발 지역에서 보상금이나 몇 푼 더 바라고 떼를 쓰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경찰은 전문 시위꾼들이며 외부 세력이라고 했다. 정부 여당은 도심 한 복판에서 건물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진 이들은 분명 테러리스트가 틀림없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검찰은 이들이 스스로 신나를 붓고 화염병을 던져 죽음을 선택했다고 했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 죽은 이들의 유족은 벌써 석 달이 넘게 진상규명과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체포되고 구속되고 수배를 당하면서도 이들의 죽음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  

전국철거민연합. 과연 이들은 누구인가.  

왜 이들은 부서진 건물 옥상에 올라 망루를 짓고, 거기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또 왜 경찰은 이들의 화염병이 실제로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1차 진압에서 불이 났음에도 소방차 대신 경찰특공대를 올려보내 다섯 명의 철거민과 한 명의 경찰특공대를 죽게 했을까. 왜 불에 타 죽었다는 시신에서 지갑과 신분증이 고스란히 남았는데 서둘러 유족의 동의도 받지 않고 부검을 실시했고 검찰은 아무런 과학적 단서도 찾지 못한 채로 이들이 스스로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고 발표를 했을까.  

이 책은 지난 1월 20일 용산 참사 당시 망루에 있었던 사람들과 그 밖에서 가족의 생사를 몰라 애타게 울부짖던 유족들, 그리고 전국철거민연합 회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재개발 통지서가 날아들지 전까지 화훼농장의 주인이었고 호프집 사장님이었으며 민물장어집을 하며 아이를 키우던 가장이었다. 그러던 이들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삼성이나 두산, SH공사 등 개발업체와 조합, 그리고 용역깡패에게 몰리면서 철거민이 되어가고 결국 화염병을 갖고 망루에 오를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이 책에서 어떤 이는 "집 평수를 넓히려는 사람들의 욕망 속에 폭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위태롭고 불안한 이 한국사회에서, 가진 자만을 위한 정책들이 서슴치 않고 추진되는 이 정부 아래서 이 욕망에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이렇게 무참하게 짓발아도 되는 것일까. 이렇게 이들의 죽음을 모욕해도 되는 것일까.  

서부영화에서 인디언은 사람 머릿가죽을 벗기는 야만인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인디언은 사람 머릿가죽을 벗겼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준 것은 다름아닌 백인이었다. 하지만 서부영화는 백인이 백인을 위해 만든 영화였기에 왜 인디언이 사람 머릿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는지,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정부나 가진 자들, 지배자들은 용사 참사를 테러로, 범죄로 기록하고 처벌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수많은 학살들이 단죄되었듯 이 참사 또한 저들의 기록에 그저 묻혀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공권력이 동원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지은 망루를 허물 수는 있을지언정 진실과 정의를 바라는 사람들의 가슴 밑바닥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로 쌓아올린 이 망루는 결코 허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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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2009-04-0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누가 벌써 이 책의 서평을 썼을까 궁금해했는데..ㅋㅋ

극단드림플레이 2011-04-14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극단드림플레이입니다.
용산참사를 소재로한 연극<여기,사람이 있다> 공연을 준비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2011.4.28-5.1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_ 2011서울연극제
문의_02.745.4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