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
강곤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나치가 파리를 점령한 직후 한 게슈타포 장교가 피카소에게 “당신이 <게르니카>를 그렸나?”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피카소의 답은 “아니, 당신들이 그렸지”였다.   

그렇다면 이 책의 지은이 또한 이 정부를 비롯한 개발지상주의자들이 분명하다. 아파트 공화국, 개발지상주의자들과 건설자본과 재개발 이익의 단물에 흠뻑 취한 한국사회에서 개발 잔혹사는 멈추지 않는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집을 빼앗긴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이웃에게까지 숱한 싸움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1월 20일 용산 참사가 있었다.  

용산구청은 이들을 가리켜 재개발 지역에서 보상금이나 몇 푼 더 바라고 떼를 쓰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경찰은 전문 시위꾼들이며 외부 세력이라고 했다. 정부 여당은 도심 한 복판에서 건물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진 이들은 분명 테러리스트가 틀림없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검찰은 이들이 스스로 신나를 붓고 화염병을 던져 죽음을 선택했다고 했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 죽은 이들의 유족은 벌써 석 달이 넘게 진상규명과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체포되고 구속되고 수배를 당하면서도 이들의 죽음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  

전국철거민연합. 과연 이들은 누구인가.  

왜 이들은 부서진 건물 옥상에 올라 망루를 짓고, 거기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또 왜 경찰은 이들의 화염병이 실제로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1차 진압에서 불이 났음에도 소방차 대신 경찰특공대를 올려보내 다섯 명의 철거민과 한 명의 경찰특공대를 죽게 했을까. 왜 불에 타 죽었다는 시신에서 지갑과 신분증이 고스란히 남았는데 서둘러 유족의 동의도 받지 않고 부검을 실시했고 검찰은 아무런 과학적 단서도 찾지 못한 채로 이들이 스스로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고 발표를 했을까.  

이 책은 지난 1월 20일 용산 참사 당시 망루에 있었던 사람들과 그 밖에서 가족의 생사를 몰라 애타게 울부짖던 유족들, 그리고 전국철거민연합 회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재개발 통지서가 날아들지 전까지 화훼농장의 주인이었고 호프집 사장님이었으며 민물장어집을 하며 아이를 키우던 가장이었다. 그러던 이들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삼성이나 두산, SH공사 등 개발업체와 조합, 그리고 용역깡패에게 몰리면서 철거민이 되어가고 결국 화염병을 갖고 망루에 오를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이 책에서 어떤 이는 "집 평수를 넓히려는 사람들의 욕망 속에 폭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위태롭고 불안한 이 한국사회에서, 가진 자만을 위한 정책들이 서슴치 않고 추진되는 이 정부 아래서 이 욕망에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이렇게 무참하게 짓발아도 되는 것일까. 이렇게 이들의 죽음을 모욕해도 되는 것일까.  

서부영화에서 인디언은 사람 머릿가죽을 벗기는 야만인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인디언은 사람 머릿가죽을 벗겼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준 것은 다름아닌 백인이었다. 하지만 서부영화는 백인이 백인을 위해 만든 영화였기에 왜 인디언이 사람 머릿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는지,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정부나 가진 자들, 지배자들은 용사 참사를 테러로, 범죄로 기록하고 처벌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수많은 학살들이 단죄되었듯 이 참사 또한 저들의 기록에 그저 묻혀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공권력이 동원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지은 망루를 허물 수는 있을지언정 진실과 정의를 바라는 사람들의 가슴 밑바닥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로 쌓아올린 이 망루는 결코 허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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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2009-04-0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누가 벌써 이 책의 서평을 썼을까 궁금해했는데..ㅋㅋ

극단드림플레이 2011-04-14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극단드림플레이입니다.
용산참사를 소재로한 연극<여기,사람이 있다> 공연을 준비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2011.4.28-5.1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_ 2011서울연극제
문의_02.745.4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