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국회 법사위 있을 때도, 성전환 하는 분들, 소수자들의 권리를 제가 옹호해온 사람인데, 국민 다수가 그렇게 성전환 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난주 MBC <100분 토론> '보수, 진보,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이야기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실용이라며 해외순방길에 동행한 소설가 황석영의 행보를 어떻게 보느냐는 방청객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순간 토론장에서는 웃음이 터졌고 인터넷 게시판에는 "역시 토론의 달인" "기발한 비유"라는 찬사가 잇따랐다. 그런데 TV를 보고 있던 성전환자들, 성소수자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소수자에 대한 이른바 '진보'의 인식

며칠 뒤 한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는 이 발언에 대해 노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는 '왜 국민 다수가 성전환 하는 것은 곤란한가?' 묻고 있다. 국민 다수가 성전환을 하면 곤란하니 성전환자 성별변경 특별법은 안 된다는 것은 노 대표의 맞은편에 앉았던 보수우파들의 18번이었다. 이는 나치의 유대인혐오증, 미국의 매카시즘과 같이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을 조장하여 다수의 이름으로 편견과 차별, 나아가 폭력까지도 합리화하는 동성애혐오증(호모포비아)과 그리 멀지 않은 주장이다. 그런데 진보를 대변하러 나온, 게다가 법안을 직접 국회에 냈던 이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니 당혹스러웠다.

사형제를 폐지했다고 범죄자의 소굴이 된 나라도 없고, 대체복무제를 허용했다고 다수의 젊은이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사회도 없듯이 법률 하나 때문에 성전환자가 속출할리 만무하다. 그러니 성전환자의 피해와 고통을 하루빨리 덜어주자. 어쩌면 딱 여기까지였는지 모른다. 문제는 만의 하나 그래서는 곤란하다는 인식 속에 정상과 비정상, 옳고 그름을 나누는 가치판단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가치관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 견해가 공영방송 시사프로에 공공연히 등장하고 별 일 없이 전파될 때 그것이 마치 상식인양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소수자 문제는 더욱 예민하게 다뤄져야만 한다.

더구나 이 발언은 성전환자, 성소수자의 인권을 주제로 한 자리도 아닌, 한 유명작가의 정치적 행동이 변절인가 아닌가를 답하는 과정에서 툭 튀어나왔다. 누구는 우스갯소리라며 웃어넘겼고 누구는 제대로 된 풍자라며 통쾌해 했고, 다들 즐거웠을 것이다. 난데없이 유명작가를 희화화하는데 동원된 성전환자, 성소수자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한국사회 성소수자들의 현주소

얼마 전 라디오에서 한 토론자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는 속담을 꺼내자 사회자가 중간에 개입하여 "이런 비유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하는 것을 들었다. 이것이 지난해부터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소수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이 진일보했음을 보여주는 일화가 될 법하다.

반면 2007년 말에 차별금지법 논란이 있었다.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안을 공개하자 일부 기독교 단체들이 동성애자는 죄인이라며 ‘동성애 확산을 조장하는 차별금지조항을 삭제하라’는 성명을 내는 등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성적 지향'이 차별금지 사유에서 삭제되었다.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것들은 계속 차별하겠다, 차별해야만 한다고 선언을 한 꼴이다. 그리고 지난주 <100분 토론>까지 소수자 인권에서 일보가 아닌 이보, 삼보, 사보 후퇴의 일화들은 너무나 많다.

인권은 좌우이념의 문제,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란 말을 종종 듣는다. 한편 고개를 끄덕이지만 한편으로는 가로젓는다. 동의되는 측면에서 <100분 토론> 사회자 손석희의 책임을 묻고 싶다. 반면 소수자에 대한 입장과 태도가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측면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사과가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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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에 며칠 전에 보낸 글입니다. 오늘아침 기사를 보니, 노회찬 대표가 트랜스젠더 인권활동단체인 '지렁이' 활동가들을 만나 부적절한 비유를 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공개적 입장표명도 준비 중인 모양이군요.  
부적절한 비유를 했지만, 적절한 태도를 취한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런데 관련기사 제목이 "노회찬, 성전환자 발언 '구설수'"(레디앙)네요. 이 사건을 그저 말실수로 보는 언론의 시각이 담긴 것 같아 또 한편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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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대전에서 열린 '5.18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100여 명이 넘는 부상자와 500여 명의 연행자가 생겼다고 한다. 비단 이날 집회만이 아니라 5월 1일 노동절, 2일 촛불1주년 집회 등 최근 들어 거의 모든 집회와 시위가 불법화 되고 연행자가 속출하고 있다. (왜 불법집회를 하냐고 힐난하는 분이라면 제발 요 몇 달 사이 한국에서 합법으로 집회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경찰이 집회 개최를 막자 할 수 없이 열었던 기자회견까지 경찰은 강제연행을 남발하고 있다. MB정부의 '법과 원칙'이 '공포정치'를 향하고 있다. 

왜 조폭들은 패거리를 해서 다닐까?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느 강연에선가 남성심리전문가라 칭해지는 정혜신 박사가 내린 진단은 약간 다르다. 조폭들 스스로가 무서운 게 많아서란다. 언제 상대 파가 습격을 해올지도 모르고, 어떤 똘만이가 칼침을 놓을지도 모르고, 그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들을 깡패, 건달이라고 업신여기는 것도 무섭기 때문에 몰려다니며 공포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폭은 정신적으로 대단히 허약한 사람들이란 것이 정 박사의 이론인 셈인데, 평소 조폭만이 아니라 우람한 체격의 사람만 보면 주눅이 들었던 나는 왠지 "아Q의 정신승리법' 마냥,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정부와 경찰, 공권력은 제2의 촛불을 꽤나 무서워하고 있는 듯하다. 박정희, 전두환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공포정치를 폈던 세력은 정통성이 취약했다. 최대의 표차로 당선되었다는 이 대통령도 100만명이 참여했던 촛불에 화들짝 놀라 사과까지 했으니 스스로 정통성에 물음표를 던졌을만 하다. 게다가 "소통이 부족했다"고 사과까지 한 마당에 돌아서서 소통의 문을 닫아버렸으니 기댈 것은 공권력, 경찰력뿐이지 않을까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정부는 조폭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에서 정부의 권력은 막강하고 대통령의 권세와 능력은 어마어마하다. 이러한 권력과 권능을 행사하는 집단이 조폭과 같은 사고를 가지고 조폭의 행태를 보인다면 전국민이 용역깡패 앞에 선 철거민 신세가 되고 악덕 사채업자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무자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래서인가 이 정권 들어서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많은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듯, 많은 죽음이 정권의 '미필적고의'에 의한 죽음이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칠 것인가.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살 수 있을까. 나는 집회에 나가기가 두렵다. 경찰의 방패에 찍힐까봐 두렵고, 곤봉에 맞을까봐 두렵다. 자칫 연행이라도 되면 벌금 2,30만원을 내야 하니 두렵고 생업에 지장이 생기니 두렵다. 무엇보다 이러한 두려움에 내가 집회시위를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피할까봐 두렵다. 공포는 그 자체로 트라우마를 남기지만 그 공포와 폭력 앞에 무력해지는 자괴감 또한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 공포가 인간에 대한 범죄이고 공포정치가 반인도적 범죄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공포에 못 이겨 공포를 조장하는 저들에 맞서 공포를 이겨내는 힘을 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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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필요한건 2009-05-18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동자와시민들의연대죠..모두힘을합친다면탄압을이길수있게죠???저도나약하고힘없는촛불이지만조금이라도힘을보태기위해참여합니다

나무처럼 2009-05-18 10:2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힘을 뺏앗긴 자들의 연대'라는 정답이 있기는 한데 선뜻 희망이 안 보이는 요즘이에요. 그래도 체념하지 말고, 냉소로 빠지지 않고 살아내야겠죠. 조폭정권을 견뎌내려면^^

ㅋㅋ 2009-05-18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졸라빨갱이 씹새끼야!
시작도 안햇는데 오줌을 지리면 어떡하니?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너희 졸라깽깽이 새끼 몇마리가 뒈지던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너도 씨발노마 아가리만 놀리지 말고 나와서 깝치다 뒈져라.
맨날 주둥아리로만 찍찍! ㅋㅋㅋㅋㅋ

나무처럼 2009-05-1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서는 빠졌는데 이렇게 악플을 다는 대개의 사람들도 두려움이 많고 비겁한 사람들이죠. 온라인에서, 익명의 그늘 뒤에 서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조폭보다는 양아치에 가까운... 이런 욕이나 폭력성을 만날 때는 아주 가끔 공포정치가 어느 정도 필요한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귀여워라 하지요^^

뷰리풀말미잘 2009-05-1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처럼님 님의 긁을 읽고 마음이 훈훈하고 또 부끄럽습니다. 공포라는 것에 저는 너무 쉽게 젖어들었어요. 저 위의 ㅋㅋ님은 나무처럼님의 메시지에 뭔가 강렬한 안티테제가 되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게 되기는 너무 무력해 보이는군요.

나무처럼 2009-05-18 21:17   좋아요 0 | URL
공감하셨다니 감사^^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제가 너무 엄살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머큐리 2009-05-2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처럼님... 공감하구요...그래도 저 조폭정권도 언젠가 칼맞을 거라 생각하면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ㅎㅎ

나무처럼 2009-05-20 13:46   좋아요 0 | URL
칼침이라니! 문득 조폭영화에서 착한 주인공들이 칼맞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조폭정권에 칼침 놓기.. 이것도 즐거운 상상이 될 것 같군요. 저도 눈 부릅뜨고 @.@
 

나도 잊고 있었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들의 싸움.  
언젠가 파업하는 노조 간부들에게 법원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간부는 자기도 이번에 도배 기술을 제대로 배웠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권리를 행사했다고 하여
처벌을 하는 것 자체도 큰 문제지만
백번 양보하여, 실정법을 어겼기에 처벌한다고 해도
이들에게 사회봉사 명령을 내리는 이유는 뭘까?
파업하는 노동자는 사회봉사 정신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 의식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횡령과 부정부패를 일삼거나 아들에 대한 사적 복수에 권력을 휘두른 재벌 총수에게
사회봉사 명령이 내려졌을 때 나는 위와 같은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업하는 노동자가 왜 봉사의식,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할까?
기업이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사회도, 언론도, 법원도 
그들을 진정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왜 노동자들만 사회 공동체 의식으로 투철히 무장되어야 하나?  

노동자의 진정한 사회에 대한 봉사는 노동 그 자체이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식과 역할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데서부터 출발하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사회봉사명령은 그저 모욕주기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를 모욕할 권리는 없다. 
저 두꺼운 법전 어는 한 귀퉁이에 적혀있든 없든 간에 그것은
인간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이제 기업도 법원을 따라 항복문서에 '사회봉사'를 적어넣는다. 
다른 데도 아니고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병원에서 말이다.
거기에 맞서지 못하고 투항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들의 지난한 싸움을 잊고 지냈던 내가 정말 밉다.  

관련기사 참세상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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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함께 서지 못한 부끄러움


[칼럼]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합의에 부쳐



오도엽(작가) odol@jinbo.net / 2009년05월13일 11시14분

과연 정규직이 있을까. 어떤 일터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어야 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규직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일까?


노동을 생각해봅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일까. 노동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걸까. 자신이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 노동일까. 노동이 희망일까?


우리가 꿈꾸는 노동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바라는 일터는 무엇일까요?


답 없는 물음표를 계속 던지고 있는데,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지난 해 여름에 파견직으로 2년을 근무했기에, 비정규직법의 칼날 때문에 쫓겨나야했던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낸 편지입니다. ‘투쟁을 마무리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며 기쁨보다는 서글픔이 들었습니다. 무기계약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박수를 보내기에 앞서 손수건으로 이들의 눈물과 땀을 닦아주고 싶습니다.


병원과 합의안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조합원 대표는 투쟁의 책임을 지고 1개월 사회봉사, 2개월 자숙기간을 거쳐 3개월 후인 8월 1일 복직한다.’


아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비정규직법을 악용한 사용자의 횡포에 맞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 사람이 범법자 입니까? 사회봉사와 자숙의 기간을 거쳐야 한다니……,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정규직화 시키는 게 비정규직법의 취지가 아니었나요? 특히 강남성모병원의 비정규직은 병원이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으로 이미 2년을 근무하고, 다시 파견직으로 2년을 근무한, 당연히 정규직이 되어야 마땅한 처지였습니다. 사용자가 비정규직법을 악용하여 파견업체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사회봉사를 하고 자숙을 해야 할 사람은 ‘조합원 대표’가 아닌 ‘사용자 대표’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요즘처럼 고용되어 일하는 것이 행복(?)의 최고 척도가 된 세상에서는 이런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 벌어져도,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며 ‘병원장님’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쁜 소식만을 전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가슴에 묻어둘 수 없어 한마디만 더하겠습니다. 이번 합의서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민형사상 고소고발 및 가압류는 취하하지만 가압류 금액 육천만 원 중 일부인 삼천만 원은 1년 뒤부터 2년에 걸쳐 상환한다.’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분노보다는 헛웃음만 나옵니다. 성스러운 가톨릭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병원에서 빚쟁이 대하듯 하는 이런 합의서를 어찌 기록으로 남길 생각을 하셨는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여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어떤 기업도 하지 않았던 선례를 만든 성모병원의 위대함 앞에 숙연해집니다.


일자리를 되찾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은 보건의료노조와 병원 측이 맺은 합의안을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이후 또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에 선례로 자리 잡혀 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또다시 이러한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힘겨운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노동자 단결의 정신을 지키며 투쟁하고 있고 투쟁에 나설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영향이 미치게 될 최종안을 수용하고 말았습니다. …… 그것을 즉각 파기하고 우리의 투쟁을 일구어 갈 수 있는 힘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 투쟁을 선택해야 하는 길과 굴욕적인 안을 받는 두 가지의 길만이 놓였습니다. 우리는 피를 말리는 조합원 토론 속에서 현재 투쟁할 수 없는 조건에서 후자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


길을 가면 갈림길을 끊임없이 만나야 합니다. 갈림길 앞에서는 늘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오른쪽 길이 지름길인지 알지만 장애물을 만나면 왼쪽 길로 가야할 때도 있습니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를 그 동안 잊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피를 말리는 선택의 순간 생수 한 통 사들고 가지 못해 미안합니다. 취재만 달랑 하고 제 갈 길만 갔던 내가 진정 글을 쓰는 사람이 맞는 건지,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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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와 관련된 책들을 한 번 모아보자!  
- 일단 모아보고 분류는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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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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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진, 한가운데 선 사람들
첸강 지음, 장용화.장성철 옮김 / 시니북스 / 2005년 11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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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병리학-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폴 파머 지음, 김주연.리병도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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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츠츠미 미카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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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을 내어달라 눈물바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마”  
- [86호] 2009년 05월 06일 (수) 11:11:00 이오성 기자

르포 문학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주류 언론이 외면한 낮은 곳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독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간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는 벌써 1만 부 가까이 팔려나갔고, 용산 참사를 다룬 <여기 사람이 있다>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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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정에 모인 ‘삶이 보이는 창 르포 문학팀’. 왼쪽부터 박경내·김형석·김순천·김미정 작가.


여기 ‘이상한 기자들’이 있다. 그들은 명함을 내밀지도 않고, 취재원더러 뭔가 이야기해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현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그 현장이 말을 걸어오면 묵묵히 듣고, 입을 닫으면 이내 돌아선다. 그들의 취재 노트에는 산뜻하고 자극적인 취재원의 멘트 대신 애꿎은 ‘눈깔사탕’ 자국만 가득하다. 광장시장 어느 노점상 할머니를 인터뷰하러 갔다가 말문을 열지 못하고 날마다 눈깔사탕만 여러 개 사서 모았다. 평범한 기자라면 데스크로부터 당장 불호령이 떨어질 법한 일이다. 

그들의 진짜 이름은 ‘르포 작가’다.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 이랜드 비정규 노동자의 농성장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 일, 그곳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자’라는 점에서 기자와 닮았다. 하지만 그들은 보통 기자와 확실히 다르다. ‘마감’ 압박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 육하원칙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 등이 그렇다. 무엇보다 다른 건 다루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시선과 깊이다. 가령 용산 참사 현장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는 울림이 있다.

“애가 네 살, 아홉 살이거든요. 애가 투쟁하는 걸 알기 때문에 용역들하고 집 앞에서 싸울 때 밖에다가 ‘석 꺼져, 투쟁’ 이렇게 적어놨더라고요. 글자를 잘못 적으니까. 그거 가지고 용역들이 ‘아빠가 이러니까 애가 저러지,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이러기에 용역들과 주먹다짐도 했어요. 가슴이 아프죠. 단지 아빠가 잘못하고 있지 않다는 거밖에 알려줄 게 없어요. 아빠가 잘못된 걸 요구하는 게 아니라 아빠가 이 나라에서 가져야 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 이 투쟁을 한다고….”(용산 참사 때 망루에서 살아남은 김창수씨)

“(나더러) 일명 위원장 마누라라고 지나가면 대놓고 성적 농담하고, 그걸 몇 개월을 당했는데 저라고 가만히 있겠냐고요. 저도 처음부터 이런 사람 아니었어요. 착한 사람이었어요. 그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지금은 악밖에 안 남았어요. 이 나라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예요.”(사망한 이상림씨 며느리 정영신씨)

 
아이에게 철거민의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아버지, 그리고 ‘우리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항변하는 것 외에는 달리 자기를 드러낼 길 없는 사회적 약자의 막막함이 담긴 말이다. 주류 언론은 물론이고, 용산 참사를 상세히 보도한 언론의 기사를 통해서도 이런 막막함은 접하기 어려웠다. 순간의 감수성이나 연민으로 끌어낼 수 있는 성질의 ‘멘트’가 아닌 탓이다. 사건이 터진 날부터 언론이 등 돌린 지금까지도 이들 작가는 용산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철거민의 속내를 들여다보려 작가들은 부지런히 그들의 가슴을 보듬어주고, 발품을 팔았다. 피해자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이 작가들은 내내 눈물바람이었다. 그 기록이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책이다.

‘중립’은 가해자 시선일 뿐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철저하게 ‘편파적’이다. 작가가 짐짓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려 들지 않고, 그들의 주장을 가감없이 1인칭 구술로 담았다. 정부와 일부 언론에 의해 ‘생떼 쓰는 철거민’으로 표현된 이들 세입자가 실상 우리네 이웃과 별다를 것 없는 사람임을, 이 책은 그들의 입을 빌려 담담히 전한다.

하지만 기자의 강박증일까, 자칫 철거민의 주장만을 전한다는 것이 르포로서 객관적 시선을 잃은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러나 글을 쓴 르포 작가 김미정씨는 “빼앗긴 자,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룰 때 중립의 시선을 요구하는 건, 결국 가해자의 시선을 가지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다”라고 단언한다. 김순천씨 역시 “실제 철거민을 만나보니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놀랐다. 교통사고를 당하듯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모두 철거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이들과 내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냉소적 시선만 유지한다”라고 지적한다. ‘중립’을 저버리고 피해자의 시선을 견지한 결과 이런 일화도 만들어냈다. 구속 수감된 김태연 용산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상황실장이 지난 4월9일 범대위에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제가 있는 방에 철거 용역업체 직원이 한 명 있습니다. 서른이 안 된 젊은 친구인데 <여기 사람이 있다>를 열심히 읽더군요. 읽고 나서 ‘여기 나오는 사람들 아느냐’고 묻더군요. 그렇다고 했지요. 무얼 느꼈는지 묻지는 않았습니다. … 그 친구 오늘 낮 운동 시간에 같이 걸으면서 그러더군요. ‘이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참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세상입니다.”

김순천 작가의 ‘서울 다방’ 이야기


<여기 사람이 있다>를 엮은 이들은 르포 작가 연정·송경동 시인 등 15명에 이른다. 조혜원씨처럼 평범한 직장인도 있고, ‘88만원 세대’ 대학생도 있다. 4월27일, 서울대 교정에서 이 책 집필에 참여한 르포 작가 몇 명을 만났다. 르포 전문 작가 김순천씨(45), 건축사로 일하는 김미정씨(42), 프리랜서 사진가 김형석씨(41), 비정규 노동자 박경내씨(29)는 저마다 다양한 직업과 삶의 이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르포라는 글쓰기 형식을 통해 꾸준히 세상과 소통해온 ‘삶이 보이는 창 르포 문학팀’(삶창 르포팀) 멤버이다. 삶창 르포팀은 2006년 비정규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부서진 미래>를 펴낸 이래 사회 약자의 목소리를 담는 데 몰두해왔다. 김순천씨 등은 지난해 여름 이랜드 비정규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르포집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들이 르포 문학에 가지는 애정과 자부심은 사뭇 대단하다. 하지만 르포 작가라는 말조차 생소한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기자를 뛰어넘는 취재력을 발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김형석씨는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취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냥 계속 일 없이 찾아가 만나기만 한다. 20~30번씩 찾아간 적도 있다. 그러다보면 ‘아이고, 왜 이렇게 찾아오느냐’며 손사래를 치던 사람이 어느 순간 말문을 연다. 그때의 희열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

김순천씨는 몇 해 전 서울 황학동 삼일아파트에서 만난 다방 여사장을 잊을 수 없다. 아파트 철거를 앞두고 그곳에서 22년 동안 다방을 운영한 여사장이 화제가 됐고, 여러 매체에서 그녀와 인터뷰하기 위해 줄을 섰다. 하지만 여사장은 자기 노출을 극도로 꺼렸다.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물을 끼얹을 정도였다. 일반 기자와 달리 날마다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주는 김씨의 정성에 탄복한 여사장은 결국 어느 날 인터뷰를 허락했다. 뛸 듯이 기뻐하던 김씨에게 여사장이 보여준 것은 자기만의 ‘비밀 쪽방’이었다. 여사장은 다방 안에 한 사람 겨우 누울 만한 크기의 쪽방을 만들어놓고 입구를 거울로 가려놓았다. 지난 22
년 동안 이 여사장은 밤마다 감옥 같은 쪽방에서 잠을 청한 것이다. 김씨는 “그녀는 생애 처음으로 외부인에게 자기 세계를 열어 보였다. 르포 작가로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라며 감회에 젖었다.

 
지난 4월3일 용산 참사 현장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 출판기념회(위)가 열렸다.
이들은 우리 시대에 르포 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주류 언론의 실패에서 찾는다. 언론사 간 경쟁이나 시간의 제약, 취재기자의 인식상의 한계로 대중매체가 전달하는 정보와 이미지는 현실의 본모습에 깊숙이 다가가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김순천씨는 “일반 대중은 대중매체가 가상으로 재현한 것을 또 가상으로 체험한다. 이 ‘피상적인 인식’이 가장 위험하다. 그것은 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없게 하며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힘을 빼앗아간다”라고 지적한다. 이런 대중매체의 실패를 극복하려는 자리에 르포 문학이 새롭게 재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르포 문학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김순천씨는 “우리에게 지면을 달라”고 요구한다. 무슨 문학상이나, 상금 대신 글을 실을 수 있는 지면과 취재 여건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르포를 비싸게 삽니다’라는 잡지사의 광고 문구를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일본은 없다>를 쓴 유재순씨를 만났더니 ‘내가 르포 작가로 성공한 것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더라. 반면 우리나라는 문예진흥원은 물론, 한국작가회의에서조차 르포 문학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실정이다.”

집필 수익금 모두 ‘인터뷰이’에게 전달


여전히 한국에서 르포 문학은 찬밥이다. 지난해 경부운하 반대 성명을 발표한 ‘리얼리스트 100’ 소속 작가들,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를 쓴 박영희, <발바닥, 내 발바닥>의 김곰치, <아부 알리, 죽지 마>의 오수연씨 등이 르포 문학의 맥을 잇고 있지만, 르포 작가가 10만명에 이르는 일본이나 르포 문학이 시와 소설 이상으로 대접받는 중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주류 언론이 외면한 낮은 곳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독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해 출간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는 벌써 1만 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책을 펴낸 박상훈 후마니타스 출판사 대표는 “노동 관련 책이 이렇게 팔린 건 이례적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실제 삶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낸 작가들의 공이 컸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독자 또한 문체나 스타일 대신 현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낸 작품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몇몇 소수 작가만 고군분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를 집필한 르포 작가들은 수익금을 모두 이랜드 노동자들에게 내놓았다. <여기 사람이 있다>의 수익금도 온전히 ‘인터뷰이’인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쓸 예정이다. 

삶창 르포팀은 요즘 재개발 광풍에 휩싸인 서울 성북구 삼선동 4구역 사람들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른바 ‘마을 생애사’라 불리는 작업이다. 용산 철거민을 취재하다 감정이입이 되는 바람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는 20대 작가 박경내씨는, 어느덧 마을 어귀 슈퍼마켓 아줌마와 경로당 할머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삼선동 언덕길을 쏘다닌다. 이들의 손과 발이 또 어떤 세상의 이면을 기록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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