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잊고 있었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들의 싸움.  
언젠가 파업하는 노조 간부들에게 법원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간부는 자기도 이번에 도배 기술을 제대로 배웠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권리를 행사했다고 하여
처벌을 하는 것 자체도 큰 문제지만
백번 양보하여, 실정법을 어겼기에 처벌한다고 해도
이들에게 사회봉사 명령을 내리는 이유는 뭘까?
파업하는 노동자는 사회봉사 정신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 의식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횡령과 부정부패를 일삼거나 아들에 대한 사적 복수에 권력을 휘두른 재벌 총수에게
사회봉사 명령이 내려졌을 때 나는 위와 같은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업하는 노동자가 왜 봉사의식,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할까?
기업이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사회도, 언론도, 법원도 
그들을 진정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왜 노동자들만 사회 공동체 의식으로 투철히 무장되어야 하나?  

노동자의 진정한 사회에 대한 봉사는 노동 그 자체이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식과 역할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데서부터 출발하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사회봉사명령은 그저 모욕주기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를 모욕할 권리는 없다. 
저 두꺼운 법전 어는 한 귀퉁이에 적혀있든 없든 간에 그것은
인간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이제 기업도 법원을 따라 항복문서에 '사회봉사'를 적어넣는다. 
다른 데도 아니고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병원에서 말이다.
거기에 맞서지 못하고 투항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들의 지난한 싸움을 잊고 지냈던 내가 정말 밉다.  

관련기사 참세상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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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함께 서지 못한 부끄러움


[칼럼]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합의에 부쳐



오도엽(작가) odol@jinbo.net / 2009년05월13일 11시14분

과연 정규직이 있을까. 어떤 일터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어야 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규직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일까?


노동을 생각해봅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일까. 노동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걸까. 자신이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 노동일까. 노동이 희망일까?


우리가 꿈꾸는 노동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바라는 일터는 무엇일까요?


답 없는 물음표를 계속 던지고 있는데,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지난 해 여름에 파견직으로 2년을 근무했기에, 비정규직법의 칼날 때문에 쫓겨나야했던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낸 편지입니다. ‘투쟁을 마무리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며 기쁨보다는 서글픔이 들었습니다. 무기계약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박수를 보내기에 앞서 손수건으로 이들의 눈물과 땀을 닦아주고 싶습니다.


병원과 합의안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조합원 대표는 투쟁의 책임을 지고 1개월 사회봉사, 2개월 자숙기간을 거쳐 3개월 후인 8월 1일 복직한다.’


아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비정규직법을 악용한 사용자의 횡포에 맞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 사람이 범법자 입니까? 사회봉사와 자숙의 기간을 거쳐야 한다니……,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정규직화 시키는 게 비정규직법의 취지가 아니었나요? 특히 강남성모병원의 비정규직은 병원이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으로 이미 2년을 근무하고, 다시 파견직으로 2년을 근무한, 당연히 정규직이 되어야 마땅한 처지였습니다. 사용자가 비정규직법을 악용하여 파견업체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사회봉사를 하고 자숙을 해야 할 사람은 ‘조합원 대표’가 아닌 ‘사용자 대표’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요즘처럼 고용되어 일하는 것이 행복(?)의 최고 척도가 된 세상에서는 이런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 벌어져도,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며 ‘병원장님’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쁜 소식만을 전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가슴에 묻어둘 수 없어 한마디만 더하겠습니다. 이번 합의서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민형사상 고소고발 및 가압류는 취하하지만 가압류 금액 육천만 원 중 일부인 삼천만 원은 1년 뒤부터 2년에 걸쳐 상환한다.’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분노보다는 헛웃음만 나옵니다. 성스러운 가톨릭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병원에서 빚쟁이 대하듯 하는 이런 합의서를 어찌 기록으로 남길 생각을 하셨는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여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어떤 기업도 하지 않았던 선례를 만든 성모병원의 위대함 앞에 숙연해집니다.


일자리를 되찾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은 보건의료노조와 병원 측이 맺은 합의안을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이후 또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에 선례로 자리 잡혀 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또다시 이러한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힘겨운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노동자 단결의 정신을 지키며 투쟁하고 있고 투쟁에 나설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영향이 미치게 될 최종안을 수용하고 말았습니다. …… 그것을 즉각 파기하고 우리의 투쟁을 일구어 갈 수 있는 힘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 투쟁을 선택해야 하는 길과 굴욕적인 안을 받는 두 가지의 길만이 놓였습니다. 우리는 피를 말리는 조합원 토론 속에서 현재 투쟁할 수 없는 조건에서 후자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


길을 가면 갈림길을 끊임없이 만나야 합니다. 갈림길 앞에서는 늘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오른쪽 길이 지름길인지 알지만 장애물을 만나면 왼쪽 길로 가야할 때도 있습니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를 그 동안 잊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피를 말리는 선택의 순간 생수 한 통 사들고 가지 못해 미안합니다. 취재만 달랑 하고 제 갈 길만 갔던 내가 진정 글을 쓰는 사람이 맞는 건지,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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