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을 내어달라 눈물바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마”
- [86호] 2009년 05월 06일 (수) 11:11:00 이오성 기자
르포 문학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주류 언론이 외면한 낮은 곳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독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간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는 벌써 1만 부 가까이 팔려나갔고, 용산 참사를 다룬 <여기 사람이 있다>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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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정에 모인 ‘삶이 보이는 창 르포 문학팀’. 왼쪽부터 박경내·김형석·김순천·김미정 작가. |
여기 ‘이상한 기자들’이 있다. 그들은 명함을 내밀지도 않고, 취재원더러 뭔가 이야기해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현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그 현장이 말을 걸어오면 묵묵히 듣고, 입을 닫으면 이내 돌아선다. 그들의 취재 노트에는 산뜻하고 자극적인 취재원의 멘트 대신 애꿎은 ‘눈깔사탕’ 자국만 가득하다. 광장시장 어느 노점상 할머니를 인터뷰하러 갔다가 말문을 열지 못하고 날마다 눈깔사탕만 여러 개 사서 모았다. 평범한 기자라면 데스크로부터 당장 불호령이 떨어질 법한 일이다.
그들의 진짜 이름은 ‘르포 작가’다.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 이랜드 비정규 노동자의 농성장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 일, 그곳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자’라는 점에서 기자와 닮았다. 하지만 그들은 보통 기자와 확실히 다르다. ‘마감’ 압박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 육하원칙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 등이 그렇다. 무엇보다 다른 건 다루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시선과 깊이다. 가령 용산 참사 현장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는 울림이 있다.
“애가 네 살, 아홉 살이거든요. 애가 투쟁하는 걸 알기 때문에 용역들하고 집 앞에서 싸울 때 밖에다가 ‘석 꺼져, 투쟁’ 이렇게 적어놨더라고요. 글자를 잘못 적으니까. 그거 가지고 용역들이 ‘아빠가 이러니까 애가 저러지,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이러기에 용역들과 주먹다짐도 했어요. 가슴이 아프죠. 단지 아빠가 잘못하고 있지 않다는 거밖에 알려줄 게 없어요. 아빠가 잘못된 걸 요구하는 게 아니라 아빠가 이 나라에서 가져야 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 이 투쟁을 한다고….”(용산 참사 때 망루에서 살아남은 김창수씨)
“(나더러) 일명 위원장 마누라라고 지나가면 대놓고 성적 농담하고, 그걸 몇 개월을 당했는데 저라고 가만히 있겠냐고요. 저도 처음부터 이런 사람 아니었어요. 착한 사람이었어요. 그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지금은 악밖에 안 남았어요. 이 나라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예요.”(사망한 이상림씨 며느리 정영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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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철거민의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아버지, 그리고 ‘우리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항변하는 것 외에는 달리 자기를 드러낼 길 없는 사회적 약자의 막막함이 담긴 말이다. 주류 언론은 물론이고, 용산 참사를 상세히 보도한 언론의 기사를 통해서도 이런 막막함은 접하기 어려웠다. 순간의 감수성이나 연민으로 끌어낼 수 있는 성질의 ‘멘트’가 아닌 탓이다. 사건이 터진 날부터 언론이 등 돌린 지금까지도 이들 작가는 용산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철거민의 속내를 들여다보려 작가들은 부지런히 그들의 가슴을 보듬어주고, 발품을 팔았다. 피해자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이 작가들은 내내 눈물바람이었다. 그 기록이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책이다.
‘중립’은 가해자 시선일 뿐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철저하게 ‘편파적’이다. 작가가 짐짓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려 들지 않고, 그들의 주장을 가감없이 1인칭 구술로 담았다. 정부와 일부 언론에 의해 ‘생떼 쓰는 철거민’으로 표현된 이들 세입자가 실상 우리네 이웃과 별다를 것 없는 사람임을, 이 책은 그들의 입을 빌려 담담히 전한다.
하지만 기자의 강박증일까, 자칫 철거민의 주장만을 전한다는 것이 르포로서 객관적 시선을 잃은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러나 글을 쓴 르포 작가 김미정씨는 “빼앗긴 자,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룰 때 중립의 시선을 요구하는 건, 결국 가해자의 시선을 가지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다”라고 단언한다. 김순천씨 역시 “실제 철거민을 만나보니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놀랐다. 교통사고를 당하듯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모두 철거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이들과 내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냉소적 시선만 유지한다”라고 지적한다. ‘중립’을 저버리고 피해자의 시선을 견지한 결과 이런 일화도 만들어냈다. 구속 수감된 김태연 용산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상황실장이 지난 4월9일 범대위에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제가 있는 방에 철거 용역업체 직원이 한 명 있습니다. 서른이 안 된 젊은 친구인데 <여기 사람이 있다>를 열심히 읽더군요. 읽고 나서 ‘여기 나오는 사람들 아느냐’고 묻더군요. 그렇다고 했지요. 무얼 느꼈는지 묻지는 않았습니다. … 그 친구 오늘 낮 운동 시간에 같이 걸으면서 그러더군요. ‘이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참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세상입니다.”
김순천 작가의 ‘서울 다방’ 이야기
<여기 사람이 있다>를 엮은 이들은 르포 작가 연정·송경동 시인 등 15명에 이른다. 조혜원씨처럼 평범한 직장인도 있고, ‘88만원 세대’ 대학생도 있다. 4월27일, 서울대 교정에서 이 책 집필에 참여한 르포 작가 몇 명을 만났다. 르포 전문 작가 김순천씨(45), 건축사로 일하는 김미정씨(42), 프리랜서 사진가 김형석씨(41), 비정규 노동자 박경내씨(29)는 저마다 다양한 직업과 삶의 이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르포라는 글쓰기 형식을 통해 꾸준히 세상과 소통해온 ‘삶이 보이는 창 르포 문학팀’(삶창 르포팀) 멤버이다. 삶창 르포팀은 2006년 비정규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부서진 미래>를 펴낸 이래 사회 약자의 목소리를 담는 데 몰두해왔다. 김순천씨 등은 지난해 여름 이랜드 비정규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르포집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들이 르포 문학에 가지는 애정과 자부심은 사뭇 대단하다. 하지만 르포 작가라는 말조차 생소한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기자를 뛰어넘는 취재력을 발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김형석씨는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취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냥 계속 일 없이 찾아가 만나기만 한다. 20~30번씩 찾아간 적도 있다. 그러다보면 ‘아이고, 왜 이렇게 찾아오느냐’며 손사래를 치던 사람이 어느 순간 말문을 연다. 그때의 희열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
김순천씨는 몇 해 전 서울 황학동 삼일아파트에서 만난 다방 여사장을 잊을 수 없다. 아파트 철거를 앞두고 그곳에서 22년 동안 다방을 운영한 여사장이 화제가 됐고, 여러 매체에서 그녀와 인터뷰하기 위해 줄을 섰다. 하지만 여사장은 자기 노출을 극도로 꺼렸다.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물을 끼얹을 정도였다. 일반 기자와 달리 날마다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주는 김씨의 정성에 탄복한 여사장은 결국 어느 날 인터뷰를 허락했다. 뛸 듯이 기뻐하던 김씨에게 여사장이 보여준 것은 자기만의 ‘비밀 쪽방’이었다. 여사장은 다방 안에 한 사람 겨우 누울 만한 크기의 쪽방을 만들어놓고 입구를 거울로 가려놓았다. 지난 22
년 동안 이 여사장은 밤마다 감옥 같은 쪽방에서 잠을 청한 것이다. 김씨는 “그녀는 생애 처음으로 외부인에게 자기 세계를 열어 보였다. 르포 작가로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라며 감회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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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3일 용산 참사 현장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 출판기념회(위)가 열렸다. |
이들은 우리 시대에 르포 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주류 언론의 실패에서 찾는다. 언론사 간 경쟁이나 시간의 제약, 취재기자의 인식상의 한계로 대중매체가 전달하는 정보와 이미지는 현실의 본모습에 깊숙이 다가가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김순천씨는 “일반 대중은 대중매체가 가상으로 재현한 것을 또 가상으로 체험한다. 이 ‘피상적인 인식’이 가장 위험하다. 그것은 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없게 하며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힘을 빼앗아간다”라고 지적한다. 이런 대중매체의 실패를 극복하려는 자리에 르포 문학이 새롭게 재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르포 문학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김순천씨는 “우리에게 지면을 달라”고 요구한다. 무슨 문학상이나, 상금 대신 글을 실을 수 있는 지면과 취재 여건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르포를 비싸게 삽니다’라는 잡지사의 광고 문구를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일본은 없다>를 쓴 유재순씨를 만났더니 ‘내가 르포 작가로 성공한 것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더라. 반면 우리나라는 문예진흥원은 물론, 한국작가회의에서조차 르포 문학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실정이다.”
집필 수익금 모두 ‘인터뷰이’에게 전달
여전히 한국에서 르포 문학은 찬밥이다. 지난해 경부운하 반대 성명을 발표한 ‘리얼리스트 100’ 소속 작가들,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를 쓴 박영희, <발바닥, 내 발바닥>의 김곰치, <아부 알리, 죽지 마>의 오수연씨 등이 르포 문학의 맥을 잇고 있지만, 르포 작가가 10만명에 이르는 일본이나 르포 문학이 시와 소설 이상으로 대접받는 중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주류 언론이 외면한 낮은 곳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독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해 출간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는 벌써 1만 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책을 펴낸 박상훈 후마니타스 출판사 대표는 “노동 관련 책이 이렇게 팔린 건 이례적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실제 삶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낸 작가들의 공이 컸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독자 또한 문체나 스타일 대신 현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낸 작품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몇몇 소수 작가만 고군분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를 집필한 르포 작가들은 수익금을 모두 이랜드 노동자들에게 내놓았다. <여기 사람이 있다>의 수익금도 온전히 ‘인터뷰이’인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쓸 예정이다.
삶창 르포팀은 요즘 재개발 광풍에 휩싸인 서울 성북구 삼선동 4구역 사람들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른바 ‘마을 생애사’라 불리는 작업이다. 용산 철거민을 취재하다 감정이입이 되는 바람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는 20대 작가 박경내씨는, 어느덧 마을 어귀 슈퍼마켓 아줌마와 경로당 할머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삼선동 언덕길을 쏘다닌다. 이들의 손과 발이 또 어떤 세상의 이면을 기록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