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이야기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아직도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죠. 이제 몇 안 남은 서울의 사회과학서점이지만 그래도 늘 필요한 책이 비치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어서, 그래서 사고 싶은 책이 생기면 전화로 책을 주문하고 삼사일 뒤에 연락이 오면 가서 구입을 한답니다. 

나도 여기 알라딘에서 책 구입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책만이 아니라 온라인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 편에 속합니다. 그런데 나같은 경우는 실물을 보고, 만져보고, 들어보고,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 앞에서의 사람과는 거리가 멉니다. 

반면 내 파트너는 온라인 쇼핑 매니아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된 것이죠. 육아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들 알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는 동네슈퍼마켓 가는 일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분유, 기저귀를 비롯한 육아용품에서부터 아주 잡다한 것까지 아이를 재워놓고 밤에서야 물건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많은 쇼핑몰이 30대 아이엄마들을 주 고객을 삼고 있으며 이들의 입김이 큰 이유가 다 있어 보입니다.  

아는 또 다른 한 분은 예전에 "대형마트를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애용하는 사람을 어떻게 좌파라 할 수 있냐"는 말을 했는데, 물론 내가 좌파로 살기로 결심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동네 구멍가게를 먹어치우는 대형마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것은 꽤 오래전부터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아파트 단지 내 가게에서 담배 한 갑, 라면 등을 사는데 이건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맥주를 대량을 살 때는 고민스럽죠. 맥주가 아니더라도 빠듯한 살림살이에 저가용품을 무더기로 파는 대형마트의 유혹은 사실 치명적입니다. 

<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도 대형마트에서 대형마트의 브랜드 물품만을 산다고 했던 거 같은데,  좌파로 살기를 결심하지 않더라도 '부자'로 살지 않기를 결심한 적은 있답니다.(물론 이건 아주 지키기 쉬운 약속^^) 부자로 살지 않기는 가난하게 살기인데 가난하면서 어떻게 중요한, 소중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 것인가 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은 문제죠.  

또 아는 사람은 자전거를 타며, 집에서 자전거를 들여놓고 거기서 생기는 전력으로 생활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잘 찾아보면 주변에는 '자본에 저항하는, 자본주의에 불복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죠. 많은 이들이 <녹색평론>의 독자들인데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지 따라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저 70%쯤은 타협하고 20%쯤 체념하고 10%정도 쯤이나 따르려 애쓰고 있는 거 같은데. 그것도 쉽지 않죠. 갈수록 말이죠. 휴~


댓글(2)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이벤트)덜쓰고 덜사는 비법을 귀뜸해주세요~
    from 세상에 분투없이 열리는 길은 없다 2009-05-22 09:54 
    나무처럼님의 글을 읽다, 나는 뭘 하고 있나 한번 생각해 봅니다. 몹시 게으른 인간이라 결의에 차서 이렇게 꼭 해야겠어라는 건 거의 없이  슬렁슬렁 많이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몇가지는 하려고 노력합니다.  올 한해 목표는 '덜 쓰자'입니다.  이 덜쓰자 장르에서 제게 가장 어려운 건 먹는 것입니다. 굳이 채식이나, 유기농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내땅에서 난 것으로 적당량만 먹자인데,  술을 먹다
 
 
머큐리 2009-05-2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념적으로 진보를 외치긴 쉬워도 생활속에서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자신의 사상과 상관없이 실천하지 못하면 역시 관념론자겠지요...반성하고 갑니다.

나무처럼 2009-05-22 13:46   좋아요 0 | URL
네... 말하는대로 행하지는 못해도 행하는 만큼만 말해야 할텐데 그것도 쉽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