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355699.html
온라인 서점이라는 특성 상 알라딘 역시 배송이라는 유통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것이다. 사실 한국에 있지 않은 관계로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을 택배로 직접 받아본 경험도 없거니와, 솔직히 말해 그간 생각조차 해 본 적 없기 때문에 알라딘에서 어떤 택배회사와 계약해서 배송을 처리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알라딘이 과연 택배업체와 "공정"하게 거래를 하고 있는지, 그 택배회사는 배송노동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더더욱 아무런 지식도 없다. 따라서 그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답답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택배다. 여기도 큰 온라인 쇼핑몰들은 일정 금액 이상을 사면 무료 배송을 제공하기도 한다. 문제는 무료 배송을 신청하면 대략 2주 정도가 지나야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것. 좀 급하게 필요하면 유료 배송을 선택해 받는 수 밖에 없고(책 같은 경우 익일 배송 옵션 같은건 간혹 물건값에 육박하기도 한다 -_-), 그래서 여차하면 차 끌고 나가서 사 오는게 차라리 나은 경우도 많다. 왠만하면 무료 배송에 과장 좀 보태서 마우스 클릭하면 뒤에서 벨소리 울린다는 한국의 배송 시스템과 비교하자면 복장 터진다. 속도라는 측면만 본다면 말이다.
물론, 미국과 한국은 땅덩어리 크기 자체가 다르니 발생한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위에 링크해 놓은 기사를 보면 과연 그 뿐일까 라는 의심을 해보게 된다. 한국의 그 "빠른" 배송이 힘없는 배송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에 기반해서 가능한 것이었다면, 미국의 "느린" 배송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일단 배송업체(UPS 나 FedEx 같은 대형 업체가 대부분이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댓가를 받을 수 있는 수익구조가 나올 것이고(예를 들어, UPS 는 미국 업체 중에서도 복지 혜택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배송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정직원.), 온라인 업체와 오프라인 업체 간의 균형을 맞춰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쁜 점은? 내가 클릭한 후 물건을 받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
근데, 처음부터 이런 배송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미국애들은 이게 불편하다는 느낌을 못 받는다고 한다. 온라인에서 물건 주문하면 응당 그 정도 걸리는 걸로 생각을 하는거다. 답답해 하는건 나처럼 한국에서 온 사람들. 그럼, 이걸 단점이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해진다. 애당초 편리함과 불편함이란건 상대적인 거니까. 거꾸로 생각해 보자. 물리적 거리가 있으니 미국처럼 1~2주일씩 걸리는건 좀 그렇다 쳐도, 2~3일 걸려서 물건을 배송받게 되면 그게 큰 일 날 일인가? 빨리 받으면 좋고 공짜로 배송해주면 좋은건 맞다. 하지만 우리의 편리함이 누군가의 희생에 기반하고 있다면, 오히려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불편함 아닐까.
따지고 보면, 그 편리함은 우리한테도 마냥 공짜인건 아니다. 격무에 지친 택배기사의 불친절과 그로 인한 감정 소모도 우리가 부지불식간 지불하고 있는 비용에 속한다. 시간과 단가를 맞추기 위해 과속으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운송 차량들은 사고의 위험을 높여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한다. 그로 인해 열악해지는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저임금, 그 결과 그 가족이 겪게 되는 낮은 생활 수준 등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엔트로피를 증가시켜 사회적 비용으로 계상된다. 이 모든 것이 속도 강박증에 시달리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물론, 택배 받을 때 마음의 여유를 갖자는 이야기 같은걸 하고 싶은건 아니다. 주문 시에 "하루 정도 늦게 가져다 주셔도 되요" 라는 메모 남기는 걸로 뭔가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치는 않는다. 사실 지금 필요한건 배송 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공정거래" 합의 같은거라고 생각된다. 하루에 어느 정도의 물류가 처리되려면 얼마 정도의 man-hour 가 필요하니 이 정도 비용이 필요하다는 객관적 기준을 가지고 배송비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잡아가야 할 일이다. 그래야 권력관계의 약자인 배송 노동자들이 모든 손해를 떠안는 구조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는 화물연대의 투쟁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그럼 우리는 뭐하냐. 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화물연대의 투쟁을 지지하고 어쩌고 하는 일들이 있을테지만, 과연 그거면 충분한걸까 싶다. 크게 보면 우리 모두 택배 서비스의 이용자이고, 무료배송이니 당일배송이니 하는 떡고물에 열광(?)했던 사람들 아닌가. 그런 무임승차 아닌 무임승차가 쌓이고 쌓여 오늘날 택배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으로 이어졌다면 과장이 될까? 만약 건강한 유통 구조가 정착되어 배송을 위해 시간과 돈을 더 들여야 한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까? 택배업체들이 과도한 경쟁을 내세우며 택배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조건들을 강요할 때, "우린 그런 강요 한 적 없다"며 자신 있게 나설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