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바퀴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쿵, 내려앉던 순간,
일주일간 잠들어 있던 머릿속에 비상등이 켜졌다.
뭘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깨닫기 시작한 순간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집에 돌아와 두 개의 가방을 정리하고
컵라면으로 허기를 메운뒤 수면모드로 돌입.


오후 끝자락에 일어나 집안을 휘 둘러보았다.
집을 떠나던 날 버릴 만한 것들을 죄다 버리고 간 터라 휑하고 쓸쓸했다.
내가 없는 동안 집은 그렇게 조용히 먼지를 마셨다.


인터넷이 되질 않았다.
휴대폰 액정은 천연색이 사라진 낡은 필름처럼 보였다.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전화가 걸리지도 오지도 않았다.
전원이 꺼져있다는 음성만 반복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여행이 즐겁지만은 않다는 걸 이제야 알다니.


걷고, 걷고, 또 걸었던 싱가포르의 습한 거리, 더위, 땀,
보너스처럼 쏘이던 에어컨 바람...
자신의 민족에 대한 우월감과 타 민족에 대한 예우,
남장 여자를 한 트랜스 젠더의 숲,
G 발음을 못하는 차이니즈들,
잘 있을까.


미처 생각지 못했던 영어들이 마구 튀어나오고
아무 곳에서나 퍼질러 앉아 숨을 돌리던 꾀죄죄한 내 몰골은
그곳에 이제 없다.


나에게 후했던 나날들. 
나에게만 예외라고 특별한 환상의 옷을 입혔던 나날들.
조금만 아파도 중병에 걸린 것처럼 행세했던 호사의 날들.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나는 왜 이제서야 나를 알았을까.
그런데,
이게 다 안 것이 아니라는 오만이 따라붙는다.


핑계는 있지만
너무 많이 튀어나올 것 같아 자제한다. 


좀 아픈, 그런 날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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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0-2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저 감기 조심하세요~! 두건 쓰신 분이 플레져님이신가요??

플레져 2006-10-2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 아랍 거리에서 만난 코리안이에요 ㅋㅋ

진/우맘 2006-10-23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어쩐지, 플레져님은 꼭 저렇게 생겼을 것 같은데....^^

플레져 2006-10-2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전 저 애보다 더 괜찮아요! ㅋㅋ

세실 2006-10-2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맞는것 같은데.... 여행 다녀오셨군요.

hnine 2006-10-23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플레져님인줄 알았는데~

물만두 2006-10-23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같은데요~

미미달 2006-10-23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맞죠? ㅋ

2006-10-23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6-10-23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의 시를 보는 것 같아요. 돌아오신 것을 환영해요^^

2006-10-23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6-10-23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 사진이 너무 예뻐요!! 라고 할랬어요~ ^^

산사춘 2006-10-24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멋진 글에 현혹(?)되지 않고 사진에 꽂혔는데!

플로라 2006-10-24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 뒤 밀려오는 상념들, 하지만 다시 또 공항으로 향하는 설레임을 그리워하게 되지 않던가요? 오늘은 쨍한 햇빛아래 야외에서 1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그대로 개운한 기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