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기 바퀴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쿵, 내려앉던 순간,
일주일간 잠들어 있던 머릿속에 비상등이 켜졌다.
뭘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깨닫기 시작한 순간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집에 돌아와 두 개의 가방을 정리하고
컵라면으로 허기를 메운뒤 수면모드로 돌입.
오후 끝자락에 일어나 집안을 휘 둘러보았다.
집을 떠나던 날 버릴 만한 것들을 죄다 버리고 간 터라 휑하고 쓸쓸했다.
내가 없는 동안 집은 그렇게 조용히 먼지를 마셨다.
인터넷이 되질 않았다.
휴대폰 액정은 천연색이 사라진 낡은 필름처럼 보였다.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전화가 걸리지도 오지도 않았다.
전원이 꺼져있다는 음성만 반복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여행이 즐겁지만은 않다는 걸 이제야 알다니.
걷고, 걷고, 또 걸었던 싱가포르의 습한 거리, 더위, 땀,
보너스처럼 쏘이던 에어컨 바람...
자신의 민족에 대한 우월감과 타 민족에 대한 예우,
남장 여자를 한 트랜스 젠더의 숲,
G 발음을 못하는 차이니즈들,
잘 있을까.
미처 생각지 못했던 영어들이 마구 튀어나오고
아무 곳에서나 퍼질러 앉아 숨을 돌리던 꾀죄죄한 내 몰골은
그곳에 이제 없다.
나에게 후했던 나날들.
나에게만 예외라고 특별한 환상의 옷을 입혔던 나날들.
조금만 아파도 중병에 걸린 것처럼 행세했던 호사의 날들.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나는 왜 이제서야 나를 알았을까.
그런데,
이게 다 안 것이 아니라는 오만이 따라붙는다.
핑계는 있지만
너무 많이 튀어나올 것 같아 자제한다.
좀 아픈, 그런 날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