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구니에 붉은 딸기가 가득이다. 바구니 밑바닥에 깔린 흰 면장갑을 끌어내보니 붉은 물이 촉촉이 스며들어 있다. 처녀는 면에 밴 딸기물을 잠시 응시한다. 그리곤 가능한 한 고개를 들지 않고 딸기만 따려 한다. 고갤 들거나 조금 시선을 비끼면 햇빛에 반짝이는, 땋아내린 유의 갈색 머리, 그 사이에 놓여 있는 고운 목덜미, 붉은 딸기와 녹색 잎새 속의 유의 흰 허벅지, 홍조를 띤 유의 뺨이 시선에 들어온다. 유는 딸기 따는 일에 몰두해 딸기밭 속에 놓여 있는 자신의 관능성에 대해서 완전히 방심해 있다. 엎드릴 때마다 아직 누구도 만져보지 못한 자그만 가슴이 엿보인다는 것도 유는 모르고 있다. 발육 부진의 육체를 지닌 처녀는 고통스럽다. 새끼손가락을 갖다 대고 싶은 유의 쇄골, 그 관능적인 움직임 때문에, 유의 말랑한 귓불을 물들이고 있는 밝은 빛 때문에.
<신경숙, 딸기밭, 80쪽, 문학과 지성사 > <이미지 : 플레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