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고백의 제왕.
신간 도서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페이퍼를 써야겠다는 충동이 생겼다. 소설의 표제작 <고백의 제왕>은 문학상 수상집에서였던가...읽은 것 같다. 몹시 재미있게 읽었다. 한 번 읽었을 뿐인데 상갓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은 찍어둔 사진처럼 생생하다. 나는 이런 유형의 소설이 좋다. 누군가에게 소설의 줄거리를 차곡차곡 말할 수 있는 소설. 그러니까 이런 투다. 옛날 옛날에 말이야 이런이런 사람이 있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해서 그렇게 되버렸대. 옛스럽기 그지없는, 동화책 탐닉에 빠진 어린 버릇 같지만 누군가에게 책을 권하며 마음에 와닿은 줄거리를 말할 수 있는 소설이 모두가 읽고 싶어하는 소설이 아닐까. 지적인 소설도 좋고 수많은 자료를 엄선하여 채집한 소설도 좋다. 자기만의 세계를 천착하여 집중 모색하는 것도 좋다. 부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모든 기호들 중에서 내가 가장 편애하고 좋아하는 소설은 누군가에게 권할 때 술술 이야기가 풀려 나오는 유형의 소설이다. 기승전결이 확실하다는 뜻도 있겠고 (소설의 구성과는 별개로 독자가 이야기할 수 있는 구성)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낯선 호기심이 있고 공감을 끌어낸다는 뜻도 있다. 요근래 중고샵에 책들을 많이 떠나보냈다. 꽉 찬 책장이 나의 아집처럼 보여서 끔찍했다. 한동안은 소설들과 먹고 살았던 것처럼 온통 소설들 뿐이었다. 올해의 바람이 있다면 책장 한 칸 정도는 텅 비어놓고 싶다. 채워진 책장은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책들만,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들만 두고 싶다. 그러다 또 어느날 그 책들도 시절을 못 이기고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르지만. 책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변희봉>은 며칠전 문학 수상집에서 읽었다. 책의 여운이 따끈한 호빵처럼 가슴에 남아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절대로 불이 피어오를 것 같지 않은 연탄에서 열기가 솟는 것처럼 뜨거웠다. 나머지 수록 작품들은 아직 읽지 못하였으나 기대가 된다. 고백의 제왕과 변희봉만큼 좋겠지. 나는 이 소설의 이야기를 동네 친구에게 들려줄 생각이다. 가끔은 나의 아픔에 눈물 짓고 나의 기쁨에 축하 세레모니를 거침없이 해주었던 그녀에게. 한가지 더, 작가의 약력을 살펴보다 반가웠다. 이장욱 작가는 내가 서재 마지막 리뷰처럼 올린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그때도 알고 있었을 터인데 갑자기 우연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처럼 더 반갑다. <바덴바덴...>은 작가와 함께 글을 써나가며 읽는 것처럼 수공의 기운이 역력한 소설이었다. 누군가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때, 무료한 카페의 공기를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을 때, 청승스러운 사람은 오직 지구상에서 나밖에 없다고 느껴질 때 이 소설을 슬쩍 꺼내보면 어떨까.
이 페이퍼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열광하는 보통 사람의 깨방정이 10.5% 정도 가미되어 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