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옆집 여자, 새벽 5시 30분이면 출근하는 옆집 여자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디지털 도어의 배터리가 닳아 집에 못 들어가고 30분을 밖에서 서성이던 그 여자네 집. 베란다 청소를 하는데 이삿짐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비도 오는데... 궂은 날에 고생하겠다 싶어 내다보았다. 사다리차가 어느새 우리 옆집 베란다에 놓여 있었다. 순간 철렁, 했다.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이웃이지만 어쩐지 옆집이 이사간다는 소식은 조금 외롭고 쓸쓸했다.
하성란의 <옆집 여자>는 고백체 소설이다. 화자인 나의 옆집에 이사온 미모의 싱글 옆집 여자. 옆집 여자는 점점 틈이 보이는 화자에게 파고들어온다. 결국 옆집 여자가 화자의 집을 독식하게 될 거라는, 화자가 이뤄놓은 가정을 파괴하고 안주인 노릇을 하려드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하성란의 같은 책에 실린 <곰팡이 꽃> 에는 옆집 여자를 주시하는, 쓰레기를 뒤지는 옆집 남자가 나온다.
'옆집'이란 뉘앙스에는 오손도손한 이미지가 풍겼다. 언젠가부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반전이 생기면서 옆집과의 교류는 꼭 할 필요 없다는 인식이 생겼다. 친하게 지내던 여자가 칼을 들이대거나 뭔가를 훔쳐가는 영화나 드라마들, 실제의 사건들. 덕분에 이웃사촌이란 말도 퇴색해버렸다. 뭔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니 말이다. 박철수 감독의 영화 <301, 302> 역시 옆집 여자간의 이야기다. 옆집 여자와 이야기를 한번 나눈 적 없으니 내 일상은 덕분에 조용했던걸까.
김형경의 <담배 피우는 여자> 에도 옆집 여자가 나온다. 역시, 고백체 소설이라는 점에서 하성란의 소설과 비슷한 냄새가 나지만 내용과 분위기는 다르다. 담배 때문에 매를 맞던 옆집 여자에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거처로 내 집을 제공한 화자. 옆집 여자는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지만 어느날 옆집 여자의 방문이 달갑지만은 않아 쓴소리를 내뱉고 만다. 그리고 옆집 여자는 다음날... 그깟 담배 한번 피우기 위해 라고 말할 수 만은 없는데 인간은 무엇엔가 기대어 살 것이 필요할 겁니다, 라는 문장은 두고두고 떠오른다.
외출해서 돌아오다가 조금전, 옆집 남자와 마주쳤다. 옆집 남자는 늘 그랬던 것처럼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남자의 발 밑에는 깡통 재떨이가 있다. 간혹 우리 남편도 이용하곤 한다. 옆집 남자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도 눈을 피하지 않고 비밀번호를 또박또박 눌렀다. 그동안 인사 한번 없었지만 남자와 나는 남자의 아내인 여자보다 더 자주 마주친 사이였다.

김영하의 <이사> 에는 아끼고 아껴 모은 돈으로 조금 넓직한 곳으로 이사가는 부부가 나온다. 이사를 가는 날 아침, 이삿짐 센터의 한 일꾼과 묘한 갈등이 시작된다. 이사를 온 후에 언젠가 사둔 가야 유물이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 유물은 어디로 갔을까?
옆집 남자와 나의 첫 대면은 경비아저씨 덕분에 이뤄졌다. 내가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었는데 저녁 즈음에 인터폰이 울렸다. 택배를 찾아가라는 것. 카디건만 하나 걸치고 밖으로 나갔는데 옆집 문이 열리더니 옆집 남자도 어슬렁 나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고 남자가 먼저 내렸다. 남자를 쫓아 가게 된 모양새였는데 남자 역시 택배 물건을 찾으러 온 거였다. 남자가 찾은 택배 상자는 그래 스물넷, 상자였다. 가끔 생각한다. 한낮에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마트에 우유를 사러 오는 모습을 포착하는데, 남자는 글을 쓰는 사람일까.
김경욱의 <선인장> 은 김영하의 소설과 묘하게 닮아있다. 한강이 보이는 새 아파트로 이사간 젊은 부부. 남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여자는 영화사에 근무한다. 10년째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임신이 되지 않아 아이가 없는 부부다. 아파트는 부부의 이사를 반기지 않듯 냉랭하다. 놀이터에는 노는 아이들 한 명 없다. 아내가 출장 간 사이 어떤 기운에 끌려 엘리베이터를 탄 남자. 출장에서 돌아온 아내는 남편이 없는 (사라진) 집에서 부쩍 자란 선인장 가시에 찔리는데...
조금전 옆집은 이삿짐을 다 싸고 가버렸다. 옆집 남자와 여자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며 내방 창 밖으로 걸어갔다. 허전하다. 조금전 문을 열때, 남자가 빤히 나를 볼 때 한마디라도 건넬 걸 그랬나? 이제와서 이사가는 걸 반기는 것처럼 말을 걸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처음으로 이사를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배웅해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근처로 이사가는 건데도 엄마는 이웃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이사를 간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었다. 세상이 각박하다느니 하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다만 나는 옆집 사람들과 말을 나눌만한 구실을 찾지 못했다. 갑자기 떡을 할 일도, 옆집에 피해를 줄만한 사고도 없었다. 무사하다는 건 무미건조하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부디, 좋은 집에서 따스한 겨울 나기를, 바란다. 한번도 말을 나눈 적은 없지만 한번쯤 말을 나눠볼 수 있었던 옆집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