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여정
박대영 지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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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완의 묵상과 그 이후



책의 제목과 표지만 봤을 때는 지난 20여 년간 커다란 흐름처럼 전국 각지의 교회로 퍼져나간 큐티를 다시 꺼내들거나 그보다 더 깊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려고 했으나 작은 흐름에 멈추고 만 묵상 운동의 부흥을 꾀하려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그런 추측을 무색하게 한다.


창세기가 보여주는바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그분과의 관계 단절을 초래했고, 그 죄의 연쇄작용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과, 그리고 피조세계와 불화하게 되었다. 죄의 파장이 그러했듯이, 구원의 효과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시작하여 자기 자신과의 화해, 이웃과의 관계에 눈뜸, 피조세계에 대한 청지기직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전인적이고 총체적인 구원의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의 길목에 이 책이 말하는 묵상이 있다. “정말 갈망해야 할 것은 너무 적게 갈망하고... 무익한 것만 갈망”하는, “묵상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인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사람으로 돌아가도록 해주는 여정, 그것이 곧 묵상인 것이다.


이 책은 큐티라는 말로 대표되는 성경 읽기 운동이나 어떤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묵상은 그보다 크고 풍성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묵상은 집요한 사랑의 추격자이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찾으시는 나를 만나는 과정으로서, 이 세상이 정해 준 잣대를 내던지고 “하나님의 시각을 회복”함으로 “나 자신과 나를 지으신 하나님,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과 나를 둘러싼 숱한 관계들을 새롭게 보는” 일이다. 그 목적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묵상이란 취향과 필요에 따라 택해도 되는 선택 과목이 아닌 필수 과정인 셈이다. ‘묵상의 여정’이란 제목에서 ‘묵상’ 대신에 ‘신앙’, ‘구원’, ‘인간’이라는 말을 넣어도 될 만큼, 묵상은 이 땅의 신앙인이 오늘을 살아가는 길이자 하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여정이다. 마침내 하늘이 되기까지 이어갈 여행이다.


책에서는 묵상의 기술이나 구체적인 묵상법을 다루지 않는다. 다만 오랜 시간 한 방향으로 순종해 온 사람, 묵상을 통해 긴 세월 그분과 사랑의 길을 걸어 온 이의 자기 고백과 연서(戀書)와도 같은 떨리는 설렘이 감지될 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혹은, 독자들로 하여금 나도 그와 같은 묵상의 길을 걷고 싶다는, 그리하여 그분을 알고 내 인생의 목적을 확인하여 풍성한 삶을 누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자극하는 데 있다. 이렇게 하면 저런 결과가 나온다는 구체적인 방법 제시보다 훨씬 강력하고 근원적인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좋은 설교가 잘못을 지적하거나 어떤 결단을 촉구하기보다는 그렇게 살고 싶은 자연스런 마음의 소원을 이끌어 내는 것처럼, 책을 읽어 갈수록 그분을 더 알고 싶고 그분과의 풍성한 관계로 뛰어들고 싶고 그분의 세상 속으로 묵묵히 걸어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묵상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묵상은 하나님과의 만남이고 교제이기 때문이다.”


신앙 성장을 위해서는 크고 좋은 교회를 다녀야 하고 열정적인 찬양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솔깃한 목소리로 귓가에 들려온다. 그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신간 도서를 찾고 페이스북을 훑으며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나는 과연 빠르고 유용한 방법론을 주창하는 이들과 얼마나 다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러다가 끝내는 그 모든 것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냉담자의 모습으로 굳어진 게 오늘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이며, 어디서 길을 잃은 것일까? 수천 년 전 시편 기자들의 노래가 지금 우리 가운데서 새로 쓰여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윤동주 이후로 마음을 움직이는 신앙시가 드문 까닭은 무엇일까? 감동적인 설교나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신간 서적과 새로운 철학이나 신학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분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 거기서 그리운 님을 만나고, 그분을 누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 우리가 잃은 것이며 우리가 길을 잃은 이유다. 개신교를 낳은 종교개혁은 성경을 읽는 운동이었고, 그 책을 읽는 것이 곧 혁명이지 않았던가(<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자음과모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책을 읽기, 읽되 천천히 읽기, 깊이 읽기, 삶으로 읽기, 즉 묵상인 것이다.


알렝 드 보통의 에세이처럼 유려하고 아름답게 쓰여진 글 속에서, 팽팽한 긴장 가운데 날실과 씨실로 짜인 루이스와 피터슨, 나우웬, 헤셸, 브루그만, 김교신 같은 신앙 선배들의 지혜를 엿보는 기쁨 또한 만만치 않은 독서의 즐거움이다. 그동안 해외의 영성 작가들을 기대서 주로 접할 수 있던 보석 같은 영성 고전들의 맛깔나는 인용과 탁월한 정리를 이 책에서 풍성히 맛볼 수 있다. 이제 묵상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더 이상 외국의 저서를 우선 참고하지 않아도 되겠다. 더 깊은 묵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도와 조언을 이 한 권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는 너무 쉽게 만족하는 데 있다고 C. S. 루이스가 말했던가. 빠름과 즉각성에 장악된 듯 보이는 세상을 따라가려다 그분 앞에 멈추어 정주(定住)하는 법을 잃어버린 신앙인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변하는 세상과의 속도 경쟁을 끊고 방향을 재설정한 후 그 길을 즐겁게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어려움을 감내할 만큼 충분한 즐거움이 잠복해 있는 길이다. 쉽게 행복하려는 사람은 굳이 이 묵상의 여정에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현실이 마뜩치 않은 사람은 이 책에서 초대하는 묵상의 여정에 서기 위해 길을 나설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너무 큰 걸음으로 걷지도 말고, 너무 빨리 달리지도 말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걷는 것이다.” 이 책을 벗 삼아 성경을 펼치고 어느덧 아스라해진 그분과의 여행길을 다시 떠나 볼 일이다.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2013년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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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바꾼 한 구절
박총 지음 / 포이에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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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열린 125개의 창


최근 <인간과 말>을 번역한 소설가 배수아는, 이렇다 할 스토리 없는 책을 타인에게 권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묻는 <욕망해도 괜찮아>의 김두식 교수 질문에 답하여, 책의 첫 문장을 읽어주거나 읽으면서 밑줄 친 부분을 읽어주면 좋다는 경험에서 우러난 슬기로운 답변을 한다. 그 진수를 직접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책과의 강렬한 만남을 예기(豫期)해줌을 아는 자의 지혜이리라. 책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한번 해봐”, “일단 먹어봐”, “와보라니까” 같은 말을 할 때가 있다. 좋은 것일수록 이런저런 설명과 해설이 불필요하다. 그럴 때면 그저 “한번 해봐” 하는 것이 최선의 권함이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한번 읽어봐, 정말 좋아” 하는 것 이상의 소개가 불필요한 책.


저자 박총은 서문에서 책의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글쓰기도 우리 세대에 걸맞은 글쓰기, 우리 시대를 배려하는 책쓰기로 독자를 섬길 수도 있지 않겠나. 그렇게 해서 생각한 것이 반짝이는 구절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 나 혼자 전율하고 희구하기에는 아까운 한 구절, 마음에 ‘불을 지르고’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는 그 한 구절을 모아 엮어보자는 것이었다.” 전작 <밀월일기>와 <욕쟁이 예수>에서 독자의 공감과 저항과 방향을 동시에 일으킨 바 있는 저자는, 이번에는 우리 시대 독자들의 필요에 복무하는 책을 내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읽고 밑줄 친 글들, 그의 마음과 생각에 선연한 자국을 남긴 문장들, 그리하여 그의 “삶을 바꾼” 책들에서 한 구절씩을 불러 모아 거기에 자신의 묵상을 보탠 125편의 글 모음. 그런데 이 책의 매력은 영혼에 떨림을 주는 전율할 말한 글을 한데 소환해 놓았다거나 그렇게 소환된 글의 폭넓음이나 그것이 영혼에 일으킬 파장의 진폭만에 있지 않다. 세삼 눈길이 가닿는 것은 다름 아닌 ‘총 자신의’ 글이다. 총의 “마음에 불을 지르고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는” 구절들에 덧붙여진 총 자신의 묵상글은 다시 “마음에 불을 지르고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는” 또 하나의 구절들로 변모한다. 그리하여 또 하나의 아포리즘이 되고, 팡세가 되고, 에세가 되는 것이다. 하여, 총이 인용한 텍스트를 따라가며 오! 하고 무릎을 치다가도 그에 화답하는 총의 묵상글에 아!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빛나는 모든 것을 모으려다 그 자신이 빛나는 것의 일부가 되어 버린 자를 우리는 발견하기에 이른다.


사실, 총의 글은 감동적인 책 소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빛나는 한 문장과 한 인간의 영혼이 부딪혀 빚어내는 화음이자 파열음이며, 의미를 찾는 영혼을 깨우는 종소리, 현재의 고단한 삶을 찬미하는 인생 찬가, 불의한 세상 질서에 눈감지 말기를 속삭이는 혁명가, 인간이 된 신의 눈으로 세상을 살피는 예언자의 노래다. 그가 찾아낸 빛나는 한 구절, 그리고 거기서 싹틔운 중년 인생의 관찰과 고백은 낙담해 쓰러져 죽기를 희구하는 영혼을 만지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고 인생 여로를 걸어가게 해주는 “엄마가 해준 밥”이다. 다시 서문에서 총은 “책 읽기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기를, 뭇 책과의 해후가 벌어지기를, 그 한 구절이 여러분의 삶도 바꿀 수 있기를” 하고 책의 목적을 소박하게 제한하지만, 이 책의 어루만짐이 독자의 삶을 어디로 이끌고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허나 그것이 종교적 열심에 불을 지피기보다는 인간이 된 신, 예수 그분을 만나고 싶어 하는 존재의 열망에 부싯돌을 가할 것임은 분명하다. 사랑에 빠진 자, 불안하나 행복하다. 사랑에 빠지지 않은 자, 안전할지 모르나 행복도 없다. 이 책은 독자를 휘몰아치는 사랑의 열정 속으로 끌어들일 불온한 선동가이자 주위 사람들의 몸 녹일 불을 일으킬 작은 불꽃이다. “이 세상이 창조되던 그 아침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 했던 옛 노랫말처럼, 태초의 노래에 공명하고 반향했던 책 속의 한 구절들을 찾아내 다시 부르는 자의 노래, 그 노래를 듣고 그 걸음을 따라 읽으려는 자, 그런 나와 당신에게도 오늘 하루 축복이 있기를!


ㅡ<크리스채너티 투데이> 2013년 9월호에 기고한 책소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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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아껴봐 - 하나님의 스토리로 다시 쓰는 청춘 시나리오
김정태 지음 / 북인더갭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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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되는 인생? 그런 건 없어!

- 그분의 쓰시는 인생 이야기를 기대할 뿐



이 책은 행복한 청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발견한 젊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저자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이 책을 쓴 김정태(!) 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사와 국제학을 공부했고, 국내 유일의 유엔 산하기관인 유엔거버넌스센터에서 홍보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라는 책을 통해 스토리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한데, 전작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 신앙과 하나님 이야기를 이 책에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인 셈이죠. 내성적이고 말주변 없던 청년, 흔히 말하는 ‘스펙’이란 것도 없고 영어도 변변찮던 청년이 국제기구의 일꾼이 되기까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자칫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서 흔히 보게 되는 특별한 사람의 기막힌 성공담인 것 같습니다. ‘또 한 사람의 성공담, 기독교적 인생 훈수겠군’ 하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신앙인이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교회 안에 워낙 팽배하다 보니, 잘 믿으면 당연히 잘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이 우리 안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이(승리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따져보기도 전에, 좋은 직장을 가거나 유학을 떠나는 친구들을 볼 때면 내 인생은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고 그런 현실을 공고히 하는 설교와 책들도 많습니다. 다행히, 이 책은 그런 류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성공과 스펙 담론이 사회 전반을 넘어 교회까지 넘보는 현실의 벽 앞에 괴로워하는 청년들에게 그 현실을 뒤집어엎는 하나님의 비밀을 들려주는 신앙 선배의 내밀한 고백이랄까요. 그는 훌륭한 스펙을 쌓기보다는 위대한 저자이신 하나님이 쓰시는 인생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함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서 내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분의 이야기에 열정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청춘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그를 있게 한 것은 경력이나 시험점수보다는 섬김의 경험, 공동체 활동, 공감의 능력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인생의 달고 쓴 모든 경험이 하나님의 인생 이야기에서는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책의 부제가 ‘하나님의 스토리로 다시 쓰는 청춘 시나리오’인 이유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기억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행복했던 청년시절의 기억이고, 또 하나는 청년 때 꾸었던 꿈입니다. 우선, 행복한 20대의 시간입니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저도 대학시절 함께했던 공동체생활을 잊을 수 없습니다. 공동체가 좋았고 우선순위였습니다. 거기서 일생의 친구와 공동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나를 알아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났고(아내도 만났네요), 내가 누구이며,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했습니다. 인생을 사는 데 절실한 경건 훈련과 공동체 생활을 익혔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분이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회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충분히 몰랐지만, 공동체에 들이는 시간이 때로는 낭비 같고 손해가 아닐까 싶어 불안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 돌아보니 그때의 공동체 경험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인도하시고 빚으시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준 축복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던 인생의 ‘조각들’이 큰 그림으로 맞춰져 가는 것이 이제 조금 보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고백하는 것처럼 ‘세상의 스펙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이 참 성공(승리)의 비밀이며, “하나님을 아는 청춘은 비록 방황하더라도 세월을 아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그분의 뜻을 발견하는 가장 분명한 통로는 ‘공동체’인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청년 때에 갖게 된 확신과 꿈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을 떠올려 가슴이 뛰는 사람, 하나님의 이야기에 뛰어드는 사람이 청춘이라고 청년을 재정의합니다. 청년의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청년의 때는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20대의 생물학적 청년을 지나서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김회권 목사님도 늘 하시던 말씀이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이야기에 자신의 삶을 던진다면, 그는 나이에 관계없이 ‘청년’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용되는 3년은 하나님 없는 30년과 맞먹는 일을 한다고도 하지요. 인생을 허비하지 않기에, 세월을 아낄 수 있기에 그럴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청년의 때에 가졌던 꿈과 확신, 그때 드렸던 기도와 약속을 다시 기억해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앞으로의 인생에 포개어 보았습니다. 허락된 시간을 ‘청년’의 삶으로 살기를, 그분으로 인해 모험하는 인생을 살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원을 다시 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교본으로 삼기보다는 그분의 뜻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마다 독특한 여러분의 인생 ‘조각’ 속에서 그분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각 사람의 행복하고 슬프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들이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어떻게 더 큰 의미가 되는지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네 인생 이야기는 각자만의 독특하고 유일한 이야기이며, 대체할 수 없는 의미를 담은 아름다운 그림임을 발견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 이야기들을 서로 고백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고백하는 가운데 저마다의 이야기가 그분의 이야기였음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이겨내는, 세월을 아끼는 하나님의 청년으로 매일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ㅡ사랑누리교회 청년부 큐티지 <밥심>에도 실은 책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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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그램 - 내겐 너무 무거운 삶의 무게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수신지 지음 / 미메시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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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는 힘


스물일곱 아가씨의 암 투병기가 특별하게 다가온 건, 스물일곱이란 그녀의 나이, 그리고 그림으로 풀어낸 그녀의 고백 때문이다. 자칫 심각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그녀가 직접 그리고 써 내려간 이야기는 시종일관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아픔도 외로움도 숨기지 않지만, 절망과의 싸움조차도 무겁지 않게 그려낸다. 암 환자의 병상 일기에 특별한 사건은 없건만,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자신의 이야기를 잔잔히 풀어내는 고백의 힘이다. 20분이면 읽을 가벼운 책이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기적적인 치유나 간절한 기도의 응답 같은 것은 없다. 입원해서 퇴원하기까지의 시간을 복기해낸 담담한 고백만이 있을 뿐. 그런데 그 고백이 이야기가 된다. 특별하지 않은 시간이 각별한 인생이 된다. 들려줄 만한 의미가 된다. 투병의 시간도 소중한 인생이 되어 소중한 기억으로 각인된다. 지나쳐버렸을 기쁨과 슬픔, 가족과 친구가 자리를 잡는다. 아직 환자이지만 “인생은 계속된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내세울 만한 근사한 경험도 아니건만, 품고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의미가 된다.


병이 낫지 않아도,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기도 응답이 안 돼도 우리는 살아간다. 보통의 삶이 그런 것이라면, 그다지 근사하지 않은 우리 삶이지만 그냥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사는 길은 오늘의 내 이야기를 고백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삶일망정 누군가에게,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처럼, 시편의 시인들처럼 고백한다면 말이다. 우리도 책의 마지막 구절처럼 “어느새 봄이 와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미소 지을지도 모른다.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는 암 투병을 계기로 이 책을 썼으며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여러 병원에서 <나의 병원 일기>라는 릴레이 전시를 열었다고 한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ㅡ<크리스채너티 투데이> 2012년 7월호에도 실은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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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야코넬리의 영성
마이클 야코넬리 지음, 마영례 옮김 / 아바서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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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선물하고픈


6년 동안 편집자로 책을 만들면서 아내에게서 “이 책 좋다”는 평을 들어본 적이 많지 않다.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누군가의 손에 들려서 읽혀야 “좋다”는 평도 들을 텐데, 좋다고 하는 신앙서적은 하나같이 두껍고 어렵기 일쑤다. 하여 좋은 책인 줄 알지만 선물하기 어렵다.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 빠듯한 생활인에게 작정하고 정독해야 하는 책을 건넨다면, 무책임한 처사다.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괜찮은 책은 없을까? 어깨가 무거워 뵈는 교우에게 선물할 만한 좋은 책은 없으려나?


야코넬리는 유명 저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명저다. ‘명저’란 표현을 썼지만 고전다운 두께나 품격, 어려운 내용 같은 것은 이 책에 없다. 일반적 의미에서 명저는 아니다. 다만, 선택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파커 파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한문화 역간)를 권하는 것처럼, 은혜와 자유, 그분의 품이 그리운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에서, 그것도 자기 돈 주고 사서 전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에서 이 책은 유명하다. 개정판을 내면서 제목이 바뀌고(「뒤엉킨 영성」이란 옛 이름을 버리고) 겉모습은 산뜻해졌다. 오랜만에 선물할 만한 책이 생겼다. “이 책 읽어봐, 좋거든!”


ㅡ<크리스채너티 투데이> 2012년 8월호에도 실은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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