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그램 - 내겐 너무 무거운 삶의 무게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수신지 지음 / 미메시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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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는 힘


스물일곱 아가씨의 암 투병기가 특별하게 다가온 건, 스물일곱이란 그녀의 나이, 그리고 그림으로 풀어낸 그녀의 고백 때문이다. 자칫 심각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그녀가 직접 그리고 써 내려간 이야기는 시종일관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아픔도 외로움도 숨기지 않지만, 절망과의 싸움조차도 무겁지 않게 그려낸다. 암 환자의 병상 일기에 특별한 사건은 없건만,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자신의 이야기를 잔잔히 풀어내는 고백의 힘이다. 20분이면 읽을 가벼운 책이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기적적인 치유나 간절한 기도의 응답 같은 것은 없다. 입원해서 퇴원하기까지의 시간을 복기해낸 담담한 고백만이 있을 뿐. 그런데 그 고백이 이야기가 된다. 특별하지 않은 시간이 각별한 인생이 된다. 들려줄 만한 의미가 된다. 투병의 시간도 소중한 인생이 되어 소중한 기억으로 각인된다. 지나쳐버렸을 기쁨과 슬픔, 가족과 친구가 자리를 잡는다. 아직 환자이지만 “인생은 계속된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내세울 만한 근사한 경험도 아니건만, 품고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의미가 된다.


병이 낫지 않아도,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기도 응답이 안 돼도 우리는 살아간다. 보통의 삶이 그런 것이라면, 그다지 근사하지 않은 우리 삶이지만 그냥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사는 길은 오늘의 내 이야기를 고백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삶일망정 누군가에게,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처럼, 시편의 시인들처럼 고백한다면 말이다. 우리도 책의 마지막 구절처럼 “어느새 봄이 와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미소 지을지도 모른다.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는 암 투병을 계기로 이 책을 썼으며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여러 병원에서 <나의 병원 일기>라는 릴레이 전시를 열었다고 한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ㅡ<크리스채너티 투데이> 2012년 7월호에도 실은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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