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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득템, 론리 플래닛 중국, 1996년 출간된 제5판.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20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렸기에 색이 바래고, 너덜너덜 해지고, 곳곳에 메모가... 충분히 사용되었기에, 그래서 귀한 책의 운명.

 



20년 사이에 표지 이미지가 한자에서 만리장성으로 바뀌었다. 만리장성이 중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기는 하지만 (시계, 시간이란 의미의) '종' 자로 표지를 채운 이전 이미지가 더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론리 플래닛의 최근 표지 경향은 전반적으로 낯선 여행지의 신비감(exoticism)과 여행자의 심성을 건드리는 대중성(popularity), 그리고 리터칭을 거친 고급스런 이미지(high quality)를 전면에 내세우는 듯하다. 그 결과, 잡지 내지처럼 혹은 스마트폰 이미지처럼 평균적으로 예쁜 인상을 전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두 가지 문제를 낳은 듯하다. 오리엔탈리즘으로의 회귀, 철학이나 정신의 부재.

 

간단히 말해, 헤이하고 게으른 표지여서 '론리 플래닛'이란 이름을 빼면 허다한 책의 홍수 속에 묻힐 표지 같고, 20년 전 표지만큼 인상적이지도 어떤 정신의 아우라를 담고 있지도 혹은 의미의 탐구를 하게 만들지도 않는다는 것. 

 

홍콩의 어느 가게 문을 찍은 사진이라는 20년 전 표지 사진은, 여전히 강렬할뿐더러 왜 이 글자를 가져다 썼을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에서는 간체(钟)를 쓰기에 이제는 볼 수 없는 번체 鐘이란 한자를 표지에 배치함으로써 책은 어떤 상징성을 띠게 되고, 그 글자 속에서 오늘날 중국의 의미를 찾아보고픈 즐거운 궁금증을 유발한다.

 

중국은 그저 만리장성의 나라, 낭만적 여행지가 아니다, 장성에 가더라도 경험해야 할 중국의 진수는 따로 있다, 이런 메시지를 여행서가 담고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건 과한 일일까? 그래도 '론리 플래닛'인데, 이 정도 요구는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사회가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 20년 전에는 작은 글자가, 지금은 거대 건물이 중국이라고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ㅡ2016..3.2.Beij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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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년 전의 책을 구하기 힘들었을텐데, 이 책을 찾으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궁금합니다. ^^;;

주안이아빠 2016-03-03 18:21   좋아요 0 | URL
애들 학교에, 기증도서로 운영되는 나눔코너에서 눈에 띄어 싸게 가져왔습니다. 구하려고 애쓴 건 아니고요.^^ 20년 전 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무어라 썼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1. 도스또예프스끼, 늘 읽고 싶지만 잘 안 읽게 되는 책. <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지 않은 것들>의 저자는 그를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를 "읽지 않고는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논할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의 "문학을 19세기 러시아 문학으로만 생각하고 읽어서는 안 된다." 그가 오늘날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란다.



2.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인용. 도스또예프스끼가 열여덟 살 때 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 "인간은 신비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평생에 걸쳐 이 문제를 푼다면 시간을 낭비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도스또예프스끼는 인간의 신비를 풀기 위해 펜을 든 작가이다"라고 정의 내린다. 시베리아 유형 전과 후로 그의 문학을 나누어 볼 때 "가장 큰 차이점은 기독교 신앙의 깊이에서 나타난다."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매일 복음서를 읽은 도스또예프스끼에게 복음서를 선물한 폰비지나에게 보낸 편지. "나 자신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시대가 낳은 아이입니다. 오늘 관 뚜껑이 단히는 순간까지도 불신과 회의의 아이입니다....... 만약 누가 나에게 그리스도는 진리 저편에 있고, 실제로 진리란 그리스도 외부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해도 나는 진리 곁이 아니라 그리스도 곁에 머무를 것입니다." 저자는 뜻밖에 신을 말한다. 이 책에서 예상치 못했던, 더군다나 일본인 저자에게서 기대하지 못했던.


3. 저자는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정리한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도스또예프스끼를 정신 분열자로 보고 그 입장에서 많은 도스또예프스끼론을 써왔다. 그러나 7, 8년 전부터 역시 도스또예프스끼는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솔직히 인정하게 되었다.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신을 의심하는 신앙, 신에게 반항하는 신앙도 신앙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였다." 조심스럽게 '신'을 인정하고 도스또예프스끼의 신앙을 받아들인다. 그래야 비로소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4. 허나 저자가 말하는 "신을 의심하는 신앙, 신에게 반항하는 신앙"은 기독교의 전통이다. 저자는 이런 신앙이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고 전제하였지만, 성경의 신앙은 이런 이들이 다분하다. 신의 계시에 회의를 품은 아브라함, 모세부터 시작해서 예언자의 전통이 그렇고(요나, 이사야, 예레미야), 지혜서(욥기, 시편)의 전통이 그러하다. 저자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 아니, 보통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 같는 보통의 오해의 전형적인 예다. 그러나 슬프게도, 현 시대의 기독교인들도 자신의 신앙을 이런 식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성경의 신앙은 '의심'하고 '반항'하며 '불신'과 '회의'를 수용한다. 신앙의 당연한 일부로.


5. 일찍부터 서양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로망으로 삼았던 일본인들은, 단지 그 외양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한 이 같은 연구서가 나온 점이 그렇고, 단테의 신곡에 대한 해설서도 그렇다. 일본 서적은 실용적이고 깊이가 없다는 인상평은 이 두 권을 읽으면서 자취를 감춘다. 그들에게는 문화, 교양, 인문학 저력이 있다. 우리에게서 이런 류의 책을 기대할 수 있는가? 우선 우리에겐 이런 류의 책 자체가 부족하다.


6. 저자는 우선 <죄와 벌> 읽기를 권한다. 충분히 읽고픈 마음을 일으키는 책. 저자 시미즈 마사시는 도스또에프스끼를 읽게 하도록 동기부여 하는 데 충분히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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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고, 그 내용을 한눈에 보여준다.  

북디자인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디자인이 전부라고 하겠다. 책은 포장과 가장 거리가 먼, 컨텐츠 중심이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책만큼 포장이 전부인 제품이 또 있을까. 대부분의 책이 표지와 제목만으로 그 운명이 결정되지 않던가.

새로 출간된 펭귄 클래식스 하드커버 시리즈의 구성은 그다지 새롭지 않지만, 그 장정만으로도 소장하고픈 욕구를 일으킨다. 디자인은 독서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2009년 10월 출고분인 이 시리즈는 권당 13불 정도면 아마존에서 주문 가능하다. 교보에도 들어올지, 그 정도의 시장 조사와 센스가 외서 분야에 있을지... 펭귄 클래식스의 대부분을 교보에서 염가에 구입한 나로서는, 우선 기다려 보기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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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루니를 처음 본 것은 '쓰리 킹스'라는 영화 시사회였다. 그의 짙은 눈썹과 눈빛에서, 잘생겼다는 인상보다는 느끼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듯싶다. 

그런데 (그나 나나) 나이가 들면서, 그의 영화는 내게 '머스트 시' 아이템이 되었다. 그가 무슨 대작을 하거나, 성형수술을 한 것도 아닌데, 나는 그의 영화와 그가 좋아졌다. 이 역시 (그와 내가) 나이가 들면서 살아온 삶에 어떤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위트와 문학과 정치성이 담긴 그의 발걸음이 결국 이 영화에서 애니메이션과 만난는가 보다. 그의 이름만으로 보게 된 예고편에서, 그의 (민주당 지향적인--특정 당의 지향보다는, 미국이라는 지형에서 민주당이 상징하는 가장 긍정적인 가치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정치색, 곧 개발과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해법이 느껴졌다. 

설령 그런 것이 없더라도, 이제 내가 좋아하는 조지 클루니와, 중학교 시절부터 동경했던 메릴 스트립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더군다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브로큰 플라워'의 빌 머레이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는 여타의 애니메이션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졌다. 

외화의 "우리말 더빙" 상영을 주장하고 옹호하는 나로서는(우리나라에서는 실현 가능성 없는 꿈이지만), 이 영화만은 고민이 된다. 클루니와 스트립, 머레이의 음성을 포기한다면, 이 영화의 매력은 반감, 아니 그 이상일 터. 그래도 딸아이 데리고 가서 보려면(그렇게 볼 텐데), 우리말 더빙이 되어 반드시 상영되기를, 기대하고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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