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바꾼 한 구절
박총 지음 / 포이에마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하늘을 향해 열린 125개의 창


최근 <인간과 말>을 번역한 소설가 배수아는, 이렇다 할 스토리 없는 책을 타인에게 권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묻는 <욕망해도 괜찮아>의 김두식 교수 질문에 답하여, 책의 첫 문장을 읽어주거나 읽으면서 밑줄 친 부분을 읽어주면 좋다는 경험에서 우러난 슬기로운 답변을 한다. 그 진수를 직접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책과의 강렬한 만남을 예기(豫期)해줌을 아는 자의 지혜이리라. 책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한번 해봐”, “일단 먹어봐”, “와보라니까” 같은 말을 할 때가 있다. 좋은 것일수록 이런저런 설명과 해설이 불필요하다. 그럴 때면 그저 “한번 해봐” 하는 것이 최선의 권함이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한번 읽어봐, 정말 좋아” 하는 것 이상의 소개가 불필요한 책.


저자 박총은 서문에서 책의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글쓰기도 우리 세대에 걸맞은 글쓰기, 우리 시대를 배려하는 책쓰기로 독자를 섬길 수도 있지 않겠나. 그렇게 해서 생각한 것이 반짝이는 구절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 나 혼자 전율하고 희구하기에는 아까운 한 구절, 마음에 ‘불을 지르고’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는 그 한 구절을 모아 엮어보자는 것이었다.” 전작 <밀월일기>와 <욕쟁이 예수>에서 독자의 공감과 저항과 방향을 동시에 일으킨 바 있는 저자는, 이번에는 우리 시대 독자들의 필요에 복무하는 책을 내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읽고 밑줄 친 글들, 그의 마음과 생각에 선연한 자국을 남긴 문장들, 그리하여 그의 “삶을 바꾼” 책들에서 한 구절씩을 불러 모아 거기에 자신의 묵상을 보탠 125편의 글 모음. 그런데 이 책의 매력은 영혼에 떨림을 주는 전율할 말한 글을 한데 소환해 놓았다거나 그렇게 소환된 글의 폭넓음이나 그것이 영혼에 일으킬 파장의 진폭만에 있지 않다. 세삼 눈길이 가닿는 것은 다름 아닌 ‘총 자신의’ 글이다. 총의 “마음에 불을 지르고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는” 구절들에 덧붙여진 총 자신의 묵상글은 다시 “마음에 불을 지르고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는” 또 하나의 구절들로 변모한다. 그리하여 또 하나의 아포리즘이 되고, 팡세가 되고, 에세가 되는 것이다. 하여, 총이 인용한 텍스트를 따라가며 오! 하고 무릎을 치다가도 그에 화답하는 총의 묵상글에 아!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빛나는 모든 것을 모으려다 그 자신이 빛나는 것의 일부가 되어 버린 자를 우리는 발견하기에 이른다.


사실, 총의 글은 감동적인 책 소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빛나는 한 문장과 한 인간의 영혼이 부딪혀 빚어내는 화음이자 파열음이며, 의미를 찾는 영혼을 깨우는 종소리, 현재의 고단한 삶을 찬미하는 인생 찬가, 불의한 세상 질서에 눈감지 말기를 속삭이는 혁명가, 인간이 된 신의 눈으로 세상을 살피는 예언자의 노래다. 그가 찾아낸 빛나는 한 구절, 그리고 거기서 싹틔운 중년 인생의 관찰과 고백은 낙담해 쓰러져 죽기를 희구하는 영혼을 만지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고 인생 여로를 걸어가게 해주는 “엄마가 해준 밥”이다. 다시 서문에서 총은 “책 읽기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기를, 뭇 책과의 해후가 벌어지기를, 그 한 구절이 여러분의 삶도 바꿀 수 있기를” 하고 책의 목적을 소박하게 제한하지만, 이 책의 어루만짐이 독자의 삶을 어디로 이끌고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허나 그것이 종교적 열심에 불을 지피기보다는 인간이 된 신, 예수 그분을 만나고 싶어 하는 존재의 열망에 부싯돌을 가할 것임은 분명하다. 사랑에 빠진 자, 불안하나 행복하다. 사랑에 빠지지 않은 자, 안전할지 모르나 행복도 없다. 이 책은 독자를 휘몰아치는 사랑의 열정 속으로 끌어들일 불온한 선동가이자 주위 사람들의 몸 녹일 불을 일으킬 작은 불꽃이다. “이 세상이 창조되던 그 아침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 했던 옛 노랫말처럼, 태초의 노래에 공명하고 반향했던 책 속의 한 구절들을 찾아내 다시 부르는 자의 노래, 그 노래를 듣고 그 걸음을 따라 읽으려는 자, 그런 나와 당신에게도 오늘 하루 축복이 있기를!


ㅡ<크리스채너티 투데이> 2013년 9월호에 기고한 책소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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