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고지를 바라보고 있는 <왕의 남자>의 흥행요인은 뭘까? 나 역시 이 영화에 홀딱 반했다. 나는 이 멋진 시나리오가 저예산(44억)으로 제작됐다는데도 또 한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만약 영화가 스타급 배우와 화려한 조명으로 기름지게 찍혔다면, <왕의 남자>가 주는 진한 감동은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 역을 맡은 감우성에게 "이 영화의 흥행요인이 뭘까요?" 라는 질문을 보냈다. 무관심 속에서 250여개 극장에서 개봉했던 <왕의 남자>가 이렇게 흥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관객의 힘'이 컸다고 감우성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감독과 배우들에게 공을 돌린다.
지금 호주에서 신혼여행 중인 감우성이 출국 전에 맥스무비에 글을 하나 보내왔다. 감우성이 직접 말하는 영화 <왕의 남자>의 흥행요인이 그것. 미용실에서 감우성이 작성한 것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전한다.(정리:김규한 기자)
1. 씨네월드 장원석 실장 - 그의 제안으로 인해 모든 것은 시작됐고 탄생되었다. 만약 그의 제안이 없었더라면? 항상 우리끼리 만나면 농담 섞어 모든 공을 원석씨에게 돌리지만 그는 늘 감독님께서 이번 기회에 모든 빚을 탕감하시길 바랄 뿐이란다. 참 겸손하고 인간성마저 좋다. 진정한 이 감독님의 충신이다. 흐뭇하고 질투 난다.
2. 이준익 감독님 - 80점짜리 영화를 90점으로 이끄셨다. 전북 부안 촬영지 인근 숙소, 밤샘 촬영 끝내고 아침에 숙소로 들어왔는데 배가 고파 잠이 오질 않는다. 제과점에 가기 위해 비상구 계단으로 내려가다가 감독님과 마주쳤다. 양손에 쟁반 가득 빵이 담겨 있었다. 감독님 왈 “우리 새끼들 배고파서 잠 안 올까봐 먹일려고” 그러시더니 뒤도 안 돌아보구 뛰어 올라가신다. 그럼 난 뭐지? 사실 빵을 넉넉히 사서 감독님 방에 갈려 했는데 삐져서 혼자 다 먹었다. 덕분에 그날 밤 촬영장에 얼굴 빵빵해 져서 갔다. 역시 인생 연륜 40단 노하우 대단하시다. 왜 그리 스탭과 배우들에게 좋으신지 짐작가는 대목이다. 현장 분위기가 좋을 수 밖에.. 이 영화는 성공할 수 밖에 없고 성공하기 위해 달려왔을 뿐이다. 정말 확실했다.
3. 음악 - 음악은 영화의 목소리다. 개인적으로 작품 완성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음악은 말이 필요 없다. 들어보면 안다. 이병우씨의 노력과 열정에 대해선 말할 필요가 없다. 들어보면 안다.
4. 조연배우 - 연기 좀 한다는 사람들의 실력은 깻잎 한 장 두께 차이일 뿐이다. 난 최소한 연기자들에 대해선 칭찬에 인색한 편이지만 이번 작업에서 만난 조연배우들은 정말이지 깻잎머리가 잘 어울리는 분들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연기는 화합이지 경쟁이 아니다. 간혹 만나게 되는 남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연기자를 볼 때마다 안쓰럽지만 이번만큼은 모두가 자신의 위치를 알고 화합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아닌가? 해진아! 내 말이 후졌니?
5. 정진영 선배 - 난 알고 있었다. 정말 이 영화의 딱은 진영 형님이라는 것을… 선배란 이유로 그동안의 행적을 유심히 관찰해 온 나이지만 솔직히 관객의 입장에서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실력의 문제가 아닌 기회의 문제였던 것이다. 확실히 이번 영화는 진영 선배에게도 절호의 찬스였고 로티플이었다. 형님도 이젠 남들처럼 찬스를 잘 활용하슈!
6. 강성연 - 그녀는 나를 보고 놀라워했지만 나도 그녀를 보고 놀라워했다. 내가 러셀 크로우라고? 내가 러셀이면 넌 안젤리나 졸리다. 이번 기회로 중년 여배우들에게 희망의 사례가 될 수 있는 리드 역할을 하기 바라며 다음엔 양귀비가 되보는 건 어떨까?
7. 이준기 - 준기 신드롬의 여파는 대단했다. 추측컨대 관객 30만은 이준기를 보러 온 관객이지 싶다. 대단하다. (종합운동장 5곳에 꽉 찬 숫자가 이준기를 외쳐댄다) 나를 보러 온 관객은 만 명도 안 될걸. 나머지 수치는 왕의 남자를 보러온 관객임을 생각할 때 간과해선 안 될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영화의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땐 스타 파워가 작용해 봐야 최고 30만! 이마저도 보장받을 수 없다.
8. 관객 - 서론이 길었다. 흥행요인이 뭐냐구? 당연히 관객이지. 뒤에서 열심히 홍보해주신 관객 여러분을 생각하면 정말 감동이다. 자꾸 눈물이 난다. 관객과 배우가 서로 감동을 주고 받는 경우가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관객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읽어야 흥행도 예측가능한 일임을 요새 극장 앞을 지나가는 개들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