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먼지를 털어낸 책에서 푸른 곰팡이 냄새가 났다. 조심스레 책장을 열다보면 ‘사랑하는 아내에게’라는 빛바랜 글씨도 만났다. 때로 십수년 전 누군가가 책갈피에 끼워놓았던 네잎클로버를 얻는 행운도 있었다.
한때 먼지 풀풀 날리는 청계천 고서점을 사금(砂金) 캐듯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채석강 바위처럼 켜켜이 쌓인 수만 권의 책들 사이를 헤집는 산삼 캐는 심마니로 살았다. 때로 금서(禁書) 한 권 챙겨들고 죄인처럼 잠행(潛行)하여 자취방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한 그릇 자장면 대신 샀던 한정판 시집의 책장을 넘기면서 행복하고 행복했다.
어느날부턴가 세상엔 책보다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책장을 넘기면 손을 베일 것 같은 호화양장본의 책들도 넘쳐났다. 총천연색의 세상은 검고 칙칙한 세상을 한순간에 쓸어버렸다. 청계고가가 철거되고 맑은 하늘이 드러난 오늘. 그 많던 헌책방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위태롭게 남아 있는 헌책방엔 철지난 교과서만 ‘가갸거겨’ 하며 뒹굴고 있었다. 그 모습 그대로 박물관으로 옮겨도 좋을, 추억의 헌책방.
〈사진 노재덕 포토에디터|글 오광수 주말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