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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전문가인가?'... 이 물음에 쉽게 '그렇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전적으론 어떤 한가지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한 가지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물론 요즘은 특정 분야뿐만 아니라, 각각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인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전문가'라고 하면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 흔히 '사' 자가 들어가는 돈 잘 벌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거나 대학교수, 동시통역사등 극히 제한적이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 늘상 전문가가 되야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 20대의 나는 전문가가 되길 꿈꾸며, 전문가가 되는 것이 마치 지상 최대의 목표인양 생활하기도 했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은 이루어진다지만, 동시에 어떤 소외감과 결핍감을 갖게도 한다. '전문적' 혹은 '전문가'라는 말은 그렇게 되고 싶은 무엇이지만 동시에 주눅들게 하는 무엇이 되었다. 지금 2005년에도 어떤 이들은 전문가의 중요성을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의 소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 행운이 따르길 바란다.
'헌법의 풍경' 이 책은 '전문적인 너무나 전문적인' 그래서 모두를 주눅들게 하는 '법'과 '법을 다루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마운 책이다. 그저 남의 일처럼 여겼던 '법'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게 되서 고맙고, 무엇보다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법이 아니라 국가라는 괴물로부터 평범한 우리들을 지켜주기 위한 도구로서의 법이 어떻게 다뤄져야 하며, 그 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을 수 있음을 발견하게 해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전문가 컴플랙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 질 수 있었기에 더더욱 의미가 있는 책 읽기가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오랜동안 법조인으로 활동해 오신 숙부님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또 지금도 사시 패스를 위해 머리를 싸 매고 있을 사촌동생들에게도 꼭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쩜 나 보다 먼저 읽었을 수도.......)
이 책은 저자 김두식과 법학이 어떻게 연을 맺어 왔는지에서 부터, 헌법이란 것의 적용과 해석에 있어 정답은 없으며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대적 진리 찾기임을 강조하고, 국민을 위해 만들어진 헌법이 어떻게 국가라는 괴물에게 이용당하는지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또 순수한 열정과 큰 포부를 가진 젊은이었을지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내면화된 특권의식을 지닌 법조인으로 재탄생되는지를 보여주며, '인정한다 그러나' 식의 비겁한 관용의 모습이 아니라, 죄가 있는 자에게도 그 이상의 고통을 주지않기 위한 인간의 존엄성을 놓고 고민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모습이 헌법의 정신임을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기초적인 '진술 거부권'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법'이란 것은 소수의 특권층과 관련 된 무엇이며, 평생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처럼 법원에 갈 일이 없기만을 바래 왔던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법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고, 특별한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법'이 존재하는 것임을, 나아가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뭔가 요구할 수 있음을 실질적으로 이해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살아 있는 글이다. 지혜의 증가는 불만의 감소에 의해 정확히 측정될 수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앎'은 때때로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기도 한다.
"어느 시대에도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모든 인간은 노예와 자유인으로 분할된다. 왜냐하면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자는 노예이기 때문이다." - 니체의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에 나오는 글이다. 하루의 3분의 2 아니, 3분의 1도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자유롭지도, 현명하지도 못한 우매한 나이지만, '전문'이란 말 앞에 기죽지 말며, 생존을 위한, 그 집단이 갖고 있는 특권을 소유하기 위한 '전문가'이기 보다는 모두가 평등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 아마추어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