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고 너무 발버둥치며 살아왔습니다. 너무 긴장하며 살아왔습니다. 지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비굴하지 않게 살아야 하지만 지지 않으려고만 하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 제 피붙이한테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면 좀 어떻습니까. 사람 사는 일이 이겼다 졌다 하면서 사는 건데 절대로 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우리를 붙들고 있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 강박에서 나를 풀어 주고 싶습니다. ....................................................................................................................................................

폭력이 아니라 사랑에 지고 싶습니다. 권력이 아니라 음악에 지고 싶습니다. 돈이 아니라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에 무릎 꿇고 싶습니다. 선연하게 빛나는 초사흘 달에게 항복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동안 알맞게 익기만을 기다리는 빵이었습니다. 적당한 온도에서 구워지기만을 기다리는 가마 속의 그릇이었습니다. 알맞고 적당한 온도에 길들여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오븐 같은 공간, 가마 같은 답답한 세상에 갇힌 지 오래되었습니다.....................................................................

적당히 얻은 뒤부터는 나를 방어하는 일에만 길들여진 건 아닌지요....."

좋은생각 2월호에 실린 도종환 시인의 글입니다.. 넉~넉하게, 누구에게나 하루쯤은 져주고 싶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