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지나간다
지셴린 지음, 허유영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 인생 백 년 사는 동안, 하루하루가 작은 문제들의 연속이었네. 제일 좋은 방법은 내려버려두는 것. 그저 가을바람 불어 귓가를 스칠 때까지 기다리세" (56p)

어느 정돈, 사는 일에 구력이 붙어 작은 일에는 흔들리지 않아도 될 법한 나이 건만, 아직도 유치하리만큼 사소한 일에도 마음의 평화가 깨지기 일쑤다. 1911년생, 우리나이로 99세, 중국에서 ‘나라의 스승’이라 일컬어지는 노학자 지셴린 선생의 글에서 조금이나마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인생을 대하는 방법을 배워본다.

“ 난 그 누구도 - 날 때렸던 사람들까지 포함해 - 원망하지 않았고, 또 누구에게도 보복한 적이 없다. 내가 아량이 넓어 세상 모든 것을 너그러이 용서한 때문이 아니라, 세상사를 꿰뚫어보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더라도 그들보다 더 잘 행동했을 거라고 장담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 (67p)

문화대혁명 당시 외양간을 뜻하는 ‘우붕’에서의 수감생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과 인사 한마디 나눌 수 없었던 고독하고도 온갖 핍박을 받아야 했던 10여년의 세월을 겪은 그가 보여주는 사람에 대한, 세상사에 대한 혜안이다. 조금이라도 날 괴롭히고 손해를 입힌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입장을 헤아려 보기 보단, 험담을 하거나 심하게는 어떻게 하면 되돌려 줄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보게 되는 쪼잔 하고도 어리석은 나에게 깨달음과 위안을 준다. 그래  나라고 그들보다 더 잘 행동했을까?!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정체성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성이다. 그렇기에 내 어머니의 삶은 때론 내가 가야 할 곳이기도 했고, 때론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길이기도 했다. 솔직하게 후자일 때가 더 많았다. 늘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단,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 “나만 참으면 되는데 그럼 집안이 다 조용할텐데...”하며 입다물고 조용히 살아오신 어머니, 사실 지금보다 훨씬 무식해서 용감할 수 있었던 그 시절엔 엄마의 삶이 참 바보스럽게 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내게 무시하기 어려운 밥 그릇 수가 보태지고, 가정을 이루고 엄마라는 자리에 서 보니 엄마의 인내는 결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의 모습만은 결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외양적으로 훨씬 강하고 멋져 보였던 아버지보다 더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삶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 가정은 반드시 아늑해야 하며, 아늑함은 서로의 노력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늑함을 만드는 방법은 특별하지 않다. 진심으로 대하고 참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105p)

100살을 바라보는 지셴린 선생은 자연 죽음과 삶, 또 젊은 세대와의 세대차이에 대해서도 여러 편의 글을 통하여 자신의 인간적인 고민과 의지를 밝히고 있다. 꽉 막힌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자신도 어느덧 노인의 심리라는 것이 있어 젊은이들이 하는 행동들이 못마땅하게 느껴진다고 고백하면서도 세대차이라는 것이 있어 인류가 진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염라대왕과의 거리는 남녀노소, 인종을 불문하고 똑같기에 죽음에 대해 고민하거나 늙음을 한탄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도연명의 시 ‘신석’이 자신이 마음에 새겨둔 삶의 자세라고 말한다.

“ 커다란 조화의 물결 속에서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게나.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버리고 다시는 혼자 깊이 생각 마시게. ”

한참 재롱을 부리는 사랑스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또 다른 생명체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요즘 난 죽음이 두렵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나의 아이들에게 꽤 오랫동안 든든한 무엇이 되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삶도 죽음도 사람의 소관이 아니므로 인간인 우리가 현명하게 잘 사는 방법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혹 떨칠 수 없는 고민과 괴로움이 있다면 잠시 한가하게 산책하듯 ‘다 지나간다’ 제목부터 위로가 되는 노학자의 글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