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 카이스트 윤태성 교수가 말하는 나를 위한 다섯 가지 용기
윤태성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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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하고나면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내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갖고 출입증 카드를 갖고서 당당히 걷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라 믿었기에 합격 발표를 받고 나서 떨리는 가슴을 안고 들어선 사무실은 이제 나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세상이라 굳게 믿어왔다. 그러나 그 세상에 나아가는 순간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하루하루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순간순간의 고비를 넘기는 것과 같았던 6개월을 넘어 1, 3년을 지나 이제 5년차로 넘어가고 있으니, 나름대로는 꽤나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지만 매 순간마다 지금 나의 이 길이 맞는 걸까, 과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은 늘 가슴 속에 담아 두고 있었기에 이 모든 것들을 어디서 풀어야 할까, 라는 고심을 하게 된다.

 세상에 나와 내 스스로 돈을 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한 상념은 물론 앞으로 나는 이 일을 가지고 평생 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지금 하는 것이 맞는 건인지 등등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 수 없이 해 보았을 질문들을 이 <한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에서 마주하면서 '이런 고민들을 했었는데'라며 당시의 마음가짐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들에 대한 조언도 마주하게 된다. 이제 겨우 발걸음을 뗀 현재의 나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를 다독이며 그 동안의 나를 위안하며 또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상처준 것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상처 받은 것에 대해서는 또렷하게 기억하는, 그 안타까운 습관이 몸에 베어버린 것인지, 그다지 어린 나이에 취업을 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래처의 담당자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때론 그들이 무한 ''의 위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도 안되는 트집이 잡힐 때면 울화가 치미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의 위치에 있는 나로서는 늘 먼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하기에 이렇게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하는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곤 하는데 이러한 문제는 비단 나만 겪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집을 당하면서 느낀 모욕감은 내가 성장하는데 비료가 되었다. 나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갑질을 당하는 것은 내가 약한 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말단사원이라도 만약 그 현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내가 아니면 현장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상황이라면 그 간부는 나에게 안경을 벗으라고 소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내가 강해져야겠다는 강한 다짐이 생겼다. -본문

 나이가 어려서, 그저 내가 있는 자리가 ''의 위치에 있는 것이기에 그들이 벌이는 갑질에 대한 분노만을 표출하고 있던 나에게 그들의 갑질에 대해서 지적하기보다는 일단 내 스스로의 능력을 더 키워 그들이 감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을 키울 것을 조언하고 있다. 그러니까 갑질을 당하게 된다면 '내가 이 부분이 부족해서 그렇구나'라는 것을 간파해서 그 부분을 더 채울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들이 갑질을 했던 부분에 대해 되짚어 보면, 계약서에 관한 사항이나 회계상의 문제에 대한 것들이었음을,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기에 그들이 표출한 불만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영원한 갑이나 을을 없을지이니, 나를 채우며 내공을 다지는 것. 그것만이 나의 힘이 되어 스스로 갑의 위치로 만들게 할 것이다..



 

업무상 영어로 메일이 나가야 하는 일이 당연했던 것을 입사한 후 처음 알게 된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저 업무를 하는 것이라고만 알았지, 그 업무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던 나로서는 영작이 필수라는 현실이 막막했기에 입사 한 이후에 전화 영어를 계속하면서 감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필요했음은 물론 어느 순간 너무 안일해지고 있는 나를 다독이기 위해서 매년 자격증을 하나씩 공부하려 하곤 있지만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느 새 몸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져 무엇을 하기도 버겁기 마련이다. 독서실을 다니겠다며 끊어 놓은 한달권도 열흘을 고작 넘기고서야 그만 두었기에 자기 계발이 필요하는 것을 알면서도 늘 다음에, 다음에를 미루고 있는 나에게 저자는 일침을 가하고 있다.

 공부는 투자이며 보험이다. 인생산맥을 실현하려면 다음 산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대부분 자신의 일에는 의지가 약하니까 스스로에게 겁을 주는 방법도 쓴다. 이 공부를 안하면 나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본문

 굼벵이마저도 기기 위해서 그 재주를 얻기 위한 지식이 필요하듯이 당장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내다보고서 자신의 삶을 계획하기 위해서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직장인들도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매일 귀찮다며 내일, 내일을 외치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이기만 한다. 아직 가야할 길이 한참이거늘 길가에 널부러져 잠드는 토끼마냥 진득하니 먼 길을 바라보지 못하는 나를 채근해본다.



 

 여자라면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문제인 일과 육아의 병행에 관한 고민은 이전보다야 문턱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전해지는 체감의 무게는 묵직하기만 하다. 주변 지인들이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녹록지만은 않은 이 문제에 대해서 그가 들려주는 해결방안은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사회에 계속해서 함께 해야하는 우리에게는 꼭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목차 속의 질문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새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보았을 문제들에 대해서 그가 자신이 경험했던 것들을 기반으로 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도라면 늘 나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문제를 또 다른 시선에서 보게 되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또 답답해 지는 문제들이 내 앞에 드리울 때면 조용히 다시 펼쳐보게될 것 같은 그의 이야기가 있어 한 동안은 든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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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 유인경저


 

 

독서 기간 : 2015.01.24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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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 - 왕실의 운명을 건 최후의 도박, 바렌 도주 사건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이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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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의 이름 만큼은 익히 들어온 나에게 있어서 떠오르는 것은 루이 16세의 왕비이자 아름다운 여성이었다는 것, 그 아름다움은 그녀에게 독이 되어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들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안타까운 삶을 살다 갔다는 것, 굶주림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 등, 그야말로 단편적인 것들 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바렌 도주 사건>을 벌였다는 것 조차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만약 이 날의 도주가 성공했더라면, 그녀에게는 어떠한 삶이 펼쳐지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책을 덮으며 하게 된다. 그야말로 그24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듯한 숨막히는 그날의 사건을 마주하며, '!'라는 신음 밖에 낼 수 없었던 그 시간을 오롯이 견뎌야 했던 그녀에게는 얼마나 한스러운 시간이었을까. 검은 상복을 입고서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이들에게 처연하게 '이제 내 피만이 남는군요. 거두어가세오. 하지만 나를 오래 고통스럽게 하지는 마세요. 라고 말하는 그녀가 안타깝게만 보인다.

 

왕비는 폐위 당한 것과 마찬가지 처지가 되어 비로소 진정한 왕비가 되었다. 내몰리고 절망하고, 그럴수록 더욱 왕권을 위해 싸우려는 결의를 다지고, 아이를 지키는 강한 어머니로서 사랑에 설레는 여성으로서, 마음과 정신에, 몇 겹이나 되는 미묘한 뉘앙스의 주름을 겹쳐, 깊은 매력을 자아내고 있다. 

 애초에 앙투아네트는 용모가 단정하기보다 그 훌륭한 자세와 우아하면서도 발랄한 태도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던터라, 움직임을 보여줄 수 없는 회하에서는 그 아름다움을 붙잡을 수 없다고들 했다. 하지만 쿠차르스키슬픔에 빠진, 젊음의 잃어가는 그녀의, 저녁노을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본문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그럼에도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서는 결코 굽히지 않던 루이 16세의 모습을 바라봐야만 하는 나로서는 볼기짝을 꼬집어 주고 싶을 만큼이나, 그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리 테레즈와 루이 샤를과 함께 프랑스를 떠날 수도 없었지만 유약한 루이 16세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점점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민중들과 의회의 모습들을 알아차리고 있었기에 페르센과 함께 도주를 계획하게 되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지막히 알게 된 왕은 따라 세번 이나 그날의 결정을 미뤘다 결국 운명의 6 20일의 서막에 오르게 된다.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날을 준비했으나 실제 실행하는데 있어서는 늘 머릿 속에 그려왔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문제들의 그들을 당면하게 된다. 루이 16세가 잠들기 전, 그에게 보고를 명목으로 감시를 하고 있는 파라예트의 눈을 피해 마차에 오르기는 했으나, 앙투아네트는 그들에게 들킬 까 마차에 오르는데 30분 이상이나 지체하게 되는데 어렵사리 마차에 오른 그들은 이제부터 코르프 남작부인과 두 딸의 모습으로 숨막히는 여정이 시작된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코르프 남작부인!"
다시는 돌아보지 않고 도로를 벗어나 곁길로 달렸다.
 

페르센은 이때의 일에 대해 '왕은 나와 함께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라고만 썼다. 거기에 담긴 노와 후회가 뒷날 거듭 뿜어나와 그를 괴롭혔다. 왜 좀더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던 걸까. 왜 몰래 마차를 뒤따라가지 않았던 걸까. 그랬더라면 사태는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본문


 페르센은 파리를 무사히 빠져나가고 샬롱을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 그리고 최대한 신속하게 이 모든 구간을 지나오는 것을 최대한의 목표로 하려 하고 있었다. 스웨덴의 외교관으로 있던 그에게 프랑스 국왕을 탈출시켜야 하는 의무 따위는 없었다. 그가 이 모든 위험을 떠안으려 한것은 오롯이 앙투아네트를 향한 연정때문이었으나, 이것을 알고 있던 루이 16세의 질투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오판한 왕의 무지함이었을까. 파리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시점에서 루이 16세는 페르센은 덴마크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고 있었고 이 모든 계획의 주축이 되었던 그가 빠져버린 그들의 계획은 한 쪽 날개로 비상해야만 하는 새처럼, 스스로 죽음의 길로 내몰고 있었다. 물론 루이 16세가 자신의 이 판단이 모두를 위험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아마도 한참 후의 것이었을 게다. 페르센이 사라진 순간 모두가 걱정의 소용돌이에 빠졌으나 루이 16세 만은 더 없이 평온했으니 말이다.

 

 그들이 지금 가고 있는 길을 도망을 위해 가는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중반에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마치 소풍을 나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매 역참에서 쉬었다 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확신한 루이 16세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느긋하게 경치를 구경하는 등, 그야말로 안일한 태도를 일관하고 있다. 물론 이 귀중한 시간들은 페르센에게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으나, 이미 그는 그들의 곁에 없었고, 루이 16세가 이끄는 그들의 마차는 약속시간을 5시간이나 넘겨 버렸기에 그들을 기다리는 이들에게도 오늘은 보물이 배달되지 않는다, 라는 헛된 정보를 흘리게 하는 오점이 되고 만다. 

 

 듣고 있는 동안, 이 계획은 도저히 성공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루이의 비관론주의는 흡혈귀처럼 의욕이라는 의욕, 반론이라는 반론을 죄다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토록 기운 넘치던 라데조차, 마침내 풀이 죽어 머리를 숙였다. -본문

 

 바렌을 넘어서기만 하면 몽메디이며 몽메디에 다다르기만 한다면 그들은 새로운 법을 공표하고서 그들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바렌을 들어가는 초입에서 또 다시 루이 16세는 시간을 지체한다. 아니, 그들이 하루밤을 묵어야 했던 그 순간, 창을 통해서 탈출을 했더라면 그들에게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루이 앙투아네트의 것이 아니었다. 이전부터 수 많은 부채를 가져온 왕실의 적자는 오롯이 그녀가 생산해 낸 것처럼 보여졌으며 당시의 민중은 그 책임을 물, 누군가가 필요했으니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든, 국경을 넘는 것만큼은 막아야만 했으니 말이다. 수 많은 한숨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이 운명의 24시간이 그녀에게 다시 주어진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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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샤우의 장미 / 슈테판 츠바이크저 


 

 

독서 기간 : 2015.01.22~01.2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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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25 0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습지요.희대의 악녀라 알던 앙투아네트..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의 것이라 던 것을 증명하듯 그동안 오류와 지독한 미움의 세월 속에 묻혀있다시피했는데..제 작년인가 어떤일로 그녀에대한 인용문을 검색하는데
위키디피아에 글쎄..그간의 사정은 승자의 역사로..블라블라..ㅎㅎㅎ시대의희생양이었음을...헉~! 넘해!! 빵사건 역시..프랑스의 고급입맛!이 문제일 가능성이..높다니..멘붕...그랬답니다.역시나..동서고금..여자팔자 뒤웅박..인거야? 남편 잘못만나서..시집잘못가서..ㅠㅠ뭐 정략였지만..프랑스 국민들이 시댁인 상황..넘 어이없고 속상하더라고요..
 
가슴 이야기 - 내 딸과 딸의 딸들을 위한
플로렌스 윌리엄스 지음, 강석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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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누군가로부터 가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라는 말을 들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 말을 꺼낸 이를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다. 아니 경멸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제정신이 아니군, 하며 그 자리를 피해버리고 말았을 텐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슴에 대해서 왜 우리는 이토록 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 현재의 우리를 재조명 해봐야 할 필요성을 심히 깨닫게 되었다. 가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마치 입에 담아서는 안될 것이며 꽁꽁 숨겨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은 어디에나 있으나 존재해서는 안될 것 같은 가슴에 대해서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얼마나 그 동안 무신경 했으며 모르는 것들이 태반이었는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으니,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우리는 가슴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인다.

 젖가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풍만한 가슴의 여성의 모습이다. 늘씬한 몸매에 터질듯한 볼륨감을 드러내며 브라운관을 누비는 스타들을 넘어서 어느 순간부터 가슴은 섹시함을 위해, 그러니까 남성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신체가 된 듯 하다. 물론 젖가슴을 통해 인류는 어머니로부터 생존을 위한 모유를 공급받는 개체였지만 현재의 우리에게 있어서 이러한 모습보다는 여성의 몸매를 부각시키는 존재로서의 가슴이 더 먼저 떠오르는 것은 현재의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포유류 동물 중 늘 부푼 가슴을 안고 있는 유일한 종이 바로 인간이다. 이러한 특성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지구의 환경이 갑작스럽게 변화되었을 때 온혈동물로서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되었는데 남성에게는 없으나 여성에게만 이러한 부푼 가슴이 있다는 것은 과연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 물음은 거기서부터 시작되게 된다. 왜 여성에게만 가슴이 있는 것일까? 대체 누구를 위한 가슴인가? 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말이다.

 여성의 젖가슴이 남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인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중반 많은 의사들은 여성의 기분과 성생활, 일반적인 활동성인 남성의 선호도에 맞게 조절돼야 하고 필요한 경우 인위적인 수단을 써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본문

 가슴이 있는 여자들이 남성들의 눈에 호감적으로 비치면서 그러한 여성들이 남자들로 인해 선택되게 됨으로써 그러한 여성들이 점차 늘어난 것이라는 사회학자들의 말은 젖가슴이 오롯이 남자들을 위한 것이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드러난 가슴의 존재는 남성이 아닌 백악기를 거쳐 살아 남았던 인간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2세에 수유를 하게 됨으로써 직접 먹이를 구해 다니는 시간을 늦추게 하고 이 수유가 시작됨에 따라 아이는 갓 태어났을 경우 머리가 작아도 되게 됨으로서 이동의 편의성까지 도모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젖가슴은 아이를 위한 것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살아남기 위해 진화된 최적의 방안이었던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 젖가슴은 다른 신체 기관과는 달리 태어난 후 사춘기라는 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발달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기관들은 이미 태어날 때 기본적인 구조가 자리하고 있는 상태에서 점차 변화되는 것과는 달리 사춘기를 지나서야 형태를 드러내는 젖가슴은 실은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완성된 것이 아니며 임신을 통해서 젖을 만드는 구조에 들어서면서 완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야말로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토록 인류를 위해 공헌해 온 젖가슴은 수 많은 위협 속에 살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실제의 기능은 잊혀진 채 드러나는 것에만 치중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인공 보형물이 가슴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보형물들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발견을 해 나가고 있는 상태라고 하니 그야말로 가슴의 마루타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천연 완전식품이라는 모유에 성분라벨이 붙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지방 4%, 비타민 A, 비타민 C, 비타민 E, 비타민 K, 당분, 필수 미네랄, 단백질, 효소, 항체. 모유에 들어있는 건 아기의 성장에 필요한 하루 권장량을 100% 만족시킬 뿐 아니라 일생동안 당뇨병에서 암에 이르는 각종 질환으로부터 지켜준다. (중략)
 
하지만 라벨을 좀 더 읽어보면 반갑지 않은 글들이 나타난다. DDT, PCBs 트리클로로에틸렌,디벤조퓨란, 수은, , 벤젠, 비소,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우리는 면역계와 세포 대사, 대뇌 시냅스를 활성화하는 지방과 당분만을 섭취시키는 게 아니다. –본문

 뿐만 아니라 각종 화학제품들의 남용으로 인해서 모유에서조차 화합물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신성시 되었던 모유가 아이에게 있어서 해를 끼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젖가슴은 그 어떠한 신체구조보다도 환경 속에 있는 위험을 가장 먼저 인지하고서는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것이었는데, 모유 속에 담긴 화학물이 이야기를 보노라면 생물농축현상이 얼마나 잘 적용되고 있는지 그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암 치료 초창기에 외과의사들은 종양이 있는 젖가슴을 도려내면 환자가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과격한 유방절제술도 대체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암이 발견된 시점에서는 암이 이미 몸의 멀리 떨어진 부분까지 보이지 않게 퍼져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인식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불필요하게 고통스럽고 몸을 피폐하게 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사람들이 오염물질의 종착역이 유방세포와 모유라는 사실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젖가슴이 성적인 측면에서 진화했고 성적 대상으로 격하시켜야 한다고 고집한 결과 여성들은 모유수유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게 됐고 슬프게도 종종 자신들의 정상적인 자연의 몸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도 한다. –본문

그렇다면 젖가슴에는 왜 이러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그 어떤 기관보다도 예민하고 환경에서 오는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신체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성 조숙증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남성들에게도 유방암이 나타나게 하거나 안전하다고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10대에 피임약을 복용한 이들은 45세 이전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을 2배 이상 높이는 등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 낸 인간의 수 많은 복합물들이 인간의 젖가슴을 오히려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널려 있었는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선크림이나, 비닐 제품, 영수증 종이 안에도 호르몬을 교란시키는 물질이 들어있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젖가슴은 매일매일 화학전의 최전선에 놓여 있던 것이다.

 작은 가슴에 대해서는 소유방증이라는 병명을, ‘폐경을 맞이하는 여성들에게는 에스트로겐을 처방하며 생리가 계속되도록 부추기고 있는 이 현상들에 대해서 저자는 따끔하게 일침을 고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실제는 수익에 목말라 있는 제약회사와 화학 업계의 존속의 담합이라는 것인데 그들의 은밀한 작전은 우리의 젖가슴을 점점 죽이고 있는 것이다.

 별다른 관심 없이, 그저 몸의 한 부분이라고만 생각했던 가슴에 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젖가슴에 대해서 외형에만 집착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인류의 피와 살이 되는 젖가슴에 붉은 신호등이 켜진 지금, 우리의 가슴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현재의 우리를 있게 만든 가슴을 우리 손으로 무너지게 만드는 현실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젖가슴을 지키기 위한 관심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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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 KBS 생로병사의 비밀팀

 

 

독서 기간 : 2015.01.1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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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 왕비,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에 서다
윤정란 지음 / 이가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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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왕조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당시의 왕을 기준으로 하여 시대를 구분하여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 26대 조선의 왕을 기억하는 방법까지 따로 있을 만큼 왕을 기반으로 하여 시대의 흐름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관철되어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당시를 호령했던 한 주축으로 하여 읽어 내려가는 역사.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익숙한 것이었기에 별 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이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를 마주하는 순간, 500여년 동안의 조선시대 안에서 이름을 알고 있는 왕비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분명 그 시대를 함께 있었던 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그녀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일까. 꿈틀거리는 궁금증과 그 뒤에 숨겨져야만 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 책에 빠져들게 만든다.

 중국의 부녀자들은 문자를 알고 있어서 정사에 참여하여 나라를 그르치는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동방은 부녀자들이 문자를 알지 못하므로 정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 진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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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79(세종 19 11 12)에 실려있는 내용으로 1437년 세종대왕이 평상시와 같이 경연에 나가 <시경>을 강독하는 도중 신하들에게 던진 말이다. 
 
세종대왕은 여성들과 일반 서민들이 글을 모르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한글을 창제한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마저도 조선의 여성들은 문자를 알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공적인 영역에서 사용되던 언어에서 소외되었으며, 외부와의 접촉에 철저하게 차단되었다. 당시 사회를 주도하던 사대부들은 여성들이 외부와 접촉하게 되면 부덕을 상실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본문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던 당시의 시대상을 비추어 보았을 때, 양반댁의 규수를 뛰어 넘어 시대의 국모였던 그녀들의 삶은 유교에서 말하는 여성관에 입각하여 철저하게 그 모습대로 살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시 그녀들의 삶의 전부였을 테니 말이다. 생존을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치밀하게 자신의 사람들을 만들어 내야 했고, 그 안에서 정치라는 두 글자 안에서 혼돈의 시간 속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했던 그녀들의 삶은 치열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조선 최초의 오아비인 신덕왕후 강씨를 시작으로 마지막 국모였던 순정효황후 윤씨까지, 이 책 안에서는 조선시대 안에 숨겨져 있던 그녀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정도전은 개국일등공신인 방원이 왕위에 오를 경우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정도전은 재상중심체제(의원내각제)의 지지자인 반면에, 방원은 강력한 왕권을 내세우는 인물이었다. 정도전은 재상중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강씨의 소생인 방번을 세자로 옹립하고 나섰다. 태조도 속으로는 강씨의 첫아들인 방번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뿐더러 자신이 극진히 사랑하는 강씨의 청을 물리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중략)
 
방번은 사람됨에 광패합니다. 막내 왕자 방석을 세자로 세우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이 의견에 모두 찬성하여 태조 7(1398) 11세의 방석이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이 모든 것은 강씨의 정치력에 의한 결과였다. 왕위를 넘보고 있던 방원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본문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경우 추후 자신의 운명을 내다 보았던 강씨는 태조 이성계에게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계속 요청하게 되는데 이 일은 추후 그녀의 소생인 방번, 방석, 경순공주 모두를 죽음으로 내모는 선택이었으며 그녀 자신도 300여년 동안 첩이라는 이름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결과를 초래하게 한다. 둘째 부인이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살기 위해 도모했던 방안을 결국 그녀의 목을 죄게 하는 결과가 되어 버린 셈이다.

 폐비 윤씨에 관한 이야기는 드라마를 통해서도 익히 들어왔던 것이기에 그녀의 악행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 그녀가 사약을 받게 된 사유가 바로 투기라는 명목이었다고 한다. 후손을 이어가야 한다는 이유로 당시 본처 이외의 여러 명의 여성을 거느릴 수 있었던 당시 풍속에서는 여성의 투기는 남성들의 시대에 반기를 드는 행동이었기에 이는 죽음으로까지 다스릴 수 있었는데 현대의 입장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도무지 이해 가지 않는 당시의 모습들은 반드시 지켜져야 했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여성의 목을 죄고 있었다.

후비의 현명함과 그렇지 못함은 국가 성쇠에 중대한 관계가 있다. 왕비 윤씨는 후궁으로 들어와왕후의 자리에 앉았다. 그 후 아무런 내조의 공이 없고 도리어 질투의 마음만 잦아 지난번에 독약을 가지고 궁인을 해치고자 하다가 발각되어 즉시 폐위코자 하였으나 대신들의 청으로 용서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있은 후 개과하기를 바랐으나 지금까지 뉘우치고 고치지 않아 실덕만 늘어갔다. 이로서 윤씨는 위로 종묘를 받들지 못하고 아래로 국모가 될 수 없는 자격에 이르렀다. 이제 윤씨를 폐서인한다. 이는 칠거지악에 의거한 것이니 조금이라도 사심에서 나올 수 있겠는가. –본문

 신숙주에 의해 궁녀로 입궁하게 된 윤씨는 성종의 눈에 띄어 숙의로 봉해지게 된다. 그녀가 후궁이 되고 나서 어머니 신씨 역시 전보다는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는데 정희왕후의 눈에 들었던 그녀는 왕비로까지 오르게 된다. 그리고 왕비에 오른 지 4개월 후, 그녀는 연산군을 낳게 되니 당시 조선은 그야말로 신명 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 셈이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따스한 햇살만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한 그 순간, 그녀를 향하는 날카로운 화살들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서슬파란 시간 속의 화룡점정은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사건인데 이 일로 인해 그녀는 폐위자리까지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녀를 폐위 시키고 나서 성종 역시도 후대의 일어날 사건들을 예감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폐비 윤씨에 대해 100년 동안 거론하지 말라고 하며 세상을 떠난 것에는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터질 수 밖에 없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뒤에 일어난 역사의 사건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흘러가야만 했었는지, 과연 이 문제들은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인지, 마주하는 순간 또 다시 먹먹해질 뿐이다.

민씨는 조선을 둘러싸고 열강들 간에 서로 쟁탈전을 벌이자 이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이미 갑신정변 이후 신뢰가 떨어진 나라라 적대적으로 대했으며, 청나라는 자신이 재집권하는데 두 번이나 도움을 주었기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청나라는 위안스카이를 조선에 심어두고 민씨와 민씨 척족세력에 대해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민씨는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이제부터는 러시아를 이용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본문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조선의 국모는 명성황후 민씨일 것이다. 한 시대의 국모가 살해되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이 나라 안에서 일어났는데 민씨만 제거하면 모든 것이 원상태로 될 것이라 믿었던 일본은 믿을 수 없는 이 망극한 일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당시의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얽혀있는 관계가 이 모든 것들의 시발점이 아닐 수 없었는데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의 열강들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았던 그녀가 이토록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나라 안에서 벌어졌던 수 많은 이해관계가 조선을 중심으로 벌어졌다는 것과 그녀 스스로 그토록 주장했던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말을 믿었더라면, 그리고 그 힘을 믿었더라면, 이라는 안타까움이 계속 밀려들게 된다.

 그 전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니 그녀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마주하면서도 이것이 조선의 전부인 듯 생각하고 있었다. 왕비라는 이름을 안고 살아야 했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순간 왕비라는 자리가 그녀들을 얼마나 옥죄게 하고 있었는지, 국모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정치력과 암투를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 그녀들을 통해 바라본 조선은 그야말로 암투의 전쟁이 아닐 수 없는 듯 하다. 모든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 자신을 향한 모든 화살을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그녀들의 삶을 통해 또 한번 느끼게 된다.

 

 

아르's 추천목록

 

조선왕비실록 / 신명호저


 

 

독서 기간 : 2015.01.17~01.2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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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1
박광수 엮음.그림 / 걷는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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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학창시절, 광수생각의 그림이나 글씨체를 따라 끄적이며 그 이야기 속에 푹 빠져 보곤 했었다. 그의 손 끝에서 살아나는 이야기들을 보며 이토록 많은 재능을 가진 그가 부럽기만 했었는데 그런 그에게도 시를 담아내는 시인들을 존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보다는 글을 잘 쓰고 싶었던 그는 시인의 재능을 보며 갖지 못한 것들이라 자신이 가진 것들보다 더욱 강렬하게 염원하곤 했었는데 한 줄의 시가 탄생하기까지, 시인은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농축시켜서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시 한 줄이 몇 날 며칠, 혹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릴케의 이야기를 보고서는 그 마음을 내려 놓고서 시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가 그토록 닮고 싶었던 시인들이 내어 놓은 것들 중 자신에게 따스함을 전해 주었던 시를 모아 놓은 것인데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시를 마주할 수 있기에 그 설렘과 함께 이토록 좋은 시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내려가게 된다.

 이 시를 보면서 사랑하는 이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일명 미켈란젤로 현상이라 불리는 사랑의 마법이 시인의 언어를 전달됨에 따라서 감미롭게 전해지고 있는데 원래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게 해주는 사랑의 위대함은 누구에게나 따사로움을 느끼게 한다. 어떤 신보다도 나를 더 선하게 만들고 어떤 운명보다도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랑의 위대함 앞에서 그 누가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영광스러운 순간이 나를 마주한 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나날이기에 이 이야기는 더욱 빛이 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언젠가 읽어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던 국수가 먹고 싶다라는 시를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면서 이 이야기를 다시 읽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하루하루의 고된 나날을 어제와 같이 오늘도, 내일도 지내야 하는 우리네 평범한 이들의 삶에 있어서 이 따스한 국수 한 그릇은 빈 속을 달래주는 것을 넘어서 그 안에 담고 있던 마음의 무게도 잠시 잊고서는 지낼 수 있는 공간이자 음식으로 다가오게 된다. 조촐하기는 하나 그 안에는 이를 찾는 이들을 위한 정성이 가득 담아 푸짐하게 내어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 한 그릇을 보며 시인은 한 젓가락 한 젓가락 들이킬 때마다 세상이 준 상처들을 치유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한 장 한 장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푸근한 시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위로가 되기도 하고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바라 보기도 하고, 때론 뭉클하게도 한다. 이 시들을 보면서 마음이 따듯하게 된다는 것은 나 역시도 이 시들과 함께 소통을 하고 있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먹먹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또 하루의 힘이 되는 이 시들을 종종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흐뭇한 마음에 책을 덮어 본다.

 

아르's 추천목록

 

밀물의 시간 / 도종환저 


 

 

독서 기간 : 2015.01.2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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