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 왕비,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에 서다
윤정란 지음 / 이가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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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조선 왕조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당시의 왕을 기준으로 하여 시대를 구분하여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 26대 조선의 왕을 기억하는 방법까지 따로 있을 만큼 왕을 기반으로 하여 시대의 흐름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관철되어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당시를 호령했던 한 주축으로 하여 읽어 내려가는 역사.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익숙한 것이었기에 별 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이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를 마주하는 순간, 500여년 동안의 조선시대 안에서 이름을 알고 있는 왕비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분명 그 시대를 함께 있었던 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그녀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일까. 꿈틀거리는 궁금증과 그 뒤에 숨겨져야만 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 책에 빠져들게 만든다.

 중국의 부녀자들은 문자를 알고 있어서 정사에 참여하여 나라를 그르치는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동방은 부녀자들이 문자를 알지 못하므로 정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 진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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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79(세종 19 11 12)에 실려있는 내용으로 1437년 세종대왕이 평상시와 같이 경연에 나가 <시경>을 강독하는 도중 신하들에게 던진 말이다. 
 
세종대왕은 여성들과 일반 서민들이 글을 모르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한글을 창제한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마저도 조선의 여성들은 문자를 알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공적인 영역에서 사용되던 언어에서 소외되었으며, 외부와의 접촉에 철저하게 차단되었다. 당시 사회를 주도하던 사대부들은 여성들이 외부와 접촉하게 되면 부덕을 상실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본문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던 당시의 시대상을 비추어 보았을 때, 양반댁의 규수를 뛰어 넘어 시대의 국모였던 그녀들의 삶은 유교에서 말하는 여성관에 입각하여 철저하게 그 모습대로 살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시 그녀들의 삶의 전부였을 테니 말이다. 생존을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치밀하게 자신의 사람들을 만들어 내야 했고, 그 안에서 정치라는 두 글자 안에서 혼돈의 시간 속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했던 그녀들의 삶은 치열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조선 최초의 오아비인 신덕왕후 강씨를 시작으로 마지막 국모였던 순정효황후 윤씨까지, 이 책 안에서는 조선시대 안에 숨겨져 있던 그녀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정도전은 개국일등공신인 방원이 왕위에 오를 경우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정도전은 재상중심체제(의원내각제)의 지지자인 반면에, 방원은 강력한 왕권을 내세우는 인물이었다. 정도전은 재상중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강씨의 소생인 방번을 세자로 옹립하고 나섰다. 태조도 속으로는 강씨의 첫아들인 방번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뿐더러 자신이 극진히 사랑하는 강씨의 청을 물리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중략)
 
방번은 사람됨에 광패합니다. 막내 왕자 방석을 세자로 세우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이 의견에 모두 찬성하여 태조 7(1398) 11세의 방석이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이 모든 것은 강씨의 정치력에 의한 결과였다. 왕위를 넘보고 있던 방원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본문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경우 추후 자신의 운명을 내다 보았던 강씨는 태조 이성계에게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계속 요청하게 되는데 이 일은 추후 그녀의 소생인 방번, 방석, 경순공주 모두를 죽음으로 내모는 선택이었으며 그녀 자신도 300여년 동안 첩이라는 이름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결과를 초래하게 한다. 둘째 부인이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살기 위해 도모했던 방안을 결국 그녀의 목을 죄게 하는 결과가 되어 버린 셈이다.

 폐비 윤씨에 관한 이야기는 드라마를 통해서도 익히 들어왔던 것이기에 그녀의 악행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 그녀가 사약을 받게 된 사유가 바로 투기라는 명목이었다고 한다. 후손을 이어가야 한다는 이유로 당시 본처 이외의 여러 명의 여성을 거느릴 수 있었던 당시 풍속에서는 여성의 투기는 남성들의 시대에 반기를 드는 행동이었기에 이는 죽음으로까지 다스릴 수 있었는데 현대의 입장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도무지 이해 가지 않는 당시의 모습들은 반드시 지켜져야 했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여성의 목을 죄고 있었다.

후비의 현명함과 그렇지 못함은 국가 성쇠에 중대한 관계가 있다. 왕비 윤씨는 후궁으로 들어와왕후의 자리에 앉았다. 그 후 아무런 내조의 공이 없고 도리어 질투의 마음만 잦아 지난번에 독약을 가지고 궁인을 해치고자 하다가 발각되어 즉시 폐위코자 하였으나 대신들의 청으로 용서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있은 후 개과하기를 바랐으나 지금까지 뉘우치고 고치지 않아 실덕만 늘어갔다. 이로서 윤씨는 위로 종묘를 받들지 못하고 아래로 국모가 될 수 없는 자격에 이르렀다. 이제 윤씨를 폐서인한다. 이는 칠거지악에 의거한 것이니 조금이라도 사심에서 나올 수 있겠는가. –본문

 신숙주에 의해 궁녀로 입궁하게 된 윤씨는 성종의 눈에 띄어 숙의로 봉해지게 된다. 그녀가 후궁이 되고 나서 어머니 신씨 역시 전보다는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는데 정희왕후의 눈에 들었던 그녀는 왕비로까지 오르게 된다. 그리고 왕비에 오른 지 4개월 후, 그녀는 연산군을 낳게 되니 당시 조선은 그야말로 신명 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 셈이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따스한 햇살만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한 그 순간, 그녀를 향하는 날카로운 화살들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서슬파란 시간 속의 화룡점정은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사건인데 이 일로 인해 그녀는 폐위자리까지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녀를 폐위 시키고 나서 성종 역시도 후대의 일어날 사건들을 예감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폐비 윤씨에 대해 100년 동안 거론하지 말라고 하며 세상을 떠난 것에는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터질 수 밖에 없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뒤에 일어난 역사의 사건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흘러가야만 했었는지, 과연 이 문제들은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인지, 마주하는 순간 또 다시 먹먹해질 뿐이다.

민씨는 조선을 둘러싸고 열강들 간에 서로 쟁탈전을 벌이자 이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이미 갑신정변 이후 신뢰가 떨어진 나라라 적대적으로 대했으며, 청나라는 자신이 재집권하는데 두 번이나 도움을 주었기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청나라는 위안스카이를 조선에 심어두고 민씨와 민씨 척족세력에 대해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민씨는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이제부터는 러시아를 이용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본문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조선의 국모는 명성황후 민씨일 것이다. 한 시대의 국모가 살해되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이 나라 안에서 일어났는데 민씨만 제거하면 모든 것이 원상태로 될 것이라 믿었던 일본은 믿을 수 없는 이 망극한 일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당시의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얽혀있는 관계가 이 모든 것들의 시발점이 아닐 수 없었는데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의 열강들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았던 그녀가 이토록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나라 안에서 벌어졌던 수 많은 이해관계가 조선을 중심으로 벌어졌다는 것과 그녀 스스로 그토록 주장했던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말을 믿었더라면, 그리고 그 힘을 믿었더라면, 이라는 안타까움이 계속 밀려들게 된다.

 그 전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니 그녀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마주하면서도 이것이 조선의 전부인 듯 생각하고 있었다. 왕비라는 이름을 안고 살아야 했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순간 왕비라는 자리가 그녀들을 얼마나 옥죄게 하고 있었는지, 국모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정치력과 암투를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 그녀들을 통해 바라본 조선은 그야말로 암투의 전쟁이 아닐 수 없는 듯 하다. 모든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 자신을 향한 모든 화살을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그녀들의 삶을 통해 또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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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비실록 / 신명호저


 

 

독서 기간 : 2015.01.17~01.2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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