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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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SF장르를 거의 읽어보지 않았던 이유도 있겠지만, 책의 표지는 물론 제목마저도 생경한 것이 대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을까, 라는 호기심에 책을 펼치게 된다. 외계인이 등장하고 라면이 등장하는 표지가 말해 주듯이 이 안의 이야기들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야말로 황당한 이 이야기들이 그래도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는 것이다.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무언가 공허한 기분이 든다. 뒤의 이야기가 더 이어질 법하지만 이야기는 딱 그 지점에서 마침표를 남기고서 또 다른 이야기로 국면을 접어들고 있는데 아마도 이렇게 이어졌겠지, 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 저자가 남겨준 하나의 재미일지 모른다.

진품명품에 두 번째로 등장하는 페르시아 카펫의 진위 여부보다도 아버지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안고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김영식의 모습은 서글프게 보이지만 그에게는 그 카펫의 가격보다도 그 세월을 지켜온 아버지의 노고가 카펫의 진위 여부보다 중요한 것이었을 게다. <교육의 탄생>으로 신인상의 영광을 거머쥐게 한 이 이야기는 아이큐가 215라고 판명된 천재 최두식의 일대기가 그려진 조국의 하늘 아래서라는 책을 통해 그 동안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이 전해지게 된다. 현재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말하는 이야기들에 따르면 NASA에 레오니드 몰로디노프박사를 만났던 그 시간은 그의 삶을 변모시킨 것이 틀림 없다.

에드워드 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잘 못 본걸일까. 그의 눈에 약간의 눈물이 맺힌 듯 보였던 것은? 우리는 일어서서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나의 마음에 아련한 슬픔이 차올랐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과학은, 그것이 겉으론 아무리 차가워 보일지라도 결국은 이런 애틋한 휴머니즘 위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위대한 한국인 과학자 에드워드 김으로부터 얻은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본문

어릴 적 사이비 종교가 발간한 책을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조금씩 그려갔던 김호현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정보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그는 역복제를 통해서 죽음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발견하였으며 이 유전자 조작으로 인류에게 영생이라는 삶을 전해주었지만 이 위대한 과학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어느 날 그가 한 소녀의 손을 잡고 사라진 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는데 그 소녀가 역복제로 만들어낸 그의 어머니일 수 있다는 추측만 가득할 따름이다. 

라면이 사라진 지 오래인 현재의 그들에게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이라는 책을 발간한 김기수를 기점으로 한 라면 동호회가 생겨나게 된다. 기네스 북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실패했지만 그가 살아있던 당시 그를 인터뷰했던 기자와 라면 동호회의 수장인 이인호의 만남이 이뤄지게 되는데, 왜 김기수가 라면만을 먹었을까, 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만두가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를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되는데 그 이유가 자못 씁쓸하기만 하다.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지독한 현실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비행접시에게 별다른 공격 의도가 없는 듯 보이기 시작하자(그것은 열흠이 넘도록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하늘에 떠 있을 뿐이었다.) 공포 대신 분노가 서서히 도시를 뒤덮었다. 게다가 그들의 멸망 위기에 처한 행성을 탈출하여 살 곳을 찾아다니던 일종의 우주 난민이란 게 확인된 순간, 시민들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사람들은, 그 놈들이 왜 하필이면 이런 소도시를 기착지로 택한 거냐며 화를 냈고, 가뜩이나 살기도 힘든데 왜 저런 것들까지 신경 써야 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본문

 후안 곤잘레스는 늘어나는 외계인의 사체를 처리하는 미화원으로 열심히 생활하다 어느 순간 녹색의 시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걸까? 라는 의문을 안게 되었고 그 물음을 쫓아 가는 여정 속에 그의 삶을 또 다른 세상으로의 조우를 경험하게 된다. ‘살아 움직이는 야채라는 이름으로 인간은 이 외계인의 사체를 먹어 치우고 있었는데 이 모습은 몸에 좋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달려드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해서 역겹게까지 느껴진다.

 어느 부분에서는 현재의 우리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어디서도 본적 없는 이야기의 생경함에 당혹스러움이 겹쳐지기도 한다. 소설이라는 것이 인간의 상상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자유로이 이야기를 하고 유영할 수 있다는 소설 속 이야기처럼 그녀는 참 충실히 자신의 이야기에 상상을 가득 불어 넣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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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구역 / 듀나저


 

 

독서 기간 : 201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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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를 보다 -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의 철학 여행 철학사를 보다 시리즈
강성률 지음 / 리베르스쿨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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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하게 아파오며 피하기만 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철학이란 것이 대관절 무엇이길래 그 산을 넘기가 쉽지 않은 것인가, 에 대한 고민과 한번쯤은 이 문턱을 넘어서 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금 <서양철학사를 보다>란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그러니까 늘 문턱의 초입에서 이 문제를 통과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등바등하고 있었던 나날이 계속해서 반복이 되면서 늘 다시 처음 그 자리로 오는 나로서는 이 한번의 문턱을 넘기를 고대하며 간절함을 담아 한 장 한 장 넘기게 된 것이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사색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철학은 완성된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지식을 탐구해가는 과정을 의미해요.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는 첫 강의 시간에 나는 제군들에게 철학(Philosophie)이 아니라 철학 하는 것(Philosophieren)을 가르치고 싶다.”라고 말했지요.
 
마지막으로 철학은 모든 학문의 궁극적 목적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에요. 방향이 잘못되어 있으면 열심히 가더라도 목표에서 멀어지기만 하지요. 인가는 편리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과학을 연구했어요. –본문

하나의 정해져 있는 틀을 배우는 것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사색하는 것이 철학이라는 말을 보며 그저 단순하게 암기하는 것이 아닌 왜 이러한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눈 앞에 있는 웅덩이는 보지 못한 채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고민했던 탈레스는 하녀에게 쓴 소리를 듣게 되지만 그가 당시 고민했던 이 세상의 근원이 물이라고 보았으며, 공기가 만물의 근원이며 이 안에는 영혼이 포함되어 있다던 아낙시메스의 이야기는 현재의 과학으로 보면 틀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 당시에 가졌던 이러한 사유들이 쓸데 없는 고민이 아닌 그들이 주변에 있던 세계를 알아가기 위한 고민이었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주는 의미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덕을 강조햇어요. 중용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중용은 1 5의 중간이 3이라는 식의 산술적인 의미가 아니예요. 예를 들면 만용과 비겁함의 중용은 용기고, 헤픔과 인색함의 중용은 절약입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때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식사의 적당량에 비유할 수도 있어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저마다의 식사량이야말로 포식과 소식의 중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간음, 절도, 살인 등과 같은 것에는 중용이 있을 수 없지요. 이것들은 무조건 악이랍니다. –본문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은 학창시절 빠트리지 않고 꼭 알아야 할 내용이기에 그의 이름과 중용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것인데, 짧게나마 이 책을 통해 바라본 중용의 참 뜻에 대해서 그 동안 그야말로 허투로 알고 있었구나, 를 깨닫게 된다. 어떠한 상태에 있어서 중간자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중용인줄 알았던 나로서는 1 5사이의 3이 중용의 면모라고 보았다면, 저자가 들려주는 중용의 모습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드러난 올바른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로 자리잡게 된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설과 원죄설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왜 하느님은 인간이 죄를 짓고 그 죄로 하여금 벌을 받아 고통을 받게끔 만들어 놓으신 것인지에 대한 물음까지 이어가게 되는데, 이른바 자유의지라 불리는, 인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그 의지를 갖게 한 것은 하느님이 인간을 배려하기 위한 선택이었으며 그 자유의지가 있기에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을 넘어서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근본이 되는 질문이자 철학의 주제가 되는 것이다.

포이어바흐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 역시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바라는 전지전능하고 영원히 행복한 상태를 신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어요.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제 철학은 신학이 아니라 인간학에 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본문

 고대철학에서부터 중세, 근세, 현대 철학까지의 흐름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물고 물리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그 당시의 고민들은 이렇게 변해왔구나 등 철학이라는 거대하고 딱딱한 철옹성의 지대가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느 하나만이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보다도 이 안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다양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배우는 것은 물론 그 동안 멀게만 느꼈던 철학에 대한 기본을 배우고서 그 다음 단계로 뛰어 넘을 수 있는 주춧돌로서 이 책의 역할은 톡톡히 한 것으로 보인다. 철학이 즐거울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보람차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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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철학 이야기』 / 이한규저


 

 

독서 기간 : 2015.01.3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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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랑해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유혜자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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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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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랑해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을 보면서 그들의 사랑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라는 그 풋풋한 마음이 아름답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약속이 영원히라는 단어로 영겹의 시간을 묶어두려 했지만 실제로는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저 애잔하게, 그들이 바라는 영원이 오래 존속될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이 들게 된다. ‘영원히 사랑해라는 그 달콤함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프게도 느껴지지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두 사람에게 같은 의미일 때에만 존속되는 것임을 알기에 이 이야기의 현실성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무언가 달달한 이야기이길 바라며 펼쳐진 이야기에 빠져들면 들수록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것들이 상대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 될 수 있는 것들인가에 대한 생각과사랑해라고 외치는 그 순간 그 두 사람은 같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점점 두려움을 안고서 이들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조명가게를 이어받아 비앙카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유디트는 독신여성으로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여성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활절을 맞아 마트에 장을 보러 간 그녀는 수 많은 사람들 틈 사이에서 한 남자에 의해 자신의 발을 밟히게 되고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나게 된다. 그저 별다른 일이 없었기에 그 다음날을 어제와 같이 보내고 있던 유디트에게 비앙카는 어떤 남자가 그녀를 찾아왔었다는 이야기와 어제 그녀가 이 조명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는 따라 왔다는 남자의 눈빛에서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물론 잠시 스친 당시의 모습으로 그가 자신에게 반했다는 것을 석연찮게 생각했던 유디트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넘기게 된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걸까? 혹시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걸까? 예쁘고, 누군가에게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어 한네스를 필요로 하는 걸까?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낮게 평가하고 있었던 걸까? 그녀도 모르는 사이 자존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건가?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는…….-본문

 그러나 이들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마트에서의 우연을 넘어 친구 게르트의 생일파티에서 다시 그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저 지나가던 행인이었던 그가 건축가라는 사실과 이혼 경력이 있고 현재는 솔로라는 점, 그리고 그의 사무실이 유디트와 조명가게와 멀지 않게 됨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조금씩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연찮게 유디트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 한네스와 동석하게 된 그를 보고선 친구들의 열렬한 격려에 힘입어 그들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무언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 유디트는 베네치아 여행을 기점으로 하여 한네스에게 이별을 고하게 되지만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이들이 그녀가 이별을 택한 것은 말도 안 되는 행태라며 그녀를 질타하는 것은 물론 한네스와 헤어졌음에도 그가 자신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다는 환각과 환청은 그녀를 점점 마르다 못해 정신 분열까지 일으키게 하는 무시무시한 후 폭풍을 전해주고 있다.

 한네스는 성탄절에 깜짝 놀랄 일이 있을 거라고 엄마한테 말했다. 유디트를 위한 자리로 가족, 친구들 모두 참석할 거라고 했다. 작은 파티를 기획한 모양이었다.
 
유디트에게는 눈 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할 거예요.”
 
한네스가 엄마한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상태가 저런데 괜찮을까?”
 
물론이죠. 겉모습은 다르지만 내면은 우리들과 똑같아요.” -본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한네스가 말하는 사랑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비앙카와 비앙카의 남자친구를 통해서 점차 들어나게 되면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실현된 그의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게 된다.

 책을 덮고 나서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공지영 작가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게 된다. 그저 소설 속의 이야기라 치부하고 싶지만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는 실제 어디선가 일어났던 일들을 담아 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이 배가 되는데 영원히 사랑해, 라는 이 달콤한 이야기의 이면을 들여다본, 섬뜩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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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 카린 지에벨저


 

 

독서 기간 : 2015.01.2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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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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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새로운 것들이 밀려들고가지고 있던 것들을 지키려 했던 격동의 19세기의 시대 속에 지식인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가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과연 그들의 서재에는 무슨 책들이그 책들에는 어떠한 사연들이 담겨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이 이 책을 펼쳐보게 된다현재의 나의 서재는 나를 드러낸다기 보다는 그저 욕망의 덩어리일 뿐이기에 19세기의 지식인들의 서재는 어떠한 양태를 띄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되었는데 서문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들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책을 놓지 못하고 종종거리면서도 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아등바등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을 했던 내게 너무도 쉬이 그는 답을 던져주고 있었다그러니까 19세기의 학자들의 당시 모습은 물론  물론 왜 현재의 우리 역시도 책을 통해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지그 이야기를 쫓아 정신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한유의 시구는 <장자><지락> '경단자불가이급심'이라는 구절에서 나왔다.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다'는 의미다. <순자><영욕편>에도 같은 뜻의 '단경불가이급심정지천'이란 문구가 있다한유는 이 구절을 녹여서 '급고득수경'이란 명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르려면 두레박줄이 길어야 하듯이 옛사람의 학문을 탐구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려면 항심을 갖고 꾸준히 공부해야 함을 경계한 말이다한편 '두레박줄'은 물을 긷는 수단이다따라서 옛 것을 공부하려면 풍부한 자료즉 장서가 중요하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본문

 무엇을 위해서 이토록 책을 탐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읽으면 읽을수록 드러나는 부족한 나의 내면이 드리우기에 그 모습을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책을 읽어 내려가곤 했다잠시 쉴 틈도 없이아직도 알아야 할 세상이 너무도 많다는 생각에 채근하며 읽어왔던 것에 대해서 저자는 깊은 우물의 물을 길어 나르기 위해 두레박을 길게 이어 나가는 것이 독서의 의미이자 필요성이기에 단 시간 내에 하는 것이 아닌 차근차근 해 나갈 것은 조언해 주고 있다.

그제서야 마음 편하게 지식인들의 이야기에 눈을 돌려보면학문이자 세상의 깊이를 서재 안에 가득 담아 놓았던 학자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그 동안에는 차마 몰랐던 그들의 세계가 얼마나 깊었는지에 대해 다시금 배우게 된다정조의 서재에서부터 전기소유재소의 서재까지그들의 서재는 단순한 서재를 넘어서 그들의 꿈꾸던 세상을 담아 놓았으며 그들이 살고픈 삶을 고스란히 축소해 놓은 것이었다그러니까 이 서재들을 통해서 우리는 누군가의 서재를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깊이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정조의 이러한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그것은 세손 시절부터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해온 결과였다정조에게는 홍재라는 호가 있다임금에게 무슨 호가 있을까싶지만 그는 홍재라는 호를 썼고이를 인장에 새겨 자신이 보던 책에 찍곤 했다그의 삶은 그 자체로 위대한 학자의 생애였다임금이란 칭호만 떼버리면 그는 분명 조선 최고의 학자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00책이나 되는 그의 문집 <홍재전서>가 그것을 증명한다그는 세손 시절부터 학문에 모든 열정을 바쳤다고시공부 수준의 시험 준비가 아니라세상을 이끌어갈 큰 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본문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그저 왕권을 이어받는 것만으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정조는 자신의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죽을 때까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바로 알았으며 그리하여 자신의 서재 이름에 홍자를 새겨 이름을 삼아 놓았다그의 이 깊은 뜻은 19세기를 더욱 풍성하게 하였는데신분 격차로 인해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던 이들인 여항인들에게 기회의 끈이 되었음을 물론 그러한 끈을 기반으로 하여 19세기 조선은 다채로운 문인들로 풍족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서적의 편찬과 출판을 통한 정조의 문치 정책은 조선 후기 학술과 문화의 진흥을 가져왔다특히 정도는 시문에 뛰어났으면서도 신분적 제약 때문에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었던 중서인들과 여항인들을 선발하여 등용함으로써 여항 문화의 개화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여항인이 당당하게 문화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이전에도 시문에 뛰어난 여항인들이 있었지만그들은 대부분 양반의 들러리게 불과했다하지만 이제 그들 자신이 시문의 향유자로서 문화의 주체가 되기 시작했다. –본문

 이전에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여항인들의 모습들은 물론이거니와 가난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만의 꽉 찬 서재를 꿈꾸었을 이이엄의 서재 등 수 많은 서재들을 통해서 그들이 만들어가고자 했던 조선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게 된다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조선과 지금의 모습은 과연 어느 정도나 닮아 있을까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21세기의 서재를 만들어 가도록 고군분투 해야 함을 그들을 통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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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한정원저


 

 

독서 기간 : 2015.01.27~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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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전
곽재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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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소설이 아니었더라면, 이들의 이야기는 영영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역사 속에 중심이 됐던 이들로만 기억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역적전>이라는 소설은 역사 속의 메인이 아닌, 그 주변에 있던 이들에 의해서 또 역사는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찬란하지만 그 빛은 다른 곳에서 빛나고 있었던 그날의 이야기는 우리를 긴박했던 그 순간으로 이끌게 된다.

공명정대하게 죄인의 죄를 묻는 것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던 하한기의 앞에 사가노와 출랑랑이라는 죄인이 잡혀 들어온다. 가락국의 고위 관리였던 허공을 살해한 죄로 끌려온 그들을 보는 하한기의 나지막하지만 깊은 눈길 안에서 가히 그들이 살해를 한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신의 모든 죄를 지었다는 사가노와 너무도 당당히 살해를 했노라며 외치는 출랑랑을 보며 과연 이들에게는 어떠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것인지, 이틀 동안 들려주는 스펙타클한 그들은 이야기는 그 어느 이야기보다도 중심이 되는 긴박함이 느껴졌다.

마침내, 협지는 다시 곡식 빌려 주는 곳에 가서 더 빚을 졌고, 이와 같이 몇 차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갚기 어려울 만큼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렇게 되고 나자, 협지의 부인은
,
"
이제 어차피 갚지 못한 말큼 밎은 많이 진 것은 매한가지요. 좀 더 빚을 진다고 무슨 차이가 나겠소? 차라리 한번 쓸 만큼 써보기라도 해 보지 않겠소?" 라면서 더 빚을 졌으므로, 마침애 도저히 빚진 것을 같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본문

처음 시작은 사가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술을 담거나 음식을 하는 손일 것이라 말했던 하한기의 짐작대로 그는 가난했던 삶을 청산하기 위해서 자신의 회와 음식을 좋아했던 협지에게 그의 노비로 살겠노라 청하게 되고 그의 바람대로 협지의 집에서 노비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노비 생활의 시작은 어찌보면 파란한 그의 인생의 서막이 된다. 백제의 부자였던 그는 왕이 고구려와의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예감에 부인과, 사가노, 강아지와 함께 용녀의 배를 타고서는 왜로 떠나는 여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배는 안타깝게도 신라의 배와 마주하게 되면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서는 가락국에 도착하게 되지만, 사가노의 마지막은 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그보다 더 안타까운, 순장의 희생양으로 무덤 속에 묻히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한명의 주인공인 출랑랑은 아무것도 모르는 천방지축 아가씨였던 그녀는 아버지의 도움을 통해서 고구려 칼잡이에게 칼을 쓰는 법을 배우게 된다. 괴유의 칼 쓰는 법이라는 이 방식에 대해서 제대로 알리 없던 그녀는 아버지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아버지의 사업을 자신이 받아하게 되면서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출랑랑은 모든 재산을 날리게 되고 양꼬치를 먹고 싶다는 욕망이 결국 용원당의 눈에 들어 그녀의 삶을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만든다. 용원당의 여당아에 반항하던 그녀는 결국 그 무리에서도 내쫓기게 되고 모든 이들의 표적이 된 출랑랑은 그녀가 한때 손에 쥐었던 봉문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게 되지만 이야기는 점차 그들의 행방을 또 다른 국면으로 흘러가게 하고 있었다.

사가노와 출랑랑이 마주하게 된 어느 무덤 안에서 그들은 함께 만나게 된다. 그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마주하기까지 수 많은 이들과 겹쳐있는 이야기들을 들춰보아야 하지만 그 여정이 결코 지루하거나 버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새벽이 넘은 시간까지도 이 책을 들고 있게 하였으니, 그들의 여정이,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파헤치려 했던 하한기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를 따름이었다.

지금 용원당의 무리들이 수백 명이 달려와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박원도 공의 부하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몰려와 이곳을 감싸고 있으니, 네가 아무리 재주가 좋다고 해도 여기서 빠져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너는 죽은 목숨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기왕 네가 죽을 목숨을 두고 내가 너에게 사려고 하는 것이 있으니 너는 내 말을 잘 듣고 장사를 할지 말지 정하도록 하가. -본문

하한기가 아니였다면, 아니 저자가 아니였다면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한 줄의 이야기로만 남아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저 어느 고서 안에 자리하고 있었을 그 생생한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는 동안,이 어마어마한 이야기는 당신에게 실제의 그날로 움직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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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기억 / 미셸 라공저

독서 기간 : 2015.01.28~01.3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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