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히 사랑해’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을 보면서 그들의 사랑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라는 그 풋풋한 마음이 아름답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약속이 ‘영원히’라는 단어로 영겹의 시간을 묶어두려 했지만 실제로는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저 애잔하게, 그들이 바라는 영원이 오래 존속될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이 들게 된다. ‘영원히 사랑해’라는 그 달콤함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프게도 느껴지지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두 사람에게 같은 의미일 때에만 존속되는 것임을 알기에 이 이야기의 현실성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무언가 달달한 이야기이길 바라며 펼쳐진 이야기에 빠져들면 들수록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것들이 상대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 될 수 있는 것들인가에 대한 생각과‘사랑해’라고 외치는 그 순간 그 두 사람은 같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점점 두려움을 안고서 이들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조명가게를 이어받아 비앙카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유디트는 독신여성으로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여성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활절을 맞아 마트에 장을 보러 간 그녀는 수 많은 사람들 틈 사이에서 한 남자에 의해 자신의 발을 밟히게 되고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나게 된다. 그저 별다른 일이 없었기에 그 다음날을 어제와 같이 보내고 있던 유디트에게 비앙카는 어떤 남자가 그녀를 찾아왔었다는 이야기와 어제 그녀가 이 조명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는 따라 왔다는 남자의 눈빛에서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물론 잠시 스친 당시의 모습으로 그가 자신에게 반했다는 것을 석연찮게 생각했던 유디트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넘기게 된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걸까? 혹시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걸까? 예쁘고, 누군가에게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어 한네스를 필요로 하는 걸까?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낮게 평가하고 있었던 걸까? 그녀도 모르는 사이 자존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건가?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는…….-본문
그러나 이들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마트에서의 우연을 넘어 친구 게르트의 생일파티에서 다시 그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저 지나가던 행인이었던 그가 건축가라는 사실과 이혼 경력이 있고 현재는 솔로라는 점, 그리고 그의 사무실이 유디트와 조명가게와 멀지 않게 됨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조금씩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연찮게 유디트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 한네스와 동석하게 된 그를 보고선 친구들의 열렬한 격려에 힘입어 그들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무언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 유디트는 베네치아 여행을 기점으로 하여 한네스에게 이별을 고하게 되지만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이들이 그녀가 이별을 택한 것은 말도 안 되는 행태라며 그녀를 질타하는 것은 물론 한네스와 헤어졌음에도 그가 자신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다는 환각과 환청은 그녀를 점점 마르다 못해 정신 분열까지 일으키게 하는 무시무시한 후 폭풍을 전해주고 있다.
한네스는 성탄절에 깜짝 놀랄 일이 있을 거라고 엄마한테 말했다. 유디트를 위한 자리로 가족, 친구들 모두 참석할 거라고 했다. 작은 파티를 기획한 모양이었다.
“유디트에게는 눈 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할 거예요.”
한네스가 엄마한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상태가 저런데 괜찮을까?”
“물론이죠. 겉모습은 다르지만 내면은 우리들과 똑같아요.” -본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한네스가 말하는 사랑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비앙카와 비앙카의 남자친구를 통해서 점차 들어나게 되면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실현된 그의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게 된다.
책을 덮고 나서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공지영 작가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게 된다. 그저 소설 속의 이야기라 치부하고 싶지만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는 실제 어디선가 일어났던 일들을 담아 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이 배가 되는데 영원히 사랑해, 라는 이 달콤한 이야기의 이면을 들여다본, 섬뜩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