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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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SF장르를 거의 읽어보지 않았던 이유도 있겠지만, 책의 표지는 물론 제목마저도 생경한 것이 대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을까, 라는 호기심에 책을 펼치게 된다. 외계인이 등장하고 라면이 등장하는 표지가 말해 주듯이 이 안의 이야기들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야말로 황당한 이 이야기들이 그래도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는 것이다.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무언가 공허한 기분이 든다. 뒤의 이야기가 더 이어질 법하지만 이야기는 딱 그 지점에서 마침표를 남기고서 또 다른 이야기로 국면을 접어들고 있는데 아마도 이렇게 이어졌겠지, 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 저자가 남겨준 하나의 재미일지 모른다.

진품명품에 두 번째로 등장하는 페르시아 카펫의 진위 여부보다도 아버지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안고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김영식의 모습은 서글프게 보이지만 그에게는 그 카펫의 가격보다도 그 세월을 지켜온 아버지의 노고가 카펫의 진위 여부보다 중요한 것이었을 게다. <교육의 탄생>으로 신인상의 영광을 거머쥐게 한 이 이야기는 아이큐가 215라고 판명된 천재 최두식의 일대기가 그려진 조국의 하늘 아래서라는 책을 통해 그 동안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이 전해지게 된다. 현재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말하는 이야기들에 따르면 NASA에 레오니드 몰로디노프박사를 만났던 그 시간은 그의 삶을 변모시킨 것이 틀림 없다.

에드워드 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잘 못 본걸일까. 그의 눈에 약간의 눈물이 맺힌 듯 보였던 것은? 우리는 일어서서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나의 마음에 아련한 슬픔이 차올랐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과학은, 그것이 겉으론 아무리 차가워 보일지라도 결국은 이런 애틋한 휴머니즘 위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위대한 한국인 과학자 에드워드 김으로부터 얻은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본문

어릴 적 사이비 종교가 발간한 책을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조금씩 그려갔던 김호현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정보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그는 역복제를 통해서 죽음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발견하였으며 이 유전자 조작으로 인류에게 영생이라는 삶을 전해주었지만 이 위대한 과학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어느 날 그가 한 소녀의 손을 잡고 사라진 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는데 그 소녀가 역복제로 만들어낸 그의 어머니일 수 있다는 추측만 가득할 따름이다. 

라면이 사라진 지 오래인 현재의 그들에게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이라는 책을 발간한 김기수를 기점으로 한 라면 동호회가 생겨나게 된다. 기네스 북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실패했지만 그가 살아있던 당시 그를 인터뷰했던 기자와 라면 동호회의 수장인 이인호의 만남이 이뤄지게 되는데, 왜 김기수가 라면만을 먹었을까, 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만두가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를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되는데 그 이유가 자못 씁쓸하기만 하다.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지독한 현실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비행접시에게 별다른 공격 의도가 없는 듯 보이기 시작하자(그것은 열흠이 넘도록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하늘에 떠 있을 뿐이었다.) 공포 대신 분노가 서서히 도시를 뒤덮었다. 게다가 그들의 멸망 위기에 처한 행성을 탈출하여 살 곳을 찾아다니던 일종의 우주 난민이란 게 확인된 순간, 시민들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사람들은, 그 놈들이 왜 하필이면 이런 소도시를 기착지로 택한 거냐며 화를 냈고, 가뜩이나 살기도 힘든데 왜 저런 것들까지 신경 써야 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본문

 후안 곤잘레스는 늘어나는 외계인의 사체를 처리하는 미화원으로 열심히 생활하다 어느 순간 녹색의 시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걸까? 라는 의문을 안게 되었고 그 물음을 쫓아 가는 여정 속에 그의 삶을 또 다른 세상으로의 조우를 경험하게 된다. ‘살아 움직이는 야채라는 이름으로 인간은 이 외계인의 사체를 먹어 치우고 있었는데 이 모습은 몸에 좋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달려드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해서 역겹게까지 느껴진다.

 어느 부분에서는 현재의 우리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어디서도 본적 없는 이야기의 생경함에 당혹스러움이 겹쳐지기도 한다. 소설이라는 것이 인간의 상상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자유로이 이야기를 하고 유영할 수 있다는 소설 속 이야기처럼 그녀는 참 충실히 자신의 이야기에 상상을 가득 불어 넣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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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간 : 2015.02.0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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