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5.6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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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메르스의 한파 때문에 싱숭생숭한 요즘의 나날 속에서 어디를 다니는 것보다도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오늘, 조용히 앉아 6월달 샘터를 읽어 내려가 본다. 이전에는 무언가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이 샘터를 펴 보았다면 이번 달의 샘터는 왠지 모를 걱정과 근심 속에서 이야기를 펼쳐 보았는데 내 주변에 녹아있던 근심과 걱정은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언젠가 제 칼럼에 이런 얘기를 한 게 기억이 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건강, , 권력, 명예를 모두 가진 분을 한 명도 본 적이 없다고. 더구나 돈, 권력, 명예 이 세가지가 행복의 조건은 아닌 것 같다고. 그렇다면 과연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건강, 의미 혹은 보람 있는 일, 그리고 사랑일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췄다면 확실히 행복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본문

  

 

행복이라는 것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건강에서부터 사랑과 보람 있는 일일 것이라는 발행자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에 대한 애잔한 기억을 넘어 이번 달에는 달에 대해 애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인 권대웅을 만나게 된다.

하늘과 맞닿은 달동네에서 그는 소년을 넘어 청년이 되고 시인으로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세상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막막함만이 밀려 들던 그때 그에게 있어 세상에 자신이 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시를 쓰는 것이었으며 그 때의 시작으로 현재 그는 달을 기반으로 애잔한 빛을 전해주는 달과 같은 시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달 시로 대중과 교감하면서 권 시인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달동네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시절에 진 마음의 빚을 갚을 방법을 생각해냈다. 달에 대한 시에 그림을 곁들여 시화전을 열고, 그림 판매 수익금은 달동네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에게 보내자는 것. 도움이 필요하지만 세상에 손 내밀지 못하는 이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삶에 드리운 그늘을 달처럼 밝혀주고 싶었다. 본문

달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빛을 전해주고 싶다는 그의 마음처럼이나 시는 물론이거니와 그는 프로젝트를 열어 동네 책방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그만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달빛 아래 그가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는 세상을 향해 스스로 달이 되어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따스한 그의 이야기를 넘어 영화 <봄날의 간다>의 촬영지 속의 삼척을 보노라면 유유히 이 곳을 거닐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김이나 작가의 할아버지에 대한 초상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나의 할아버지의 기억을 함께 떠올리기도 하고 엄마의 손에 대한 그리움도 떠올려보기도 한다.

 초반의 걱정스러움은 어느새 사라지고서 훈훈함만이 남아있다. 언제나 편안함을 전해주는 샘터를 통해 7월까지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보려한다. 

 

 

아르's 추천목록

 

월간샘터 2015년 5월호 / 월간샘터 편집부


 

 

독서 기간 : 2015.06.0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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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7
오쿠다 히데오 지음, 정숙경 옮김 / 북스토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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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르's Review

 

 

 

 직장에 다니다 보면 느끼게 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직장의 일이 힘든 것보다도 사람 때문에 힘든 경우가 더 자주 발생하며 이 경우, 일보다도 훨씬 더 큰 스트레스로 압박이 가해진다는 사실이다.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공간인 회사 안에서 일을 넘어선 사람에 대한 강박은 이 안에서의 시간들을 웃음 가득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두려움으로 가득한, 그야말로 벗어나고 싶은 미로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제 겨우 5년이란 시간을 직장인이라는 신분으로 살아왔지만 그 짧은 5년이란 시간 속에서 수 많은 일들을 지나온 듯 하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회사 동료들과의 일들을 생각해보면 회사 안에서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느냐, 이 문제가 가히 심도 있는 문제가 아닐 수 없는데 이 자칫 묵직할 수 밖에 없는 이 문제들에 대해서 오쿠다 히데오는 그의 지난 날의 이야기들처럼 가벼우면서도 유쾌하게 <마돈나>에 담아내고 있다. 
 
이 몽상은 좋아하게 된 여자의 퇴직이나 인사이동 혹은 그녀에게 애인이 생긴 순간 끝나고, 다시 원래의 평온한 나날로 돌아가게 된다. 죄 없는 놀이라면 놀이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은 아내를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분명 하루히코는 연애에 서투른 인간이다. 지나치게 폼을 잡는다. 여자에 대해 순진한 환상을 품고 있다. 물론 사내 소문도 무섭다. 이 나이쯤 되면, 자신이 소심한 인간이란 것쯤은 자각하게 된다. –본문

 결혼 15년차에 들어선 오기노 하루히코 과장의 부서에 새로운 신입 사원이 등장하게 된다. 그 모든 것이 하루히코의 이상형인 구라타 도모미를 보면서 그는 또 다시 가슴이 설레게 되고 이전에도 몇 번 경험했던 이 현상이 어서 정리되기를 바라면서도 그 설렘에 하루를 시작하는 그의 삶에 활력소가 되어 오늘도 회사로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중년의 남자로 이미 아이도 있고 아내도 있는 그가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는 모습을 보며 20대의 나였더라면 하루히코를 마냥 비난하며 그러해서는 안 된다, 라고 칼같이 잘라서 말했을 것이다. 물론 현재의 나로서도 하루히코의 행태에 대해 올바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상상의 나래마저 흉악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그의 조심스런 도발적 망상에 함께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마음이 가면 자연스레 행동의 변화도 오는 법. 이미 10여년 넘게 함께 살을 부비고 산 그의 아내 노리코는 남편의 변화를 직감하게 되고 그러한 변화에 대해서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며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 마음이 사그라들때까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그러고서 던지는 그녀의 한 마디. “위로라도 받을 생각일랑은 하지도 마. 그렇게는 안 되니까.” 라고 하루히코에게 말을 건네고 그 말을 들으며 하루히코는 도모미의 얼굴을 떠올리지만 다시금 그 생각을 산산이 조각 내고 있다.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 이야기를 지금에서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나의 생각이 틀이 넓어 진 것인지 아니면 이전의 도덕적 관념들이 무너지는 것인지 모르겠다만 확실한 것은 흑백의 논리를 넘어 회색의 논리가 더 넓어졌다는 것이다. 아직은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루히코나 노리코의 모습이 모두 그럴 수 있어,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뒷돈의 관습에 대해 말하는 <총무는 마누라>에서부터 대학 진학은 포기하고 춤을 추겠다 선언한 아들처럼 회사 내에서도 정치적 연맹 따위는 관심 없는 아사노의 이야기를 담은 <댄스>를 넘어 개인적으로는 <보스>의 이야기가 가장 와 닿는 것 중 하나였다. 정확히 말하면 와 닿는다기 보다는 그렇게 되고 싶다는 갈망의 의미가 더 큰 것일 수 있을 텐데 외국계의 회사에 근무하다 어느 날 갑자기 신임 부장으로 자리를 맡게 된 하나마 요코를 바라보는 다지마 시게노리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 <보스>는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이었기에 요코처럼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계속 품으며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설마 농담이겠지? 시게노리는 초조해졌다. 마누라를 데리고 갈 곳이 아니라고. 호스티스들도 싫어할걸.
 
다카하시를 보니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렇게 넓은 장소도 아니고……” 시게노리는 횡설수설했다
.
 
제기랄. 따라오게 할 것 같아. 남자에게는 남자만의 성역이 있는 거야. 어떻게 그런 것도 모르는다
.
 
다지마 씨, 가게 전화번호 가르쳐주세요. 제가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물어볼게요
.”
 
요코가 은근한 태도로 미소를 지었다. –본문

 여자들의 사회 진출이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유리 천장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이 <보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남자들의 세계를 넘어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요코의 모습은 외경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들만의 리그에 입성한 그녀를 온몸으로 대항하고 있는 시게노리의 모습이 점차 요코에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만들어가는 나날처럼 회사의 모습을 꿈꾸며 희망찬 내일을 꿈꾸게 된다.

 어디선가 한번은 들어봤고 들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마돈나>는 역시 유쾌하면서도 거침없는 이야기들로 보는 내내 편안하면서도 그 안의 이야기들에 또 한 번씩 상념에 빠져들게 한다. 오피스 판타지에 대한 그의 이야기처럼 어찌되었건 유쾌한 회사를 꿈꾸며 내일을 위해 힘을 나게 하는 이 이야기는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쉬이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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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남자 / 하라 고이치저

 

 

 

독서 기간 : 2015.06.09~06.1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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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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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그저 표지 속의 이 남자, 오베를 보는 것으로 지나쳤다면 나는 그를 그저 심술궂은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들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 남자의 사연을 들여다보기 전까지 말이다. 책을 펼치기 전 대체 그를 이토록 짜증나게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란 궁금증으로 열기 시작했다면 책을 읽는 내내 점점 나는 오베라는 이 남자의 이야기가 애잔함으로 바라보게 되며 그의 이 심술맞은 표정이 되려 먹먹하게 한다. 세상의 모든 불만을 안고 있을 것 같은 그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그의 삶 안에 담아 놓고 있었다. 

 

이미 백발의 할아버지가 된 그의 심술궂은 얼굴 이전에 그의 삶에는 어떠한 굴곡이 있었는지 <오베였던 남자~>의 이야기로 그의 과거를, <오베라는 남자~> 부제로 현재 그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하나씩 나열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의 현재는 그가 지나온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것으로 그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의 오베는 물론 현재의 오베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40년 가까이 함께 살면서, 소냐는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수 백 명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들에게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혔다. 같은 기간 동안 그녀는 오베가 셰익스피어 희곡을 한 편이라도 읽도록 하는데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주택 단지로 이사하자마자 그ㄷ는 몇 주 동안 내내 저녁마다 헛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그가 작업을 마쳤을 때, 그녀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책장들이 거실에 놓였다.

 "책들을 어디에 보관은 해야 하잖아."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드라이버 끝으로 엄지손가락에 난 작은 상처를 콕콕 찔렀다. 
 
그녀는 그의 품에 파고들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문

 

 오베는 그런 사람이었다. 감언이설을 전하기 보다는 묵묵히 곁에 있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 조용히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가 소냐를 만났을때, 그리고 소냐의 아버지를 마주했을 때, 소냐가 사고를 당했을 때도 오베는 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오베는 소냐를 사랑했고 그런 소냐를 떠나보낸 후 그는 오늘이라도 당장 소냐의 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이웃들은 그의 계획 안에 계속 끼어들어 오늘을 내일로 미루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는 오늘 죽을 심산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는 대로 조용하고 평화롭게 머리에 한 방 날리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부엌을 정리하고 고양이를 내보내고 좋아하는 안락의자에 편안히 자세를 잡았다. 이 시간이면 고양이가 매번 집 밖에 내보내달라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계획을 짰다. 오베가 그 고양이에 대해 참으로 감사하는 몇 안되는 특징 중 하나는 , 녀석이 다른 사람 집에 똥 싸는 걸 꺼린다는 점이었다. 오베도 그랬다. -본문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 이 생을 떠나려 하는 그의 계획을 보노라면 이 책이 자칫 무겁거나 어둡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안의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가다보면 오베는 툴툴거리면서도 그가 속한 세계의 문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그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현재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트레일러로 자신의 집의 벽을 긁은 이들을 계속해서 도와주는 것은 물론 기차에 뛰어들기 위해 갔던 역에서 누군가를 구하는 것은 물론, 주민자치회의 자리를 빼았었던 루네가 아니타의 품을 강제로 떠나지 않도록 화를 내면서도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 모든 것이 소냐를 만났을 때 웃으며 만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애잔하게 다가온다.

 

 마지막의 페이지를 읽고 나면 먹먹함이 밀려든다. 오베는 지금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제서라도 그는 조용히 웃고 있지 않을까.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의 웃음이 마치 멀리서 들리는 느낌이다.

 

 이 책을 덮고나서 나는 오베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 한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면, 이 한 평생의 소풍이 행복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오베는 더 이상 심술맞은 남자가 아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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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에 사는 남자 / 피터 S. 비글저 

 

 

독서 기간 : 2015.06.07~06.0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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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1
김호경 지음, 정형수.정지연 극본 / 21세기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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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얼마 전에서야 징비록을 보고서는 이것이었구나, 그 당시의 아련하다 못해 참담했던 기록이 이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계속 읊조렸던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이거니와 지나버린 과거 속의 것으로만 생각했던 임진왜란과 재유정난의 기록을 징비록을 통해 다시 마주하며 그 당시의 현실은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를 울컥함이 치밀어 오르게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등바등하며 권력 싸움만 하고 있던 선조의 안일함에 대한 분노와 그저 제 나라에 살고자 하는 수 많은 백성들이 주검이 되어야만 했던 아득했던 시간을 이제 겨우 책 페이지를 넘기며 알아갔다는 것이 원통하게만 느껴졌다.

호성공신은 임란 때 임금을 모신 공신들 아니더냐? 나는 공신이 아니라 죄인이다. 그리 많은 백성들이 도륙되었는데, 호성공신이라니! 게다가 화상을 그려 후대에 자랑스럽게 남기겠다?”
 
꾸짖음 뒤에 탄식이 새어 나온다
.
 
군자를 운운하는 자들이 부끄러움도 모른단 말인가…… 지금 조정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자들…… 모두가 죄인이야. 그건 주상도 예외가 아닐세
.”
 
선전관과 화상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
 
주상께 전하시게. 류성룡은 이미 죽었으니, 다시는 찾지 마시라.” –본문

이전에 읽었던 징비록이 류성룡이 남긴 원문의 것이었다면 이번에 마주한 징비록은 류성룡이 남긴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여 그려진 소설로서 현재 K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대하드라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형식으로 담아내서 일까. 이전에 읽은 징비록보다 쉽게 빠져들게 하는 것은 물론 당시의 상황이 실제의 영상으로 그려지는 느낌이라 더 깊이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의 이야기에 빠져들면 들수록 변하지 않는 그 날의 기록들을 마주해야 하는 지금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너무도 평온해서였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안일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권력이라는 틀 안에서 끝없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넘어 오랫동안 관심조차 가지지 않던 왜의 변화를 감지하는 기척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찌 황윤길과 김성일의 눈으로 대변할 수 있었을까. 한반도를 넘어 밀려드는 어둠의 장막이 드리우는 것은 모른 채 이 안에서만 아웅다웅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 했던 이들 모두의 눈과 귀는 이미 덮여 실제의 것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한 살상으로 수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되어 이 나라를 적시고 있다.  

 정발은 가까스로 일어났으나 어느새 다가온 왜적이 칼을 힘껏 치켜들고 그대로 정발의 심장에 꽂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정발은 부산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불길과 함성이 서서히 잦아드는 성에 시체가 가득했다. 목이 없는 몸뚱이, 팔이 없는 시체, 아이를 안고 처참하게 죽은 어머니.
 
이것이 이 나라의 운명이로구나
…….” 
 
눈을 부릅뜬 채 정발은 숨을 거두었다. –본문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밀려드는 조총 부대의 침입 속에 죽어가는 수 많은 이들과 성을 버리고 천거를 하던 왕과 그 왕을 보필하며 이 나라를 지키려는 이들의 모습 등 수 많은 이들의 바람이 한 대 뒤엉켜 처참하게 전해지고 있다. 조선 땅에 백성들이 발 디딜 곳은 점차 사라지고 왜적의 힘이 더 강해지고 있을 때에도 이순신의 천거에 대해 평범한 집안이라는 이유로 나라를 지키기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오가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씁쓸하기 그지 없을 뿐이다. 명분을 중시했던 그들의 입이 떠드는 사이 계속해서 조선은 점차 왜적으로 뒤덮이고 있다.

 겉으로는 다들 나라를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막상 위급이 닥치면 왕이야 어찌 되든 자기 살길부터 찾는 것들이오! 내가 백성들을 버렸다고? 대궐을 불태운 백성들을 보시오! 언제고 다시 돌아가 왜적들과 싸울 과인을 생각했다면 과연 그럴 수 있겠소? 내게 백성을 버렸다는 오명을 씌우고는, 이때다 싶어 왕실 재물을 훔쳐 달아난 도적들에 불과하오. 백성! 백성! 백성! 그 백성이 도적이 되어 과인을 버렸단 말이오!”
 
류성룡은 기가 막혀 눈을 감았다. 분명한 사실 앞에서 입이 열개라도 지금 당장은 벡성들을 비호할 핑계가 하나도 없었다. –본문

부산에서부터 시작된 왜구의 침입은 너무도 빠르게, 그 어떠한 막힘도 없이 한반도를 한성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 안에 죽어나간 수 많은 백성들의 죽음보다도 자신의 안위가 더 우선이고 긴박했던 선조는 이 나라가 세워진 근간인 도성을 버리고서는 백성들을 원망하며 그렇게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 계속 이어지는 패전 소식은 실낱같던 희망을 점점 앗아가고 있으며 그 와중에 울린 해유령에서의 승전보 뒤로하고 신각은 아련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1편의 책장을 덮으며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운 이 이야기가 우리의 지난 역사라는 것에서 그저 먹먹함만이 밀려든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전혀 통하지 않은 과거 속의 그 수 많은 날들 안에서 조금만 달라졌다면 이 모든 기록들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만이 계속 된다. 1편을 넘어 2, 3편의 이야기는 더욱 아득한 것들이겠지만 계속 이어 읽어 나가보려 한다. 그것이 류성룡의 바람대로 과거를 기반으로 현재를 헤쳐나갈 수 있는 주춧돌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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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비겁한 승리 / 김연수저

 

   

 

독서 기간 : 2015.06.07~06.0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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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식탁 - 먹고 마시고 사는 법에 대한 음식철학
줄리언 바지니 지음, 이용재 옮김 / 이마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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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르's Review

 

  

 

 언제부터인가 TV를 켜면 음식에 관한 프로그램을 쉬이 만나볼 수 있게 된다. 음식을 맛보는 프로그램에서부터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형태 등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은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시키고 어느 새 멍하니 몰입해서 화면 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노라면, 이른바 푸드 포르노라고 까지 말하는 현상 속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을 너무도 쉬이 알 수 있다.

 인간이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의, , 주의 食은 어느 새 기본적인 의미를 넘어서 더 좋은 것, 더 맛있는 것들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의 욕망이 담긴 요소로 변모되고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까 현재의 우리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이 아닌 현재의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을 즐기기 위한 食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 <철학이 있는 식탁>에서는 오롯이 아름다움과 맛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음식에 대해서 그 안에 담긴 수 많은 의미들과 물음을 던져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음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려면 자연, 동물은 물론 우리 인간끼리 관계, 그리고 정신과 육체의 통합 또한 감안해야 한다. 더군다나 철학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뜬구름을 잡기 십상이지만, 음식은 우리의 현실 감각을 지켜준다. 먹고 마셔야 하는 필요보다 더 기본적인 건 없으니, 음식과 철학을 한데 아우르더라도 철학을 하더라도 사람이 되어라 라는 데이비드 흄의 충고를 잊을 위험이 없다. –본문

 유기농으로 재배된 채소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동물의 권리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는 것은 근래에 들어서나 고민했던 것들이 아닐까. 이전에는 그저 먹고 배를 불리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먹는 것에 대해서 돌아보며 의문을 던지고 이전에는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일 텐데 그저 저렴한 가격에 식 재료를 구입하는 것이 전부였다면 요즘은 과연 이렇게 저렴한 식 재료를 얻기 위해서는 과연 이 모든 것이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게 된 것인가, 에 대한 고민에도 빠져보게 되며 공정무역이라는 이름의 것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유기농 제품이라고 해서 우리는 그것만은 믿고서 먹을 수 있는 것일까? 치즈를 예를 들어 저자가 말해주는 이야기를 보노라면 채식주의자를 위한 치즈라고 한다손 치더라고 이 안에는 동물 응유효소의 일부분만 제외된 것으로 실상 동물 자체에 대한 복지는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채식주의 협회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던가 유기농 제품이라고 해서 기존의 제품들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기 보다는 아주 일부분의 것들만 달라진 것을 의미하고 있으며 그것이 마치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듯이 소비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상의 의미를 들여다보면 그다지 다를 것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신 노름을 해, 스스로 편하고자 죽여도 되는 불경한 생명과 그렇지 않은 생명을 가르는 선을 긋는 방식으로 도살을 완전히 반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심지어는 완전 채식가를 포함한 모두가 그러한 선을 긋는다. 하지만 제정신이라면 박테이라나 바이러스를 죽이는 데는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거의 모든 인류는 병균을 옮기는 이를 기꺼이 죽일 것이다. 또한 거의 모든 이가 필요하다면 해충도 죽일 텐데, 대부분은 그저 덫을 놓는 정도를 선호할 것이다. –본문

 특히 <배려 있는 도살>이란 부분을 읽으면서 과연 배려있는 도살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계속된 물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 어떠한 생명을 거둬들이는 것을,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해충박멸과 식재료를 위해 거둬들이는 것의 차이는 무엇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도살을 하는데 있어서 동물이 느끼게 되는 고통과 고난에 대해 바라보게 한다. 매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살아야 하는 아프리카 초원 위를 누비는 얼룩말이 행복한 것인지, 사육장 안에서 살고 있는, 너무도 편안하게 살고 있는 얼룩말이 행복한 것인지에 대한 그들의 비교를 객관적으로 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농장에서 태어난 동물의 삶과 야생의 파란만장함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과연 무엇이 더 나은 것인가, 에 대한 대답을 고민에 빠지게 된다.

 돼지 도살을 전문으로 하는 공장의 풍경을 보며 동물을 고기로 만드는 현장이 실은 끔찍하기 그지 없는 순간이지만 마치 이 모든 것이 한 순간의 꿈처럼 사그라드는 것은 인간의 배려가 동물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의 배려 때문일 것이다.

 도살에 대한 순간을 넘어 한 생명의 죽음은 고스란히 인간에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쓰레기로 변모되어 가는 것을 보며 씁쓸함만이 전해지게 된다. 그저 테이블 위의 한 접시의 음식을 넘어 그 음식이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지, 그리고 다시 사라지기까지의 그 과정 속의 하나하나를 바라보면 과연 그 동안 음식이라는 것을 그저 먹는 행위로만 바라보았던 모습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고민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하면서 과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내 식탁 위에 오른 것들은 오롯이 나의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믿었던 나에게 있어서 과연 그것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 되뇌게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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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기쁨 / 애덤 고프닉저


 

 

독서 기간 : 2015.06.05~06.0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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