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1
김호경 지음, 정형수.정지연 극본 / 21세기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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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얼마 전에서야 징비록을 보고서는 이것이었구나, 그 당시의 아련하다 못해 참담했던 기록이 이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계속 읊조렸던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이거니와 지나버린 과거 속의 것으로만 생각했던 임진왜란과 재유정난의 기록을 징비록을 통해 다시 마주하며 그 당시의 현실은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를 울컥함이 치밀어 오르게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등바등하며 권력 싸움만 하고 있던 선조의 안일함에 대한 분노와 그저 제 나라에 살고자 하는 수 많은 백성들이 주검이 되어야만 했던 아득했던 시간을 이제 겨우 책 페이지를 넘기며 알아갔다는 것이 원통하게만 느껴졌다.

호성공신은 임란 때 임금을 모신 공신들 아니더냐? 나는 공신이 아니라 죄인이다. 그리 많은 백성들이 도륙되었는데, 호성공신이라니! 게다가 화상을 그려 후대에 자랑스럽게 남기겠다?”
 
꾸짖음 뒤에 탄식이 새어 나온다
.
 
군자를 운운하는 자들이 부끄러움도 모른단 말인가…… 지금 조정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자들…… 모두가 죄인이야. 그건 주상도 예외가 아닐세
.”
 
선전관과 화상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
 
주상께 전하시게. 류성룡은 이미 죽었으니, 다시는 찾지 마시라.” –본문

이전에 읽었던 징비록이 류성룡이 남긴 원문의 것이었다면 이번에 마주한 징비록은 류성룡이 남긴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여 그려진 소설로서 현재 K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대하드라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형식으로 담아내서 일까. 이전에 읽은 징비록보다 쉽게 빠져들게 하는 것은 물론 당시의 상황이 실제의 영상으로 그려지는 느낌이라 더 깊이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의 이야기에 빠져들면 들수록 변하지 않는 그 날의 기록들을 마주해야 하는 지금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너무도 평온해서였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안일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권력이라는 틀 안에서 끝없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넘어 오랫동안 관심조차 가지지 않던 왜의 변화를 감지하는 기척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찌 황윤길과 김성일의 눈으로 대변할 수 있었을까. 한반도를 넘어 밀려드는 어둠의 장막이 드리우는 것은 모른 채 이 안에서만 아웅다웅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 했던 이들 모두의 눈과 귀는 이미 덮여 실제의 것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한 살상으로 수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되어 이 나라를 적시고 있다.  

 정발은 가까스로 일어났으나 어느새 다가온 왜적이 칼을 힘껏 치켜들고 그대로 정발의 심장에 꽂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정발은 부산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불길과 함성이 서서히 잦아드는 성에 시체가 가득했다. 목이 없는 몸뚱이, 팔이 없는 시체, 아이를 안고 처참하게 죽은 어머니.
 
이것이 이 나라의 운명이로구나
…….” 
 
눈을 부릅뜬 채 정발은 숨을 거두었다. –본문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밀려드는 조총 부대의 침입 속에 죽어가는 수 많은 이들과 성을 버리고 천거를 하던 왕과 그 왕을 보필하며 이 나라를 지키려는 이들의 모습 등 수 많은 이들의 바람이 한 대 뒤엉켜 처참하게 전해지고 있다. 조선 땅에 백성들이 발 디딜 곳은 점차 사라지고 왜적의 힘이 더 강해지고 있을 때에도 이순신의 천거에 대해 평범한 집안이라는 이유로 나라를 지키기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오가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씁쓸하기 그지 없을 뿐이다. 명분을 중시했던 그들의 입이 떠드는 사이 계속해서 조선은 점차 왜적으로 뒤덮이고 있다.

 겉으로는 다들 나라를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막상 위급이 닥치면 왕이야 어찌 되든 자기 살길부터 찾는 것들이오! 내가 백성들을 버렸다고? 대궐을 불태운 백성들을 보시오! 언제고 다시 돌아가 왜적들과 싸울 과인을 생각했다면 과연 그럴 수 있겠소? 내게 백성을 버렸다는 오명을 씌우고는, 이때다 싶어 왕실 재물을 훔쳐 달아난 도적들에 불과하오. 백성! 백성! 백성! 그 백성이 도적이 되어 과인을 버렸단 말이오!”
 
류성룡은 기가 막혀 눈을 감았다. 분명한 사실 앞에서 입이 열개라도 지금 당장은 벡성들을 비호할 핑계가 하나도 없었다. –본문

부산에서부터 시작된 왜구의 침입은 너무도 빠르게, 그 어떠한 막힘도 없이 한반도를 한성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 안에 죽어나간 수 많은 백성들의 죽음보다도 자신의 안위가 더 우선이고 긴박했던 선조는 이 나라가 세워진 근간인 도성을 버리고서는 백성들을 원망하며 그렇게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 계속 이어지는 패전 소식은 실낱같던 희망을 점점 앗아가고 있으며 그 와중에 울린 해유령에서의 승전보 뒤로하고 신각은 아련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1편의 책장을 덮으며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운 이 이야기가 우리의 지난 역사라는 것에서 그저 먹먹함만이 밀려든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전혀 통하지 않은 과거 속의 그 수 많은 날들 안에서 조금만 달라졌다면 이 모든 기록들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만이 계속 된다. 1편을 넘어 2, 3편의 이야기는 더욱 아득한 것들이겠지만 계속 이어 읽어 나가보려 한다. 그것이 류성룡의 바람대로 과거를 기반으로 현재를 헤쳐나갈 수 있는 주춧돌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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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비겁한 승리 / 김연수저

 

   

 

독서 기간 : 2015.06.07~06.0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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