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천재 시계사와 다섯 개의 사건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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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시간 속에 자리하고 있는 추억에 대해서, 대부분은 아련한 것들이 남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우고 싶은 장면들이 꼭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추억이라 미화시키기에는 아픈 그 순간들을 돌아갈 수만 있다면야 다시 돌이켜 변화시키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 한 켠에 고이 접어 두고 있는데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바꿀 순 없더라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라는 덧없는 상념에 빠져본다.

 추억의 시時 수리합니다.’
 
몇 번을 확인해봐도 틀림없이 그렇게 적혀 있었다. 어떤 의미일까.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아카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망가진 추억을 수리할 수 있는 걸까. 무엇보다 추억이 망가지기도 하는 것일까.
 
망가질지도 모른다. 아아, 그렇다. 아카리에게도 망가져버린 추억이 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본문

 아마 이 생각을 멀뚱히 하고 있을 때 슈지의 가게를 보았더라면 나도 모르게 그곳에 들어갔을지 모른다. ‘추억의 시계를 수리합니다의 간판의 자가 빠지게 되면서 추억의 시()를 수리합니다라는 그의 가게에 말도 안돼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빠져들었을 텐데 SF 장르의 판타지적 느낌이라기 보다는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따스해 지고 있으니, 슈지의 가게는 추억의 시간을 수리하는 것이 맞기는 하나보다.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터덜터덜 어린 시절 그녀가 있었던 이곳으로 오게 된 아키라. 그녀는 사람들이 왕래가 뜸하다 못해 닫아버린 가게가 많은 이곳에 이사를 오게 된다. 그리고  그리고 그녀의 등장을 따스하게 맞아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시계방의 주인 슈지인데 스위스의 유명한 시계 학교를 졸업한 그는 할아버지의 가게를 이어 지금 이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아키라와 슈지, 다이치. 이 셋은 생동감이라고는 전혀 없던 이 거리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 모으며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는데 이미 지나간 시간이기는 하나 그들이 안고 있던 시간들이 하나 둘 모여 빛을 내며 잠식해버렸던 것들이 표면 위로 오르게 되면서 그들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또 위로해 주고 있었다.

갑작스레 발견하게 된 오르골을 보며 아버지의 생사조차 모르고 있던 한 소녀가 아버지에 대해 그리움을 표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지나고 나서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사랑인지 몰라 떠나 보내던 이야기, 행방 불명 된 딸을 오매불망 찾아 다니는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슈지와 아카리의 이야기가 이 안에 옴니버스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인형을 주면서 엄마가 했던 말을 기억해요.”
ㅡ이젠 울지 마렴.
예전에 전 이게 갖고 싶다고 떼를 쑤며 울었거든요.”
ㅡ앞으로 울고 싶은 일이 산더미 같을 테니까 그럴때는 아기 돼지를 꼭 안고 웃으렴.
그녀는 아기 돼지 인형을 슬쩍 들어 올리며 애써 웃으려 했다.
고마워 엄마.”
입술 모양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제 울지 않을게.” –본문

사람들의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이 시계방을 통해서 하나씩 드러나게 됨에 따라서 그들의 삶에 이전의 기억들이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그들에게 어떠한 위치에서 그들에게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를 만나볼 수가 있다. 아카리가 도착했을 때 그녀에 대해 기억하던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던 아카리가 알게 되는 진실은 물론이거니와 언뜻 생각해 보아도 스위스에서 공부를 한 쇼지가 왜 이곳에 있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 모두 이 안에서 서서히 이야기 타래를 풀어내고 있었고 그 이야기들을 하나 둘 마주할 때면 어느 새 애잔한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된다.

과거로 회귀하여 그 시간 자체를 마음대로 조정하는 류의 SF라기 보다는 그보다는 따스하면서도 인간적인 면이 더 많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안개처럼 뿌옇게 길을 잃게 만드는 추억은 현재의 나로 하여금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기에 그 안개를 걷어내는 행위는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 속 시간을 수리해준다는 것은 이전의 기억을 완벽하게 재편성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한 과거에 대한 위안이자 도약을 위한 첫 걸음인 셈이다. 문득 내 안에 잠겨 버린 시간들은 없는지에 대해서 또 한번 생각하게 하는, 잔잔하면서도 따스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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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저



  

 

독서 기간 : 2014.10.2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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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사랑이야 - 드라마 에세이
노희경 극본, 김규태 연출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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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에 드라마 한편 제대로 보지 않는 나로서는 <괜찮아, 사랑이야>를 우연치 않게 보게 된 그날, 종영을 앞두고 있던 이 드라마를 이른바 정주행 하겠다며 하루를 밤을 새며 보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이 드라마를 놓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었다.

 누군가 나의 이 모습을 보면 무모한 짓이라 이야기하겠지만, 드라마를 위해 밤을 지새고 앓아 누었던 그 시간마저도 괜찮다, 라 말할 정도의 애잔함을 남겼으니 가히 이 드라마 안에 푹 빠져 지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시로 병원에 간다. 감기, 몸살, 눈병, 입병, 하다못해 무좀, 위장장애, 소소한 외상과 때로는 인생을 뒤흔드는 암과 같은 혹독한 병마와 싸우기 위해 검진을 받고, 치료를 하고, 예방에 힘쓴다. 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거의 집착증에 가깝다.

 그런데 마음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어떠한가? 마음이 감기에 걸리고, 마음이 암에 걸리고, 마음이 당뇨와 고혈압에 걸린다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누구나 행복을 원하면서,행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마음에 대해선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방치하고 함부로 대하고 있나? -본문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무심한 듯 빠르게 스쳐지나 가며 수 많은 군중 속에 보통사람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물론 그 안을 세세히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상처와 아픔이 있겠지만 그것들을 드러낼 시간이나 여건 따위 없이 그 모든 것들은 스스로 이겨내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되지 일쑤이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정신과 의사인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불륜을 보고 나서 스킨십에 대한 거부 반응을 가지고 있으며 정확한 그녀의 병명은 불안장애 및 관계기피증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남자. 유명한 작가이자 라디오 DJ이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

 사막의 유목민들은 밤에 낙타를 이렇게 나무에 묶어두지.
 
근데 아침엔 끈을 풀어, 보다시피
.
 
그래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
 
나무에 끈이 묶인 밤을 기억하거든
.
 
우리가 지난 상처를 기억하듯 

 
과거의 트라우마가, 상처가 현재의 우리 발목을 잡는다는 애기지. –본문

그런 그 둘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가며 사랑하는 이야기를 보노라면 달달한 연애 드라마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게 된다. 마음이 아픈 이들의 사랑은 몸이 아픈 이들의 사랑보다 뛰어 넘어야 하는 장애가 더 높고 크게 자리하고 있었으며 나 역시도 그들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이들에 대한 편견을 안고 있었으니, 여전히 그들의 사랑을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 속의 이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서로의 모습을 이해하며 기다림을 선택하고 그 시간들을 각자를 위해 충실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죽을 것 같은 그 순간 속에 그들은 어른답게 서로를 위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고 그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는 그들의 재회는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개개인이 그들의 상처를 안고 살고 있듯이 우리 역시도 그러한 아픔들을 다 안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드러내느냐 안느냐가 겉으로 드러난 환자와 일반인의 차이겠지만 우리 모두가 상처를 안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기에 그 아픔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럼에도 이 모든 아픔들을 서로 보듬어 주며 살아갈 수 있다는 따스함을 전해주는, 보았던 얼마 되지 않던 드라마 중에서 단연 손에 꼽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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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 / 노희경저


 

 

독서 기간 : 20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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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렐렘
나더쉬 피테르 지음, 김보국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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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어로 사랑을 뜻하는 세렐렘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고도 설레렘이라 읽으며 설렘에 대한 증폭을 이렇게 쓴 것일까? 라고 생각했으니, 이 책에 대한 초반의 나의 접근은 그야말로 헛다리를 제대로 짚은 것이었으며 그래서일까, 사랑하던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러 간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는 어렴풋한 전개의 시작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뒤에 이어질 시끌 벅적하거나 눈물이 쏟아지며 고성이 오가는 이별의 현장을 예상했다면 실제 이 소설 속에서 드리우는 모습은 고요하다 못해 몽상적인 순간들의 연속이다 보니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상상의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되지 않아 계속해서 적막한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 어느 책에서도 마주한 적이 없었던 이 글의 형태는 언어 유희를 넘어서 우리가 책이라는 것에 가지고 있던 틀에 얼마나 속박되어 있었는지에 대해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문단의 시작은 한 칸 띄어 쓰기를 한 그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보편적인 글의 형태였다면 이 책에서의 시작은 늘 생각지 못한 곳에서 중반, 혹은 말미에서 문장이 시작되고 있었으며 중간 중간 노래처럼 등장하는 문체들을 보노라면 놀라움을 넘어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라디에이터 위에 불룩한 필사 자료들이 담겨 있는 파일. 내일 그것을 읽어야 하는데, 사실은 오늘 읽었어야 했다. 또는 어제. 왜냐하면 오늘은 이미 내일일 수 있으니. 파일 표지 위에 있는 내 시계. 그 시계를 볼 수 있다면, 그러면 어제인지 아닌지, 또는 내일인지 확인해볼 수 있으련만, 그러면 어제인지 아닌지, 또는 내일인지 확인해볼 수 있으련만, 이 움직임은 아직 근접하지 못한 내 마음의 무심함을 방해할 것이다. –본문

 그도 그럴 것이 연인으로 함께 해 오던 이들은 작은 방안에서 환각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 모든 상념은 함께 환각에 빠진 남자의 의식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고 몽롱한 그 상태에 빠져버린 그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도무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그의 상상이 만들어 낸 비현실인지에 대한 경계마저도 모호하게 되 버린다.

 환각 속에 있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엇이 현실이고 환상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밝혀내려 애쓰는 그의 몸짓은 때론 처절하기까지 하다. “말해봐, 자기야!”, “우리에게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 “그래, 뭔가가 이상해.” 라는 이야기가 오가는 그들 속에 함께 있다 보면 마치 나까지도 그들의 환각 속에 전염이 되어 이곳이 어디인가, 에 대한 물음이 계속되게 되는데, 분명 물잔을 들고 물을 따라 자신이 마셨다는 것을 느꼈던 그가 그의 여자친구에게 확인한 바로는 침대에서 움직인 적 조차 없었으며 그것이 모두 그녀가 대신 해준 행위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과연 그가 느끼고 본 것은 환상일까, 아니면 실제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의 상념은 멀미가 나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장면이 펼쳐진다. 우리는 방 가운데서 서로를 껴안고 있다. , 다시 그 방이다. 그녀의 머리가 내 어깨 위에 있지만, 나는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누웠던 침대. 열린 발코니 문, 그 앞에는 카펫.밤의 불빛. 밖은 어둡다. . 방 안 침대 위에 불빛이 비친다. 그러면 이 불빛과 이 어둠은 우리가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그 밤과 동일한가? 그렇다. 나는 기억한다. 이 밤은 낮게 윙윙거리는 소리로, 무거운 부유로 시작되었고, 볼 수 있는 것을 다시 보기 위해 나는 지금 여기에 돌아왔다. –본문

 그 방을 나오기까지, 아니 그가 현실을 인지하기까지의 시간들을 지내오는 동안에 과연 그가 생각했던 것과 그가 실제 느꼈던 것,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가 말해주는 진실까지,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진실과 환상의 경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발을 내딛기 위해 흔들리는 나머지 다리에 대한 인식처럼 아마도 그는 계속해서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환각 속의 세상에 대해서 그의 이야기를 통해 충분히 경험한 것만으로도 머리가 핑핑 돌 듯 한 그의 의식을 따라가면서 취중 속 혹은 잠결에 있던 순간이 지금의 모습일까, 라는 생각과 함께 과연 그의 목적이었던 이별 의식이 어떻게 다시 진행될 지 걱정스럽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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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 윌리엄 버로스저


 

독서 기간 : 2014.10.2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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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윤신영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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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보면 소설 같기도, 어찌 보면 철학인 듯 하면서도, 과학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생물에 관한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종족간의 경계 없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또 하나의 판타지와 같은 모습이다. 어찌되었건 무엇이라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이 책의 이야기에 대해서 한 마디로 느낌을 표현해 보자면 과연 이 지구가 인간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라는 깊은 반성과 함께 사라져가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가 서글프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먹이사슬 피라미드에 대해서 인간은 말미암아 가장 상위에 존재하는 최상위의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는 모습으로 배우곤 했다. 그것은 지구의 탄생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 속에서 등장한지 채 몇 초도 되지 않은 인간이 이 지구의 모든 것들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오만함의 극치였다는 것을 이제서야 인지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과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해서 깊은 상념에 빠져보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알면 알수록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 이야기하는 우리가 그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장을 보게 되면서 과연 인간의 존재가 무엇이며 인간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된다.

 시작은 인간이 박쥐에게 전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인간이 박쥐에게 대체 무슨 이야기를 전하게 될까, 라는 이야기가 다시 박쥐가 꿀벌에게, 꿀벌이 호랑이에게 연계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도무지 아무 연관이 없을 것만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그들만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게 된다.

 사람들은 막연히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굴에서 겨울잠을 잔다는 사실, 활동기가 되면 팔과 다리, 꼬리 사이를 덮은 날개막이라는 피부막을 이용해 날아다닌다는 사실, 날개막 구조는 새나 화석 속의 익룡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어두운 동굴에서도 길을 찾거나 먹이를 잡을 수 있도록 초음파를 낸다는 설명도 당신에 대한 묘사로 단골입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직 매우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까. 어디선가 날아든 박쥐를 보고서는 소리를 지르며 내달렸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나에게 남아있는 박쥐라는 동물은 징그럽고 무서운 존재로만 남아있다. 그것은 현재의 나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는 사실인데, 흡혈귀로 변모할 것만 같은 박쥐에 대한 편견은 사실 대부분의 박쥐는 초식 동물이며 흡혈박쥐라 불리는 것들은 남미에만 서식하는 것으로서 그도 사람의 피가 아닌 가축의 피를 먹고 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박쥐라 하면 왠지 두려움만을 떠올린 것이 사실이다.

 이전에는 자주 마주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현대에 있는 박쥐들은 흰코증후군이라 불리는 박쥐 병에 의해서 점점 그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물론 인간에 의해서 급변하고 있는 기후의 변화는 늘 비슷한 온도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박쥐에게 있어서 사라지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미운 마음에, 당신 따위는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당신은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작은 박쥐 하나가 하룻밤에 먹을 수 있는 해충의수는 3000마리 이상입니다. 미국산림청은 2009. 흰코증후군 때문에 박쥐가 줄면110 kg에 달하는 해충이 활개를 칠 거라고 예측할 정도였어요. –본문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역할을 하고 있던 박쥐는 꿀벌에게 다시 편지를 쓰게 되는데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전염병 때문에 꿀벌들이 집단 폐사했던 그 순간을 목도한 박쥐는 꿀벌들의 그 안타까움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꿀벌이 사라지는 날에는 현존하고 있는 70%의 식물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하니, 매번 벌이 나타날 때마다 쏘일까 두려워만 했던 나로서는 그들의 존재가 이토록 크게 다가올 수가 없게 된다.

 그 작은 꿀벌이 다시 호랑이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이들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꿀벌과 호랑이는 같은 시대를 지내온, 그러니까 오랜 시간 지구상에 함께 존재해왔던 동물이라고 한다. 너무 작아서 있는 줄도 잘 몰랐던 벌꿀이 호랑이와 함께 지구를 호령했던 존재였다니. 그리고 그 둘 모두의 개체가 인간에 의해서 점점 설 자리가 줄어서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당연이 이 당시에 살던 원시 고래의 모습은 지금의 당신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평범한 네발 동물이었어요. 주둥이가 길고 발굽은 두 개 또는 네 개로 갈라져 있으며 개처럼 부지런히 땅을 헤집으며 먹을거리를 찾아 헤맸겟지요. 왜 물에 가게 되었을까요. 아마 먹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빠른 시간에 육지를 점령하며 폭발적으로 불어난 포유류들은, 이미 서로 간에 먹이 경쟁을 벌이느라 꽤 피로함을 느꼈을 거예요. 당신의 조상은 경쟁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을 찾아 바다에 주목했을 것입니다. –본문

 유유히 바다 속을 가르며 헤엄치고 있는 고래가 사실은 돼지와 친척 관계였다는 것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그들이 실은 함께 육지에서 있던 존재였다니. 고래라는 의미 안에 그러한 숨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러한 고래를 보며 부러움을 토로하고 있는 돼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먹을 거리로만 생각했던 돼지에 대한 마음이 송구하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사자를 통해 네안데르탈인으로 이어지기까지 숨가쁘게 현재의 우리에게 편지가 다시 되돌아오기까지 서로 연계관계가 전혀 없을 것만 같은 동물간의 이야기를 보노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이전의 시기에서부터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하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서로를 위협하며 살아가는 시간들이 있기는 했으나 누가 누구보다 상위의 위치에 있어 자신보다 하위에 있는 생태계를 멸망시키는 일 따위는 전혀 없었던, 그야말로 공존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인간의 출현은 이 모든 것들을 한 순간에 불살아 버리는 끔찍한 만행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그곳에서 당신과 생태계를 공유하는, 아니 당신과 같이 생태계를 완성해 가는 다른 동물이 있을 것입니다. 약하고 무용해 보이는 인류를 보듬어 품어 70억에 이르도록 번성시킨 당신의 포용력을, 이제 다른 종에게도 넓혀 보세요. 조금이지만 제게도 보였줬던 그 포용력을, 당신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존재로서, 다시 기다립니다. –본문

 마지막 네안데르탈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편지를 읽으며 과연 우리가 앞으로 어떠한 행보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이곳은 우리만의 소유가 아니며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나누며 그저 그 안에 속해 있는 하나의 종일 뿐이다. 만용이 아닌 포용으로 함께하는 자세를 가져야만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금 존재하는 이들은 물론 우리도 있게 되지 않을까. 찬찬히 되짚어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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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의 노래 / 데이비드 쾀멘저

 

 

독서 기간 : 2014.10.25~10.2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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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는 철학 공부 How to Study 1
다케다 세이지 & 현상학연구회 지음, 정미애 옮김 / 컬처그라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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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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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에 대해서 지금이라고 무엇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은 이전에 나에게 철학이라는 것은 그저 어려운 것으로만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형이상학적이라는 단어도 제대로 모르면서 그저 그 단어가 풍기는 중우함에 매료되어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철학은 인간의 삶을 관통하여 현재의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통찰이 아닌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 철학이라는 이름을 빌렸던 것으로 배우고자 하는 것보다는 보여지기 위한 목적이 더 컸던 것이기에 늘 배우고자 하는 마음보다도 철학에 관련 된 책을 들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해 뿌듯해하는 마음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처음 시작하는 철학 공부>라는 이 책을 마주하면서 이전에 몇 권의 책들을 읽기는 했다지만 아직 철학의 겉면에서만 맴돌고 있기에 이 책을 시작으로 다시금 시작해 보겠노라, 라는 생각으로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현대는 철학에게는 조금 불행한 시대이다. 그렇다면 철학이란 무엇인가? (중략)

첫째, 세계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세계를 끈임 없이 탐구하고 사유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본질이다(형이상학으로서의 철학).

둘째, 철학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이러쿵저러쿵 난해한 방식으로 장황하게 말해 온 것일 뿐이다. 이 사실을 지적하는 일이 현대철학의 사명이다(형이상학 비판으로서의 철학). –본문

형이상학의 철학과 형이상학 비판으로서의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철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만이 가능한 일들이다. 그저 철학이라는 이름의 두 글자의 묵직함만 알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철학의 기본적인 틀과 함께 기초적인 지식들을 전해주면서 철학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게 다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처럼 모든 것을 다 의심하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데카르트는 이를 코기토 에르고 숨(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라고 표현했다. 철학적 사고는 모두 이 명제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드러난다. ‘생각하는 나는 확실해도 외재적 나인 육체는 의심스럽다. 과연 몸과 마음은 별개일까, 아니면 동일한 존재일까? 이를 심신이원론의 문제라고 한다. –본문

 아침잠이 습관으로 굳어져 버렸던 데카르트에게는 그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달콤함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잠을 자는 와중에 생각이 나면 일어나서 메모를 한 뒤에 다시금 아침 잠에 빠져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그에게 스웨덴 여왕의 새벽의 강의 명령은 그로 하여금 더 이상의 생각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이 되고 만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대한 명제에 대해서는 몇 차례나 읽어왔음 에도 불구하고 심신이원론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이 책 안에서는 수 많은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3~4장의 페이지 안에 담고 있으면서 그 철학자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과 그가 생각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데 쉽게 쓰여 있기에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물론 그 안의 내용들을 마주하며 그 다음 내용은 무엇일까, 에 대해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거즌 서른 명의 철학자를 이 책을 통해서 조금씩 마주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철학자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에 대한 흐름을 따라가면서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라 생각 든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철학에 대해 이해한다, 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내게는 꽤나 도움이 많이 된 책이다

 

 

 난해함의 대명사로 불린다는 라캉은 그가 살아생전에 초현실자들과의 만남이 활발했던 것처럼 그가 남겨놓은 사상들은 쉬이 다가가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고 하는데 영화 매트릭스를 보노라면 라캉이 말하든 상상계, 상징계, 현실계 에 대해서 조금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일상에 입각해 생각해 본다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세계가 상상계이다. 상상계는 눈이나 귀 같은 지각을 통해 의식에 나타난 세계이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다. 현실계는 결코 인식할 수 없다. 더욱이 상상계 뒤쪽에는 상징계라는 지각되지 않은 규칙, 질서의 세계가 있으며 라캉은 이를 대문자의 타자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무의식 속에서 상징계(=대문자의 타자)의 질서에 지배당하고 있는 셈이다. –본문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현실계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은 알약을 먹음으로서 우리가 실제라고 알고 있는 것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세계는상상계이며 그 이면에 현실계가 존재하게 되는데 라캉이 말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도무지 현실계의 모습들을 인지할 수 없으며 그저 무의식 속에 잔재되어 있는 것들에 의해 현재를 지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거즌 서른 명의 철학자를 이 책을 통해서 조금씩 마주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철학자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에 대한 흐름을 따라가면서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라 생각 든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철학에 대해 이해한다, 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내게는 꽤나 도움이 많이 된 책이다 

 

 

아르's 추천목록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 / 샤론 카예, 폴 톰슨저


 

 

독서 기간 : 2014.10.22~10.2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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