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천재 시계사와 다섯 개의 사건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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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지나간 시간 속에 자리하고 있는 추억에 대해서, 대부분은 아련한 것들이 남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우고 싶은 장면들이 꼭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추억이라 미화시키기에는 아픈 그 순간들을 돌아갈 수만 있다면야 다시 돌이켜 변화시키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 한 켠에 고이 접어 두고 있는데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바꿀 순 없더라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라는 덧없는 상념에 빠져본다.

 추억의 시時 수리합니다.’
 
몇 번을 확인해봐도 틀림없이 그렇게 적혀 있었다. 어떤 의미일까.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아카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망가진 추억을 수리할 수 있는 걸까. 무엇보다 추억이 망가지기도 하는 것일까.
 
망가질지도 모른다. 아아, 그렇다. 아카리에게도 망가져버린 추억이 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본문

 아마 이 생각을 멀뚱히 하고 있을 때 슈지의 가게를 보았더라면 나도 모르게 그곳에 들어갔을지 모른다. ‘추억의 시계를 수리합니다의 간판의 자가 빠지게 되면서 추억의 시()를 수리합니다라는 그의 가게에 말도 안돼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빠져들었을 텐데 SF 장르의 판타지적 느낌이라기 보다는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따스해 지고 있으니, 슈지의 가게는 추억의 시간을 수리하는 것이 맞기는 하나보다.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터덜터덜 어린 시절 그녀가 있었던 이곳으로 오게 된 아키라. 그녀는 사람들이 왕래가 뜸하다 못해 닫아버린 가게가 많은 이곳에 이사를 오게 된다. 그리고  그리고 그녀의 등장을 따스하게 맞아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시계방의 주인 슈지인데 스위스의 유명한 시계 학교를 졸업한 그는 할아버지의 가게를 이어 지금 이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아키라와 슈지, 다이치. 이 셋은 생동감이라고는 전혀 없던 이 거리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 모으며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는데 이미 지나간 시간이기는 하나 그들이 안고 있던 시간들이 하나 둘 모여 빛을 내며 잠식해버렸던 것들이 표면 위로 오르게 되면서 그들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또 위로해 주고 있었다.

갑작스레 발견하게 된 오르골을 보며 아버지의 생사조차 모르고 있던 한 소녀가 아버지에 대해 그리움을 표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지나고 나서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사랑인지 몰라 떠나 보내던 이야기, 행방 불명 된 딸을 오매불망 찾아 다니는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슈지와 아카리의 이야기가 이 안에 옴니버스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인형을 주면서 엄마가 했던 말을 기억해요.”
ㅡ이젠 울지 마렴.
예전에 전 이게 갖고 싶다고 떼를 쑤며 울었거든요.”
ㅡ앞으로 울고 싶은 일이 산더미 같을 테니까 그럴때는 아기 돼지를 꼭 안고 웃으렴.
그녀는 아기 돼지 인형을 슬쩍 들어 올리며 애써 웃으려 했다.
고마워 엄마.”
입술 모양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제 울지 않을게.” –본문

사람들의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이 시계방을 통해서 하나씩 드러나게 됨에 따라서 그들의 삶에 이전의 기억들이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그들에게 어떠한 위치에서 그들에게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를 만나볼 수가 있다. 아카리가 도착했을 때 그녀에 대해 기억하던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던 아카리가 알게 되는 진실은 물론이거니와 언뜻 생각해 보아도 스위스에서 공부를 한 쇼지가 왜 이곳에 있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 모두 이 안에서 서서히 이야기 타래를 풀어내고 있었고 그 이야기들을 하나 둘 마주할 때면 어느 새 애잔한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된다.

과거로 회귀하여 그 시간 자체를 마음대로 조정하는 류의 SF라기 보다는 그보다는 따스하면서도 인간적인 면이 더 많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안개처럼 뿌옇게 길을 잃게 만드는 추억은 현재의 나로 하여금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기에 그 안개를 걷어내는 행위는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 속 시간을 수리해준다는 것은 이전의 기억을 완벽하게 재편성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한 과거에 대한 위안이자 도약을 위한 첫 걸음인 셈이다. 문득 내 안에 잠겨 버린 시간들은 없는지에 대해서 또 한번 생각하게 하는, 잔잔하면서도 따스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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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저



  

 

독서 기간 : 2014.10.21~10.24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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