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렐렘
나더쉬 피테르 지음, 김보국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헝가리어로 사랑을 뜻하는 세렐렘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고도 설레렘이라 읽으며 설렘에 대한 증폭을 이렇게 쓴 것일까? 라고 생각했으니, 이 책에 대한 초반의 나의 접근은 그야말로 헛다리를 제대로 짚은 것이었으며 그래서일까, 사랑하던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러 간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는 어렴풋한 전개의 시작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뒤에 이어질 시끌 벅적하거나 눈물이 쏟아지며 고성이 오가는 이별의 현장을 예상했다면 실제 이 소설 속에서 드리우는 모습은 고요하다 못해 몽상적인 순간들의 연속이다 보니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상상의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되지 않아 계속해서 적막한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 어느 책에서도 마주한 적이 없었던 이 글의 형태는 언어 유희를 넘어서 우리가 책이라는 것에 가지고 있던 틀에 얼마나 속박되어 있었는지에 대해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문단의 시작은 한 칸 띄어 쓰기를 한 그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보편적인 글의 형태였다면 이 책에서의 시작은 늘 생각지 못한 곳에서 중반, 혹은 말미에서 문장이 시작되고 있었으며 중간 중간 노래처럼 등장하는 문체들을 보노라면 놀라움을 넘어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라디에이터 위에 불룩한 필사 자료들이 담겨 있는 파일. 내일 그것을 읽어야 하는데, 사실은 오늘 읽었어야 했다. 또는 어제. 왜냐하면 오늘은 이미 내일일 수 있으니. 파일 표지 위에 있는 내 시계. 그 시계를 볼 수 있다면, 그러면 어제인지 아닌지, 또는 내일인지 확인해볼 수 있으련만, 그러면 어제인지 아닌지, 또는 내일인지 확인해볼 수 있으련만, 이 움직임은 아직 근접하지 못한 내 마음의 무심함을 방해할 것이다. –본문

 그도 그럴 것이 연인으로 함께 해 오던 이들은 작은 방안에서 환각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 모든 상념은 함께 환각에 빠진 남자의 의식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고 몽롱한 그 상태에 빠져버린 그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도무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그의 상상이 만들어 낸 비현실인지에 대한 경계마저도 모호하게 되 버린다.

 환각 속에 있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엇이 현실이고 환상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밝혀내려 애쓰는 그의 몸짓은 때론 처절하기까지 하다. “말해봐, 자기야!”, “우리에게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 “그래, 뭔가가 이상해.” 라는 이야기가 오가는 그들 속에 함께 있다 보면 마치 나까지도 그들의 환각 속에 전염이 되어 이곳이 어디인가, 에 대한 물음이 계속되게 되는데, 분명 물잔을 들고 물을 따라 자신이 마셨다는 것을 느꼈던 그가 그의 여자친구에게 확인한 바로는 침대에서 움직인 적 조차 없었으며 그것이 모두 그녀가 대신 해준 행위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과연 그가 느끼고 본 것은 환상일까, 아니면 실제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의 상념은 멀미가 나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장면이 펼쳐진다. 우리는 방 가운데서 서로를 껴안고 있다. , 다시 그 방이다. 그녀의 머리가 내 어깨 위에 있지만, 나는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누웠던 침대. 열린 발코니 문, 그 앞에는 카펫.밤의 불빛. 밖은 어둡다. . 방 안 침대 위에 불빛이 비친다. 그러면 이 불빛과 이 어둠은 우리가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그 밤과 동일한가? 그렇다. 나는 기억한다. 이 밤은 낮게 윙윙거리는 소리로, 무거운 부유로 시작되었고, 볼 수 있는 것을 다시 보기 위해 나는 지금 여기에 돌아왔다. –본문

 그 방을 나오기까지, 아니 그가 현실을 인지하기까지의 시간들을 지내오는 동안에 과연 그가 생각했던 것과 그가 실제 느꼈던 것,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가 말해주는 진실까지,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진실과 환상의 경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발을 내딛기 위해 흔들리는 나머지 다리에 대한 인식처럼 아마도 그는 계속해서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환각 속의 세상에 대해서 그의 이야기를 통해 충분히 경험한 것만으로도 머리가 핑핑 돌 듯 한 그의 의식을 따라가면서 취중 속 혹은 잠결에 있던 순간이 지금의 모습일까, 라는 생각과 함께 과연 그의 목적이었던 이별 의식이 어떻게 다시 진행될 지 걱정스럽게만 느껴진다.

 

 

아르's 추천목록

 

퀴어 / 윌리엄 버로스저


 

독서 기간 : 2014.10.2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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