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좀 떼지 뭐 - 제3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양인자 지음, 박정인 그림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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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의 기억에 대해서 별달리 남아있는 것은 없지만 슈퍼에 가거나 시장을 가거나, 혹은 어디서든 마주한 어른들이 너무도 당연히 반말을 했던 것에 대해서 어린 마음에도 뾰로통하니 싫어했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그 때의 잔상이 지금도 남아 있어서인지 아이들을 마주할 때에도 먼저 말을 놓지 않고 서로 높임말을 하며 이야기를 한다. 당시의 나의 기억으로는 어른이기 때문에 무조건 옳다, 라고 말하는 그 모습을 싫어하곤 했는데 이 <껌 좀 떼지 뭐>라는 책에서는 어른들의 불합리한 모습들을 아이들의 눈을 통해서 마주할 수 있다.

 학교가 지저분해지는 것을 너무나 싫어하시는 교장 선생님은 껌을 씹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는 즉시 교장실로 소환하여 청소를 시키는 것은 물론 껌은 씹고 있는 또 다른 아이들 2명을 잡아올 때까지 이 벌은 계속해서 매일 해야만 한다. 학교 내에서 사탕이며 껌이며 아무것도 용납하지 않는 교장 선생님을 보면서 미나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친구들 혹은 자기 보다 어린 친구들을 교장실로 데려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그 자리를 지키며 먹이 사슬과 같은 이 구조가 계속해서 뻗어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너 그렇게 주변만 빙빙 도는 거, 나 어렸을 때랑 참 비슷하다. 괜히 꽁해 있지 말고, 이리와.”
 
승현이가 젓본대처럼 꼿꼿이 서 있느 ㄴ승학이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잡은 손을 흔들었다
.
 
나에게 북은 세상 고민을 잊게 하던데, 북 싦은 다른 악기 해볼래?” –본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할머니와 살고 있는 승학은 자신을 가엽게 보는 시선은 물론 그러한 아픔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는 할머니가 행태가 죽을 만큼 싫어 소리를 꽥 지르고 있다. 대학생들이 오던 새로운 이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그 무엇에도 관심 없이, 북을 치는 그 순간마저도 할머니의 동정 어린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서는 북마저도 멀리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만나게 된 승현과의 조우는 이전에 그를 가두어 놓았던 벽을 뚫고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너희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고집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다 너희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에도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토론 시간도 진행하지 않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곰곰이 곱씹어 보게 된다.

  너희가 깊이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우연히 벌어진 일인 데다, 선생님의 시험지 관리 소홀도 잘못이다. 그래서 최대한 선처하기로 했다. 대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살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많은 테지. 하지만 그걸 이겨 내는 게 진짜 공부라는 걸 명심해라! 알았니?  본문

 아이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천왕봉>의 모습은 보는 내내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어른들의 모습이 이러해야 한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좋은 성적을 받아 핸드폰을 바꾸고 싶은 현석과 우연한 기회에 시험지를 보게 된 휘빈은 시험 전날 시험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게 되고 이 모습이 발각되면서 그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두려움 속에 떨고 있게 된다. 최악의 상황으로 퇴학당하는 것이 아니냐며 떨고 있는 그들에게 시험은 한 주 연기됐으며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천왕봉의 산행 미션이 주어지게 되는데 산을 올라 정상을 바라보며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잔잔한 파장을 전해주게 된다.

 아이들의 눈에서 보았을 때 비로소 어른들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의 경험이 많다는 것이며 그래서 더 옳은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항상 옳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기에 아이들에게 그 길을 종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에 대한 반성을 해 보며 평소의 내 모습들을 다시금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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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눈에 비친 어른 세상 그리고 나 / 주디스 라자르저


 

 

독서 기간 : 201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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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 2014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공간 3부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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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운 미래, 5명 중 한 명이 노인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점점 더 늘어나는 노인의 인구 비중도 비중이지만 그들에 대한 제대로 된 노후 대책도 없을뿐더러 국가 조차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일본의 뉴스에서 먼저 등장했던 고독사가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마주하면서 과연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자 현실이 이 <모나코>를 통해서 마주하게 된다.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 그는 그저 노인으로 불리고 있다.  3자에 의해서 불려지는 이름이기에 그를 찾는 이가 없다면 자신의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고 타자가 없다면 나의 이름을 소개할 기회 조차 없기에 이 소설 속에 노인의 이름이 들을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그를 찾는 이가 없는, 그러니까 수 많은 사람들과 발딛을 틈 없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의 삶과는 다른 세상 속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 스스로도 그에게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저 이름 모를 노인으로만 그들이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떠돌다 객사를 하는 이들과 같은 처참함은 아니었지만 그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이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처연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날, 그가 이룩해 놓은 것들을 통해 현재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0대의 파릇파릇함을 표영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구태여 오래 살 필요가 없는 삶이라며 시가를 건네는 장면에서 덤덤히 그가 피력하는 바라 전해지게 된다. 그는 현재 우리와 같이 동일한 선상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디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이 아니다. 덕이 아니라면 오늘 그의 음식은 냉장고 속에 비어있을 것이며 그 노인에게도 아직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는 여인이 있다는 것은 그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기에 그저 지나칠 뿐이다.

 노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철봉에 매달렸다 오래 살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 아니냐고? 시작은 그랬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반세기를 견뎌 낸 습관이 노인의 몸을 밀고 나갔다. 언제부턴가 사는 것도 습관처럼 여겨졌다. 먹고, 자고, 걷고, 먹고 걷고 또 걷고.
 
어떤 날은 사는 이유를 생각했다. 다음 날엔 또 잊어버렸다. 이제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먹는 것의, 사는 것의 의미는 조난당한 선원의 수영복처럼 부질없었다. –본문

 그가 유일하게 살아있다고 보여지는 시간인  모나코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현재로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향해서만 날아가는 그의 모습을 서글프게만 느껴진다. 이 세상 속에 그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노인이기에 그로부터 빼앗을 궁리만 하는 이들의 시선이라든가,아니면 그를 이용하려는 시선만이 그에게 당도할 뿐, 그 자체에 대한 어떠한 용납도 되지 않는 고립되어 있는 상태이다. 살아는 있으나 아무것도 없는, 그저 다 늙어버린 인간으로만 취급되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남자를 넘어 인간으로서도 아무런 필요도 느껴지지 않는, 살아만 있는 인간으로 그를 대하는 세상이 서글픈 뿐이다.

 세상에 홀로 와서 홀로 떠나는 것이라는 말처럼, 그는 그의 죽음에 대해서 그저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자신의 가슴을 뛰게 했던 이나 그의 곁을 돕고 있던 이도 없이 그저 고양이들만 남겨진 사이에서 사그러드는 삶도 삶이지만 그 스스로 자신이 꿈꾸던 모나코로 가는 꿈은 물론 진이를 놓아버리는 그 모습들은 그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선택이었겠지만, 과연 그가 노인이 아닌 청년이었더라면 아마 우리는 그에게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노인이 죽은 지 정확히 한 달하고 이틀이 지난 날, 새벽 늦게 두 사람이 노인의 집을 찾았다.도둑들이었다. 푹 눌러쓴 모자와 검은색 마스크로 가리고 있었지만 아는 사람이 봤다면 단번에 누구인지 알아챌 만한 얼굴이었다. 비탈길에 쌓인 눈을 치웠던 늙은 인부와 젊은 인부였다. 그들은 동네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었고 부잣집들의 이런 저런 잡일을 봐주며 집의 구조를 익혀 놓았다. CCTV 위치와 경찰의 순찰 시간 따위도 다 파악하고 있었다. –본문

사람의 온기가 가득하게 피어나야 할 그 곳에서는 그저 그를 이용하려 하는 이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필요에 의해 그의 곁에 머무르는 사람이 있을지 언정 실제 그는 언제나 혼자였던 것이다. 마지막 그를 발견하는 것 역시 아이들의 장난 속에 묻혀 버리고 덕이 그 자리를 찾는 그 순간에는 고양이들도 사라지고 말았으니, 그는 살아 있을 때나 죽음으로 세상과의 안녕을 고한 이후에나 그가 혼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마냥 씁쓸함만이 묻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잔재들을 어떻게 안고 가야 할지 먹먹하기만 하다. 그저 세상에 왔다 간 노인으로만 그를 기억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내 안에 담아 놓았나 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노인이라는 그가 이토록 쓸쓸히 사라지기까지 그저 목놓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시큰함이 밀려들고 있다. 과연 이것이 그 홀로 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노인들이,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누구나 혼자 가야 하는 길이라고 하지만 그 와중에 조금은 따스한 손길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홀로 있을 그들에게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곁에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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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소실형 / 가지오 신지저 


  

 

독서 기간 : 2014.11.0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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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 혁명을 불씨를 지피고, 세상을 바꾼 사회주의 철학자
코린 마이에르 지음, 안 시몽 그림, 권지현 옮김 / 거북이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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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의 반대를 생각해보자면 사회주의가 떠오르고 그 뒤에 마르크스가 떠오르게 된다. 사회주의에 대해서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진 것이며 실패한 사상이라는 생각에 구태여 사회주의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냐, 라는 생각에서부터 마르크스의 사상들에 대해서 알고자 함이 반역이라 된 듯이 조심스럽기만 했는데 그것이 옳고 그르다는 것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막연한 추측이 아닌 제대로 바라보고 그 다음에 판단해야 한다는 뒤늦은 깨달음 때문에 마르크스에 대한 책을 이것저것 뒤척여 보기는 했으나 그 이야기들을 쉬이 다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그리하여 아직도 뜬 구름과 같이 멀리만 자리하고 있던 그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서 조금 더 쉽게 전체적인 내용을 마주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인지 읽고 나서 그의 이야기를 다시금 읽어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때는 악마라고까지 불리었던 그는 어린 시절 유대교의 율법학자 출신이었다. 당시 유대인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터라 그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개신교 세례를 받을 것을 권고 받는데 그 어린 시절부터 그는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삶이 정해지는 것에 대한 단호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세상을 둘러보면 볼수록 그가 가야 하는 길이 법조계가 아닌 철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의 생각들을 함께 할 수 있는 신문을 발행하게 된다. 엥겔스와의 조우를 통해 이러한 그의 관념은 확실을 넘어 더 높은 이상을 향해 점점 나아가게 되지만, 확고했던 그의 이상과는 달리 실제 그의 삶을 점점 그를 궁핍함을 넘어 그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돈이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그 사태를 바라보며 그는 이 모든 것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공산당 선언과 함께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혁명을 도모하게 되는데, 그가 혁명을 도모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실제 그의 주변에 있는 자본주의 힘은 그에게 더욱더 큰 시련과 압박을 가하고 있다

 

 현재 그가 남긴 사회주의 사상이 발아하여 혁명으로까지 이어지기는 했으나 실제 그 혁명은 그가 바라던 모습이 아닌 왜곡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죄 없는 수 많은 이들이 죽음으로 몰아 넣기도 했으며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랐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간의 계층간의 차이가 점점 늘어나며 독재의 형태로 변모해 가는 것을 마르크스가 보았더라면 자신의 이상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품었던 생각들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는 물론 쉽게 읽을 수 있기에 즐겁게 읽어 내려간 듯 하다. 이 책을 시작으로 그에 관한 책들을 다시금 하나 둘 읽어보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그가 이전보다 가까워진 느낌이라 읽고 나서 꽤나 만족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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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 이사야 벌린저


 

 

독서 기간 : 201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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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
박완서 지음, 민병일 사진 / 열림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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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서 선생의 작고 소식을 들으며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이야기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서글프게만 느껴졌다. 박완서 작가의 단편집인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시작으로 <노란집>을 읽게 된 나로서는 거의 마지막에 그녀의 이야기를 마주한 셈이지만 그 따스함과 아련함이 담겨 있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박완서 선생의 이야기라면 무조건, 이라는 생각으로 읽어내려 갔었는데 그런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를 더 이상 접할 수 없다는 것은 그녀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매우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나에게 이 <모독>이라는 책은 그야말로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환희에 차게 했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데 1997년도에 출간된 책이었지만 실은 존재하는지도 잘 몰랐던 이 책을 지금 이렇게 다시 보며 그녀의 이야기를 탐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렘과 기쁨이 교차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티베트의 하늘은 그때의 우리 하늘빛보다 더 가깝고 더 깊게 푸르다. 인간의 입김이 서리기 전, 태초의 하늘빛이 저랬을까? 그러나 태초에도 티베트 땅이 이고 있는 하늘빛은 다른 곳의 하늘과 전혀 달랐을 것 같다. 햇빛을 보면 그걸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다. 바늘쌈을 풀어 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엔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는,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 –본문

 실용성보다는 멋내기용을 위해서 당시는 착용했다는 선글라스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착용하고 마주한 티베트 땅에 선 그녀를 통해 마주한 하늘은, 내가 그 동안 보았던 그 어떠한 푸르름 보다 더욱 진하고 깊은 푸르름인 듯 하다. 민둥산과 같은 언덕을 뒤로 하며 보이는 새파란 하늘은 지금의 이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더욱더 푸르르게 그녀의 가슴 속으로 와 닿았을 것이다.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으나 그들에게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어떠한 위압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품어주고 있었으니, 이 여정이 벌써부터 설레온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네 모습과 비슷한 그들을 보면서 그녀는 반가움을 느끼고 있다. 다른 나라에 왔다기 보다는 반세기를 거슬러 과거로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니, 어찌 보면 이 여행이 그녀에게 더욱 따스함을 전해주는 이유일 것이다.

 도대체 바다 밑의 세계에서 제일 높은 땅으로 밀어 올린 에너지란 어떤 것이었을까. 땅의 광란이었을까? 하늘의 분노였을가? 그 해답을 성적인 에너지에서 찾은 게 티베트 사람들이 아닐까. 이 땅을 생성한 그 엄청난 기운이 이 거친 땅에 몸 붙이고 살게 된 사람들의 의식에 옮아 붙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 곳 사람들의 최고 성지 카일라스 산도 남성적 에너지의 상징이니만치 반드시 여성적 에너지의 상징인 마나사로와르 호수와 짝을 이루어 숭배 받는다고 한다. –본문

 

 티베트의 사원과 초원을 넘어 마주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아른거리는데 자랑스럽게 가져다 준 암모나이트를 보며 선생은 티베트의 에너지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며 그 안의 의미들을 전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네팔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데, 그녀가 말하는 네팔은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서 이질감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해해줄 뿐더러,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사치를 부린다고 해서 실제 우리의 주머니가 가벼워지지 않기에 부담 없이 네팔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을 더욱더 가슴을 뛰게 만든다.

 

 

 

 오늘 살 줄 알았지 내일 죽을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힌두 문화권에서는 그렇지도 않는 것 같다. 그들의 사는 모습을 구질구질한 면까지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듯이 죽어 빈 껍데기가 된 시신이 아주 한 자락의 바람으로 무화되는 과정도 천역덕스럽게 보여준다. 윤회를 믿기 때문일까. –본문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혹은 책으로 몇 번씩 마주했던 화장장의 모습을 매번 마주할 때마다 무언가 송연해지는 느낌이 있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거리가 이토록 가까운 것일까, 라는 생각부터 어제는 살았을 그가 오늘은 주검으로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목도하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차단되어 다른 곳으로 동떨어져 버린 그 순간에 있다는 것이 무언가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그녀가 다녀왔던 동일한 일정으로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해도 나는 그녀와는 다른 것들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비슷한 것이라손 치더라고 나에게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었을 텐데 이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에서야 이 이야기를 마주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녀의 문장과 느낌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녀와 함께 이 길을 여행해보고 싶다. 내가 담아올 것들은 무엇인지, 그 안에 그녀와의 공통점은 있을는지, 먼 미래겠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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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수업 / Terry L. 동훈저


 

 

독서 기간 : 2014.1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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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 소실형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가지오 신지 지음, 안소현 옮김 / 살림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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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그야말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존재하고는 있으나 존재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적막 속에 갇혀 버린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아사미 가쓰노리의 형벌인 소실형을 보면서 괜찮겠다,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배니싱 링을 특수한 기능이 있다고 했다.
먼저 배니싱 링은 미약한 특수 전파를 내보낸다. 이 특수 전파가 배니싱 링을 찬 사람을 휘감아 돌면 주위 사람의 눈에 소실형을 받는 사람이 보이지 않게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투명해지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뇌가 전파에 휩싸인 존재를 감지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하고 여성이 예를 들었다. 배니싱 링을 찬 사람은 다른 사람 시야의 맹점에 들어간 듯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본문

  소실형이라는 것은 특수 배니싱 링을 목에 걸고 있게 되면 그 목걸이 안에서 남아있는 형량이 나타나고 이 배니싱 링을 차고 있는 동안에는 투명인간이 되는 형벌로 이 기간 동안에는 철저히 고립되는 형벌이다.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거니와 과연 투명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해 볼까? 라는 호기심 어린 상상을 가끔 해 왔기에 이 배니싱 링을 차고 지내는 것이 형벌이라기 보다는 또 다른 나날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 형벌 기간 동안 내에는 자신의 집에서만 지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어떠한 매체와의 접촉도 불가하다. 신문, TV, , 핸드폰 등은 볼 수도, 사용할 수도 없을뿐더러 타인과의 교류 또한 불가능하다. 만약 금지된 것을 시도하려 한다면 배니싱 링은 점점 목을 조여오며 죽음에 대한 고통을 느끼게 하기에 소실형을 받고 있는 이들은, 말 그대로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쓰노리는 왜 이 형벌을 선택했던 것일까. 점점 늘어나는 범죄자들과 수용할 곳의 한계에 부딪쳤던 정부는 이 소실형이라는 형벌을 새로이 만들어 내면서 이 형벌을 자진해서 받겠노라 하는 이들에게 감형을 해주고 있는데 1년에서 8개월로의 감형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는 이 형벌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그 4개월의 감형을 위해 선택한 이 소실형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형벌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가쓰노리가 소실형을 선택했을 때, 그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과, 타인을 도와줄 수도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것, 때론 이 배니싱 링의 고장으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형벌을 주도했던 부서가 사라져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을 수 있다는 기타 다양한 문제들을 그가 알았더라면 그는 절대 이 형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시험 단계인 이 제도를 별 다른 의심 없이 선택했던 그에게 드리우는 현실은 가혹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배니싱 링은 파괴 행동을 가쓰노리의 의식에서 예측했을까.
 
도끼를 포기하자 고리가 수축을 딱 멈췄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뼈져리게 느꼈다. 
 
왜 이런 순간에 목이 죄어져야 하는가, 하는 부조리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싶을 뿐인데.
 
그런 답답함이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알려야 한다.
 
이 상황을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본문

 매 순간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다. 가쓰노리는 이 세상에 함께하고 있으나 그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누군가를 돕는 것도 여의치가 않다. 게다가 그가 휘말려 든 사건 때문에 그의 배니싱 링에까지 문제가 생겼으니. 착한 사마리안조차도 될 수 없는 그는 그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일 뿐이다.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사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철저히 홀로 고립되어, 자신만의 섬에 갇혀 살아야 하는 이 소실형의 형벌을 통해서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형벌이라는 이름으로, 언젠가는 나타날 수 있는 이 제도가 실현된다면 과연 그것을 바람직한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가쓰노리를 통해 본 바로는 그 어느 형벌보다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것이 아닐 수 없기에 수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활발한 SNS 활동으로 이전보다도 넓은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는 21세기에 고독사가 더 늘어나는 것은 아이러니한 현재의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를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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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 조정래저


 

 

독서 기간 : 2014.10.27~10.2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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