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독
박완서 지음, 민병일 사진 / 열림원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s Review

 

 

   

 박완서 선생의 작고 소식을 들으며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이야기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서글프게만 느껴졌다. 박완서 작가의 단편집인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시작으로 <노란집>을 읽게 된 나로서는 거의 마지막에 그녀의 이야기를 마주한 셈이지만 그 따스함과 아련함이 담겨 있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박완서 선생의 이야기라면 무조건, 이라는 생각으로 읽어내려 갔었는데 그런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를 더 이상 접할 수 없다는 것은 그녀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매우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나에게 이 <모독>이라는 책은 그야말로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환희에 차게 했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데 1997년도에 출간된 책이었지만 실은 존재하는지도 잘 몰랐던 이 책을 지금 이렇게 다시 보며 그녀의 이야기를 탐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렘과 기쁨이 교차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티베트의 하늘은 그때의 우리 하늘빛보다 더 가깝고 더 깊게 푸르다. 인간의 입김이 서리기 전, 태초의 하늘빛이 저랬을까? 그러나 태초에도 티베트 땅이 이고 있는 하늘빛은 다른 곳의 하늘과 전혀 달랐을 것 같다. 햇빛을 보면 그걸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다. 바늘쌈을 풀어 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엔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는,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 –본문

 실용성보다는 멋내기용을 위해서 당시는 착용했다는 선글라스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착용하고 마주한 티베트 땅에 선 그녀를 통해 마주한 하늘은, 내가 그 동안 보았던 그 어떠한 푸르름 보다 더욱 진하고 깊은 푸르름인 듯 하다. 민둥산과 같은 언덕을 뒤로 하며 보이는 새파란 하늘은 지금의 이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더욱더 푸르르게 그녀의 가슴 속으로 와 닿았을 것이다.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으나 그들에게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어떠한 위압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품어주고 있었으니, 이 여정이 벌써부터 설레온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네 모습과 비슷한 그들을 보면서 그녀는 반가움을 느끼고 있다. 다른 나라에 왔다기 보다는 반세기를 거슬러 과거로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니, 어찌 보면 이 여행이 그녀에게 더욱 따스함을 전해주는 이유일 것이다.

 도대체 바다 밑의 세계에서 제일 높은 땅으로 밀어 올린 에너지란 어떤 것이었을까. 땅의 광란이었을까? 하늘의 분노였을가? 그 해답을 성적인 에너지에서 찾은 게 티베트 사람들이 아닐까. 이 땅을 생성한 그 엄청난 기운이 이 거친 땅에 몸 붙이고 살게 된 사람들의 의식에 옮아 붙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 곳 사람들의 최고 성지 카일라스 산도 남성적 에너지의 상징이니만치 반드시 여성적 에너지의 상징인 마나사로와르 호수와 짝을 이루어 숭배 받는다고 한다. –본문

 

 티베트의 사원과 초원을 넘어 마주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아른거리는데 자랑스럽게 가져다 준 암모나이트를 보며 선생은 티베트의 에너지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며 그 안의 의미들을 전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네팔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데, 그녀가 말하는 네팔은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서 이질감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해해줄 뿐더러,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사치를 부린다고 해서 실제 우리의 주머니가 가벼워지지 않기에 부담 없이 네팔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을 더욱더 가슴을 뛰게 만든다.

 

 

 

 오늘 살 줄 알았지 내일 죽을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힌두 문화권에서는 그렇지도 않는 것 같다. 그들의 사는 모습을 구질구질한 면까지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듯이 죽어 빈 껍데기가 된 시신이 아주 한 자락의 바람으로 무화되는 과정도 천역덕스럽게 보여준다. 윤회를 믿기 때문일까. –본문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혹은 책으로 몇 번씩 마주했던 화장장의 모습을 매번 마주할 때마다 무언가 송연해지는 느낌이 있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거리가 이토록 가까운 것일까, 라는 생각부터 어제는 살았을 그가 오늘은 주검으로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목도하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차단되어 다른 곳으로 동떨어져 버린 그 순간에 있다는 것이 무언가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그녀가 다녀왔던 동일한 일정으로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해도 나는 그녀와는 다른 것들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비슷한 것이라손 치더라고 나에게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었을 텐데 이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에서야 이 이야기를 마주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녀의 문장과 느낌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녀와 함께 이 길을 여행해보고 싶다. 내가 담아올 것들은 무엇인지, 그 안에 그녀와의 공통점은 있을는지, 먼 미래겠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르's 추천목록

 

여행수업 / Terry L. 동훈저


 

 

독서 기간 : 2014.10.24~10.25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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