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의 시간
도종환 지음, 공광규 외 엮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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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읽고 읽다 보면 어느 새 멍해져서 머리와 마음이 굳어져가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웬만한 글을 읽어도 마음이 동하는 경우가 없는 듯 하다. 그저 지식의 한줄기를 얻었다는 순간의 감격이나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찰나의 감정들뿐,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지 못해 과연 이대로의 독서가 옳은 것인가, 에 대한 나름의 고민들로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묵직한 무언가가 덜어지지 않던 요즘, 나의 이 문제를 도종환 시인의 이야기들로써 조금은 덜어낸 듯 하다.

 좀처럼 시를 읽지 않는 나 역시도 그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은 그의 이야기들은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마도 지나가다 보았다 한들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기에 나의 그릇은 아직 편협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읽어 내려가는 그의 이야기들은 여름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온 몸을 적시는 것이 아니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처마 끝의 빗줄기처럼 그렇게 나에게 전해지고 있었는데 그 작은 울림들은 기어이 가슴 속 한 쪽을 시리게 만든 것이다.

<진눈깨비>로 시작하는 이야기부터 무언가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누이동생이 죽은 아이를 낳던 날 밤
 
진눈깨비가 내렸다.
 
영농기계대금이 밀려 보건소 언저리도 못 가보고
 
손바닥만 한 목숨을 얼어가는 풀뿌리 밑에 묻고
 
씻기지 않을 새벽 노을을 손에 묻힌 채
처가집 더부살이 더욱 기 꺼인 매제는 
 
도시락도 없이 재건조장 일을 나갔다. –본문 

이 안의 운율이든 심상이든, 함축적 의미든 시를 마주하면 꼭 알아야만 했던 모든 것들을 넘어서 그저 그날의 먹먹했던 순간이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작은 생명에 손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차디찬 땅에 다시 묻어야 했을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돈이라는 몇 장의 지폐가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쓸쓸히 아이를 떠나 보내야만 했던 그들의 마음은 어두운 날 내리는 진눈깨비조차 아프게 느껴졌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그 눈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검은 고통으로만 밀려들었을 테니 말이다.

<조센 데이신타이>라는 시를 앞에 두고서 데이신타이가 무슨 말인지를 찾아본 순간 정적이 흐르게 된다. ‘조선 정신대의 일본어 발음이었던 데이신타이를 앞에 두고서는 그 영겁의 시간을 지나왔을 그녀들에 대해서 무어라 아무 말도 없이 숨어서 안타까워하는 나의 모습에 부끄럼만이 타고 오르게 된다.


관광 비행길 타고 제주도에 서울에 내려
 
사업인지 합작투자인지 꽃 같은 이 나라 처녀
 
몇 년이고 몇 달이고 데불고 살다
 
버리고 달아나도 또 오십사 뱃길을 열어주고
누구하나쓰다달단 말 한마디 없다믄요.
 
내 살 깊은 곳 찌르고 간 식민지의 낙인 하나
 
아직도 살갗에 흰 머리에 두터웁게 만져져요.
도라지꽃 우리 인생 꺼낼 말이 있을까만
 
그늘 속에 평생길 한번 피도 못한 도라지꽃
 
죄 없이 약한 저희더러 누굴 용서하라 하시나요. –본문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의 욕망의 그늘 아래 철저히 짓밟혀야 했던 여리디 여린 그녀들은 쓸쓸히 죽어가야만 했다. 아리따운 소녀였던 그녀들은 부모의 보살핌 아래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던 이들이었지만 이곳에서 그녀들은 삭풍에 바람 들어 손만 스쳐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적막 속에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그들의 노리개로 죽어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눈을 감는 순간마저도 자신의 머리칼 만이라도 고향의 품에 전하고 싶었던 이들은 죽어야만 이 모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살아나 다시 제가 낫던 품으로 돌아온다 한들 그 누구도 그녀들을 반기지 않았다. 힘이 없던 나라의, 시대의 잘못이 아닌 마치 그녀들의 잘못인 냥 살아 돌아온 이들을 바라보며 환대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삶을 부끄러워했으니. 그녀들은 우리의 품으로 돌아와 또 한번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지나왔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감옥에 있는 동안 그가 마주했던 제자들에게 하는 이야기들과 자식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이토록 따스한 이에게 가혹한 시간들만이 허락되는 것인지 가슴이 아련해진다.

모순투성이의 날들이 내게 오지 않았다면
 
내 삶은 심심하였으리
 
그물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지 않았따면
 
내 젊은 날은 개울 옆을 지날 때처럼 밋밋하였으리 무료하였으리
 
갯바닥 다 드러나도록 모조리 빼앗기고 나면 안간힘 다해 당기고 끌어와
 
다시 출렁이게 하는 날들이 없었다면
 
내 영혼은 늪처럼 서서히 부패해갔으리
 
고마운 모순의 날들이여
 
싸움과 번뇌의 시간이여 본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스란히 받아들여 다시 지금의 활자로 삶을 농축시켜 전해주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 짧은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처연한 마음이 들게 된다. 그만의 묵직함이 때로는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글을 읽는 내내 내게는 깊은 울림을 주었기에 그의 다른 이야기들도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글을 마주했던 시간이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독서 기간 : 2014.12.2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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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사 - 우리 역사 속 특급비밀37
박지은 지음 / 앨피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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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역사 속 주요한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봤구나, 라는 생각에 이전에 배웠던 순간들을 되짚어보며, ‘, 그래, 이런 내용이었지.’ 라며 다시금 기억을 더듬어보곤 한다. 어느 정도의 이야기들은 한번쯤을 들어봤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마주한 이 <한국유사>는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역사에 대한 초점보다도 그 안에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전해주고 있었고 그렇기에 역사를 보지만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졌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마주하듯이 읽어 내려갔다.  

제발….. 왕이시여 제발…..’
그러나 중천왕은 차갑게 눈길을 돌렸다. 이미 왕은 마음을 돌렸다. 제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애정이 식으면 향기 잃은 꽃과 같은 것을
. 
뭣들 하느냐! 당장 관나부인을 바다에 넣어라
!”
 
그녀는 그렇게 잔인하고 허무하게 서해에 수장되었다. 서기 251, 중천왕 4년의 일이다. 이후 서해 바다의 물이 동해나 남해보다 더 짜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관나의 눈물인가. -본문

 한국사 10대 미인 중 첫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관나부인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처음 마주하게 되었는데 황진이, 어우동, 장희빈 등만을 익히 들어온 나로서는 관나부인이라는 이름이 생경할 뿐더러 과연 그녀는 누구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는데 2미터가 넘는 머리카락의 길이와 고운 얼굴은 그녀의 삶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고구려의 제일가는 미녀로서 그녀는 중천왕의 소왕후로 자리하게 되는데 당시 왕후였던 연씨의 질투로 자신이 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관나부인은 계략을 도모하게 되고 이 계략은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밀어 넣게 된다. 그러니까 그녀는 제 발에 자신이 넘어져 오히려 큰 화를 입은 것으로 이야기는 이곳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수장 당했다는 서해의 바닷물이 짠 이유에 대해서 그녀의 눈물 때문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매듭짓게 된다.

 관나부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서해의 이야기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역사 속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구전으로 들려오는 오랜 된 동화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하니 우리네 역사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페이지 넘기는 손이 바빠진다.

 한확이 막내 누이인 계란을 명나라 공녀로 보내는 길, 수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쑥덕거렸다.
 
그 소리를 떠나는 계란의 귀에도 들어왔다. 가뜩이나 한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
 
이제 이 땅을 다시 밟아 볼 수 있을까. 어머니를 다시 뵐 수 있을까.’ 조선을 떠나는 계란은 모든 것이 마지막인 듯 서럽고 아팠다. –본문

 고려시대때부터 시작된 공녀 선발은 현재 전해지는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당시 영락제의 총애를 반아 후궁이 된 현인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여다 보노라면 한확의 누이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따라가게 된다. 그에게 있던 누이 두 명 모두 공녀로 보낸 그는 그 덕분에 조선에서 임금조차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권력의 테두리 안에 속하게 되는데 한확의 사위인 원명이 요절하고 나서 그의 시대가 마감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의 딸이 다시금 그들의 왕권을 획득하게 됨으로써 한가의 시대는 계속 이어지게 된다. 누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던 공녀 선발은 한확에 있어서는 둘도 없는 생을 살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니, 그는 과연 자신의 삶을 어떻게 돌아보았을까.

 익히 들어왔던 이들 뒤에 숨겨져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만나보면서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김명국이란 화가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으며 광개토대왕을 한번이라도 이기고 싶어했던 아신왕의 고집과 그 안타까운 결말 등 그저 큰 그림만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전해준 <한국유사>는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즐거이 읽어 내려간 책이었다. 이 책 안에 담기지 못한 또 다른 이야기들은 없을지. 역사에 대해서 자꾸 알아 가고픈 마음을 일게 만드는 책이었다.

 

 

아르's 추천목록


역사 e 1 / EBS 역사채널e

 


 

 

독서 기간 : 2014.12.16~12.1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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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집 - 집을 헐어버리려는 건설감독관과 집을 지키려는 노부인의 아름다운 우정
필립 레먼.배리 마틴 지음, 김정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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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르's Review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다. 건설 현장감독이었던 배리마틴은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서 철거 작업도 진두지휘해야했고 그 철거 대상의 주택에 살고 있는 이디스 할머니와의 이야기는 그들이 놓여있는 모습만 보아도 서로 으르렁 전혀 어울릴 수 없을 것만 같은 조합이었다. 철거를 해야하는 이와 철거를 거부하며 지내는 이들이 어찌하여 따스한 정을 나눌 수 있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하면 할 수록 절대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들은 서서히 서로의 삶을 마주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시위대를 마주하며 온 몸으로 막고 있는 전투경찰을 보면서 어쩌면 그들이 이 공간이 아닌 다른 곳이었더라면 서로 따스한 웃음을 나누며 있을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말이다. 서로 이해관계 속에 있기에 서로가 서로를 겨누고 있다곤 하지만 사실 그들의 모든 것을 내려 놓으면 함께할 수도 있을텐데, 라는 막연한 상상은 이디스와 배리에 의해서 현실화 되게 되는데 하나의 집이 아닌 그녀의 마지막 염원이 담겨 있는 소원과 그녀가 지나온 삶에 대해서 나누면 나눌수록 배리는 이디스의 집을 허무는 것을 멈추고 오히려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며 그녀와 함께 서 있게 된다.

"어머니가 바로 여기, 이 소파에서 돌아가셨어."
그녀가 말했다. 눈에는 다시 눈물이 글썽였다. 
"
미국으로 돌아온 건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기 위해서였어. 어머니는 늘 어디 '시설'이 아니라 꼭 지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셨지. 그렇게 해준다고 약속하라고 해서 난 그렇게 했어. 어머니가 바로 여기서 돌아가셨어, 배리. 그리고 이젠 나도 여기서 죽고 싶어. 여기 있는 내 집, 이 소파위에서." –본문 

 꼬장꼬장하고 툴툴거리기 좋아하는 할머니로만 보여졌던 이디스는 점차 배리에게 마음을 열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집 앞 문턱을 넘어 가면 갈수록 그녀는 세상과 담을 쌓으며 지내는 이가 아닌 변화에 대해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하는, 그러니까 현재의 시대를 함께하고 있는 이였다. 그녀가 이 집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작은 소망이자 마지막 바람이었을 뿐이며 건설업체에서 내미는 수 많은 금액의 돈은 그녀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저 이 집을 원했던 것 뿐이었으니 말이다.

 이디스가 배리에게 점점 마음을 열어가면 갈수록 배리 역시 이디스를 보며 그의 가족들을 떠올리게 된다. 점차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아버지와 그가 꾸리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가 함께 이디스의 삶이 중첩되어 비춰지게 되는데 특히나 이디스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은 그녀가 담아 놓은 소설을 넘어 점점 더 깊이 하게 되면서 함께하는 삶에 대해서, 누군가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따금 사람들이 왜 그랬냐고 이유를 묻는다. 
 
이 편지가 내 대답이다.
 
우리는 할 일은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이해하고 배우기를 바라는 건 그 다음 문제다. 자식이 부모의 말이나 행동을 무시한다는 기분이 들 때, 사실은 그들이 항생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것임을 깨닫는 것보다 더 큰 보상이 없다. 
 
인생에 그것보다 더 큰 행운은 없다. –본문 

 애니메이션 UP의 원작이었다는 이 이야기가 판타지와 같은 꿈이 아닌 우리의 삶에서도 쉬이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더욱 따스하게 빛나는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가 실제했기에 우리 주변에도 이들과 같은 따스한 우정이 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훈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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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우정 / 필립 포조 디 보르고저

 

 

 

독서 기간 : 2014.12.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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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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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주 여행을 하며 유성룡 선생에 대한 기록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징비록을 꼭 한번 읽어보리라, 라는 생각을 하며 홀로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하던 그 당시의 생각은 혼자 여행하던 순간에 스치던 감흥이었는지 아니면 진실로 이 책을 찾아보리라는 집념의 발촉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여행을 한지 근 5개월만에 이 책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으니, 그날의 여행이 오늘의 이 책으로의 연계시켜준 것은 틀림 없을 것이다.

전쟁 전에 170만 결에 이르던 조선의 경지 면적은 전쟁 후 54만 결로 줄어들었고, 군량미 조달을 위해 수많은 백성들이 굶주림 속에 헤매야 했다. 그 결과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일까지 빈번히 발생했고, 이곳저곳에서 불만에 가득 찬 자들이 백성을 선동, 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은 <징비록>에 동영상처럼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이런 상황을 겪고 나서도 반성하지 않고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책임 있는 선비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라의 질서는 무너지고 수 많은 문화유산은 불에 타 사라졌으며,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진 현실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본문

징비록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었지만 이제서야 이 책을 마주한 나는 익는 내내 먹먹한 우리의 역사라 이러한 모습이었구나, 라는 생각과 유성룡 선생이 바라던대로 이 책이 후대의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재차 생각하며 읽게 되었는데 임진왜란의 매 순간을 바라보았던 그가 남긴 이 이야기는 그저 그 당시의 기록만이 아닌 그 기록을 통해 그 당시의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지켜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고심하게 한다.

임진왜란의 발발에 대해서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안일함이 이 전쟁의 참사를 점차 키워간 것이 아닐까. 당시 일본의 통신사로 황윤길의 부사로서 임진왜란 이전 일본의 모습을 보고 들어온 그는 일본이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 조정에 보고를 하게 된다. 김성일의 말 한마디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기에 임진왜란의 참패를 맞이했던 것일까. 징비록을 읽는 내내 그 당시 김성일마저도 일본의 침략에 대해 예상을 했다고 해도 판도는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당시 선조의 무능한 모습이나 전장 중에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순간에도 아무런 대책을 하지 않던 조정의 모습들,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자신을 살길을 먼저 도모했던 이들의 모습 속에서 그 위태롭던 순간들 속에서 먼저 앞장서서 나라를 지켜야하는 이들의 우매한 모습들은 우리의 국토를 피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한편 달아난 우리 군사들은 강 언덕까지 쫓겨 왔으나 건널 방도가 없자 강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았다. 미처 강물에 뛰어들지 못한 병사들은 뒤에서 휘두르는 적의 칼을 피하지 못하고 그저 쓰러질 뿐이다.
강 건너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김명원과 한응인은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그때 상신군 박충간이 말 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본문

부산을 통해 상륙했던 왜군이 두달도 안된 시간 만에 평양성까지 함락시키게 된다. 그 사이 선조는 수도를 버리고 평양으로 이주를 하게 되고 평양성마저 함락되기 직전 영변을 향해 길에 오른 모습을 보면서 이 사태 속에서 어찌 이 모든 것들을 수습해야할지, 전장 속에서 어떻게 하면 적병을 물리치고 우리 군간의 긴밀한 소통을 할 수 있을지, 굶주려 죽어가는 백성들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에 대해 유성룡의 계속된 계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현된것은 거의 없었다. 이 이야기들이 실현되기까지의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이를 실현시킬 힘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조선은 나락 속으로 떨어진 것이다.

왜적의 계략이 잘못된 것은 우리에게는 천우신조였다. 우리에게 뛰어난 장수가 하나만 있었어도 길게 이어지던 적의 전선을 끊어 단절시킬 수 있었을테고, 그렇게 되었다면 평양성에서 그들의 대군을 무찌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런 계책을 한양 남쪽에서 사용했더라면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왜적들의 간담이 서늘해져서 수십 년, 아니 수백년 이후에라도 우리 강토를 엿볼 생가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약하고 힘든 상태여서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고, 명나라 장수들 또한 그런 계략을 세우고 쓸 만한 인물이 없어 그저 적을 내쫓을 수는 있어도 응징하거나 두려운 마음을 갖도록 하지는 못했다. 본문

기나긴 전쟁 속에 살아남았다는 것이 기적이었을 것이다. 경작할 수 있는 논과 밭은 반이상 줄어들었고 왜군들의 노략질은 끊이질 않았으며 계속된 학살은 물론 모든 것을 피폐하게 만든 곳이 바로 이 땅 위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명나라의 원조가 있었다고 한들 어찌되었건 타국의 도움이 우리의 마음을 헤아릴 만큼 전해지지도 않았으니 제 땅을 지키기 위한 힘이 없는 당시의 조선의 모습을 집을 빼앗아 간 이들에게 큰소리를 치며 내쫓는 것이 아닌 눈치를 보며 겨우 그들이 떠나기만을 바라던 모습과도 진배 없었으니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도 소리내어 울 수 없던 당시의 선조들은 얼마나 가슴이 사무쳤을까. 그 기록의 역사를 보면 볼수록 가슴이 메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은 우리에게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 하는 한스러움이 계속 솟구치게 된다.

현재의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전쟁이 발발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이름 대신에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압박으로 우리를 계속해서 짓누를 것이다. 징비록을 통해 임진왜란이라는 역사 속 날것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 스스로 힘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하지 못해 회한이 가득했던 유성룡 선생은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그저 한번의 독서로, 이 책을 덮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될, 지옥의 전쟁이 남긴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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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비겁한 승리』 / 김연수저




독서 기간 : 2014.12.1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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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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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 ,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동네를 떠나 이사를 온지 어언 10여년 만에 다시금 그 동네를 거쳐 학교를 찾아가본 느낌은 설렘과 동시에 무언가 변해버린 듯한 모습에 시간이 이토록 많이 흘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나에게 모든 것이었던 학교의 건물과 운동장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고 내가 다녔던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발전된 모습이었지만 그 새로운 모습은 생경하게만 다가왔기에 낯설게만 느껴졌고 그 때만해도 하루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던 친구들은 이제는 각자 뿔뿔이 흩어져 그 존재 자체도 까마득한 기억 속에만 있는 오늘의 시간은 마치 나를 다른 시공간 안에 툭 하고 떨어트려 놓은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이 곳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때의 추억을 되짚어 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나기만 했었는데 나의 이런 설렘과는 반대로 진은 데번을 걷는 동안 설렘 대신 그날의 기억이 오롯이 떠오르며 수 많은 감정들이 교차됐을 것이다.

 피니는 매일 밤 그랬듯이 한참 떠들어댔는데, 그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여기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길 바라. 내가 널 억지로 끌고 왔다는 걸 알아. 하지만 말이야, 바닷가에 아무하고나 올 수는 없는 거잖아. 너도 혼자선 올 생각을 못 했을 거고. 인생에서 지금 같은 십대 시절에 함께 하기 가장 좋은 상대는 역시 단짝 친구니까 그는 잠시 주저하더니 덧붙였다. “내겐 네가 그런 친구야.” 그러고 나서 그가 누운 모래언덕은 잠잠해졌다. –본문

16살의 어디로 튀어 오를지 모를 청춘이 기숙사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함께하게 되는데 이들의 주는 피니어스와 진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가족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는 그들은 누구보다도 가까운 관계다. 피니어스는 진을 진정한 친구로 바라보고 있었고 진에게 있어 역시 피니어스가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모하는 청소년이란 시기에 있었다는 점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피니어스를 바라보는 진의 모습은 친구라는 이름 안에서 보여지는 질투와 그 안에서 진이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동경, 결국은 누가 더 잘났는가 하는 도토리 키재기의 기 싸움이 묻어나고 있는데 어른이 된 지금 그 당시를 바라보았을 때는 무어 그리 중요한 것들이라고 당시 아등바등했나, 싶겠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들이라 느껴졌던 것처럼, 진에게 드리운 피니어스의 유쾌하고 걱정 없는 모습은 그에게는 외경심이 드리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바다를 보며 피니가 내겐 네가 단짝친구야 라고 고백했을 때 그래, 내게도 넌 그런 친구야라고 고백하지 못한 것일 게다.

내 생각에 우리 열여섯 살 소년들을 통해 선생들은 평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추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징집 명부에 올라 있지 않았고 신체검사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탈장이나 색맹 여부를 검사하자고 하지 않았다. 무릎뼈 탈구나 고막이 찢어지는 정도의 사소한 부상뿐, 아직은 우리 중 아무도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장애를 얻진 않았다. 무심하고 제멋대로였던 우리는, 전쟁 동안에도 보존되고 있는 생명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게 아닐가. 어쨌든 선생들은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참을성 있게 대했다.  본문

그런 그들에게는 이미 청소년기의 시기를 넘는 것만으로도 혼돈의 시간이겠지만 16살의 그들의 눈앞에 드리우는 것은 전쟁 참전의 이야기들이다. 이미 전쟁에 휘말리고 있는 당시에 젊은이들은 징집 대상이었으며 그들의 한 학년 위의 17살 선배들은 군대에 지원하고 있는 터였기에 나무에서 뛰어 내리는 것으로 위급 상황을 훈련하는 그들의 모습은 16살의 그들에게는 뛰어넘을 수 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16살과 17살의 차이를 극복해나가기 위해서 한 피니어스와 진의 모험은 피니어스에게 돌아올 수 없는 장애를, 진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게 된다.

 의도적이었건, 의도치 않았던 간에 그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것은 진과 피니어스와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레페뿐이었다. 입대 후 정신 분열증세를 일으키고 있는 레페에 따르면 피니어스를 나무에서 추락하는데 진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고 이미 진이 그 날의 이야기에 대해서 피니에게 울부짖듯 이야기를 했음에도 피니어스는 그 날의 이야기를 믿지 않고 있었다. 그가 가장 믿고 있었던 진이 일부러 그러했으리라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날 순간 밀려드는 배신감에 그는 자신의 몸을 계단에서 다시금 던져버리게 되지만, 그럼에도 피니어스는 진을 믿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주 먼 훗날, 그들이 함께 교정을 걸었다면 어떠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까. 어른들에게는 무던히 부럽게만 보이던 그 시절의 청춘과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그들의 포부가 과연 진에게는 아름다운 것들이라 할 수 있을까. 홀로 교정을 걸으며 지나왔던 자신의 시간들을 보면서 그는 그 안에 담아 두었던 묵직한 이야기들을 털어낼 수 있었을까. 책을 덮고 나서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서 지금이라도 진을 만나 다시금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그들이 둘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아쉬움은 한동안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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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헤르만 헤세저 

 

 

 

독서 기간 : 2014.12.10~12.12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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