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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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 ,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동네를 떠나 이사를 온지 어언 10여년 만에 다시금 그 동네를 거쳐 학교를 찾아가본 느낌은 설렘과 동시에 무언가 변해버린 듯한 모습에 시간이 이토록 많이 흘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나에게 모든 것이었던 학교의 건물과 운동장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고 내가 다녔던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발전된 모습이었지만 그 새로운 모습은 생경하게만 다가왔기에 낯설게만 느껴졌고 그 때만해도 하루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던 친구들은 이제는 각자 뿔뿔이 흩어져 그 존재 자체도 까마득한 기억 속에만 있는 오늘의 시간은 마치 나를 다른 시공간 안에 툭 하고 떨어트려 놓은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이 곳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때의 추억을 되짚어 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나기만 했었는데 나의 이런 설렘과는 반대로 진은 데번을 걷는 동안 설렘 대신 그날의 기억이 오롯이 떠오르며 수 많은 감정들이 교차됐을 것이다.

 피니는 매일 밤 그랬듯이 한참 떠들어댔는데, 그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여기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길 바라. 내가 널 억지로 끌고 왔다는 걸 알아. 하지만 말이야, 바닷가에 아무하고나 올 수는 없는 거잖아. 너도 혼자선 올 생각을 못 했을 거고. 인생에서 지금 같은 십대 시절에 함께 하기 가장 좋은 상대는 역시 단짝 친구니까 그는 잠시 주저하더니 덧붙였다. “내겐 네가 그런 친구야.” 그러고 나서 그가 누운 모래언덕은 잠잠해졌다. –본문

16살의 어디로 튀어 오를지 모를 청춘이 기숙사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함께하게 되는데 이들의 주는 피니어스와 진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가족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는 그들은 누구보다도 가까운 관계다. 피니어스는 진을 진정한 친구로 바라보고 있었고 진에게 있어 역시 피니어스가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모하는 청소년이란 시기에 있었다는 점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피니어스를 바라보는 진의 모습은 친구라는 이름 안에서 보여지는 질투와 그 안에서 진이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동경, 결국은 누가 더 잘났는가 하는 도토리 키재기의 기 싸움이 묻어나고 있는데 어른이 된 지금 그 당시를 바라보았을 때는 무어 그리 중요한 것들이라고 당시 아등바등했나, 싶겠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들이라 느껴졌던 것처럼, 진에게 드리운 피니어스의 유쾌하고 걱정 없는 모습은 그에게는 외경심이 드리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바다를 보며 피니가 내겐 네가 단짝친구야 라고 고백했을 때 그래, 내게도 넌 그런 친구야라고 고백하지 못한 것일 게다.

내 생각에 우리 열여섯 살 소년들을 통해 선생들은 평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추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징집 명부에 올라 있지 않았고 신체검사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탈장이나 색맹 여부를 검사하자고 하지 않았다. 무릎뼈 탈구나 고막이 찢어지는 정도의 사소한 부상뿐, 아직은 우리 중 아무도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장애를 얻진 않았다. 무심하고 제멋대로였던 우리는, 전쟁 동안에도 보존되고 있는 생명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게 아닐가. 어쨌든 선생들은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참을성 있게 대했다.  본문

그런 그들에게는 이미 청소년기의 시기를 넘는 것만으로도 혼돈의 시간이겠지만 16살의 그들의 눈앞에 드리우는 것은 전쟁 참전의 이야기들이다. 이미 전쟁에 휘말리고 있는 당시에 젊은이들은 징집 대상이었으며 그들의 한 학년 위의 17살 선배들은 군대에 지원하고 있는 터였기에 나무에서 뛰어 내리는 것으로 위급 상황을 훈련하는 그들의 모습은 16살의 그들에게는 뛰어넘을 수 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16살과 17살의 차이를 극복해나가기 위해서 한 피니어스와 진의 모험은 피니어스에게 돌아올 수 없는 장애를, 진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게 된다.

 의도적이었건, 의도치 않았던 간에 그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것은 진과 피니어스와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레페뿐이었다. 입대 후 정신 분열증세를 일으키고 있는 레페에 따르면 피니어스를 나무에서 추락하는데 진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고 이미 진이 그 날의 이야기에 대해서 피니에게 울부짖듯 이야기를 했음에도 피니어스는 그 날의 이야기를 믿지 않고 있었다. 그가 가장 믿고 있었던 진이 일부러 그러했으리라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날 순간 밀려드는 배신감에 그는 자신의 몸을 계단에서 다시금 던져버리게 되지만, 그럼에도 피니어스는 진을 믿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주 먼 훗날, 그들이 함께 교정을 걸었다면 어떠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까. 어른들에게는 무던히 부럽게만 보이던 그 시절의 청춘과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그들의 포부가 과연 진에게는 아름다운 것들이라 할 수 있을까. 홀로 교정을 걸으며 지나왔던 자신의 시간들을 보면서 그는 그 안에 담아 두었던 묵직한 이야기들을 털어낼 수 있었을까. 책을 덮고 나서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서 지금이라도 진을 만나 다시금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그들이 둘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아쉬움은 한동안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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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헤르만 헤세저 

 

 

 

독서 기간 : 2014.12.10~12.12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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