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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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얼마 전 경주 여행을 하며 유성룡 선생에 대한 기록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징비록을 꼭 한번 읽어보리라, 라는 생각을 하며 홀로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하던 그 당시의 생각은 혼자 여행하던 순간에 스치던 감흥이었는지 아니면 진실로 이 책을 찾아보리라는 집념의 발촉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여행을 한지 근 5개월만에 이 책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으니, 그날의 여행이 오늘의 이 책으로의 연계시켜준 것은 틀림 없을 것이다.

전쟁 전에 170만 결에 이르던 조선의 경지 면적은 전쟁 후 54만 결로 줄어들었고, 군량미 조달을 위해 수많은 백성들이 굶주림 속에 헤매야 했다. 그 결과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일까지 빈번히 발생했고, 이곳저곳에서 불만에 가득 찬 자들이 백성을 선동, 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은 <징비록>에 동영상처럼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이런 상황을 겪고 나서도 반성하지 않고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책임 있는 선비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라의 질서는 무너지고 수 많은 문화유산은 불에 타 사라졌으며,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진 현실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본문

징비록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었지만 이제서야 이 책을 마주한 나는 익는 내내 먹먹한 우리의 역사라 이러한 모습이었구나, 라는 생각과 유성룡 선생이 바라던대로 이 책이 후대의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재차 생각하며 읽게 되었는데 임진왜란의 매 순간을 바라보았던 그가 남긴 이 이야기는 그저 그 당시의 기록만이 아닌 그 기록을 통해 그 당시의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지켜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고심하게 한다.

임진왜란의 발발에 대해서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안일함이 이 전쟁의 참사를 점차 키워간 것이 아닐까. 당시 일본의 통신사로 황윤길의 부사로서 임진왜란 이전 일본의 모습을 보고 들어온 그는 일본이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 조정에 보고를 하게 된다. 김성일의 말 한마디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기에 임진왜란의 참패를 맞이했던 것일까. 징비록을 읽는 내내 그 당시 김성일마저도 일본의 침략에 대해 예상을 했다고 해도 판도는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당시 선조의 무능한 모습이나 전장 중에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순간에도 아무런 대책을 하지 않던 조정의 모습들,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자신을 살길을 먼저 도모했던 이들의 모습 속에서 그 위태롭던 순간들 속에서 먼저 앞장서서 나라를 지켜야하는 이들의 우매한 모습들은 우리의 국토를 피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한편 달아난 우리 군사들은 강 언덕까지 쫓겨 왔으나 건널 방도가 없자 강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았다. 미처 강물에 뛰어들지 못한 병사들은 뒤에서 휘두르는 적의 칼을 피하지 못하고 그저 쓰러질 뿐이다.
강 건너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김명원과 한응인은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그때 상신군 박충간이 말 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본문

부산을 통해 상륙했던 왜군이 두달도 안된 시간 만에 평양성까지 함락시키게 된다. 그 사이 선조는 수도를 버리고 평양으로 이주를 하게 되고 평양성마저 함락되기 직전 영변을 향해 길에 오른 모습을 보면서 이 사태 속에서 어찌 이 모든 것들을 수습해야할지, 전장 속에서 어떻게 하면 적병을 물리치고 우리 군간의 긴밀한 소통을 할 수 있을지, 굶주려 죽어가는 백성들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에 대해 유성룡의 계속된 계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현된것은 거의 없었다. 이 이야기들이 실현되기까지의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이를 실현시킬 힘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조선은 나락 속으로 떨어진 것이다.

왜적의 계략이 잘못된 것은 우리에게는 천우신조였다. 우리에게 뛰어난 장수가 하나만 있었어도 길게 이어지던 적의 전선을 끊어 단절시킬 수 있었을테고, 그렇게 되었다면 평양성에서 그들의 대군을 무찌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런 계책을 한양 남쪽에서 사용했더라면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왜적들의 간담이 서늘해져서 수십 년, 아니 수백년 이후에라도 우리 강토를 엿볼 생가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약하고 힘든 상태여서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고, 명나라 장수들 또한 그런 계략을 세우고 쓸 만한 인물이 없어 그저 적을 내쫓을 수는 있어도 응징하거나 두려운 마음을 갖도록 하지는 못했다. 본문

기나긴 전쟁 속에 살아남았다는 것이 기적이었을 것이다. 경작할 수 있는 논과 밭은 반이상 줄어들었고 왜군들의 노략질은 끊이질 않았으며 계속된 학살은 물론 모든 것을 피폐하게 만든 곳이 바로 이 땅 위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명나라의 원조가 있었다고 한들 어찌되었건 타국의 도움이 우리의 마음을 헤아릴 만큼 전해지지도 않았으니 제 땅을 지키기 위한 힘이 없는 당시의 조선의 모습을 집을 빼앗아 간 이들에게 큰소리를 치며 내쫓는 것이 아닌 눈치를 보며 겨우 그들이 떠나기만을 바라던 모습과도 진배 없었으니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도 소리내어 울 수 없던 당시의 선조들은 얼마나 가슴이 사무쳤을까. 그 기록의 역사를 보면 볼수록 가슴이 메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은 우리에게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 하는 한스러움이 계속 솟구치게 된다.

현재의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전쟁이 발발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이름 대신에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압박으로 우리를 계속해서 짓누를 것이다. 징비록을 통해 임진왜란이라는 역사 속 날것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 스스로 힘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하지 못해 회한이 가득했던 유성룡 선생은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그저 한번의 독서로, 이 책을 덮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될, 지옥의 전쟁이 남긴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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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비겁한 승리』 / 김연수저




독서 기간 : 2014.12.19~12.21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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