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그들의 정치 -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제이슨 스탠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솔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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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파시즘이란 무엇인지, ‘파시즘’에 대한 용어 정의를 바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의 지식백과를 검색해 보면 ‘1919년 무솔리니가 주장한 국수주의적·권위주의적·반공적인 정치적 주의 및 운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개념은 이탈리아의 ‘파쇼’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결속’이나 ‘단결’의 뜻을 갖고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정치 이데올로기 운동으로 적극 활용된 사상이다.

이 책에서 적용한 파시즘은 ‘극우민족주의’와 관련된다. 민족주의라는 사상은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도구다. 이 책은 파시즘에서 파생된 파시스트 정치에 대해 설명한다. 파시스트 정치는 특정 집단들을 배제하고 시민들 사이의 공감대를 떨어뜨리며 자유를 억압하거나 심할 경우 대량학살을 저지르는 일까지 정당화하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목적은 위계질서를 통해 인간 가치에 차이를 만들어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적 이익을 실현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사회에서든 “파시스트 정치의 가장 분명한 징후는 분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처럼 역사문화적으로 생성된 갈등의 요소가 많은 나라에서 파시스트적 정치 기술은, 정치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요긴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화적 과거를 만들어낸다. 이를 우리나라의 형편에 대입해 보면 약간은 반대의 특징이 나타난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역사와 전통을 내세우기보다 상대 집단의 약점을 들춰내려고 하고, 그 흔적을 지우려고 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즉 집안 내 양대 세력 간의 싸움이 심해지니 아예 나라의 전통이나 문화에서 발전시켜야 할 긍정적인 요소는 전부 내버리는 것처럼 되는 것이다.

파시스트 정치에 대해 주목되는 다음 특징으로는 “음모론과 가짜 뉴스가 이성적인 논쟁을 대체해버리는 비현실의 상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진정으로 나라의 미래와 다음 세대의 안녕을 위한 정책 경쟁은 실종되고, 오로지 권력을 잡고 이익을 독점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유치한 전투만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국민들에게는 아무 유익도 도움도 되지 않는 자기네들끼리의 서사 싸움이 언론을 비롯한 모든 소통 창구를 지저분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피로를 느낀다. 그리고 어느 한 편에 서서 개싸움에 동참하게 되는 비극을 겪는다.

파시스트 정치에 입맛 들린 정치인들이 판치는 나라에서는, 자기 나라의 이익 혹은 특정 집단의 권력 공고화를 위해 자국의 암울한 역사는 지우고, 다른 나라의 과거, 역사를 지우는 일에 해당하는 일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진실에 충실하지 않고 거짓 신화를 만들어내는 작업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보통 사람의 의식구조가 부정적인 역사나 기억에 대해서는 축소하거나 잊어버리려는 경향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또 사람을 계급화하고 우열 관계를 설정하고 그로 인해 일종의 즐거움을 느끼는 가학적 성향도 일정 부분 존재하는 것이 인간 실존의 진실이다. 파시스트적 지도자들은 이런 인간의 내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이용하는 데 탁월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유권자다. 유권자가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정치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어느 하나 적당한 사람이 없어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다. 대중이 우매하다고 비판받고 조롱받는 지점이다. 우리가 선택했거나 선택되도록 내버려둔 그 정치인이 지금 우리의 삶의 방식과 형편을 결정한다. 가장 현명한 대안은 유권자들이 더 똑똑해지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그 사람에게 내 모든 권리와 목소리를 맡겨버리는 것만이 아니다. 그렇게 의미를 한정지어버리면, 또 지속적으로 그 정치인에게 강한 압박을 비롯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정치는 죽는다. 정치가 죽으면 시민의 삶은 황폐해진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유권자들이 똑똑해져야 한다. 자신들의 관심과 이익, 안전을 대변해줄 후보로 아무나 나와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사회에 흘러넘쳐야 한다. “이 책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정당한 전술과 파시스트 정치의 음흉한 전술의 차이를 인식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썼다”는 저자의 저술 목적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도구를 건강하게 취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인 이데올로기, 가부장제, 과거의 신화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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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철학,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박제이 옮김 / 독개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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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답이 없어도, 질문과 대화의 힘으로 다른 차원의 완성을 향해 가게 하는 철학의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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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철학,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박제이 옮김 / 독개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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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생각하는 것, 즉 사고 행위가 주 활동 양상이지만, 실제로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 이정표가 되는 업적을 남긴 철학자들은 주로 ‘행동하는 사유’로서의 특징을 보인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데카르트, 한나 아렌트는 이미 대중적으로도 많이 노출되어 있는 인물들이기에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마지막에 언급된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생소한 인물이어서 낯설었지만, 반대로 그런 점 때문에 우선 관심이 갔다.

소크라테스는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드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대화법이 ‘질문’ 중심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질문은 대화를 만든다. 대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이 오가는 것이다. 공감을 일으키거나 반대 의견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이라는 차원으로 옮기는 신비로운 방법이다. 그 유용함을 소크라테스는 간파했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우리가 본질이나 진리라고 믿는 모든 것들에 의혹을 던지며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 끝에서 발견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 생각하는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만은 의심할 수 없다는 발견이었다. 그것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인 『방법서설』에서 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인용도 주석도 없이, 철저하게 자기 경험과 생각으로 수립된 철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데카르트의 철학적 방법론에서 소크라테스와 유사성을 볼 수 있다. ‘무지의 지’를 말했던 소크라테스처럼, 데카르트는 “알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할 때 아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했다. 이는 곧 지식 그 자체보다 앎에 대한 태도나 자세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한나 아렌트의 철학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업적은 “인간의 기본적 행위인 ‘일’에 관한 철학서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한나 아렌트는 철학의 주제나 대상이 일상에도 매우 많음을 알려주었다. 한나 아렌트는 일과 노동과 활동이라는, 인간의 삶에서 유사한 하나의 형태로 나타나는 이 행위들을 구분함으로써 삶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지 생각하게 한다. 한나 아렌트가 소크라테스, 데카르트와 연결되는 부분은 바로 ‘질문’에 관한 것이다. “생각한다는 행위”는 곧 “한 개인의 물음을 깊게 만드는 일”이라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대화, 데카르트의 생각이라는 개념과 밀접한 연관성을 느낄 수 있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다루는 인물은 요시모토 다카아키라는 철학자다. 그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의 저서인 『공동 환상론』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실재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모두 환상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그 깨달음으로 인해 허무주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환상을 실재인 것처럼 토대 삼아 스스로를 성찰하고 내면의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바람직한 철학적 태도에 대해 논의한다.

인생에 정형화된 답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배우는 모든 형태의 답은 사실 우리 자신에게 그다지 의미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배우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에게 유효한, 자기만의 해답을 찾는 방법인 질문과 대화의 질은 더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에 깊이를 더하는 것”, 이것이 이 책이 가르쳐주는 철학의 최고 미덕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언제나 존재와 지성의 불완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하지만 답이 없는 질문 그 자체가 하나의 목표 또는 지향점이 될 수 있다는 엄청난 발견을 했고, 이것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한 삶, 가치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철학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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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편의점 : 과학, 신을 꿈꾸는 인간 편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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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지 않은 책에 담은 깊이 있는 통찰과 서사 전달력! 저자의 역량이 너무나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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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편의점 : 과학, 신을 꿈꾸는 인간 편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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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지만 정작 읽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대표적인 작품, 파우스트. 저자를 통해 괴테의 『파우스트』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그리고 독일의 신비주의까지 섞여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용은, 악마에게 영혼을 주기로 계약하고 젊음을 얻은 파우스트의 이야기다. 저자는 오늘날 인류가 파우스트, 그리고 과학이 어쩌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현대 버전일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괴테의 작품은 이 책 전체 흐름의 기준이 된다. 해피 엔딩으로 끝난 파우스트처럼, 과학과의 동행을 결심한 인류가 얻은 혜택은 엄청났지만, 이제 그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시점, 그 끝이 파국이 될지 아니면 극적인 구원의 반전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과학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그런 과정에서 그 발전의 궁극적 목표인 인간의 변화,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성을 지키면서 다른 차원의 존재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지 여부를 묻는 저자의 발상이 신선하다.

저자는 인간을 중심에 둔 과학 기술의 방향성을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로 향하는 여정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호모 데우스’는 죽음을 극복한 인간을 의미한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인류가 신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단계에 근접해 있다는 뜻이다.

“종교에서 인본주의로”, “신에 대한 믿음이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는 과정”, “신 중심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 세계관으로”, 이런 문장들을 통해 이 책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건은 중세의 팬데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이후로 인간의 가능성, 즉 과학과 기술로 구현되는 인간 중심의 사회가 서서히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학사의 맥락에서, 현시점에서 가장 종착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 이것을 디딤돌 삼아 인간 중심 세계관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존재가 인간을 밀어내는 일이 벌어질까? 존재의 본질이 데이터일 수 있다는 유발 하라리의 아이디어를 보며 그의 책 『호모 데우스』를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수록돼 있는데, 이른바 ‘족벌 경영’의 원조가 플라톤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가 설립한 ‘아카데미아’의 원장 자리를 그의 가장 뛰어난 후계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닌 조카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플라톤의 이상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적 사상이 후대 역사에 미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곧 종교와 철학,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에서 이들은 매우 상징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과학과 기술의 개념을 쉽게 설명한다. 과학의 역사가 불과 500년 정도라면, 기술의 역사는 인류에게 역사라는 개념이 시작된 시점부터 함께였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또 연금술이 과학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시키기 위해 연금술을 ‘과학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비유한 부분과, 특히 연금술이 르네상스를 일으킨 원동력의 의미도 가진다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또 하나 알게 되었던 놀라운 사실은 면죄부가 한 번 사고 끝이 아니라 유통기한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즉 재판매가 가능한 시스템이었다는 점인데, 탐욕으로 타락했던 로마 카톨릭의 당시 실정을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접해보니 정말 종교의 타락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었던 대목이다. 이 책은 이렇게 과학사의 맥락에서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문화, 경제 전반의 흔적들도 함께 살펴볼 수 있어, 많이 두껍지는 않지만 꽤 깊이 있는 내용을 압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의 지적 수준과 스토리 재구성 역량이 정말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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