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편의점 : 과학, 신을 꿈꾸는 인간 편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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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지만 정작 읽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대표적인 작품, 파우스트. 저자를 통해 괴테의 『파우스트』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그리고 독일의 신비주의까지 섞여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용은, 악마에게 영혼을 주기로 계약하고 젊음을 얻은 파우스트의 이야기다. 저자는 오늘날 인류가 파우스트, 그리고 과학이 어쩌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현대 버전일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괴테의 작품은 이 책 전체 흐름의 기준이 된다. 해피 엔딩으로 끝난 파우스트처럼, 과학과의 동행을 결심한 인류가 얻은 혜택은 엄청났지만, 이제 그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시점, 그 끝이 파국이 될지 아니면 극적인 구원의 반전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과학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그런 과정에서 그 발전의 궁극적 목표인 인간의 변화,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성을 지키면서 다른 차원의 존재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지 여부를 묻는 저자의 발상이 신선하다.

저자는 인간을 중심에 둔 과학 기술의 방향성을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로 향하는 여정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호모 데우스’는 죽음을 극복한 인간을 의미한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인류가 신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단계에 근접해 있다는 뜻이다.

“종교에서 인본주의로”, “신에 대한 믿음이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는 과정”, “신 중심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 세계관으로”, 이런 문장들을 통해 이 책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건은 중세의 팬데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이후로 인간의 가능성, 즉 과학과 기술로 구현되는 인간 중심의 사회가 서서히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학사의 맥락에서, 현시점에서 가장 종착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 이것을 디딤돌 삼아 인간 중심 세계관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존재가 인간을 밀어내는 일이 벌어질까? 존재의 본질이 데이터일 수 있다는 유발 하라리의 아이디어를 보며 그의 책 『호모 데우스』를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수록돼 있는데, 이른바 ‘족벌 경영’의 원조가 플라톤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가 설립한 ‘아카데미아’의 원장 자리를 그의 가장 뛰어난 후계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닌 조카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플라톤의 이상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적 사상이 후대 역사에 미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곧 종교와 철학,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에서 이들은 매우 상징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과학과 기술의 개념을 쉽게 설명한다. 과학의 역사가 불과 500년 정도라면, 기술의 역사는 인류에게 역사라는 개념이 시작된 시점부터 함께였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또 연금술이 과학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시키기 위해 연금술을 ‘과학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비유한 부분과, 특히 연금술이 르네상스를 일으킨 원동력의 의미도 가진다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또 하나 알게 되었던 놀라운 사실은 면죄부가 한 번 사고 끝이 아니라 유통기한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즉 재판매가 가능한 시스템이었다는 점인데, 탐욕으로 타락했던 로마 카톨릭의 당시 실정을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접해보니 정말 종교의 타락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었던 대목이다. 이 책은 이렇게 과학사의 맥락에서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문화, 경제 전반의 흔적들도 함께 살펴볼 수 있어, 많이 두껍지는 않지만 꽤 깊이 있는 내용을 압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의 지적 수준과 스토리 재구성 역량이 정말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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