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 우리는 어떤 통치자를 원하는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전호근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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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사상을, 그가 살았던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연결시켜 설명해주기에 더 유익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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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우리는 어떤 통치자를 원하는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전호근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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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보통 동양의 고대 사상가들인 맹자, 순자, 고자 등을 논한다. 맹자는 성선설, 순자는 성악설, 고자는 성무선악설을 주장했다. 이 책의 제목이 『맹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맹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사유 세계 및 체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제가 ‘우리는 어떤 통치자를 원하는가’이다. 이 말은 맹자의 사상이 오늘날 정치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드러나지 않은 의도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맹자의 사상은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면 독특함을 넘어선 위험한 사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우선순위를 백성, 사직, 임금 순으로 보았다. 그래서 지도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은 사회의 가장 낮고 약한 자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혁명적인 생각이다. 혁명적인 사상으로 당대의 권력자들로부터 핍박받은 2,000년 전 유대 땅의 예수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맹자는 혁명과 개혁의 상징이다. 그래서 지금 세상에 만족하는 사람에게는 맹자의 사상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올바른 정치가 구현되는 세상으로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에게 맹자는 반드시 거쳐가야 할 단계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맹자가 왕도정치뿐만 아니라 일종의 ‘혁명론’을 주장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주장한 왕도정치라는 기준에 어긋나는 군주라면 아래로부터 뒤집고자 하는 감정이 일어나는 것과 구체적인 저항의 시도가 명분과 당위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보다 백성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했던 맹자에게 있어서 자연스러운 논리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는 왕도정치와 혁명에 대한 사상이 현실에 구체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 근거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했다. 맹자의 사상은 인간의 선함, 즉 도덕성을 확신한다는 점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 공자를 계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책은 유가 사상의 체계를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식도 제공하고 있다.

사상이란 현실과 연결되어야 진정한 가치가 있다. 그런 점에서 맹자의 사상은 탁상공론이 아니다. 그의 사상의 중심에 ‘민생구제’라는 뚜렷한 정치적 제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의 왕도정치나 혁명론, 성선설은 모두 이 목표를 향해 있다. 물론 저자가 말하듯이 혁명의 주체를 백성이 아닌, 권력자에서 또 다른 권력자로 이동하는 관점으로 보았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는 있다. 그래서 오늘날 적용하기에는 어느 정도 시대에 적합한 변환 작업이 필요하다.

이 책은 맹자의 사상을, 맹자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연결시켜 설명해주기에 더 유익하다. 예를 들어 맹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당시 기준으로 과학 기술이 상당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으며 이에 따른 폭발적인 생산성의 증가로, 단순 수치로만 보면 매우 풍요로운 시대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보다 권력자들의 탐욕과 이익을 위한 전쟁과 폭력의 기반으로 활용되었다는 데 있다. 풍요는 폭력의 시대를 위한 재료가 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약육강식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던 시기에 맹자는 엉뚱하게도 확고한 전쟁 반대론자로서 평화로운 방법을 중원을 통일할 아이디어로 내세우며 온 세상을 돌아다녔다. 결국 당대에 뜻을 펼치지 못한 채 글과 제자를 남기고 간 맹자는 오히려 후대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위대한 사상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남긴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상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몽상가의 그것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맹자의 매력은 상대가 누구이든, 듣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는 점이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별다른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고집스런 신념의 삶을 평가하면서 쓴 저자의 표현이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현실 속에서는 패배했으나, 역사 속에서는 승리’를 거머쥐고 있는, 역사상 가장 독특한 사례 중 하나인 것이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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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탄생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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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집을 짓는 것이 업인 저자의 관점에서 집에 대한 고민과 생각의 흔적이 담겨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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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탄생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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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원래 의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대상이 있다. 바로 ‘집’이다. 우리나라에서 집은 투자 대상으로 더 많이 거론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내집마련’의 꿈을 갖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집이 아닌, 가격이 오르기를 기대하며 여러 번의 매매를 통해 더 큰 수익을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산을 늘리면서 최종적으로 좋은 집에서 사는 그림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소수의 승리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빚에 허덕이며 온 삶을 소진하게 되고 만다. 그래서 하우스푸어라는 말도 나온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은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런 의미의 집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은 집에 대해 역사적, 철학적 의미에 더하여 공간의 개념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 연결되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까지 다루고 있으며, 비교적 독자들이 읽기 쉬운 일상의 언어로 탐구한다.

건축 개념이 들어서기 이전의 인류는 자연환경에서 적당히 몸을 피하고 쉴 곳을 발견했다. 동굴 같은 장소가 그에 해당한다. 그러다가 우리가 학교에서 보았던, 선사시대의 움집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디스커버리채널 같은 데서 아무 도구나 지원 장비 없이 내던져진 탐험가가 주변의 자연물을 이용해 셸터를 만드는 그런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사례를 통해 인류의 초기 조상들이 경험했던 최적의 삶의 공간에 대한 감각이 일종의 본능적 그리움으로 내면화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집은 인간에게 위로의 공간이기도 하다. 피로한 몸을 쉬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모된 정신적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안식의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요즘처럼 외부 환경과 차단된 인공적 고요함이 아니라, 자연과 연결된 집의 의미를 돌아본다. 마치 시골집이나 마당 있는 집에서 경험할 수 있는 비 오는 날의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바람 소리, 나무라도 한 그루 심어져 있으면 거기에서 떨어지는 열매나 떨어지는 잎사귀 소리가 만들어내는 치유의 힘이 있는 고요함을 상기시킨다.

공간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킨다. 그것은 ‘억제’나 ‘여유’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존엄과 가치를 최적으로 지킬 수 있는 적정 공간의 면적을 확인하고 실제 삶에 반영한다. 너무 큰 집에 살았던 사람은 집 사이즈를 줄인다든지, 집 구성원의 형편에 따라 가장 필요한 집의 형태를 구현한다. 저자가 발견한 최적의 생활 면적은 12평이라고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사색이 담긴 문장들 사이사이에 다양한 현대 건축물도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대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건축물도 애초 설계의 목적은 사람이 사는 것이었는데, 그런 역사적 건축물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관광지로 변해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살아야 되는 집이 ‘보는 집’으로 변질되어 있다는 점은, 마치 앞에서 언급했던 우리나라의 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겹쳐 보인다.

나무로 집을 짓는 것을 업으로 삼는 저자의 관점에서 집에 대한 고민과 생각의 흔적이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특히 환경 오염 및 자원 고갈과 관련하여 유일한 미래 대안으로 지속 가능한 친환경적 재료는 나무뿐임을 강조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월이나 재난에 대한 내구성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 나도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려주면서도 이웃과 환경, 지구의 미래를 돌보는 데까지 동참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스위트 홈’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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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는 유전자 -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대하여
요아힘 바우어 지음, 장윤경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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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를 연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의 설계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유전자의 특성과 원리를 연구하여 잘 이해하게 된다면 그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현상이나 존재가 발견되고 보완되고 일반적인 사실로 인정되는 지식의 여정의 끝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간과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앞서 질문한 것처럼 유전자를 비롯한 생명공학 분야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었으며 지금도 많은 새로운 것들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계속 높여가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들의 주장은 정말 의아스러울 때가 많다. 목적이 종교를 말살시키려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종교적 진리가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사람들을 뭉치게 하고 서로 협력하게 하고 공존하게 하는 것, 다시 말해 그런 문화들 중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의 의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상실시키고 그 자리를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이미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대상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인간에게 있는 이중적 본성, 선과 악 또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을 파괴하려는 것과 다름 없는 악랄한 시도다. 유전자의 목적이 생존과 대를 잇는 것이라면 당연히 상황에 따라 이기적일 수도 있고, 이타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 하나의 개체로 살아가는 것이 불리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그것 때문에 기나긴 역사 속에서 유전자가 선택한 협력이나 공감의 전략은 꽤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것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성이라는 가치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 책은 인간이 도덕적 존재로서 선을 지향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받아들인다면, 과연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저자는 그 능력 유전자 단계에서 어느 정도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유전자가 보여주는 협력자, 소통가로서의 특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결과적으로 사회친화적인 삶을 추구하도록 만들었다고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는데, 한마디로 유전자는 좋거나 나쁜 유전자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좋은 유전자, 나쁜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부 영향을 통해 좋거나 나쁘게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동안 멘델의 유전 법칙이 잘못 적용되면서 유전자가 결정론적 요인으로 오해되고 있었지만, 점점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은 마음과 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정신과 물질의 관계성이 과학적으로 점점 입증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삶의 자세는 유전자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면서, 선한 행동이 행복한 삶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공감과 협력, 상호소통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유전자의 선택은 그 반대의 선택을 한 유전자들보다 더 우위에 있으면서 인간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종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비록 완전한 평화는 이룰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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